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저 밤 아니면 낮이고
구효서 지음 / 스토리코스모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 정도, 대단히 많이 팔린 로맨스 소설의 광고가 기억난다. 작가는 태연한 표정으로 세상은 사랑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고 자신은 사랑을 믿는 사람을 위해 소설을 썼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로맨스 판타지다. 달콤하다가 쌉싸름하다가 눈물 쭉 빼다가 마지막에 웃는 그런 이야기들. 말하자면 할러퀸 로맨스를 길게 늘여서 한국적 클리셰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뻔뻔하게 세상은 사랑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은 로맨스가 끝나고 남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로맨스가 끝났을 때, 환상과 설탕 범벅으로 가득한 관계가 끝났을 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 그 자체일 뿐. 그래서 삶을 담지 않은 로맨스를 우리는 판타지라고 부른다. 일부는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랑과 만남을 주제로 한 소설이 삶을 직시하거나 삶을 관통하는 울림을 주기도 한다. 구효서작가의 소설집 <세상은 그저 낮 아니면 밤이고>가 그렇다.

 

환상이 잦아들고 남은 우리의 삶은 비루하고 피폐하고 때로는 애잔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삶이라는 것이 그러지 않을 때가 있었나? 가장 화려하고 빛났다고 여기는 시절도 톺아보면 남루한 그림자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마련이다. 그걸 가린 채 보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그때는 좋았지, 하고 자위하는 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보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확대하고 관계의 엇갈림을 확대해서 내밀 때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을 받아들이면 조용한 울림이 시작된다.

 

구효서작가는 6편의 소설에서 단 한 편도 에두르지 않는다. <세상은 그저 밤 아니면 낮이고>의 주인공은 첫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대체물로 위안을 삼으며 과거를 되씹는다. 그리고 현재 만나는 대체물의 여성에게 지겹다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과거로 떠난 여행에서 돌아와 결국 집어든 것은 눈을 아리게 할 정도로 선명하게 살아있는 백합, 그녀가 화병에 꽂아 두었던 꽃이다. 아마도 시들었음이 분명한 그 꽃이 순간 눈이 아리도록 하얗게 빛났던 것은 그가 아직도 삶을 되찾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다음 날 시든 꽃과 다시 울리는 전화통을 보며 그는 지겹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지겨움의 종류는 떠나기전과 다를 거 같다. 그 다름을 포착해서 펼치는 작가의 내공은 대가의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그녀의 야윈 뺨>이다. 오랜 첫사랑이 끝나고 곤궁한 연극배우로서의 내 삶 앞에 문득 야윈 뺨을 한 첫사랑이 찾아온다. 피천득은 <인연>이라는 수필에서 아사코와의 아름다운 만남이 재회에서 무너졌을 때 자신의 환상이 깨어짐을 슬퍼한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 거기에서 그친다면 글쟁이는 될 수 있어도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첫사랑이 깨어지는 것은 미숙한 우리가 자신의 환상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자신의 환상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환상과 현실의 균열이 서서히 벌어질 때 사랑은 깨어지고 대부분은 자신의 환상을 간직하기를 택한다. 그러나 작가는 망설임 없이 현실로 들어서고 주인공은 그녀의 야윈 뺨만을 기억하게 된다. 거품이 사라지고 앙상하게 남은 나와 그녀의 삶. 그것이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실존이다. 직시하는 힘, 그것이 이야기의 힘 아닐까?

 

이야기 전편이 만남과 사랑의 어긋남을 그리고 있는데 그 어긋남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작품은 <철갑나무가 있는 광장>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뛰어넘는 로맨스를 배경으로 어긋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아이러니. 어쩌면 이 작품집의 주제를 가장 잘 담은 단편일지도 모르겠다. 배경으로 잡은 환상과 전면으로 튀어나온 현실이 너무나 선명하기에.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이는 중년의 남자와 어린 대학생간의 풋사랑이 이어질 듯 말 듯 줄타는 긴장이 이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마지막은 어긋난 첫사랑, 그리고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은 과거가 반전의 결과로 이어진다. 한때는 그토록 가슴 아팠던 이별도 나중에는 부둣가의 낡은 밧줄처럼 중간 중간 끊겨 있는 결락으로 남을 뿐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 자조해도 소용없다. 삶의 양태가 그런 것이니까.

 

<깡통 따개가 없는 마을>은 자전적 소설이라 작가의 잔향이 가득한 작품이다. 전업작가 선언을 한 주인공은 팔리는 작품을 쓰겠다며 집을 떠나 암자에서 소일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알게되는 두 가지, 이 마을에는 깡통 따개가 없고, 불목 하니는 탈출 묘기 전문가였다. 그런데 그 불목하니는 묘하게 주인공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다가 마지막에 집에 갈 때는 버스를 따라 달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전업 작가지만 연수입이 끽해야 800인 작가, 그리고 놀라운 탈출 재주가 있지만 주지스님에게 혼나기만 하는 불목 하니, 모처럼 구해 왔지만 쓸모 없는 깡통 따개 이 세 소재가 서로 이어지며 작가의 자조적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어떡하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깡통따개가 된 것 같은 내게 마지막 말이 깊이 자리를 잡는다.

 

<나무 남자의 아내>는 이 작품집 전체를 통해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다. 고타마 싯달타가 좋아했다는 전단향, 그리고 수백년 동안 물에 가라 앉혀 만들었다는 침단, 또 마을 숙업소의 주인인 말총 머리의 그녀가 등장하는데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주인공은 침향을 찾아 이곳에 왔지만 물질적인 침향은 찾지 못한다. 하지만 침향을 찾았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작품은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의 주제를 현대로 옮겨와 문학적으로 윤색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성과 속을 나누는 것이 사실은 속스러운 것 아닌가? 삶은 스스로 충실하다면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인데. 아나톨 프랑스가 직설적으로 던진 주제를 작가는 전단향처럼 은은하게, 침향처럼 깊게 스며드는 향기로 풀어낸다. 아마도 이런 깊이를 품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집의 발문에서 박상우작가는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진짜 소설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집 6편은 모두 깊은 울림을 가져온다. 그 울림의 정체는 비루하고 피폐하더라도 우리가 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 지겹다고 되뇌이더라도 아침이 되면 다시 시작되는 삶 그것을 에두르지 않고 직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우리 가슴에 꽂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