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스페인 출신의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스스로 책을 기획하고 직접 제작한 삽화를 실어 '세상 끝 등대'를 출간하였다. 독립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후, 책 자체의 독특함으로 독자에게 큰 주목을 받으며 1만 부 이상 판매되고 더 나아가 세계 14개국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대부분의 작가가 책을 출판할 때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위해 사전 답사를 한다든지, 활자로 옮겨지는 내용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위해 자료를 조사한다든지,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간접 경험이라도 필요해 인터뷰를 한다든지 말이다. 이 책처럼 어떠한 건축물을 소재로 하였다면, 하다못해 건축물이 있는 나라에 직접 가서 등대를 살피는 등의 답사는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끝 등대'에 소개한 34개의 등대에 단 한 번도 답사를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뭐 이런 당찬 사람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독특함이 주목받은 이유에 여러 가지를 추측해 본다. 단순히 유명한 혹은 그렇지 않은 구조물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등대라는 소재 하나만으로도 '각자의 마음속 그리움, 기억 등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과 실제 사진이 아닌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가 큰 역할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는 특유의 느낌이 풍겨져 나온다. 낮은 채도의 민트색을 써서 그런지 고요하고 짙고 어두운 느낌이 더 해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하고 애처롭기까지도 하다. 작가의 삽화가 주는 몽환적인 느낌에서 빨리 깨어나라는 듯, 뒷장에는 직관적인 등대의 정보가 기록돼 있다.
작가의 사전 답사가 이뤄지지 않은 등대에 대한 정보는 기대 이상이다. 등대의 좌표, 건축물에 대한 정보, 준공된 날짜, 최초의 점등일 및 가동 중단된 날짜, 그 나라의 지도에 등대가 위치한 지점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끝에 있는 수많은 등대들 가운데, 작가가 전해주는 34개의 등대에 녹여져 있는 혹은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은 아마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나에게도 과거 여행 가운데 만난 빨간 등대가 한 번씩 떠오를 때가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것도 아닌 그 등대에서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이 펼쳐졌던 적이 있다.
작가는 등대를 '세상 끝'이라 표현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등대를 '세상의 시작'이라 말하고 싶다. 나에게 등대는 그리움이 기대감으로 바뀌는 그런 느낌,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그런 느낌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