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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3반 료타 선생님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서평단모집 이벤트에 응모한것도 처음이었고, 당첨된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 5학년 3반 담임이라는 말을 안 썼다면 과연 당첨됐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책 제목인 5학년 3반이 지금 내가 맡고 있는 학급이고, 책을 읽어보니 계속 저학년만 맡다가 처음으로 5학년을 담임하게 된 상황도 지금의 내 상황과 같았다. 이런 우연이... 그러나 주인공 료타는 25세의 팔팔한 남교사이고, 난 4반 담임인 야마기시 마유코가 본인 스스로 말했듯이 ‘할머니’인 30대 초반 여교사다. 료타의 학급은 32명, 우리반은 33명.
책이 집에 도착한 뒤 기쁜 마음으로 다음날 우리반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다. “선생님이 이벤트에 응모해서 이렇게 책을 받았는데 제목이 글쎄 우리반과 같은 5학년 3반 료타선생님이야. 선생님이 읽어보고 학급문고에 꽂아둘테니 다같이 읽어보자” 아이들도 신기해했고, 쭈뼛뿌뼛 내 책상을 기웃거리며 책 표지를 흘끔흘끔 훔쳐보는 눈치가 꽤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난 이 책을 학급문고에 꽂아둘 용기가 없다. 왜일까?
먼저 소설은 소설이기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나온다. 학급을 기간제교사에게 맡겨두고 한 아이와 일주일간의 단독수업. 그것도 교실이 아닌 곳에서. 책에 나온 표현 그대로 학급 하나하나가 독립국가인 학교에서 동학년 교사들이 다른반 수업까지 분담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교실에서 간단히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도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데, 쓰레기 소각장옆에 아이들과 함께 집(!)을 짓는다. 그것도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혼다 부모님은 한 학부모님을 떠오르게 했다. 2학년 담임이었을 때인데, 민사고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 아이는 혼다처럼 막중한 스트레스는 받고 있지 않는 듯 보였지만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2학기되어 학군이 더 좋은 학교로 전학을 갔다. 지금쯤 중2가 되었겠다. 어찌 지내고 있을까....며칠 전 국어시간에 ‘내가 채송화처럼 자그마했을 때’라는 시를 배울 때, 나의 어릴 적 뛰어놀았던 경험을 얘기해줬더니 신기한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아이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학교가 끝나도 학원, 공부방을 맴돌다 밤이 되어야 집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팔방놀이, 잠자리잡기, 네잎클로버찾기 같은 놀이가 상상이나 될까....그런 이야기들은 요즘 애들이 보는 ‘검정고무신’이라는 만화에서 본 게 다인데....
두 번째 ‘철거반장’ 부장교사 에피소드는 정말 교사집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교사는 일년이 끝나면 대학입시원서를 접수하듯이 희망학년과 담당업무를 3지망까지 적어 교감선생님께 제출한다. 올해 맡은 학년과 업무의 비중을 고려하여 교감선생님은 내년의 학년, 업무를 배정하신다. 그렇게 학년을 지망할 때 보통 부장교사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좋은 부장교사가 지원한 학년에 다같이 몰리는거다. 물론 내가 맡은 학급의 구성원이 어떤가가 제일 중요하지만, 학교도 교사들에게는 직장이기에 같이 근무하는 동학년 교사, 특히 부장교사가 어떠냐에 따라 일년이 좌우된다. 지금까지 난 구시마부장같은 분은 만나지 않았지만, 교사생활을 하다보면 참 다양한 소문이 들려오게 마련이다. 학교전체의 분위기는 교장,교감선생님에 의해 좌우되지만 그분들이야 결재맡는 것 이외에는 별로 얼굴뵐일이 없다. 결재맡을 게 없을 때는 직원회의시간에 뵙는게 다이다. 그러니 부장교사의 영향이 클 수 밖에.... 료타가 5학년 부장교사를 계속 ‘여우’부장이라고 표현해서 우리 부장선생님한테 이 책을 빌려드려야하나 걱정이다. 저번에 자랑해서 분명히 빌려달라고 하실텐데...
세 번째 에피소드는 정말 소설로밖에 다가오지 않으니 어쩔수가 없다. 내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정말 멋진 창의적수업이구나 하고 감탄했을까....책에서처럼 아이들과 학교부지에 학부모의 지원으로 집을 짓는다는 건 정말 텔레비전 취재감이다. 다큐멘터리. 먼저 관리자입장에서는 료타처럼 튀는 행동을 하는 교사를 싫어하신다. 어떻게든 학교에서 일어난 안좋은 일들을 덮어두려고 애쓰는데, 이렇게 매스컴까지 동원한다면 골칫거리일 수밖에....그런데 왜 항상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교장선생님들은 다들 그렇게 멋지신걸까? 인자하고 묵묵하게 계시다가 결정적일 때 카리스마를 보이시는 전형적인 교장선생님의 모습...항상 안좋은 역할은 교감선생님이 다 하신다. 이 책에서도 나쓰메 소세키를 꼭 닮은 교장선생님은 멋지게 료타를 도와주신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올해부터 교원평가가 처음 실시돼었고, 우리 학교도 일년에 4번의 공개수업으로 일정이 빽빽하게 짜여있다. 2번의 학부모 공개수업과 2번의 동료교사 공개수업. 책에서처럼 학급의 시험성적으로 일년을 평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평가결과로 교사들은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화되어 공개된다고 한다. 료타는 만년꼴찌라고 스스로 얘기하고 다니는 성격의 교사지만, 과연 정말로 그렇게 쿨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몇 명이나 갖고 있을까? 매일매일 열심히 수업하는데, 공개수업날 긴장해서 수업이 잘 안되면 나는 수업 못하는 교사인가? 평상시에는 대충 하다가 공개수업을 위해 갖가지 수업교구 만들어서 한바탕 쇼를 해서 성공하면 나는 우수교사인가? 어쨌든 일단 시작된 제도이니 좋은 결실을 맺어서 정말 자질이 부족하고 교사로서 아이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교사들이 걸러진다면 좋겠다. 다만 그런 교사들은 요리조리 피해가고 엉뚱한 교사들이 걸러지는 폐해는 일어나지 않기를...
책을 읽으면서 내내 우리반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지나갔다. 료타처럼 가슴절절히 감동을 주는 멘트하나 날려주지 못하고, 교장선생님까지 설득하여 이벤트를 열어주지도 못하고,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제일 듣기 좋은 소리라는 경지에는 이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나만 믿고 학교로 와서 아무 탈없이 생활해주는 우리 아이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황사와 계속된 비로 체육을 못해 근질근질한 우리 5학년 3반!! 다음주부터는 우리 더 신나게 같이 배워나가자!!
그리고 이 책은 학급문고에 모른척 꽂아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