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까지 100마일
아사다 지로 지음, 권남희 옮김 / 산성미디어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1. 후... 리얼리즘은 없다. 그러나...

한 남자가 몰락한다. 밑바닥까지.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그 남자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일어선다. 그리고 어머니를 살리는 그 길이 바로 자신의 재활의 길이 된다. 참으로 선한 존재들이 그와 함께 한다. 그들은 결코 잘살거나 번듯한 존재들이 아니다. 못난 술집아가씨 마리, 야쿠자 사채업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명의. 마침내 삶의 희망이 그를 찾아온다. 어머니의 부활과 함께...

어디서 많이 보았던 줄거리이다. 한 효자, 죽어가는 어머니, 그리고 그를 돕는 천지신명. 어린 시절 늘 읽었던 동화의 단골소재다. 다만 그를 돕는 최후의 존재가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신에 가까운 의술을 지닌 의사라는 것만 다를 뿐. 더구나 그를 돕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현실에서는 볼수 없는 선한 존재들, 현실에 살고 있는 천사들이 아닌가. 현대를 배경으로 한 동화책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번역자의 말대로 이 소설은 읽는이의 가슴을 친다. 내러티브구조 자체가 동화적이긴 하지만 그가 입힌 외피의 형태는 우리의 삶을, 우리네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상류계급은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야쿠자보다도 몰인정한 인간으로. 외형적인 삶의 껍질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를 외면하는 주인공의 형제들, 성공한 자신의 변호사친구, 은행지점장이 된 매형, 이들은 조금 세련되긴 했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전래동화의 악한 그대로이다.

이들로부터 배척받는 주인공은 마침 IMF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우리들의 아버지와 오버랩되면서 마침내 눈물샘을 자극하고야 만다. 이 감동은 치열한 리얼리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2. 우리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코 외형적인 것이 아니다. 설사 외형적인 껍질을 구한다 해도 우리가 그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가슴 속의 따뜻한 그 무엇이다. 이 소설은 그것을 준다.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설사 죽는 것보다 못한 상황일지라도 그 삶을 보다듬어주는 존재들이 우리곁에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삶은 살아갈 만 하다는 메시지를, 우리가 원초적으로 갈구하는 사랑을...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은 특히나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는 감동이 거기에 있다.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 어머니는 부당하게 자신을 희생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가난한 아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보다 부자인 아들에게 버림받고 싶은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 여인 앞에서 어떤 감심장이 눈물을 감출 수 있을까. 우리가 갈구해온 무조건 적인 사랑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3. 우리의 어머니는 6자 단칸방에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가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한 곳일까? 이책에 등장하는 악한들, 중상층의 허위의식 속에서 죽어가고 썩어가는 모습이 현재 우리의 얼굴 아닌가. 우리 사회에 인간은 없다. 다만 껍질만이 존재할 뿐.

우리는 되돌아 보지 않고 살았다. 껍질을 키우기 위해 정신 없이 사는 동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가장 아름 다운 것들은 6자 단칸방에 홀로 남아서 심근 경색을 일으키며 죽어가고 있다. 이제 껍질 마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로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뒤돌아 본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그 소중한 것들을 살리기 위해 100마일 떨어진 천국으로 향한다.

그들이 기꺼이 삶의 모험을, 삶의 감동을 대면하리라. 삶은 원래 그러한 것이니까. 그들이 기꺼이 천국에 도달할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사는 모양을 인간의 것으로 바꿀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