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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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품이 리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번 작품 집에서 리뷰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이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이유로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의 리뷰를 짧게 작성했다. 나도 우리의 소원 하나를 말하자면 더이상 이런 식으로 문학을 모독하는 일들이 벌어지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예술을 이념을 위한 도구로 쓴다면 그것이 예술인지 선전도구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예컨대 기독교 전도영화를 보자. 누군가 박해를 받고 순교하는 장면을 보며 기독교 신자들은 애절하게 울겠지만 그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관객은 오롯하게 객관적인 예술성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이념을 설파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면 어떤 극적인 재미가 있다는 것일까? 일제 강점기에 고통받던 사람들은 오로지 여성과 성소수자뿐일까? 그게 아니라면 여성과 성소수자는 약자 중에서도 더 약자, 그러니까 가야트리 스피박이 이야기한 하위주체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한 장치로 역사와 소설을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일까? 만일 스피박이 이 작품을 읽었다면 경멸 이상의 혐오감을 표현 했으리라 믿는다. 정말 하위주체, 서발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을 읽고 싶다면 아룬다티 로이를 읽어보자.

 

고증부터 이야기 해보자. 제중원은 1884년 갑오개혁 행정 개혁 때 내무아문으로 폐합 되었고 세브란스병원이 생긴 것은 1904년이므로 안나 서가 활동하던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에 제중원 간호원복장이 등장할 여지는 없다. 더구나 당시의 명칭은 간호원이 아니라 간호부였다는 것은 아래 여러 고증오류를 볼 때 고려의 대상조차 못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작가는 그저 과거를 활용해서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세계관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권리를 주장 중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정치 논리 앞에서 역사적 사실 따위 사소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될 리가 없다. 역사소설이 아니니까.

 

작가의 역사 무시는 이런 사소한 기관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안나의 아버지 서윤식은 돌연 안나를 지참금을 받고 시집을 보낸다. 작가는 팔아버렸다는 표현을 쓰고 싶었던 것같다. 서윤식은 한남, 아니 조선남이니까. 그 이유는 더욱 황당한 것이 당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용주와 홍옥임의 자살사건을 떠올리고 혹시라도 안나가 그런 소동을 벌인다면 자기 이름이 더렵혀질 것이 두려워서란다. 그런 사람이 왜 갑자기 신분도 없던 천기의 딸을 수양딸로 들여서 이화학당까지 보내고 “제중원”의 간호원까지 시켰을까? 이 사실은 역사의 무시는 아니라 개연성 멸시 정도 되겠지만 그 다음 단락에서 심각한 역사적 무지가 나타난다.

 

김용주 홍옥임의 정사(情死)는 1931년 4월 8일이다. 그리고 이 소식에 놀란 서윤식이 안나를 팔아버렸고 남편의 새디즘과 학대에 지쳐 이혼하고 돌아온 것은 빨라도 1932년 정도라고 보면 무난할 것 같다. 그런데 느닷없이 “3·1운동이 한창이던 그 때” 라고 했는데 그때는 1930년 평양고무공장 여성 노동자가 근무환경개선을 외치고 시위가 벌어지던 때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임신한 채 돌아온 윤경준을 만난다. 그런데 일본군이 위안부를 끌고 간 것은 1939년 2차대전 발발 후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3·1 운동은 1919년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이쯤 되면 작가가 쓰고 있는 역사는 몇 번째 지구에서 벌어진 사건인지 의아하다. 작가의 정치적 의도를 위해서라면 역사를 마음대로 고치는 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걸까? 한 공동체가 겪은 역사적 현실을 오로지 작가의 이념을 위해 편집해서 갖다 붙여도 되는 것일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공동체의 역사적 시공간을 빌려 쓰며 최소한의 조사조차 하지 않는 불성실함은 어떻게 봐야 하나?

 

여기까지 오면 개연성을 묻는 것은 이미 사치에 불과하다. 그래도 독자를 우롱할 의도가 아니라면 몇 가지 서술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윤경준을 처음 만난 날 안나는 윤경준을 아가씨라고 불렀고 한눈에 남장을 한 여자라고 간파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경찰은 윤경아가 남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거, 사내 끼리는 믿고 처분합니다. 요즘 저런 변태성욕자들 때문에 미치겠어요.”라고 말하고 여장 남자 수성을 풀어준다(일제강점기에는 경찰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았고 순사라고 불렀지만 이 역시 다른 고증 오류에 비하하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경찰 역시 한남, 아니 조선남이니 아둔해서 그렇다고 하자. 그래서 남장 여자를 못 알아보는 아둔함도 말이 된다고 넘어가자. 그럼 여장남자는 귀신같이 잡아내는 영민함은 어찌 되는 건가? 독자는 이런 설정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윤선영은 또 어떤가? 동성애자임이 분명한 그녀는 왜 존과 결혼한 것일까? 존이 메리를 돌볼 보모를 구한 것이라서? 그런데 존은 그녀가 과분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사랑한 것이다. 그런 존의 사랑은 철저하게 무시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평론가 이소는 이 소설이 철저하게 “윤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윤리의 시대는 이념의 불필요함과 혁명의 불필요함을 모두가 받아들인 이후에 시작 되었다” 는 옹골찬 말로 이 소설의 가치를 피력한다. 이 말의 함의를 해독하자면 이념도 혁명도 인간을 도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므로 윤리에 배치된다는 칸트의 윤리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작가는 페미니즘 혹은 성소수자의 숨겨진 역사를 밝힌다는 이념을 설파하기 위하여 윤선영의 남편 존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 정도는 안중에도 없는데. 미국 남자의 인권은 이미 인권이 아니라서 윤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렇게 문학을 희화하는 것이 용인되어야 하나?

 

낙관하자고 반복되어서 쓰이는 대사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8-90년대 운동권들이 외치던 구호 중 흔히 쓰이던 것 중 하나가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자” 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대사 하나까지 이토록 시대착오적일까?

 

참고 문헌을 보면 <조선의 퀴어>라는 논픽션이 있다. 이 소설은이 책에 나오는 선정적인 에피소드를 당시의 시대정신으로 해석하고 싶은 작가가 얼기설기 짜 맞춘 이야기다. 이념과 정치성 없이 객관적으로 이 소설을 평가했다면 불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수상후보조차 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래서 정치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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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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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미국을 담은 빛 바랜 풍경사진


벌랜드 부부 곁을 스쳐 가는 군상과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뉴욕의 중산층의 모습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경들제임스 설터는 부분 부분이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벌랜드 부부의 삶의 모습분위기정취를 그대로 전달한다화려하고 지적이고 가끔은 눈부시지만 결국은 허무한 당시의 느낌을 그 때 그 순간을 함께 살았던 느낌을 준다.


리처드 포드는 서문에서 제임스 설터가 이들평범한 부부고립되고 마멸되어가는 미국문화의 고립된 향유자들을-너그럽지 않은 눈으로 다룬다고 이야기 한다비리 벌랜드는 좋은 아빠지만 무능한 남자고이들 중 누구도 닮고 싶지 않은 전형이며 이들은 삶을 원하면 마치 한번 더 살 수 있다는 듯 가볍게 여기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분명 좋은 사람들이지만 말하자면 깊이가 없다는 말이다.


글쎄소설은 독자의 것이니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인데나는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리처드 포드가 언급한 부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멸되어가는 미국 중산층 문화의 고립된 향유자로 이들을 그리고자 한 것도 아니고 삶의 진정 중요한 문제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이들을 비판 하려 한 것도 아니다마찬가지로 이들이 심지어 서로를 사랑하고그리고 마지막 까지도 서로를 존중하므로 우리-이 책을 읽는 미국독자들-누구도 이들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함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한 것은 60년대에서 70년대 후반까지 뉴욕 중산층 지식인을 휘감았던 열기시대정신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부부의 구체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래서 네드라의 모델이 되었던 여자는 자신의 묘비명에 소설의 한 구절을 새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를 비난하고 비판한 글로 읽지 않았기에.


비리 벌랜드는 건축가지만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명성도혹은 네드라 벌랜드가 원하는 만큼의 금전적 성공도 얻지 못한다물론 풍요로왔고 뭐든지 넘치게 많았던 시대, "좋았던 시절"의 중산층이니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건만 비리는 스스로리를 좋은 아빠지만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네드라는 비리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비리는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네드라는 비리에게 가혹하다. 리처드 포드는 비리의 문제점 중 하나가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명성을 얻기 바라는 것이라 말한다. 부당한 것을 원한 것처럼. 포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거다. 명성보다는 실력과 창의력을 가지기를 원하고 명성은 뒤따라 오는 것인데 비리는 반대로 생각했다고. 그 사실을 비리가 몰랐을까? 


한명의 프로페셔널한 지업인로서 자신의 직업군에서 명성을 얻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비리는 가우디를꿈꾸는 사람인데 그만한 재능이 없음에 절망한다하지만 그는 항상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책을 만들고 인형극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자신의 창의력을지성을음악적 교양을 드러낸다심지어 말년에는 깨닫는다자신이 재능과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상주의와 의리인간답기 위한 가치들을 들고 헤매던 일들바로 그 기억 때문에 그는 유지되고 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그리고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그게 문제라는 것도(p. 389).


비리는 능력있는 건축가이자 교양있는 중산층이고 분명 평균 이상의 지성을 지닌 사람이지만 그 시대 모든 사람들처럼 무엇이 옳은지어떤 삶이 바른 것인지그리고 무엇보다도 네드라라는 불꽃처럼 자유로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평생 곁에 둘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소설의 그 누구도 네드라를 영원히 곁에 두지 못한다. 비리는 평범하고 다른 모든 남자들도 평범한 사람인데 네드라는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네드라.

이 소설은 네드라를 축으로 해서 모든 캐릭터-비리 벌랜드를 포함해서아니 특히 비리야말로-가 주변을 공전한다네드라는 아름답고 신비롭다사치스러우면서 지적이고 영원한 자유를 원한다네드라와 비리의 처음 장면은 아름답다. 조랑말을 찾으며 강가의 저택에서 묘사되기 시작한 생활은 눈부셨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다만캐서린은 말한다네드라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여자라고


사실 네드라는 너무나 이기적이라 스스로의 자유를 단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좋은 사람과는 사랑을 해야하고 비리가 지겨울 때는 지겹다고 말해야 한다변덕스러운 자신의 감정에 마지막까지 충실하다생각해보면 그녀가 바로 70년대의 미국이다.


어떤 미국이냐고이런 거다대마초를 피우고가끔은 더한 마약을 하면서 비틀즈와 클래식을 동시에 들으면서 발래와 연극과 영화를 즐기고 안톤 체홉을 읽다가도 인도의 스승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는다어느날은 연극과 비의를 섞은 조오지 구르지예프(혹은 게오르규 구르지예프)스타일의 공연예술을 보고 그 연글의 배우들은 당연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다물질적 풍요속에서 허무를 느끼고 정신적 자유를 찾기 위해 마약과 동양의 해탈을 꿈꾸던 시대네드라가 바로 그 시대다.


첫 장에서 캐서린은 네드라가 이기적이라 하며 남편 피터가 네드라같은 여자와 결혼했어야 한다고 말한다피터는 화를 낸다하지만 4장에서 캐서린은 말한다네드라는 정말 불쌍한 여자라고불행하다고가정을 떠났으니까피터는 아니라면서그녀는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심지어 입센의 노라와 같은자유롭고 참다운 여자의 삶을 산다고 말한다이들이 대화가 네드라의 삶과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인의 시선을 압축하고 있다그리고 이번 대화에서도 피터는 화를 낸다.


축제가 끝나고 모든 것이 사라질 때 네드라는 죽고 사람들은 남는다네드라는 가을에 죽지만 비리는 봄이 되어서야 이탈리아에서 돌아왔다. 처음 그들이 정착했던 집터 강변에서 서서 그들이 함께했던 영원할 것 같던 오후를 회상한다. 눈부셨던 오후를 어둠이 가득한 강변에서 바라본다. 이 소설은 눈부신 오후에서 어두운 밤으로 내려 앉는다. 친구들은-특히 네드라는-떠났고 우리는 강변에 서 있다. 피안으로 떠난 네드라를 이쪽 강변에서 바라보듯.


나는 준비됐고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었어마침내 준비가 되었다고.


자유롭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그 시대는 사라지고 파편들만 남았다.



이 평온한 시간이 안락한 공간이 죽음실제로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접시와 물건들조리 기구와 그릇들은 모든 부재하는 것의 삽화였다과거로부터 밀려온 조각들이고 사라져 버린 몸체의 파편들이었다.


제임스 설터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미국을 떠돌던 공기부유하고 있는 자유의 파편들그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 정신의 그림자가 떠돌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사랑도 스러졌다는 것을 묘사한다가족관계가 스러진 것이 아니라 한 시대와 함께 그들의 모든 것도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의 잔여물이 되었다고 말한다그 시대가 사라지고 있기에 그들은


거짓의 증거들 속에서 거짓을 살았다.


이 장면에서 비리는 딱 한번 네드라에게 화를 낸다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우유부단하다그가 가진 결점은 그것이다우유부단하기에 그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그리고 마지막까지 강변에 서서 생각하게 된다이제야 준비가 되었다고너무나 늦게.



정취와 분위기그리고 빛과 풍광의 묘사가 서사를 에워싸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전달한다는 걸 배운 소설이다하지만 생소한 표현예컨대 "강은 영국인처럼은처럼 찼다"고 말할 때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


번역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유려하고 멋진 번역있지만 중간중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있었는데 원어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박상미님이 번역했는데 <올댓이즈>는 김영준님에게 맡겼다두 책의 번역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공부가 될 거 같다. 


상미님의 말처럼 이 책 제목의 원어 느낌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Light years라고하면 광년이라는 거리 개념과 가벼운 연대라는 특이한 조어, 두 의미가 된다. 소설 분위기를 보면 빛 속에 떠도는 자유의 정취와 파편, 빛 살속에 먼지처럼 부유하는 가볍고 찰나 같은 우리의 삶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가벼운 나날들이라고 번역하면 그 모든 분위기가 다 증발하고 땅에 떨어진 먼지 조각 같은 이미지만 남는다. 번역의 한계라고 밖에. 


읽고 나서 오랜 여운이 남는다. 넘치는 에너지는 아니지만 묵직한 여운이 가슴에 오래 괸다. 가벼운 나날의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빠르게 검은 강에 다가간다.

이 평온한 시간, 이 안락한 공간, 이 죽음. 실제로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 접시와 물건들, 조리 기구와 그릇들은 모든 부재하는 것의 삽화였다. 과거로부터 밀려온 조각들이고 사라져버린 몸체의 파편들이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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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많이 읽었네요. 상위 0.53%라는 것도 놀라운데 상위 0.1%가 돠려면 매달 30권을 더 읽어야 한다는 게 충격적이군요. 상위 0.1%는 하루 1.2권을 읽는다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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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 2
  

 밀레니엄시리즈의 3부, 벌집을 발로찬 소녀. 소설 제명이 우선 발칙하다. 소녀가 공권력이라는 벌집을 발로 찼을 때, 그때 벌들은 소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할까? 

유명한 밀레니엄 시리즈를 아직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이 발칙한 소녀가 건드린 벌집의 시끄러운 소음으로 밀레니엄 시리즈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 속삭이는 자 1, 2         

범죄심리학자, 행동연구가가 연쇄살인범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이 나올까? 프로파일링 기법을 일일 설명하고 주석을 달아가며 스토리를 이어갈까?  

이소설은 위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소설이다. 치밀한 심리학을 기반으로 범죄자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품. 그 같은 작품이라면 누구인들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3. 모두다 예쁜 말들 

  코맥 매카시의 초기 3부작의 일부다. 그가 서부를 배경으로 그리는 소년의 성장기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소년은 어떻게 살아남게 될까? 그리고 그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서부극 이약이라지만 서부 이야기가 아닌 특이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코맥 매카시의 서부를 배경으로 한 성장스토리라면 한번 쯤 읽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4. 퀀텀패밀리즈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그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양자역학보다 더 적절한 것이 있을까? 시간과 공간을 종횡으로 횡단하는 입자들은 우리가 인지하는 3차원시공간의 확실성을 분해하고 초월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확률적 진실뿐. 

그래, 저사람이 지금 이 시공간에서 내 와이프로서 존재할 확률은 99.9999999678%정도로 환산되겠지. 그밖의 확률은 또 다른 시공간으로 산란하겠지. 

이런 개념으로 소설을 쓰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책의 제명을 보면서 그 착상이 떠올라 추천한다. 과연 나의 착상을 그가 구상화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야기일까? 

 

 

5. 달과 게 

사실 난 일본작가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순문학 뿐 아니라 인문학 책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 따위, 그게 과연 제대로된 역사서인가? 인내할 수 없는 일본문학, 인문학의 얄팍함? 

그런데 이 책이 내 선입견을 바꿔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고 하니 한번 믿어볼까? 제명은 멋지네. 달과 게. 병적인 소년의 심리를 잘 상징하고 있는 거 같다. 

달은 그 아이에게 구원의 빛을 보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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