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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성장과 호러 - 두 개골의 서
1.SF?
작자 역시 이 책이 SF범주에 속하는지 의아스러웠던 모양이다. 영생의 탐색, 그 자체는 매우 SF적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영생을 탐색하는 수많은 도가계열 무협판타지도 SF일까? 결국 로버트 실버버그는 다시 단언한다. 휴고상과 네블러상 후보로 지목되었다는 자체가 SF라는 증거 아니겠냐고. 매우 매우 의문스러운 발언이다. 그 만큼 이 책은 SF라는 장르에서 특이한 책이다.
하긴 소위 인문학적인 SF를 표방하는 작품들이 종종 그러하다. <다아시 경의 모험>시리즈는 어떤가? 대체역사 판타지라는 장르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랜달 개릿의 이 수작을 SF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체역사소설은 평행우주론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SF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일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호러미스테리성장소설이다. 네 명의 대학생이 영생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이 다소 호러적인 결말로 치달으면서 그중 일부는 성장(?)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SF이건, SF가 아니건 이 소설은 재미있다.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2. 잘되면 신선, 못되어도 건강?
한 동안 이 나라에는 단전호흡의 열풍이 불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여러 책들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 중에 <잘되면 신선, 못되어도 건강은 챙긴다>라는 제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명의 대학생은 도서관에서 미처 번역되지 않은 <두개골의 서>를 발견하고 그 책에 서 영생하는 수도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된 정보를 토대로 그 수도사들이 살고 있는 사원으로 간주되는 곳을 향해 출발한다. 이들의 생각을 평균내어 보면 이렇게 표현된다. 잘되면 영생, 못되어도 여행의 즐거움.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은 1972년도. 한국의 80년대 말과 90년대 중반까지 뭔가 비슷한 분이기가 느껴지던 시기라고 생각된다. 신비주의, 신과학, 뉴에이지의 물결이 사회 전반의 변혁에의 열망과 뒤섞여 물결치던 시절. 로버트 실버버그는 그 시점의 한 단면을 잘라내어 우리에게 생생하게 재생해 준다.
동양의 신비를 서구적으로 재해석하던 시절, 노장사상, 기(氣), 선단술에 대한 호기심과 인도의 신비주의가 서구적으로 분해되어 재생산 되던 그 시절의 지식인에게 ‘영생’은 단순한 메타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고 대학의 최고지식인이 이 비합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혹은 반신반의 하면서 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캐릭터의 사고 곳곳에 묻어나는 모순, 합리적 이성과 직관적 믿음의 충돌은 바로 당시 지식 사회의 횡단면이다. 이 책은 그래서 뛰어난 소설인 동시에 지식인 사회에 대한 훌륭한 풍속자료다.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스츠키 다이세츠와 엘리아데가 보이고, 칼 융이 쓴 <태을금화종지>의 서문과 해설서가 보이고 프리초프 카프라가 숨어있다. 더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신지학회와 그들이 섬겼던(혹은 섬겼다고 착각하는) 숨은 그랜드마스터들이 슬며시 웃음을 띠우며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구식으로 해석되던 동양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시간이 있다면 이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써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주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서구적으로 재해석된 동양이 다시 우리에게 우리의 이미지로 다가왔고 그 때가 바로 우리의 80년대와 90년대 중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립고도 아스라 하지만 잊고 싶은 부분도 있는 옛 시절의 냄새.
3. 문체, 그리고 번역
이 책은 4명의 일인칭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들의 성격에 따라 네 가지 문체로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실버버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고약한 글쓰기 훈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로버트 실버버그는 훌륭하게 네 명의 캐릭터를 문체를 통해 형상화 하는데 성공했다. 왜냐하면 번역에서도 네 명의 성격은 멋지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티모시는 건조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며 단도직입적이고 네드는 현란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말이 길어진다. 이 두 캐릭터 사이에 일라이-그는 네드쪽에 가깝다-와 올리버-그는 티모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가 있고 이들은 각자의 성정을 일인칭 시점에서 거리낌없이 표현한다.
이 소설이 고약한 글쓰기 훈련이라는 저작의 주장에 동의하며 동시에 번역자에게는 더욱더 혹독한 훈련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근래에 읽었던 몇몇 번역 소설과 달리 매끄럽게 읽히는 것을 볼 때, 또 네명의 성격이 문체에서 드러나는 것을 고려할 때 번역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아 보인다. 덕분에 즐거운 글읽기, 행복한 글읽기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4. 그 밖에 몇 가지........
북스피어에서 나오는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지난번 <아발론 연대기>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디자인이나 외장에 만족감을 느꼈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있어 보여?”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고 던진 마님의 말이다. 하드카피 양장본에 두께에 비해 가벼운 무게, 은백색의 책갈피띠, 멋진 표지 디자인, 본문에 바로 주석을 달아서 독서의 흐름을 끊지 않는 편집디자인........ 컨텐츠도 좋지만 소장욕을 불러일으킬만한 외장과 꾸밈새도 좋았다.
내 취향으로 판단하자면 결말부분이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이 보다 나은 결말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결말과 각 캐릭터의 성격, 기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작자의 의도나 지향점을 분석할 여지가 또 생긴다. 분명히 작자는 무언가 다른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음 기회에 스포일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작자의 의도를 좀 더 분석한 글을 올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