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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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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l 2014-04-29 21:06
https://blog.aladin.co.kr/713598146/6993730
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여행
- 평범한 직딩의 밥보다 좋은 여행 이야기
조은정 지음 / 팜파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책 나온지 벌써 7년! 그당시 여행깨나 했다는 우리같은 여행병자들 사이에선 이 책 별로라는 평이 많았지만 그래도 한발 앞서가는 내용과 마케팅으로 여행책 중에선 크게 성공한 책. 지금 펼쳐보니 여행에 환장해서 헤메고 다니던 그 시절 기억이 아련하네... 추억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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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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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l 2014-04-29 09:46
https://blog.aladin.co.kr/713598146/6992950
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논란이 꽤 있었지만 참신한 새 번역책일 수 있다는 생각에 새움출판사 홈피 게시글들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번역 자체만으로 토론해보자는 댓글이 꽤 있었는데 거기에 답을 할 실력이 안되서 그러는건지 뭔지 이정서씨는 자신의 망상만을 펼쳐놓더라는. 뭔가 굉장히 이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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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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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중에 잊어버릴까봐 여기에 메모해놓는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건 한 한달전 그쯤. 82cook에서 이 책 가지고 말이 많길래 도대체 무슨 책인데 이렇게 시끄럽나 하고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는데 꽤 흥미가 가는 논쟁꺼리가 거기에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방인 번역은 다 틀렸다 라는. 처음엔 이 책 사서 읽고싶은 생각도 들더라. 이정서씨가 출판사 홈피에 설명해놓은 내용이 훨씬더 알아보기 쉽고 말이 되는거야. 오 그럴수도 있겠다 손뼉을 쳤는데. 이정서씨가 불어를 못한다느니 여러가지 비난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번역은 번역으로만 보자는 생각에 번역에 대해서 논한 댓글과 그 답글들만 눈여겨 보았는데 그 중에 한 댓글이 '고마해라'란 분의 댓글. 이 고마해라란 분의 질문에 제대로만 답했어도 난 이정서씨 편을 들었을거다. 분명히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는데 출장을 핑계로 이 질문에 대답을 미루더니만 오늘은 드디어 이정서씨가 "고마해라님.. oo출판사 이방인 번역한 이기언 교수님 아니세요?" 하면서 물타기 시도. 아니 번역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던 분이 왜 먼저 다른 이야기를 하는지. 거기다가 그 고마해라님은 이기언 교수도 아닌거 같은데. 그 고마해라님이 며칠전에 본인 교수 아니라고 프랑스 사는 평범한 가장이라고 댓글에도 답했는데 (이정서씨가 먼저 그날 댓글에 교수님이시죠? 하는 글을 썼음) 그 댓글들은 자기네들이 자기네글 수정하다 지워졌다 어떻다 하면서 다 지워놓고 고마해라 님이 지웠다고 우기고. 불어예문 언급하며 진지하게 질문한 다른분들 댓글에도 묵묵부답, 비아냥글과 진지한 질문글 구별 못하다니? 문외한인 내가 봐도 악성 비아냥댓글과 토론을 원하는 댓글은 한눈에 구별이 가던데. 이정서씨 입맛에 맞게 글 다 고쳐놓고 지금은 홈페이지에 로그인 안하면 댓글 못달게 다 막아놓았다. 티스토리는 초대장 없으면 가입 못히는 사이트라 거기 댓글 달고 싶어도 지금은 못단다. 제3자가 보기에도 이건 정말 이상하다. 한달전부터 관심 있어서 지켜본 예비독자입니다. 혹시나 지금까지 홈페이지에서 벌어진 논쟁 관련해서 증인 필요하시면 연락하세요. (뭐 그럴 일이 있을까 싶지만) 정확히 번역 관련해서 질문하는 사람들까지 다 반대파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아무리 책장사가 중요해도 이건 정말 아닌것 같네요. 와 제3자라도 화가 나요 정말.
혹시 나중에 잊어버릴까봐 여기에 메모해놓는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건 한 한달전 그쯤. 82cook에서 이 책 가지고 말이 많길래 도대체 무슨 책인데 이렇게 시끄럽나 하고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는데 꽤 흥미가 가는 논쟁꺼리가 거기에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방인 번역은 다 틀렸다 라는.
처음엔 이 책 사서 읽고싶은 생각도 들더라. 이정서씨가 출판사 홈피에 설명해놓은 내용이 훨씬더 알아보기 쉽고 말이 되는거야. 오 그럴수도 있겠다 손뼉을 쳤는데.
이정서씨가 불어를 못한다느니 여러가지 비난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번역은 번역으로만 보자는 생각에 번역에 대해서 논한 댓글과 그 답글들만 눈여겨 보았는데 그 중에 한 댓글이 '고마해라'란 분의 댓글.
이 고마해라란 분의 질문에 제대로만 답했어도 난 이정서씨 편을 들었을거다. 분명히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는데 출장을 핑계로 이 질문에 대답을 미루더니만 오늘은 드디어 이정서씨가 "고마해라님.. oo출판사 이방인 번역한 이기언 교수님 아니세요?" 하면서 물타기 시도. 아니 번역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던 분이 왜 먼저 다른 이야기를 하는지.
거기다가 그 고마해라님은 이기언 교수도 아닌거 같은데.
그 고마해라님이 며칠전에 본인 교수 아니라고 프랑스 사는 평범한 가장이라고 댓글에도 답했는데 (이정서씨가 먼저 그날 댓글에 교수님이시죠? 하는 글을 썼음) 그 댓글들은 자기네들이 자기네글 수정하다 지워졌다 어떻다 하면서 다 지워놓고 고마해라 님이 지웠다고 우기고.
불어예문 언급하며 진지하게 질문한 다른분들 댓글에도 묵묵부답, 비아냥글과 진지한 질문글 구별 못하다니? 문외한인 내가 봐도 악성 비아냥댓글과 토론을 원하는 댓글은 한눈에 구별이 가던데. 이정서씨 입맛에 맞게 글 다 고쳐놓고 지금은 홈페이지에 로그인 안하면 댓글 못달게 다 막아놓았다. 티스토리는 초대장 없으면 가입 못히는 사이트라 거기 댓글 달고 싶어도 지금은 못단다. 제3자가 보기에도 이건 정말 이상하다.
한달전부터 관심 있어서 지켜본 예비독자입니다. 혹시나 지금까지 홈페이지에서 벌어진 논쟁 관련해서 증인 필요하시면 연락하세요. (뭐 그럴 일이 있을까 싶지만)
정확히 번역 관련해서 질문하는 사람들까지 다 반대파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아무리 책장사가 중요해도 이건 정말 아닌것 같네요. 와 제3자라도 화가 나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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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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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얼마나 답답하면 제3자인 제가 다 알라딘에 들어와 리뷰를 남길까요? 문학동네(?)가 어딘지는 이번사건으로 처음 알게되었는데 저에게도 문학동네 관련인이냐는 언급을 하시는 걸 보니 그동안 새움출판사 홈피에서 관련인으로 지목받았던 분들 역시 제 경우와 비슷할걸로 예상이 됩니다. 저는 이방인을 펴낸 출판사들과 어떤 관련도 없는 사람임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이 알라딘은 7년전쯤 가입했던 사이트인데 그동안 책 살때나 로그인해봤지 이렇게 리뷰 쓰려고 로그인하게 될줄은 몰랐네요. 어제 처음 리뷰 쓴게 맞아요 전 리뷰를 즐겨쓰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새움출판사 소식은 홈페이지 폰에 즐겨찾기로 저장해놓으면 바로 보입니다. 폰에서 보면 새로 올라온 덧글이 맨위에 보이는 시스템이더군요. 그러니 이 논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클릭만 하면 새덧글 바로바로 볼 수 있어요. 새움출판사 홈피에도 질문글을 쓰고싶었지만 번역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 아닌지라 괜히 남의 홈페이지 지저분하게 만드나 싶어서 참았네요. 여긴 제 리뷰 공간이니 맘대로 써도 되겠지요. 전 이 싸움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82cook에서 처음 보고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관심을 가졌는데 더이상 82cook에선 이야기가 없길래 새움출판사 홈피를 찾아봤고 출판사 홈피에 보니 더 자세한 내용과 이정서씨의 친절한 해석이 있기에 읽어볼만 하겠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처음 며칠간은 이정서씨의 이방인을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네요. 그 후 홈페이지에 번역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이 꽤 올라왔는데 거기에 대한 이정서씨의 답변이 굉장히 늦게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기다려질수밖에요. 그런데 한참만에 올라온 그 대답은 논점을 빗나간, 무척 길기만한 댓글이었어요. 저같은 불어 문외한이 보기에도 (쉬운 단어 겨우 아는 정도의 실력입니다) 아 이건 정답 아닌데 왜 이렇게 빙빙 둘러서 대답을 할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엔 그 질문자들을 문학동네? 또는 모모교수? 이런식으로 의심을 해요. 물론 님이 말씀하시는 출판사 관계자도 질문자 중에는 있겠죠. 하지만 저처럼 정말 궁금해서 즐겨찾기 해놓고 싸움 구경하다 의문점을 질문하고자 하는 제3자도 분명히 있을거란 말입니다. 이정서씨는 이런 독자들을 위해서 이방인을 새로 번역한거 아니십니까? 내 책을 백프로 지지해주는 사람만이 내 책의 예비독자입니까? 이 논쟁이 새움출판사와 다른출판사 간의 싸움인지는 몰라도 그 논쟁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제3자가 많을거예요. 저 같은 경우엔 문학동네(?), 모모 교수(?), 다른 출판사 등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누구편을 들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옳은 답을 하는 쪽에 수긍할뿐. 새로운 관점으로 새롭게 번역된 책에 그러한 의문과 질문은 당연한 것이고, 이정서씨는 역자로서 그 질문에 제대로된 답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명이나 핑계 말고요. 그런데 제 눈에 아직까지 이정서씨는 그 옳은 답을 하지 못하신걸로 보여요.
그러게요 얼마나 답답하면 제3자인 제가 다 알라딘에 들어와 리뷰를 남길까요?
문학동네(?)가 어딘지는 이번사건으로 처음 알게되었는데 저에게도 문학동네 관련인이냐는 언급을 하시는 걸 보니 그동안 새움출판사 홈피에서 관련인으로 지목받았던 분들 역시 제 경우와 비슷할걸로 예상이 됩니다. 저는 이방인을 펴낸 출판사들과 어떤 관련도 없는 사람임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이 알라딘은 7년전쯤 가입했던 사이트인데 그동안 책 살때나 로그인해봤지 이렇게 리뷰 쓰려고 로그인하게 될줄은 몰랐네요. 어제 처음 리뷰 쓴게 맞아요 전 리뷰를 즐겨쓰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새움출판사 소식은 홈페이지 폰에 즐겨찾기로 저장해놓으면 바로 보입니다. 폰에서 보면 새로 올라온 덧글이 맨위에 보이는 시스템이더군요. 그러니 이 논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클릭만 하면 새덧글 바로바로 볼 수 있어요.
새움출판사 홈피에도 질문글을 쓰고싶었지만 번역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 아닌지라 괜히 남의 홈페이지 지저분하게 만드나 싶어서 참았네요. 여긴 제 리뷰 공간이니 맘대로 써도 되겠지요.
전 이 싸움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82cook에서 처음 보고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관심을 가졌는데 더이상 82cook에선 이야기가 없길래 새움출판사 홈피를 찾아봤고 출판사 홈피에 보니 더 자세한 내용과 이정서씨의 친절한 해석이 있기에 읽어볼만 하겠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처음 며칠간은 이정서씨의 이방인을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네요.
그 후 홈페이지에 번역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이 꽤 올라왔는데 거기에 대한 이정서씨의 답변이 굉장히 늦게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기다려질수밖에요. 그런데 한참만에 올라온 그 대답은 논점을 빗나간, 무척 길기만한 댓글이었어요. 저같은 불어 문외한이 보기에도 (쉬운 단어 겨우 아는 정도의 실력입니다) 아 이건 정답 아닌데 왜 이렇게 빙빙 둘러서 대답을 할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엔 그 질문자들을 문학동네? 또는 모모교수? 이런식으로 의심을 해요. 물론 님이 말씀하시는 출판사 관계자도 질문자 중에는 있겠죠. 하지만 저처럼 정말 궁금해서 즐겨찾기 해놓고 싸움 구경하다 의문점을 질문하고자 하는 제3자도 분명히 있을거란 말입니다. 이정서씨는 이런 독자들을 위해서 이방인을 새로 번역한거 아니십니까? 내 책을 백프로 지지해주는 사람만이 내 책의 예비독자입니까?
이 논쟁이 새움출판사와 다른출판사 간의 싸움인지는 몰라도 그 논쟁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제3자가 많을거예요. 저 같은 경우엔 문학동네(?), 모모 교수(?), 다른 출판사 등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누구편을 들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옳은 답을 하는 쪽에 수긍할뿐.
새로운 관점으로 새롭게 번역된 책에 그러한 의문과 질문은 당연한 것이고, 이정서씨는 역자로서 그 질문에 제대로된 답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명이나 핑계 말고요. 그런데 제 눈에 아직까지 이정서씨는 그 옳은 답을 하지 못하신걸로 보여요.
미미
2014-04-3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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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본과 이정서본의 차이점은 어제 올리신 새 글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체 줄거리 정리해놓으신걸 보니 확실히 이정서본이 김화영본보다 앞뒤가 더 잘맞고 인과관계 딱 떨어지는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정서씨본이 까뮈의 원작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논점이 되는 그 부분을 이정서씨가 정확히 증명해주셔야 하는데 그 부분을 파헤치는 질문이 올라오면 자꾸 상대방을 타출판사 관계자로 의심하며 피해가려고 하시니까요. 저는 '까뮈의 원작에 가장 근접한 번역본'을 보고싶은 것이지, '앞뒤가 잘맞고 읽기쉬운 번역본'을 찾는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할거라 생각합니다.
김화영본과 이정서본의 차이점은 어제 올리신 새 글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체 줄거리 정리해놓으신걸 보니 확실히 이정서본이 김화영본보다 앞뒤가 더 잘맞고 인과관계 딱 떨어지는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정서씨본이 까뮈의 원작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논점이 되는 그 부분을 이정서씨가 정확히 증명해주셔야 하는데 그 부분을 파헤치는 질문이 올라오면 자꾸 상대방을 타출판사 관계자로 의심하며 피해가려고 하시니까요.
저는 '까뮈의 원작에 가장 근접한 번역본'을 보고싶은 것이지, '앞뒤가 잘맞고 읽기쉬운 번역본'을 찾는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할거라 생각합니다.
가미
2014-04-3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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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쩌다보니 (?) 이 논쟁 (?)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 독자입니다. 앞뒤가 잘 맞고 읽기 쉬운 번역본이 아니라 까뮈의 원작에 가장 근접한 번역본을 읽고 싶은 것이다라는 미미님의 말씀에 백번 동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새롭게 번역된 책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씀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이 새로운 역자의 기둥서방론 등에 솔직히 아주 큰 의구심이 생기는데, 출판사는 사실 아직까지는 자명하지 않느냐는 답밖에는 내놓은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출판사 티스토리 블로그를 가보면, "고마해라"님이 이기언 교수가 아니라면 그 질문의 경중이 달라진다는 둥 (이건 진짜 새움출판사의 당초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인듯...), 김화영 이기언 교수 등 당사자가 아니라면 답변을 하지 않겠다는 둥, 그러다가 "고마해라"님한테는 밝히신 대로 프랑스에 사는 찌질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이렇게 새움 번역본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하는게 어폐가 있지 않겠냐며 (이 댓글은 지워진거 같아요) 본업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하고, 역자는 얼치기 평론가 번역가들이 뭐라뭐라 하고 있다고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은 얼치기라 하고 여기 알라딘에서도 출판사 마케터라고 밝힌 분이 세상 사람들이 다 이방인에 관심갖고 있지 않다고 이렇게 댓글 많이 다는게 정상적이냐고 하질 않나...사장이 우리 직원들은 당신들에게 모욕을 당해도 좋을만큼 하찮은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들과는 질이 틀린 사람들"이라고 하질 않나 솔직히 이런 대응하는 모습 자체가 굉장히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번역과 편집이라는 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봤을때 역자부터 직원들까지 뭔가 신뢰가 안가요. 답답합니다ㅠ
저도 어쩌다보니 (?) 이 논쟁 (?)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 독자입니다.
앞뒤가 잘 맞고 읽기 쉬운 번역본이 아니라 까뮈의 원작에 가장 근접한 번역본을 읽고 싶은 것이다라는 미미님의 말씀에 백번 동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새롭게 번역된 책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씀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이 새로운 역자의 기둥서방론 등에 솔직히 아주 큰 의구심이 생기는데, 출판사는 사실 아직까지는 자명하지 않느냐는 답밖에는 내놓은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출판사 티스토리 블로그를 가보면, "고마해라"님이 이기언 교수가 아니라면 그 질문의 경중이 달라진다는 둥 (이건 진짜 새움출판사의 당초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인듯...), 김화영 이기언 교수 등 당사자가 아니라면 답변을 하지 않겠다는 둥, 그러다가 "고마해라"님한테는 밝히신 대로 프랑스에 사는 찌질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이렇게 새움 번역본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하는게 어폐가 있지 않겠냐며 (이 댓글은 지워진거 같아요) 본업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하고, 역자는 얼치기 평론가 번역가들이 뭐라뭐라 하고 있다고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은 얼치기라 하고 여기 알라딘에서도 출판사 마케터라고 밝힌 분이 세상 사람들이 다 이방인에 관심갖고 있지 않다고 이렇게 댓글 많이 다는게 정상적이냐고 하질 않나...사장이 우리 직원들은 당신들에게 모욕을 당해도 좋을만큼 하찮은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들과는 질이 틀린 사람들"이라고 하질 않나
솔직히 이런 대응하는 모습 자체가 굉장히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번역과 편집이라는 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봤을때 역자부터 직원들까지 뭔가 신뢰가 안가요. 답답합니다ㅠ
미미
2014-04-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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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번역 관련 질문에 이정서씨가 어떻게 대답하는지만을 관심 가지고 살펴보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가미님 말씀처럼 이정서씨 스스로 자꾸 번역 외 문제로 주제를 바꿔가시는 것처럼 보이는겁니다. 중간중간 어조도 바꾸시는 듯 하고 또 의문을 표하는 덧글엔 상대출판사 알바냐, 모모 교수냐.. 등 신뢰가 안가는 대응을 하셔서요. 그래서 본의아니게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요즘같이 가슴아픈 시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 같아서 저는 이제 그만하렵니다. 불어를 잘 알았다면 더 파고들었겠지만 불어 자체를 잘 모르기도 하고요. 이렇게까지 큰 논쟁이 된 마당에 이정서씨든 아니면 또 다른 분이든 불어 잘하시는 분들이 꼭 진실을 가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 같은 예비독자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이(제3자) 왜 할일없이 게시판 댓글을 하나하나 다 보겠냐구요? 관심 있으니까요. 책을 살때 출판사측 광고글만 보고 사나요? 평 하나하나, 반론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아이들 필독도서는 수행평가 독후감 써서 내야하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필독도서 목록에 나온것 다 사주지만 제가 살 책은 꼼꼼히 비교해가며 삽니다. 엉터리책은 사고싶지 않아요. 책에 리뷰나 댓글 다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눈에 보이는 댓글만이 다가 아니예요 그게 찬성댓글이든 반대댓글이든.. 저같은 예비독자들이 말없이 이 사태를 지켜보고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다는걸 염두에 두고 좀더 책임감있는 답변과 대응 해주시길 출판사측에 바랍니다.
네, 저는 번역 관련 질문에 이정서씨가 어떻게 대답하는지만을 관심 가지고 살펴보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가미님 말씀처럼 이정서씨 스스로 자꾸 번역 외 문제로 주제를 바꿔가시는 것처럼 보이는겁니다. 중간중간 어조도 바꾸시는 듯 하고 또 의문을 표하는 덧글엔 상대출판사 알바냐, 모모 교수냐.. 등 신뢰가 안가는 대응을 하셔서요. 그래서 본의아니게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요즘같이 가슴아픈 시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 같아서 저는 이제 그만하렵니다. 불어를 잘 알았다면 더 파고들었겠지만 불어 자체를 잘 모르기도 하고요. 이렇게까지 큰 논쟁이 된 마당에 이정서씨든 아니면 또 다른 분이든 불어 잘하시는 분들이 꼭 진실을 가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 같은 예비독자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이(제3자) 왜 할일없이 게시판 댓글을 하나하나 다 보겠냐구요? 관심 있으니까요. 책을 살때 출판사측 광고글만 보고 사나요? 평 하나하나, 반론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아이들 필독도서는 수행평가 독후감 써서 내야하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필독도서 목록에 나온것 다 사주지만 제가 살 책은 꼼꼼히 비교해가며 삽니다. 엉터리책은 사고싶지 않아요.
책에 리뷰나 댓글 다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눈에 보이는 댓글만이 다가 아니예요 그게 찬성댓글이든 반대댓글이든..
저같은 예비독자들이 말없이 이 사태를 지켜보고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다는걸 염두에 두고 좀더 책임감있는 답변과 대응 해주시길 출판사측에 바랍니다.
독자
2014-05-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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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자신이 싸질러 놓은 댓글 40개를 획하고 지워버렸네요. 스크랩 했던 걸 여기 답니다. o 고마해라 2014/05/06 09:03 이정서씨 딴 말씀 하지 마시고, 답변을 주세요. 비겁하십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정서씨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일입니다. 묻습니다. 김화영의 오역으로 인해 한국에서만 이방인이 그렇게 오독되고 있다는 이정서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물론 이미 밝혀졌지만) 책 수거하고, 사장직 물러나시고, 석고대죄하시겠다는 그 말씀 여전히 유효한가요? 프랑스에서는 까뮈가 죽인 아랍인이 모레스크 여인의 '기둥서방' 혹은 '연인'으로 이해되고 있고, 까뮈의 살인동기가 정당방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정서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즉 '사기'로 밝혀질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시겠다는 말씀 여전히 유효한 건가요? 네. 말씀에 따라, 쪽팔림을 무릎쓰고 갈리마르 출판사에 문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변이 이정서씨의 의도와 다를 경우, 문학동네나 민음사와 맺은 판권 운운할 것이 우려되어서, 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에 따로 문의했습니다. (이정서씨 때문에 아주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그려.) 갈리마르 쪽에서는 아직 답변이 없고(아마 없을 듯 합니다), SEC에서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물론 답변은 충분히 예상하고 계시듯, 이정서씨 사기치지 마시랍니다. 아래는 질의 후 받은 답변 내용입니다. facebook 계정을 통해 문의한 것이니, 이정서씨도 이 계정을 통해 저 답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정서씨 말대로,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죠. 해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왜곡했다고 할까봐. 다만, 이정서씨의 "번역을 고치기 위해 공적으로 무슨일을 해야한다"는 말은 강조하고 싶네요. Je suis Giovanni Gaetani, administrateur de la page Facebook de la SEC. Cette traduction me semble vraiment bizarre et je crois que il faut faire quelque chose pour la corriger publiquement. o 나도 출판인 2014/05/06 09:19 아니, 지금 프랑스가 몇신겨? 댓글 단 시간보니 이정씨 기다렸다는 듯이 댓글 달았네? 왜 이젠 안 나오겠다더니? 24시간 대기중이구만... 허허 도대체 이기언씨하고 뭔 관계야? 하는 짓이 애 같으니, 자식인가? 원 참나... 내가 다 화가 나네... 이 사람아 누군진 모르지만 나이값을 좀 해. 난 불어를 모르니 잘난체 하지 말고... 불어 몰라도 하나도 안 창피하니까. 쯧쯧. o 고마해라 2014/05/06 09:25 지금 2시 21분, 이제 자려고. 내 직업이 좀 그래. 우리 어린이, 불어 못한다고 창피할 거 없어요. 왜? 읽지 못하니까 분해서 그래요? 미안해요. 깍꿍. 그런데 번역하기 나도 귀찮고. 이제 자야할 시간이라서요. 미안. 어린이. 낼 봐요. o indifference 2014/05/06 10:02 이정서 씨가 돌아오셔서 깨끗이 사과할 줄 알았으나, 그런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댓글을 답니다. 아무 말 없이 ‘20번’을 ‘스무번 이상’으로 고친 것에 제가 화가 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거창한 게 아니라 제가 원래 남긴 댓글이 매우 이상해집니다. 이정서 씨 글이 수정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괜한 지적을 한 것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둘째,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명 없는 수정은 논의를 어렵게 만듭니다. 필요에 따라 소명 없이 수정을 가하면, 원래 비판자들이 제기했던 논점이 흐려지고 애매해집니다. 추후 논의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장벽으로 작용하기 마련이고, 이미 논의에 참여하던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SEC 관련된 것입니다. 우선 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SEC’, 카뮈 연구회)는 그냥 일개 단체가 아니라 1982년부터 설립되어 플레이아드 편집자 등을 포함한 카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회입니다. 고마해라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갈리마르 출판사가 작품 해석의 문제에 답할 것 같지는 않고, 만약 답을 받는다면 SEC으로부터 답을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시비를 무릅쓰고 번역해놓습니다. “저는 SEC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Giovanni Gaetani입니다. 그러한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무슨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5. indifference 2014/05/06 10:14 이정서 씨에게 다음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부탁합니다. 1. 20세기 초의 'Arabe'와 'Mauresque'가 다른 인종이라는 근거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2. 레몽이 정부를 때린 것과 관련, 반과거 시제가 반복의 용법으로 사용되었음에도 그 때가 레몽이 처음으로 때린 것이라고 이해한 근거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3. <이방인>에 대한 이정서 씨의 해석과 스웨덴 아카데미(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기관)의 해석이 다른 까닭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이방인>에 대한 이정서 씨의 번역/해석에 대해 프랑스 카뮈 연구회(SEC)에서 '이상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까닭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36. 나도 출판인 2014/05/06 10:20 인디하고 고마해라, 지금까지 둘이서 서로 묻고 답하고 칭찬해주고 별 쑈를 다하더니, 이제 아주 막장이구만, 난 불어를 모르니 우리말로 해봐요, 뭘 어떻게 했다는 거야? 뭐라고 물어봤는데? 매 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번역이 도대체 어떤 걸 두고 하는 말이야? 혹시 김화영 교수걸 두고 그렇다는 거야? 앞에 원본 대조해놓은 걸 보면 불어를 몰라도 김화영 번역이 잘못됐다는 걸 알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유식한 댁들도 이정서씨 번역 어디가 어떻게 어떤 단어를 잘못 옮겼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그걸 지적하면 되지 무슨 변죽만 올리고 있어? 출판인들 다 바보로 알아요? 정말 이건 공적인 조치가 필요한 거 아닐까요? 불문학 교수님들... 언제까지 이렇게 침묵하고만 계실 건가요? 당사자인 김화영 교수는 왜 침묵하고 있는 거요? 우리나라 불문학자 하나도 없어요? 영문학하는 김욱동 교수한테 불어 소설 <이방인>을 오역이요 아니오? 물을 정도라니? 언제는 이정서씨보고 영문판 참조했다고 그 난리더니, 영문학자한테 오역이냐 아니냐를 묻질않나? 당신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오? 이정서씨한테 부탁드리는데, 영문판도 좀 올려주시오. 답답하니... o indifference 2014/05/06 10:24 일단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프랑스어를 모르시는데 어떻게 원본 대조를 통해 김화영 씨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셨나요? 이정서 씨가 'limite'는 '끝'이 아니라 '경계'라는 의미라고 하면, 프랑스어를 몰라도 '끝'이 잘못된 번여기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나요? o 나도 출판인 2014/05/06 10:36 휴~ 답답하네, 그건 그냥 끝이라고 합시다. 지금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알면서 그러는 거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나까지 이상해지네. 그만 난 나갑니다. 계속 그러고들 있으쇼. 아, 원본대조는 앞에 글 두 편만 봐도 다되어 있네요. 좀 글이라도 읽고 책이라도 보고 하든가. o indifference 2014/05/06 10:54 물론 이정서 씨 글에는 프랑스어 원본와 한국어 번역본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도 출판인님이 프랑스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뭐가 맞는 번역인지 판단할 수 있냐는 겁니다. '딱 보면' 아나요? o 나도 출판인 2014/05/06 11:06 또 들어오고 말았는데... 인디님, 기본적으로 소설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정서씨 쓴 글 중에 김화영 번역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인물중심으로 지적한 글이있어요? http://saeumbook.tistory.com/405 정말 훌륭한 불문학 교수가 되시려면 다만 불어를 잘하는 것보다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뒤따라야할 거예요. 소설에서 인물에 대해 잘못 해석하면 그건 다틀린 거에요. 꼭 한번 읽어보길 바라요. o indifference 2014/05/06 11:14 그래서 왜 이정서 씨가 레몽이라는 캐릭터를 잘못 이해했는지 저 위에 매우 긴 반론을 펼쳤습니다. 특히 이건 캐릭터 '이해'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문법에 대한 번역 '오류'까지 수반한다는 점을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o 나도 출판인 2014/05/06 11:31 완전 쇠귀에 경읽기구만, 뭘 기대했든 내가 잘못이지. 에이구... 이정서씨 혹시 보게되더라도 더이상 상대하지 마요. 지금 이글 지우고 나가고 싶지만 이정서씨를 위해 잠시 살려나요. 출판사 임의로 지우던가... 나는 진짜 아웃! 37. 독자 2014/05/06 11:28 정말이지 어쩌다가 이 댓글 흐름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죄로 어제오늘 참 분노를 느낍니다. 열개의 질서정연하고 인내심 많은 글과 한개의 개소리가 나란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걸 목격합니다. 세상이 참 해괴하게 돌아가고 여기가 그 여실한 축소판이네요. 나도 출판인인지 뭔지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이정서 씨가 그때그때 조리가 부족하면서도 매우 조리 있는 체 상황논리의 파도를 탈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인의 이방인 이해를 이정서 씨가 아주 새롭고 해괴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고 설치니까 그게 절대 아니라고 몇분이 보다못해 나선 거 아니었습니까? 너무나도 설득력있게 이정서 씨의 착각을 바로잡아주고 근거를 제시해주었습니다. 이정서 씨는 참으로 의뭉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네요. 자신이 벌어들인 질문에 제대로 응하세요! 38. indifference 2014/05/06 11:44 일부 단어 번역이나 문법적 오류는 모두 지엽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어쨌든 이정서 씨의 캐릭터 이해는 정확하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께. <이방인>에 묘사된 레몽이라는 캐릭터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정부를 피가 나도록 때리고, 복수에 여념하고, 또 때려서 경찰 조사까지 받는 인물이 바로 레몽입니다. '농락'당했다고 이런 행위들이 모두 정당화되나요? 자기를 농락한 사람을 피가 나도록 구타하는 것이 악의가 없고, 순진한 것인가요? '독자님'은 이정서 씨의 작품 이해가 너무 한국적이고 마초적이라고 평가하시는데,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 한말씀님도 이 부분을 똑같이 지적하고 계시지요. 이정서 씨는, 만약 레몽이 양아치라면 과연 뫼르소가 그와 같이 다녔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이런 반문에서, 이정서 씨가 과연 뫼르소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뫼르소는 자신의 안전이나, 사회의 일반적인 도덕 관념에 신경을 쓰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레몽의 인품이 안 좋다고 레몽과 친하게 지내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레몽과 뫼르소가 친하다는 이유로 레몽이 악질이 아니라고 평가할 이유는 없습니다. --- 제가 이 문제에 이렇게 집착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이정서 씨의 '해설'을 보고 자기가 여태까지 <이방인>을 잘못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통탄해하는 리뷰들이 지금도 올라옵니다. 이 사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출판사와 이정서 씨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o beatle 2014/05/06 12:58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번역이란 생각이 든 결정적 지점이 바로, 레몽 캐릭터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 신념이 남달라 레몽을 멋진 사나이로 보는 독자야 어딘가 있을 수 있겠지요..만 애초 그런 필터의 번역은 좀 무섭군요. 하지만 indeffe..님 말씀대로 아무리 순화해서 묘사해도 레몽은 질이 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이죠. '바른 지적에 대해선 언제든 고치'는 것 보다는 더 엄중한 책임이 뒤따라야할 것 같습니다. 역자 본인이 외친 '답은 하나다' '속았다'에 대한. 39. 새움지기 2014/05/06 12:46 indifference님, 새움지기입니다. 독자님들의 리뷰는 막연히 '해설'을 보고 올리는 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부분 '본문 속 좋은 문장'을 인용하고 있으니까요. 그간 <이방인>을 읽으면서,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이방인> 속 카뮈의 문장들에 감동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써보게 되는 리뷰가 아닐런지요. 또 처음 읽는 독자들은 그들대로, 내용과 그 인물들에 대해 이해가 되면서 뭔가 자신이 느낀 가슴 속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리뷰를 쓰는 게 아닐런지요? 출판사의 책임있는 자세 운운하셔서, 결국 연휴중에 메시지 남깁니다. 레몽에 대한 김화영 교수님의 오해에 대해서는 역자님이 이미 다 한 이야기지만, 못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정리해 올리겠다고 하십니다. indifference님 때문에 또 한편의 글을 쓰게 된 셈인데, 역시 필요한 작업이라고도 하시면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좀 쉬시는 건 어떠실지(이건 진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이건 하기가 참 힘드네요 ㅠ). o 지나가다 2014/05/06 12:50 새움지기에게 물어요.. 이방인 사태에 관련해서 사장은/역자는/이대식은/이정서는 '새움지기'라는 아이디로 글을 쓴 적이 없나요? 아무리 봐도 사장 같은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어이가 없네요. 그리고 연휴 끝날 때까지는 말하지 않는다던 사장과 새움지기는 왜이렇게 자주 등장하죠? o 공현 2014/05/06 12:54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 김화영교수가 레몽을 어떻게 오해했느냐가 아니고 이정서님이 레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입니다. 괜히 초점이 어긋난 글을 쓰시느라 시간을 허비하실까봐 말씀드려봅니다 ^^;; o 지나가다 2014/05/06 12:59 초점에 어긋나지 않게 삽질은 하지 말라는 거지요. 상대가 초점을 흐리는데 초점에 어긋나지 않게만 대응해주는 건 너무 신사적이지 않나요? 사실 이방인 번역문제가 이렇게까지 온 건 초점에 어긋나서가 아니라 사장이 저질러온 비도덕적인 행태 때문 아닐까요? 이제 와서 논쟁을 접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그 원인은 알고 있어야죠. 사장이 계속 말을 번복하는데, 지금 상황만 보고는 왜 이러는지 이해도 못할듯요. o 공현 2014/05/06 13:01 아 제 댓글은 새움지기님께 남긴 답입니다. 이정서님이 김화영교수의 래몽에 대한 오해라는 현재 쟁점과는 거리가 있는 글을 쓰는 헛수고를 하실까봐 걱정되어 남긴 겁니다. 지나가다님의 댓글은 물론 물어볼 만한 이야기지요. 저도 종종 궁금했습니다. o 미미 2014/05/06 13:24 저번에도 말씀드렸듯 이번 논쟁을 지켜보고있는 예비독자입니다. 이정서씨나 새움지기님이나 다 알고계시면서도 자꾸 논점을 피해가시려는 것 같아서 한말씀 드립니다. 레몽에 대한 김화영씨의 오해 부분은 이정서씨가 예전에 충분히 설명하셨고 관심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읽어보았을것입니다... 공현님 말씀대로 그 부분은 반복해서 설명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지금 이 시점에 대답해주셔야 할 것 무엇인지 알고계실텐데요. 왜 이정서씨와 스웨덴 아카데미의 해석이 다른지, 왜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서 이정서씨의 번역에 대해 이상하다는 평가를 내렸는지에 대한 이정서씨의 의견이 듣고싶습니다. 저번에 누구든 갈리마르 출판사에 확인해봐라, 내 번역이 틀렸다는게 밝혀지면 그 즉시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한다고 하셨고 지금 그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지요? 굉장히 중요한 시점입니다. 40. 후안무치 2014/05/06 12:47 지금에 와서 사장은 '한말씀', '고마해라', 'Indifference'등의 사람이 논리적으로 사장의 번역을 지적하자 급 건전한 번역비평을 하는 척 한다. 여전히 고마운 마음이고 바른 지적은 언제든지 고치겠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사장이 이런 마음의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들이 그렇게 댓글을 달았을까? 남을 비판하고, 중상모략하고, 노이즈 마케팅만 일삼으면서 자기는 정당하다고 우기던 사장이다. 이방인을 번역한 모든 역자를 무시하고, 읽은 독자를 무시하던 사람이다.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이유로 남의 번역은 다 틀렸고, 자기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채 카뮈의 <이방인>을 그대로 옮겼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아니 접신까지 했는데 그러한 사람의 <이방인>에서 고칠 게 도대체 뭐가 있을까? 그동안의 헛소리는 정말 헛소리였던가? 그냥 헛소리였으니까 미안하고 이제는 건전한 번역비평을 하자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 그래도 건전하게 번역으로 비평해주니까 그동안 자기가 했던 말은 슬그머니 지우고 또 말 바꾼다. 잘못을 인정하면 사장자리도 물러나고 이방인을 폐간시키겠다던 사람이 이제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세월호를 들먹이면서 정당한 척 하지 말아라. 누가봐도 제일 정당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지 않느냐? 박근혜도 와서 한 수 배워야 할 사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o 공헌 2014/05/06 13:01 맞습니다. 이정서(정서는 무슨##)판 이방인은 그의 말대로 수거해서 불태워야합니다. 41. ㅋㅋㅋ 2014/05/06 12:56 이런 자는 우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함. 타락의 끝을 보여주는자. 42. 새움지기 2014/05/06 13:10 당신들의 광기가 당신들부터 피폐하게 만들 것입니다. 43. 논리적사고 2014/05/06 13:23 다시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군요. 어쩔 수 없겠으나 관전하는 사람으로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위의 새움지기님께 묻습니다. 역자는 자신의 번역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갈리마르에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그런 일을 누가하겠어, 그냥 제스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글은 수정되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저장해두었는데, 이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군요. 아래 그대로 인용합니다. 실제로 논쟁을 하던 분인 고마해라님이 SEC(1982년에 설립되어 플레이아드 편집자 등을 포함한 카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회)에 문의했다는군요. 광기라면 광기겠으나, 본인이 이기언 교수라고 역자에게 직접 내몰리고, 이어서 다른 사람이 쓴 글도 본인이라고 남들이 우기는데 이런 식의 지적 해명은 매우 건강한 광기라 생각됩니다. 결국 SEC에서 이름을 달고 공개적으로 대답한 것을 Ind님께서 번역해주셨고요. "저는 SEC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Giovanni Gaetani입니다. 그러한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무슨 조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자라고 하여고 전문 연구회가 더 공신력 있는 건 말할나위도 없지요. 여기에 대하여 이정서씨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사과를 하든, 말을 바꾸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든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다른 사람들의 광기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독자에대한 결례입니다. 외국에선 한국 불문학계의 수준을 어느정도로 생각할까요? 이런 걸 정말 질문이나 하게 만드는 출판사라니! 이에 대한 정확한 해명 바랍니다. 글을 이미 지웠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답변은 모두를 실망시키게 할 것입니다. 아래는 지워진 역자의 말 인용부분입니다. (역자의 글 수정 전 부분) 당장이라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저 위의 1안과 2안을 불러주고 나서 어느 것이 카뮈 <이방인>의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출발어니 도착어니 하며, 번역의 문제 운운할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그 질문을 들은 편집자는 아마도 교수님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독특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확인 결과 제가 하는 말(혹은 번역)이 틀렸다면, 그 즉시 저는 제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할 것입니다.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움 출판사 대표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며 독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혹세무민'했다고 석고대죄할 것입니다. 물론 교수님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o 새움지기 2014/05/06 13:29 지워졌다는게 뭐죠? http://saeumbook.tistory.com/440 3. 뫼르소가 총을 쏜 이유가 단지 태양 때문인가? 하는 문제. 교수님, 일단 한번 거기까지의 소설 상황을 짧게 정리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교수님의 번역서(김화영 교수님을 비롯 기존 번역자들 모두가 그러하지만)를 정리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입니다. 1. ‘이년 저년’이라는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생양아치 같은(포주인) 레몽이라는 사내가 자신의 정부인 여자를 피가 나게 때리고 쫓아낸 뒤, 그에 앙심을 품은 그녀의 오빠가 레몽을 해치기 위해 바닷가까지 따라와서는 싸움이 벌어진다. 뫼르소는 질이 안좋은 레몽이라는 사내의 요청에 따라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레몽과 비슷한 수준의 친구인 마송의 해변가 오두막에 놀러와 있다가 우연히 그 사건에 연루되고, 해변에서 다시 우연히 그 여자인 오빠라는 사내와 단둘이 마주치게 되었을 때,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 뫼르소는 이후에도 쓰러진 상대를 향해 연속해서 네 발을 더 쏘아 그 자리에서 사내를 확실히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법정에서 재판장이, ‘왜 그랬냐’고 묻자, 무덤덤하게 ‘태양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한다. 어떠신지요? 교수님이 번역하신 그대로의 내용이 맞지 않습니까? 그럼 이제 냉정하게 한번 보십시오. 이게 소설이랄 수 있는지. 소설은 개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있음직한 비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사건이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보통 산문과 다른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저기서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요? 모든 게 우연히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선 저대로라 해도, 레몽이 자신의 정부를 때리게 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저기엔 아예 그런 설명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레몽이라는 사내가 생양아치라 이유도 없이 여자를 구타했다’가 되는데, 소설 속에서는 엄연히 “처음으로 손을 댔다”와 “네가 나를 농락했어. 네가 나를 농락했다구”라고 레몽이 소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수님을 비롯한 기존 번역에서는 이 ‘농락’의 이유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저기 등장한 남자가 그냥 여자의 오빠라면, 카뮈가 친절하게 ‘복권’과 ‘전당포’등을 언급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카뮈는 둘이 친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뫼르소만 알고 있다는 암시를 위해 소설적 장치를 해둡니다. “그(레몽)가 여자의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그 여자가 무어 여자임을 알았다.”(본문 93쪽)는 뫼르소의 독백은 그래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카뮈는 ‘아랍인’과 ‘무어인’이라는 태생적 차이를 가지고 분명하게 둘의 관계를 밝히고 있는 것인데, 교수님을 비롯한 기존 번역서들은 이점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신가요? 어찌된 일인지 모두 한결같이 이 점도 간과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뫼르소는 왜 굳이 해변까지 마리와 함께 와서 그 사건에 연루된 것일까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레몽이라는 사내가 저렇듯 생양아치에, 포주에, 여자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자라면, 과연 저 이성적인 뫼르소가 자신의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그 친구의 오두막까지 따라와서 유쾌한 해수욕을 즐기고, 나아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과 여름을 함께 보낼 계획을 짤 수 있었을까요? 마리 역시도. “마송과 레몽 그리고 나는 비용을 분담하여 8월을 함께 해변에서 지낼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Masson, Raymond et moi, nous avons envisagé de passer ensemble le mois d’août à la plage, à frais communs.)” (본문 77쪽) 뫼르소에게 생테스 레몽은, 교수님이나 김화영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그런 양아치가 아닙니다. 그는 그냥 점잖고 지적인 ‘셀레스트’와는 조금 다르게 뫼르소가 뒤늦게 사귄 색다른 친구였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위와 같은 정황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다시 그래야만 최소한의 소설적 개연성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뫼르소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러한 독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몽이 그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셀레스트와 똑같이 나의 친구라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Qu’importait que Raymond fût mon copain autant que Céleste qui valait mieux que lui?)”(본문 164쪽) 이제 제가 읽은 <이방인>은 어떤지 보겠습니다. 2. 외모는 험상궂지만, 남자의 의리를 앞세우는 창고관리인인 레몽이라는 사내가 자신의 정부라고 믿고 생활비를 대주고 있던 여자가 있었는데, 실제는 그 여자의 뒤를 봐주는 '기둥서방'이 있었다. 레몽은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여 ‘이전에는 결코 손을 댄 적이 없었지만’ 여자를 때려서 쫓아낸다. 그에 앙심을 품은 ‘기둥서방’이 레몽에게 복수하기 위해 해변까지 따라오고, 친구인 레몽을 따라 여자 친구와 함께 마송의 해변가 오두막에 놀러와 있던 뫼르소는, 이들의 싸움에 연루된다. 급기야 사람들을 피해 혼자 샘을 찾아왔던 뫼르소는 그곳에서 그 아랍사내와 마주치게 되고, ‘시뻘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샘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오는 뫼르소를 보고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오해한 아랍사내는 먼저 칼을 빼들었고, 다시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눈을 찔러오는 그 칼날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두고’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느꼈던 머리 위 오후 2시의 ‘폭발’하는 태양에 어지럼증을 느끼며 몽롱한 상태에서 네 발을 더 쏘아 사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법정에서 재판장이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뫼르소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검사가 막 사형을 구형한 뒤였던 것이다), ‘자기도 터무니없는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보다시피 앞쪽 1의 줄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이방인>이 아닌가요?(그래서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노이즈가 아니라). 뒷부분은 제 것(2번)을 두고 설명하겠습니다. 레몽을 따라 해변가에 놀러왔다 연루된 싸움, 이제 레몽과 아랍인과의 갈등은 해소되고, 참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혼자 산책을 나왔던 뫼르소는 다시 샘으로 돌아갔다가 친구인 레몽을 ‘농락했던’ 여자의 기둥서방인 아랍인 사내와 단둘이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뫼르소는 단지 뜨거운 태양을 벗어나고 싶어서 사내가 누워있는 샘 가까이로 ‘한 걸음’을 더 옮긴 것인데, 아랍남자는 오해하고 먼저 칼을 빼들었고, 그 칼날에 반사된 강렬한 햇빛이 뫼르소의 눈을 후벼 팠기에, 위협을 느낀 뫼르소는 가지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무의식적으로 당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앞의 두 예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달라지지 않은 게 있습니다. 바로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이유, 그것이 ‘태양 때문’이었다는 표피적 이유 말입니다. 여기에 이 문제의 핵심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보다시피 저렇게 두고봐도, 프랑스인이나 우리나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문학적 레토릭을 다르게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여러 정황들을 모두 외면한 채, 주인공 뫼르소가 우연히 ‘악한’인 레몽을 따라 해수욕을 갔다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다시 우연히 사내와 단둘이 만나게 되자 ‘태양 때문에’ 총을 쏘고, 급기야 네 발의 확인사살까지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게 교수님을 포함한 기존 번역서들의 일관된 시각입니다(그러고보니 바로 소설 속 검사의 시각입니다). 교수님, 과연 이게 말이 되나요?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이런 우연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두고 세계인이 열광하고 노벨문학상 위원회에서 ’현대소설의 전범‘이라는 극찬을 쏟아냈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건 카뮈에 대한 모욕이고, 노벨문학상에 대한 모독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되자, 거기에 부조리라는 말로 포장을 한 게, 기존의 <이방인>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소설이 부조리 소설인 이유는 주인공이 그렇게 횡설수설하며 이유도 없이 그냥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항소도 않고 죽음을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뫼르소의 살해 행위는 충분히 정상참작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평등과 정의를 위해 세웠다고 믿었던 법정에서 오히려 사형을 선고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인들은 충격에 빠졌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부조리’한가 깨닫게 된 것이고, 그래서 이 소설을 ‘부조리 소설’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4. 기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이라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저 위의 1안과 2안을 불러주고 나서 어느 것이 카뮈 <이방인>의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출발어니 도착어니 하며, 번역의 문제 운운할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그 질문을 들은 편집자는 아마도 교수님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독특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확인 결과 제가 하는 말(혹은 번역)이 틀렸다면, 그 즉시 저는 제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할 것입니다.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움 출판사 대표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며 독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혹세무민’했다고 석고대죄할 것입니다. 물론 교수님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께 심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불문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이신데, 저에 대해 어느 만큼은 알고 계시면서도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많이 불쾌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마치 제가 대한민국의 모든 교수님들과 번역가들을 한꺼번에 부정하고 있는 부도덕한 인간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건 그건 변명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안 사안마다 제 목소리를 낸 것은 변명을 한 게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해 자위적 방어를 한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교수님, 설마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의 제가 있는 것도 제게 글공부를 시켜주신 대학의 은사님 덕택이고, 지금의 출판사가 존재하는 까닭도 여러 좋은 역자님들의 도움 덕분인데 말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기존 번역서들의 실수는 바로 앞에서 확인한 듯, 생테스 레몽이라는 인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시초가 누구일까를 쫓아보니 그것이 김화영 교수님 번역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틀린 걸 틀렸다고, 다른 걸 다르다고 세상에 알려야 했고, 그 사실을 정직하게 띠지의 그 카피에 담아냈던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노이즈 마케팅이 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었다>라는 저 카피를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제게 그것은 조금도 과하지 않은 지극히 상식적인 카피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변명이 되는 것 같은데, 정말이지 저는 김화영 교수님을 비롯한 앞선 선학들이 일궈놓은 다양한 성취와 성과들을 전부 폄훼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들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값진 자산들, 그것이 사적으로는 저희 새움출판사도 살찌웠다는 사실 또한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정말이지 어찌된 일인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만큼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있어서는 결코 안 될 실수가 우리 사회에서 빗어졌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실이 어떻게 제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던 것이고, 그 순간부터 저는 진실을 알려야 할 의무까지 짊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셀레스트는 뫼르소를 위한 법정 증언에서 말합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불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운이 어떤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불운입니다(Pour moi, c’est un malheur. Un malheur, tout le monde sait ce que c’est. Ça vous laisse sans défense. Eh bien ! pour moi c’est un malheur.)”(본문 128쪽)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딱 그것인 셈입니다. 5. 이제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독자님들께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한번 연재를 해볼까 합니다. 애초의 블로그 연재가 한 개인에 대한 번역 비평이 주였다면, 이제는 형식을 넓혀, 카뮈 <이방인>의 불문 원문과 더불어 영문, 일문 번역판까지 함께 싣고, 기존의 주요 번역서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기왕 벌어진 <이방인>에 대한 토론의 장을 제대로 펼쳐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이는 특히 훌륭하신 번역가님들과 교수님들의 조언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 번역에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워주신 기라성 같은 댓글러들과 편집자들이 다함께 참여하실 수 있다면 우리 출판계와 번역계, 그리고 순수한 독자들을 위해서도 얼마나 좋은 일일까 생각해봅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게시판에 비아냥조의 댓글들에 저희 출판사 직원들이 개입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 직원들 모두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됩니다. 정말 댓글에 개입할 의도가 추호라도 있다면 아예 게시판을 닫아버리면 되지 이렇듯 열어둘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간혹 적절치 못한 댓글들로 인해 마음이 상한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설혹 의견이 다르다 해도 비아냥대는 댓글은 삼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긴 글 접겠습니다. 감사합니다.(14.04.29 아침) ps. 진지한 토론을 위해 이후 덧붙였던 말은 삭제했습니다(5.2) o 새움지기 2014/05/06 13:37 뭘 어덯게 물어봤다는 거죠? 본인이 방구석에서 할일없이 놀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뭘 어떻게 물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논쟁을 하던 분인 고마해라님이 SEC(1982년에 설립되어 플레이아드 편집자 등을 포함한 카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회)에 문의했다는군요. 광기라면 광기겠으나, 본인이 이기언 교수라고 역자에게 직접 내몰리고, 이어서 다른 사람이 쓴 글도 본인이라고 남들이 우기는데 이런 식의 지적 해명은 매우 건강한 광기라 생각됩니다. 결국 SEC에서 이름을 달고 공개적으로 대답한 것을 Ind님께서 번역해주셨고요. "저는 SEC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Giovanni Gaetani입니다. 그러한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무슨 조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자라고 하여고 전문 연구회가 더 공신력 있는 건 말할나위도 없지요. 여기에 대하여 이정서씨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사과를 하든, 말을 바꾸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든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다른 사람들의 광기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독자에대한 결례입니다. 외국에선 한국 불문학계의 수준을 어느정도로 생각할까요? 이런 걸 정말 질문이나 하게 만드는 출판사라니! 이에 대한 정확한 해명 바랍니다. 글을 이미 지웠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답변은 모두를 실망시키게 할 것입니다. 라고 쓰면, 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할까요? o 논리적사고 2014/05/06 13:38 아 글이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제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 점에 한해서 사과드립니다. 다만 새움지기님이 달아야 할 답변은 그런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안 지웠으니 더 드러나 있네요. 갈리마르 편집자보다도 더 공신력 있는 단체의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답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찌 대답하실 겁니까? o 논리적사고 2014/05/06 13:49 아하, 이제는 질문을 제기한 사람도 믿을 수 없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자는 위에 떡하니 인용한 글에서 누구든 확인 가능하다고 전화걸어보라고 했는데, 그게 일개 아무개면은 또 안되나 봅니다? 그리고 지금 새움지기의 답은 편집자로 답변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역자 스스로가 판단해서 답해야 할 부분을 새움지기라는 이름으로 답한 걸 보니 이는 편집자가 자기 역할을 오버했던지 아니면 역자가 직접 단 거가 확실하겠네요? 그럼 다시 한번 답변 주시기 바랍니다. 골방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불문학자가 직접 문의하면 이제 인정하실 겁니까? 정말 폐기처분 하실 겁니까? 질문에 답한 사람은 어차피 전문가인데 누가 물었는지가 중요한 겁니까? 어떻게 하면 인정하실 겁니까? o 어휴 2014/05/06 13:54 남자와의 의리를 중시하고 자신을 배신한 여자도 배려하는 사려깊은 "창고관리인"인 레몽을 왜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했을까요? 왜 소설에선 그의 직업인 "창고관리인"을 따옴표로 처리해 표기할까요? 역자의 텍스트해석능력은 뭐라 할말을 잃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o 보다못해 2014/05/06 13:54 논리적사고/ 뭘 어떻게 물었냐잖아? 바보야. 아이디만 논리적 사고 그러지말고. 쪼다야. 에이 천벌을 받을 놈들,툇! 44. 후안무치 2014/05/06 13:36 국가에 총체적 부실에 분노가 치민다고 사장은 말한다. 그러나 여기 드나든 사람은 알 것이다. 정작 세월호 사건에 전국민이 힘들어할 때 사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번역이 옳다고 주장하고만 있었다. 정치가도 아닌데 왜 저런 정치적인 멘트를 할까? 어쨌거나 사장은 참 말 바꾸기엔 도사다. 그 이유를 살펴 보자. 1. 그는 분명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라면서 그토록 자신있게 절대번역을 말했다. >> 하나의 해석이라고 말 바꾼다. (이 증거는 아직도 덜 고쳐서 남아 있다 : http://saeumbook.tistory.com/405) 번역 연재 내내 김화영을 까다가 수가 틀렸는지, 출판 할 때는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고쳐낸다. 심지어 그는 카뮈가 자신에게 접신했으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까뮈의 글에 가까운 번역을 본인이 했다고 자부한다. 그랬던 그가 여러 사람들의 지적을 받자, 급 공손해지면서 자신은 일개 번역자이니 그저 하나의 해석으로 봐달라고 애걸한다. 2. 사장은 자기의 절대 번역에 금이 가자 뭐라고 했을까? 모든 책을 폐간하고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 지적 감사하고 참고하겠다. 자신은 카뮈가 접신해서 번역했으므로 조금의 틀림도 없다고 자부하던 자다. 때문에 자기의 번역이 틀리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까지 말했다. 그런데 그 글은 온데 간데 없이 지워졌다. 말 바꾸기엔 도가 튼 사람이다. 대신에 지적 감사하고 참고하겠단다. 지적 하는 사람들이 사장 겨우 참고하라고 하는 줄 아나? 김화영한테는 절판시키라더니 자긴 참고해도 되나보지? 3.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가 정답이다?? >> 물론 아니지 슬쩍 책 내면서 고쳤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 고치기 전의 글을 그대로 가져와 본다. (아래 전체 새운 사장 인용) -------------------------------------------------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은 지 퍽 오래되었다.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rie. Il y avait de longs jours qu’elle ne m’écrivait plus. 보시다시피 아주 간단한 문장이다. 자, 그렇다면 위 문장의 번역은 맞는 걸까? 틀린 걸까? 아니 불어를 모른다면, 그냥 우리말로 이 문장은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 조금 생각해보자. . .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번역은 틀렸다. 일단 우리말로도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는 그 자체로 말이 안 된다. ‘오래간만’이면 오래간만이고, ‘처음’이면 처음이다. ‘오래간만’에 속에는 이미 ‘처음’이라는 시작점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로 둘이 같이 쓰이기 위해서는 각각 지시하는 말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오래간만에 아팠지만, 처음으로 약을 먹었다’처럼. 더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말해보자.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말이 되는가? 실제로 엄마를 처음 만나는 건 뱃속에서 나와서다. 아무리 오래간만이라도 처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은 그래서 생각 없이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명백히 비문이다. 지금 옮긴이는 너무나도 간단한 문장이기에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저대로 옮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역이라는 것은 내용 속에 들어오면 더욱 명백해진다. 지금까지 <이방인>을 읽어온 독자라면 뫼르소가 이미 앞서도 마리를 수없이 생각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처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이전의 생각은 단편적이었고 지금은 오래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말의 직역은 눈앞의 문장 그대로다. ‘처음으로Pour la première fois 그 후로depuis 매우bien 오래도록longtemps,’ 까뮈는 지금 뫼르소가 ‘처음으로’ 마리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생각했다고 강조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의 올바른 번역은 아래와 같다(depuis longtemps은 오랫동안, 오래도록이라는 뜻의 숙어다. 두 숙어의 순서를 바꾸어 놓아도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은 지 오랜 나날이 지났다. 커다란 오역은 결코 복잡한 문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단순한 문장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다시, 번역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심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진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도대체 나 같은 독자조차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뫼르소가 마리를 처음 생각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의아해지는데, 이 책의 번역자가, 그것도 20년 동안 세 번을 고쳤다는 역자가, 어떻게 저런 걸 의심 없이 저대로 옮기고 지금까지 태연히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o 헐 2014/05/06 12:54 사장 정말 불어 못하나 보네. 사전만 열라게 찾아서 번역하는 거 티 다남 ㅋㅋㅋㅋ 난 이방인 사서 보고 좀 이상하다 했는데, 예전 글 읽어보니 뽀록 아주 ㅋㅋㅋ pour la premiere fois depuis bien lontemps, j'ai pense a Marie. 이 문장을 두고서 처음엔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라고 번역하면서 올바른 번역이라고 주장함? 매우 오래도록 생각했다는 강조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장 진짜 불문법도 모른다에 내 왼팔을 건다! o ㅋㅋㅋ 2014/05/06 13:03 누가 한국어도 잘 모른다고 하더라. 이거 전부 남한테 시켰다에 오른팔 건다. o 독자 2014/05/06 13:35 솔직히 영어도 못하는 거지요; 영어라도 할줄 아는 사람이면 아 이게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의 불어 equivalent로구나 직관적으로 알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영어라도 아는 보통의 독자들은 어??? 했던 거고요ㅠ o 새움지기 2014/05/06 13:44 그에 대한 해명도 이미 해놓으셨군요. 마지막 회, 이 땅의 번역자, 편집자들에게 죽음을 앞둔 뫼르소에 빠져 지낸 6개월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이방인>의 원고량만으로 치자면 소비한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었고, 기존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마당이라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던 과정을 생각하면 결코 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 번역이 여기까지 온 것은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먼저 새움출판사 최하나 편집자의 존재. 최 편집자의 꼼꼼함과 단호함이 없었다면 아마 이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번역의 쉼표 하나까지 살펴서 문제 제기를 해준 그녀는 실상 나보다 훨씬 뛰어난 번역자였다. 하여 우리는 문장을 두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이 있었기에, 또 한 사람이 찾아들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내게는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눈앞의 편집자조차 설득하지 못할 번역이라면, ‘그 따위’로 세상을 이해시킨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게 최 편집자와 싸우고 난 날이면, 나는 도저히 연재 글을 올릴 수 없었다. 눈앞의 한 사람도 제대로 설복시키지 못하는데, 수십 년 최고의 권위자로 추앙받아 온 저분의 번역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 난 다음날 새벽, 혹은 주말의 어느 순간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는 이가 있었다. 그는 어깨를 툭 치며 말하곤 했다. "그건 이렇게 보지 그래". 그의 말을 듣고 불현듯 다시 문장을 보면, 거기, 왜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단어가 쓰여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그러한 말들이 결코 이 작품의 작가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조언들이었다는 데 있다(그렇다, 라는 것은 다음날 최 편집자의 표정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치 챘겠지만, 그렇게 나를 찾아와 주었던 이는 바로 알베르 카뮈였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이, ‘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런 걸 어쩔 것인가. 그리하여 이 번역은 마침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이 두 사람 외에도, 빼놓을 수 없는 ‘여러분’이 계시다. 연재 와중에 연재의 취지가 왜곡될 수도 있었던 논란이 몇 번 있었다. 그때 자기 일처럼 개입하여 제 길을 바로 잡아주신 분들, 그분들의 댓글은 정말이지 내게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이제 연재를 마칠 시간이다. 그러나 이 자리가 김화영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는 자리이니만큼, 이번 회 역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오역들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지적하고 마무리하겠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김화영 번역) À ce moment, et à la limite de la nuit, des sirènes ont hurlé. Elles annonçaient des départs pour un monde qui maintenant m’était à jamais indifférent.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man. 보다시피 김화영은 여기서 limite를 ‘끝’으로, sirènes를 ‘뱃고동’으로 보고 저렇게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 하여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린 게 아니라, "한밤의 경계선에서 (감옥의) 사이렌 소리가 울"린 것이다. 여기서 김화영이 다시 이런 기본적인 단어를 오해한 것은 다음 문장, ‘한 세계로의 출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세계로 떠나가는 ‘배’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저 말은, 이제 날이 밝으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뫼르소가 자신이 죽은 다음의 이 세계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앞에서 자신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다. 이 문장의 바른 뜻은 이렇다.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졸역) ps. 그런데 눈 밝은 독자라면, 명성과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문장을 볼 줄 아는 번역자,편집자라면, 다시 여기서 마지막 문장에도 눈이 갔을 것이다.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30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바로 그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에 대한 김화영 번역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를 지적하면서, 그 자체로 말이 안 된다. ‘오래간만’이면 오래간만이고, ‘처음’이면 처음이다. ‘오래간만’에 속에는 이미 ‘처음’이라는 시작점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로 둘이 같이 쓰이기 위해서는 각각 지시하는 말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오래간만에 아팠지만, 처음으로 약을 먹었다’처럼. 더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말해보자.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말이 되는가? 실제로 엄마를 처음 만나는 건 뱃속에서 나와서다. 아무리 오래간만이라도 처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은 그래서 생각 없이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명백히 비문이다. 지금 옮긴이는 너무나도 간단한 문장이기에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저대로 옮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역이라는 것은 내용 속에 들어오면 더욱 명백해진다. 지금까지 <이방인>을 읽어온 독자라면 뫼르소가 이미 앞서도 마리를 수없이 생각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처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커다란 오역은 결코 복잡한 문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단순한 문장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다시, 번역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심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진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도대체 나 같은 독자조차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뫼르소가 마리를 처음 생각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의아해지는데, 이 책의 번역자가, 그것도 20년 동안 세 번을 고쳤다는 역자가, 어떻게 저런 걸 의심 없이 저대로 옮기고 지금까지 태연히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문학은, 모로 가도 로마만 가면 된다는 말로 덮어질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우리가 신뢰하고 아름다워하는 것은 태초로부터 언제나 그 시간, 그 자리에 붙박여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것이 아무리 번역이라 해도, 창조자의 안내대로 소로와 대로와 바닷길을 따라 로마로 진입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과 끝이 같다고 해서 결코 같은 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고 했었다. 그러자 반론자들은 “우리말로는 말이 안 되지만 프랑스에서는 관형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우리말 번역이니, 불어 문법이 조금 어긋나더라도 의미를 맞추고 싶었고, '처음으로 오랫동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정말이지 이 문장의 정확한 의미는 그것을 쓴 작가만이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에 대해서는 카뮈로부터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결국 이것은 역자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의미를 따를지, 문법을 따를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라고 썼었다. ------ 그런데 이 마지막 문장의 바른 해석이 정말로 '카뮈로부터 답지'한 것은 출판사에서 원고가 인쇄소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 절묘했던 순간을 이 자리에 옮겨 적기에는 적절치 않을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카뮈가 내게 보내준 마지막 메시지였지만, 자칫 잘못 설명하면 아주 우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Pour la première fois는 '또다시(처음으로)인 것이고, depuis bien longtemps,와 붙어 '아주 오랜만에 다시, 엄마를 생각했다'가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우리말을 두고 나를 비롯한 저 뛰어난 역자들, 논쟁자들 역시 왜 그 긴 시간동안 엉뚱한 곳만 더듬고 있었던 것인지, 정말이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 마지막 메시지는 이 연재를 따라 읽으며 격려했던 네티즌들과 논쟁에 참여했던 재야의 고수들에게 주는 알베르 카뮈의 마지막 '감사 인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더불어 나역시 그분들께, 더불어 까뮈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Merci(감사합니다)! 번역은 정말이지 이처럼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다(나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고된 수고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최 편집자를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애쓰고 계신 번역자, 편집자분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되풀이 말하지만 이것은 한 개인의 치부를 드러내자는 작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동세대 우리 모두가 대를 이어 <벌거숭이 임금님> 속 어른들이 될 수도 있다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이제라도 그것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일반 독자들이 아니라 바로, 명성과 권위에 앞서 ‘문장’을 볼 줄 아는 여러분들일 것은 명백한 일이다. --------------------------------------------------------------------------------------------------------- 32회 본문 그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나는 꿱꿱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그를 모욕하며, 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 칼라를 움켜쥐었다. 나는 내 가슴속에 있는 모든 것을, 환희와 분노의 울부짖음으로 그에게 쏟아부었다. 그는 너무나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확실성은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마치 빈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그가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삶을, 다가올 이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겐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진실이 나를 꼭 움켜쥔 만큼 그것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옳았고, 여전히 옳았으며, 항상 옳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지만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했고 저것은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건 하지 않았으나 또 다른 건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 모든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이 이른 새벽을,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기다려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겠다. 그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살았던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서 어두운 바람이 내게로 거슬러왔다. 그 바람은 이 여정에서, 내가 살았던 시간보다 더 사실적일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당시 내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을 그만그만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며, 그의 하느님이나 우리가 택하는 삶, 우리가 정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단 하나의 운명만이 나를,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함께 무수한 특권자를 택해야 했는데, 그리고 이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형제라고 스스로 말하는데.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모든 사람은 특권자라는 것을, 특권자밖에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 역시, 선고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고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 한들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살라마노의 개는 그의 아내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그 작은 로봇 여자는 마송과 결혼한 파리여자처럼 또는 내가 결혼해주기를 원했던 마리처럼 죄인인 것이다. 레몽이 그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셀레스트와 똑같이 나의 친구라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제 마리가 그녀의 입술을 새로운 뫼르소에게 허락한다한들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는,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이 사형수는,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 모든 외침이 나를 헐떡이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나의 손아귀에서 부속사제를 떼어내고, 간수들은 나를 위협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돌아서서 사라져 갔다. 그가 떠난 후,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나는 잠들었던 것같다. 왜냐하면 얼굴 위의 별과 함께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전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떠올라 왔다. 밤과 땅, 그리고 소금 냄새가 내 관자놀이를 식혀 주었다. 잠든 여름의 경이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게로 흘러들었다.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말년에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쫒아내고, 희망을 비워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끝 45. indifference 2014/05/06 13:58 새움지기님. 이정서 씨의 번역이 마음에 들어서 리뷰를 올리는 독자들도 물론 있고, 이정서 씨의 '해설' 덕분에 '착각'에서 벗어났다고 리뷰를 올리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여기 댓글 다는 일부 사람들도 이정서 씨의 '해설'만이 맞다고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태에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레몽을 '양아치'로 이해하는 게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해석은 아닐지라도) 엉터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o 새움지기 2014/05/06 14:19 인디님/ 분명히 레몽에 대한 오해 부분 글 올리시겠다고 말 전했습니다. 위의 개인 명에에 관한 것,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것 임의로 삭제하겠습니다. 밑에 글도 포함 인디님 것은 그냥 두겟습니다. 46. indifference 2014/05/06 14:02 새움지기님,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 레몽의 정부와 그 아랍인의 혈연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겠습니다. 만약 저의 이메일 중 표현에 이견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견을 반영해서 메일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Chère 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 Bonjour, je m’appelle ________, et suis lecteur de Camus en Corée du Sud. Récemment, L’Étranger d’Albert Camus a été traduit à nouveau en coréen, avec une publication provocante, proclament que l’interprétation de L’Étranger jusqu’à maintenant n’aurait été qu’une succession de malentendu et que seul ce nouvel édition serait capable de transmettre les « véritables » idées de l’auteur. Cet incident a causé un scandale et un assez sévère débat sur ce sujet qui continue encore. Ce traducteur coréen, Jeongseo Lee, affirme que la maîtresse de Raymond et l’homme que Meursault a tué ne seraient pas frère et sœur. Comme Camus appelle l’homme mort l’ « Arabe » et la maîtresse la « Mauresque », ils ne seraient pas de la même « race » donc, pas frère et sœur. Choqué par cette interprétation (d’ailleurs raciste d’une sorte), je voulus vérifier les travaux et les recherches sur Albert Camus ou L’Étranger accessibles en Corée. Résultat, l’homme que Meursault a tué est bien le frère de la maîtresse. Camus utiliserait le terme « Mauresque » pour indiquer une femme arabe d’Algérie. Voulant tout de même éviter une faute de lecture, je vous envoie ce courrier électronique : pour vous demander si ma compréhension serait correcte. Ce courrier électronique semble ridicule, j’en suis conscient. Cependant, pour une compréhension exacte de L’Étranger, et aussi parce que Jeongseo Lee refuse d’admettre la relation familiale entre ces deux personnages sans la vérification d’une personne ou organisation autorisée, je vous demande avec tous mes respects, la moindre réponse possible. Sincèrement, merci. 47. 새움지기 2014/05/06 14:09 그러네요. 괜히 말려들지 말라는 주위 충고를 무시하고 또 말려들고 말았네요. 저는 내일 어떻게든 역자님과 편집부를 설득해서 이런 백해무익한 댓글들을 달지 못하게 하자고 건의할 겁니다(아니 지금부터 막겠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사장은 자신이 싸질러 놓은 댓글 40개를 획하고 지워버렸네요.
스크랩 했던 걸 여기 답니다.
o 고마해라 2014/05/06 09:03
이정서씨 딴 말씀 하지 마시고, 답변을 주세요. 비겁하십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정서씨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일입니다.
묻습니다. 김화영의 오역으로 인해 한국에서만 이방인이 그렇게 오독되고 있다는 이정서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물론 이미 밝혀졌지만) 책 수거하고, 사장직 물러나시고, 석고대죄하시겠다는 그 말씀 여전히 유효한가요? 프랑스에서는 까뮈가 죽인 아랍인이 모레스크 여인의 '기둥서방' 혹은 '연인'으로 이해되고 있고, 까뮈의 살인동기가 정당방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정서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즉 '사기'로 밝혀질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시겠다는 말씀 여전히 유효한 건가요?
네. 말씀에 따라, 쪽팔림을 무릎쓰고 갈리마르 출판사에 문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변이 이정서씨의 의도와 다를 경우, 문학동네나 민음사와 맺은 판권 운운할 것이 우려되어서, 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에 따로 문의했습니다. (이정서씨 때문에 아주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그려.) 갈리마르 쪽에서는 아직 답변이 없고(아마 없을 듯 합니다), SEC에서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물론 답변은 충분히 예상하고 계시듯, 이정서씨 사기치지 마시랍니다. 아래는 질의 후 받은 답변 내용입니다. facebook 계정을 통해 문의한 것이니, 이정서씨도 이 계정을 통해 저 답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정서씨 말대로,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죠. 해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왜곡했다고 할까봐. 다만, 이정서씨의 "번역을 고치기 위해 공적으로 무슨일을 해야한다"는 말은 강조하고 싶네요.
Je suis Giovanni Gaetani, administrateur de la page Facebook de la SEC. Cette traduction me semble vraiment bizarre et je crois que il faut faire quelque chose pour la corriger publiquement.
o 나도 출판인 2014/05/06 09:19
아니, 지금 프랑스가 몇신겨? 댓글 단 시간보니 이정씨 기다렸다는 듯이 댓글 달았네? 왜 이젠 안 나오겠다더니? 24시간 대기중이구만... 허허 도대체 이기언씨하고 뭔 관계야? 하는 짓이 애 같으니, 자식인가? 원 참나... 내가 다 화가 나네... 이 사람아 누군진 모르지만 나이값을 좀 해. 난 불어를 모르니 잘난체 하지 말고... 불어 몰라도 하나도 안 창피하니까. 쯧쯧.
o 고마해라 2014/05/06 09:25
지금 2시 21분, 이제 자려고. 내 직업이 좀 그래. 우리 어린이, 불어 못한다고 창피할 거 없어요. 왜? 읽지 못하니까 분해서 그래요? 미안해요. 깍꿍. 그런데 번역하기 나도 귀찮고. 이제 자야할 시간이라서요. 미안. 어린이. 낼 봐요.
o indifference 2014/05/06 10:02
이정서 씨가 돌아오셔서 깨끗이 사과할 줄 알았으나, 그런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댓글을 답니다.
아무 말 없이 ‘20번’을 ‘스무번 이상’으로 고친 것에 제가 화가 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거창한 게 아니라 제가 원래 남긴 댓글이 매우 이상해집니다. 이정서 씨 글이 수정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괜한 지적을 한 것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둘째,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명 없는 수정은 논의를 어렵게 만듭니다. 필요에 따라 소명 없이 수정을 가하면, 원래 비판자들이 제기했던 논점이 흐려지고 애매해집니다. 추후 논의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장벽으로 작용하기 마련이고, 이미 논의에 참여하던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SEC 관련된 것입니다.
우선 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SEC’, 카뮈 연구회)는 그냥 일개 단체가 아니라 1982년부터 설립되어 플레이아드 편집자 등을 포함한 카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회입니다. 고마해라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갈리마르 출판사가 작품 해석의 문제에 답할 것 같지는 않고, 만약 답을 받는다면 SEC으로부터 답을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시비를 무릅쓰고 번역해놓습니다.
“저는 SEC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Giovanni Gaetani입니다. 그러한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무슨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5. indifference 2014/05/06 10:14
이정서 씨에게 다음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부탁합니다.
1. 20세기 초의 'Arabe'와 'Mauresque'가 다른 인종이라는 근거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2. 레몽이 정부를 때린 것과 관련, 반과거 시제가 반복의 용법으로 사용되었음에도 그 때가 레몽이 처음으로 때린 것이라고 이해한 근거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3. <이방인>에 대한 이정서 씨의 해석과 스웨덴 아카데미(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기관)의 해석이 다른 까닭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이방인>에 대한 이정서 씨의 번역/해석에 대해 프랑스 카뮈 연구회(SEC)에서 '이상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까닭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36. 나도 출판인 2014/05/06 10:20
인디하고 고마해라, 지금까지 둘이서 서로 묻고 답하고 칭찬해주고 별 쑈를 다하더니, 이제 아주 막장이구만, 난 불어를 모르니 우리말로 해봐요, 뭘 어떻게 했다는 거야? 뭐라고 물어봤는데? 매 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번역이 도대체 어떤 걸 두고 하는 말이야? 혹시 김화영 교수걸 두고 그렇다는 거야? 앞에 원본 대조해놓은 걸 보면 불어를 몰라도 김화영 번역이 잘못됐다는 걸 알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유식한 댁들도 이정서씨 번역 어디가 어떻게 어떤 단어를 잘못 옮겼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그걸 지적하면 되지 무슨 변죽만 올리고 있어?
출판인들 다 바보로 알아요?
정말 이건 공적인 조치가 필요한 거 아닐까요? 불문학 교수님들... 언제까지 이렇게 침묵하고만 계실 건가요? 당사자인 김화영 교수는 왜 침묵하고 있는 거요? 우리나라 불문학자 하나도 없어요? 영문학하는 김욱동 교수한테 불어 소설 <이방인>을 오역이요 아니오? 물을 정도라니? 언제는 이정서씨보고 영문판 참조했다고 그 난리더니, 영문학자한테 오역이냐 아니냐를 묻질않나? 당신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오?
이정서씨한테 부탁드리는데, 영문판도 좀 올려주시오. 답답하니...
o indifference 2014/05/06 10:24
일단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프랑스어를 모르시는데 어떻게 원본 대조를 통해 김화영 씨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셨나요? 이정서 씨가 'limite'는 '끝'이 아니라 '경계'라는 의미라고 하면, 프랑스어를 몰라도 '끝'이 잘못된 번여기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나요?
o 나도 출판인 2014/05/06 10:36
휴~ 답답하네, 그건 그냥 끝이라고 합시다. 지금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알면서 그러는 거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나까지 이상해지네. 그만 난 나갑니다. 계속 그러고들 있으쇼.
아, 원본대조는 앞에 글 두 편만 봐도 다되어 있네요. 좀 글이라도 읽고 책이라도 보고 하든가.
o indifference 2014/05/06 10:54
물론 이정서 씨 글에는 프랑스어 원본와 한국어 번역본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도 출판인님이 프랑스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뭐가 맞는 번역인지 판단할 수 있냐는 겁니다. '딱 보면' 아나요?
o 나도 출판인 2014/05/06 11:06
또 들어오고 말았는데... 인디님, 기본적으로 소설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정서씨 쓴 글 중에 김화영 번역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인물중심으로 지적한 글이있어요? http://saeumbook.tistory.com/405
정말 훌륭한 불문학 교수가 되시려면 다만 불어를 잘하는 것보다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뒤따라야할 거예요.
소설에서 인물에 대해 잘못 해석하면 그건 다틀린 거에요.
꼭 한번 읽어보길 바라요.
o indifference 2014/05/06 11:14
그래서 왜 이정서 씨가 레몽이라는 캐릭터를 잘못 이해했는지 저 위에 매우 긴 반론을 펼쳤습니다. 특히 이건 캐릭터 '이해'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문법에 대한 번역 '오류'까지 수반한다는 점을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o 나도 출판인 2014/05/06 11:31
완전 쇠귀에 경읽기구만, 뭘 기대했든 내가 잘못이지. 에이구... 이정서씨 혹시 보게되더라도 더이상 상대하지 마요. 지금 이글 지우고 나가고 싶지만 이정서씨를 위해 잠시 살려나요. 출판사 임의로 지우던가... 나는 진짜 아웃!
37. 독자 2014/05/06 11:28
정말이지 어쩌다가 이 댓글 흐름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죄로 어제오늘 참 분노를 느낍니다. 열개의 질서정연하고 인내심 많은 글과 한개의 개소리가 나란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걸 목격합니다. 세상이 참 해괴하게 돌아가고 여기가 그 여실한 축소판이네요. 나도 출판인인지 뭔지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이정서 씨가 그때그때 조리가 부족하면서도 매우 조리 있는 체 상황논리의 파도를 탈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인의 이방인 이해를 이정서 씨가 아주 새롭고 해괴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고 설치니까 그게 절대 아니라고 몇분이 보다못해 나선 거 아니었습니까? 너무나도 설득력있게 이정서 씨의 착각을 바로잡아주고 근거를 제시해주었습니다. 이정서 씨는 참으로 의뭉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네요. 자신이 벌어들인 질문에 제대로 응하세요!
38. indifference 2014/05/06 11:44
일부 단어 번역이나 문법적 오류는 모두 지엽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어쨌든 이정서 씨의 캐릭터 이해는 정확하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께.
<이방인>에 묘사된 레몽이라는 캐릭터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정부를 피가 나도록 때리고, 복수에 여념하고, 또 때려서 경찰 조사까지 받는 인물이 바로 레몽입니다.
'농락'당했다고 이런 행위들이 모두 정당화되나요? 자기를 농락한 사람을 피가 나도록 구타하는 것이 악의가 없고, 순진한 것인가요? '독자님'은 이정서 씨의 작품 이해가 너무 한국적이고 마초적이라고 평가하시는데,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 한말씀님도 이 부분을 똑같이 지적하고 계시지요.
이정서 씨는, 만약 레몽이 양아치라면 과연 뫼르소가 그와 같이 다녔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이런 반문에서, 이정서 씨가 과연 뫼르소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뫼르소는 자신의 안전이나, 사회의 일반적인 도덕 관념에 신경을 쓰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레몽의 인품이 안 좋다고 레몽과 친하게 지내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레몽과 뫼르소가 친하다는 이유로 레몽이 악질이 아니라고 평가할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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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문제에 이렇게 집착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이정서 씨의 '해설'을 보고 자기가 여태까지 <이방인>을 잘못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통탄해하는 리뷰들이 지금도 올라옵니다. 이 사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출판사와 이정서 씨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o beatle 2014/05/06 12:58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번역이란 생각이 든 결정적 지점이 바로, 레몽 캐릭터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 신념이 남달라 레몽을 멋진 사나이로 보는 독자야 어딘가 있을 수 있겠지요..만 애초 그런 필터의 번역은 좀 무섭군요. 하지만 indeffe..님 말씀대로 아무리 순화해서 묘사해도 레몽은 질이 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이죠.
'바른 지적에 대해선 언제든 고치'는 것 보다는 더 엄중한 책임이 뒤따라야할 것 같습니다. 역자 본인이 외친 '답은 하나다' '속았다'에 대한.
39. 새움지기 2014/05/06 12:46
indifference님, 새움지기입니다.
독자님들의 리뷰는 막연히 '해설'을 보고 올리는 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부분 '본문 속 좋은 문장'을 인용하고 있으니까요.
그간 <이방인>을 읽으면서,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이방인> 속 카뮈의 문장들에 감동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써보게 되는 리뷰가 아닐런지요.
또 처음 읽는 독자들은 그들대로, 내용과 그 인물들에 대해 이해가 되면서 뭔가 자신이 느낀 가슴 속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리뷰를 쓰는 게 아닐런지요?
출판사의 책임있는 자세 운운하셔서, 결국 연휴중에 메시지 남깁니다.
레몽에 대한 김화영 교수님의 오해에 대해서는 역자님이 이미 다 한 이야기지만, 못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정리해 올리겠다고 하십니다.
indifference님 때문에 또 한편의 글을 쓰게 된 셈인데, 역시 필요한 작업이라고도 하시면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좀 쉬시는 건 어떠실지(이건 진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이건 하기가 참 힘드네요 ㅠ).
o 지나가다 2014/05/06 12:50
새움지기에게 물어요..
이방인 사태에 관련해서 사장은/역자는/이대식은/이정서는 '새움지기'라는 아이디로 글을 쓴 적이 없나요?
아무리 봐도 사장 같은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어이가 없네요.
그리고 연휴 끝날 때까지는 말하지 않는다던 사장과 새움지기는 왜이렇게 자주 등장하죠?
o 공현 2014/05/06 12:54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 김화영교수가 레몽을 어떻게 오해했느냐가 아니고 이정서님이 레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입니다. 괜히 초점이 어긋난 글을 쓰시느라 시간을 허비하실까봐 말씀드려봅니다 ^^;;
o 지나가다 2014/05/06 12:59
초점에 어긋나지 않게 삽질은 하지 말라는 거지요.
상대가 초점을 흐리는데 초점에 어긋나지 않게만 대응해주는 건 너무 신사적이지 않나요?
사실 이방인 번역문제가 이렇게까지 온 건 초점에 어긋나서가 아니라 사장이 저질러온 비도덕적인 행태 때문 아닐까요?
이제 와서 논쟁을 접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그 원인은 알고 있어야죠.
사장이 계속 말을 번복하는데, 지금 상황만 보고는 왜 이러는지 이해도 못할듯요.
o 공현 2014/05/06 13:01
아 제 댓글은 새움지기님께 남긴 답입니다. 이정서님이 김화영교수의 래몽에 대한 오해라는 현재 쟁점과는 거리가 있는 글을 쓰는 헛수고를 하실까봐 걱정되어 남긴 겁니다. 지나가다님의 댓글은 물론 물어볼 만한 이야기지요. 저도 종종 궁금했습니다.
o 미미 2014/05/06 13:24
저번에도 말씀드렸듯 이번 논쟁을 지켜보고있는 예비독자입니다.
이정서씨나 새움지기님이나 다 알고계시면서도 자꾸 논점을 피해가시려는 것 같아서 한말씀 드립니다. 레몽에 대한 김화영씨의 오해 부분은 이정서씨가 예전에 충분히 설명하셨고 관심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읽어보았을것입니다... 공현님 말씀대로 그 부분은 반복해서 설명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지금 이 시점에 대답해주셔야 할 것 무엇인지 알고계실텐데요. 왜 이정서씨와 스웨덴 아카데미의 해석이 다른지, 왜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서 이정서씨의 번역에 대해 이상하다는 평가를 내렸는지에 대한 이정서씨의 의견이 듣고싶습니다. 저번에 누구든 갈리마르 출판사에 확인해봐라, 내 번역이 틀렸다는게 밝혀지면 그 즉시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한다고 하셨고 지금 그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지요? 굉장히 중요한 시점입니다.
40. 후안무치 2014/05/06 12:47
지금에 와서 사장은 '한말씀', '고마해라', 'Indifference'등의 사람이 논리적으로 사장의 번역을 지적하자 급 건전한 번역비평을 하는 척 한다.
여전히 고마운 마음이고 바른 지적은 언제든지 고치겠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사장이 이런 마음의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들이 그렇게 댓글을 달았을까?
남을 비판하고, 중상모략하고, 노이즈 마케팅만 일삼으면서 자기는 정당하다고 우기던 사장이다.
이방인을 번역한 모든 역자를 무시하고, 읽은 독자를 무시하던 사람이다.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이유로 남의 번역은 다 틀렸고, 자기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채 카뮈의 <이방인>을 그대로 옮겼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아니 접신까지 했는데 그러한 사람의 <이방인>에서 고칠 게 도대체 뭐가 있을까?
그동안의 헛소리는 정말 헛소리였던가?
그냥 헛소리였으니까 미안하고 이제는 건전한 번역비평을 하자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 그래도 건전하게 번역으로 비평해주니까 그동안 자기가 했던 말은 슬그머니 지우고 또 말 바꾼다.
잘못을 인정하면 사장자리도 물러나고 이방인을 폐간시키겠다던 사람이 이제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세월호를 들먹이면서 정당한 척 하지 말아라. 누가봐도 제일 정당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지 않느냐?
박근혜도 와서 한 수 배워야 할 사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o 공헌 2014/05/06 13:01
맞습니다. 이정서(정서는 무슨##)판 이방인은 그의 말대로 수거해서 불태워야합니다.
41. ㅋㅋㅋ 2014/05/06 12:56
이런 자는 우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함. 타락의 끝을 보여주는자.
42. 새움지기 2014/05/06 13:10
당신들의 광기가 당신들부터 피폐하게 만들 것입니다.
43. 논리적사고 2014/05/06 13:23
다시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군요. 어쩔 수 없겠으나 관전하는 사람으로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위의 새움지기님께 묻습니다.
역자는 자신의 번역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갈리마르에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그런 일을 누가하겠어, 그냥 제스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글은 수정되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저장해두었는데, 이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군요. 아래 그대로 인용합니다.
실제로 논쟁을 하던 분인 고마해라님이 SEC(1982년에 설립되어 플레이아드 편집자 등을 포함한 카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회)에 문의했다는군요. 광기라면 광기겠으나, 본인이 이기언 교수라고 역자에게 직접 내몰리고, 이어서 다른 사람이 쓴 글도 본인이라고 남들이 우기는데 이런 식의 지적 해명은 매우 건강한 광기라 생각됩니다.
결국 SEC에서 이름을 달고 공개적으로 대답한 것을 Ind님께서 번역해주셨고요.
"저는 SEC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Giovanni Gaetani입니다. 그러한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무슨 조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자라고 하여고 전문 연구회가 더 공신력 있는 건 말할나위도 없지요.
여기에 대하여 이정서씨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사과를 하든, 말을 바꾸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든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다른 사람들의 광기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독자에대한 결례입니다.
외국에선 한국 불문학계의 수준을 어느정도로 생각할까요? 이런 걸 정말 질문이나 하게 만드는 출판사라니!
이에 대한 정확한 해명 바랍니다.
글을 이미 지웠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답변은 모두를 실망시키게 할 것입니다.
아래는 지워진 역자의 말 인용부분입니다.
(역자의 글 수정 전 부분)
당장이라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저 위의 1안과 2안을 불러주고 나서 어느 것이 카뮈 <이방인>의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출발어니 도착어니 하며, 번역의 문제 운운할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그 질문을 들은 편집자는 아마도 교수님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독특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확인 결과 제가 하는 말(혹은 번역)이 틀렸다면, 그 즉시 저는 제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할 것입니다.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움 출판사 대표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며 독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혹세무민'했다고 석고대죄할 것입니다. 물론 교수님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o 새움지기 2014/05/06 13:29
지워졌다는게 뭐죠? http://saeumbook.tistory.com/440
3.
뫼르소가 총을 쏜 이유가 단지 태양 때문인가? 하는 문제.
교수님, 일단 한번 거기까지의 소설 상황을 짧게 정리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교수님의 번역서(김화영 교수님을 비롯 기존 번역자들 모두가 그러하지만)를 정리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입니다.
1. ‘이년 저년’이라는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생양아치 같은(포주인) 레몽이라는 사내가 자신의 정부인 여자를 피가 나게 때리고 쫓아낸 뒤, 그에 앙심을 품은 그녀의 오빠가 레몽을 해치기 위해 바닷가까지 따라와서는 싸움이 벌어진다. 뫼르소는 질이 안좋은 레몽이라는 사내의 요청에 따라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레몽과 비슷한 수준의 친구인 마송의 해변가 오두막에 놀러와 있다가 우연히 그 사건에 연루되고, 해변에서 다시 우연히 그 여자인 오빠라는 사내와 단둘이 마주치게 되었을 때,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 뫼르소는 이후에도 쓰러진 상대를 향해 연속해서 네 발을 더 쏘아 그 자리에서 사내를 확실히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법정에서 재판장이, ‘왜 그랬냐’고 묻자, 무덤덤하게 ‘태양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한다.
어떠신지요? 교수님이 번역하신 그대로의 내용이 맞지 않습니까?
그럼 이제 냉정하게 한번 보십시오. 이게 소설이랄 수 있는지.
소설은 개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있음직한 비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사건이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보통 산문과 다른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저기서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요? 모든 게 우연히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선 저대로라 해도, 레몽이 자신의 정부를 때리게 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저기엔 아예 그런 설명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레몽이라는 사내가 생양아치라 이유도 없이 여자를 구타했다’가 되는데, 소설 속에서는 엄연히 “처음으로 손을 댔다”와 “네가 나를 농락했어. 네가 나를 농락했다구”라고 레몽이 소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수님을 비롯한 기존 번역에서는 이 ‘농락’의 이유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저기 등장한 남자가 그냥 여자의 오빠라면, 카뮈가 친절하게 ‘복권’과 ‘전당포’등을 언급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카뮈는 둘이 친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뫼르소만 알고 있다는 암시를 위해 소설적 장치를 해둡니다. “그(레몽)가 여자의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그 여자가 무어 여자임을 알았다.”(본문 93쪽)는 뫼르소의 독백은 그래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카뮈는 ‘아랍인’과 ‘무어인’이라는 태생적 차이를 가지고 분명하게 둘의 관계를 밝히고 있는 것인데, 교수님을 비롯한 기존 번역서들은 이점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신가요? 어찌된 일인지 모두 한결같이 이 점도 간과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뫼르소는 왜 굳이 해변까지 마리와 함께 와서 그 사건에 연루된 것일까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레몽이라는 사내가 저렇듯 생양아치에, 포주에, 여자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자라면, 과연 저 이성적인 뫼르소가 자신의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그 친구의 오두막까지 따라와서 유쾌한 해수욕을 즐기고, 나아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과 여름을 함께 보낼 계획을 짤 수 있었을까요? 마리 역시도.
“마송과 레몽 그리고 나는 비용을 분담하여 8월을 함께 해변에서 지낼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Masson, Raymond et moi, nous avons envisagé de passer ensemble le mois d’août à la plage, à frais communs.)” (본문 77쪽)
뫼르소에게 생테스 레몽은, 교수님이나 김화영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그런 양아치가 아닙니다. 그는 그냥 점잖고 지적인 ‘셀레스트’와는 조금 다르게 뫼르소가 뒤늦게 사귄 색다른 친구였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위와 같은 정황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다시 그래야만 최소한의 소설적 개연성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뫼르소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러한 독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몽이 그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셀레스트와 똑같이 나의 친구라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Qu’importait que Raymond fût mon copain autant que Céleste qui valait mieux que lui?)”(본문 164쪽)
이제 제가 읽은 <이방인>은 어떤지 보겠습니다.
2. 외모는 험상궂지만, 남자의 의리를 앞세우는 창고관리인인 레몽이라는 사내가 자신의 정부라고 믿고 생활비를 대주고 있던 여자가 있었는데, 실제는 그 여자의 뒤를 봐주는 '기둥서방'이 있었다. 레몽은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여 ‘이전에는 결코 손을 댄 적이 없었지만’ 여자를 때려서 쫓아낸다. 그에 앙심을 품은 ‘기둥서방’이 레몽에게 복수하기 위해 해변까지 따라오고, 친구인 레몽을 따라 여자 친구와 함께 마송의 해변가 오두막에 놀러와 있던 뫼르소는, 이들의 싸움에 연루된다. 급기야 사람들을 피해 혼자 샘을 찾아왔던 뫼르소는 그곳에서 그 아랍사내와 마주치게 되고, ‘시뻘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샘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오는 뫼르소를 보고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오해한 아랍사내는 먼저 칼을 빼들었고, 다시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눈을 찔러오는 그 칼날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두고’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느꼈던 머리 위 오후 2시의 ‘폭발’하는 태양에 어지럼증을 느끼며 몽롱한 상태에서 네 발을 더 쏘아 사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법정에서 재판장이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뫼르소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검사가 막 사형을 구형한 뒤였던 것이다), ‘자기도 터무니없는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보다시피 앞쪽 1의 줄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이방인>이 아닌가요?(그래서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노이즈가 아니라). 뒷부분은 제 것(2번)을 두고 설명하겠습니다.
레몽을 따라 해변가에 놀러왔다 연루된 싸움, 이제 레몽과 아랍인과의 갈등은 해소되고, 참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혼자 산책을 나왔던 뫼르소는 다시 샘으로 돌아갔다가 친구인 레몽을 ‘농락했던’ 여자의 기둥서방인 아랍인 사내와 단둘이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뫼르소는 단지 뜨거운 태양을 벗어나고 싶어서 사내가 누워있는 샘 가까이로 ‘한 걸음’을 더 옮긴 것인데, 아랍남자는 오해하고 먼저 칼을 빼들었고, 그 칼날에 반사된 강렬한 햇빛이 뫼르소의 눈을 후벼 팠기에, 위협을 느낀 뫼르소는 가지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무의식적으로 당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앞의 두 예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달라지지 않은 게 있습니다. 바로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이유, 그것이 ‘태양 때문’이었다는 표피적 이유 말입니다. 여기에 이 문제의 핵심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보다시피 저렇게 두고봐도, 프랑스인이나 우리나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문학적 레토릭을 다르게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여러 정황들을 모두 외면한 채, 주인공 뫼르소가 우연히 ‘악한’인 레몽을 따라 해수욕을 갔다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다시 우연히 사내와 단둘이 만나게 되자 ‘태양 때문에’ 총을 쏘고, 급기야 네 발의 확인사살까지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게 교수님을 포함한 기존 번역서들의 일관된 시각입니다(그러고보니 바로 소설 속 검사의 시각입니다).
교수님, 과연 이게 말이 되나요?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이런 우연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두고 세계인이 열광하고 노벨문학상 위원회에서 ’현대소설의 전범‘이라는 극찬을 쏟아냈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건 카뮈에 대한 모욕이고, 노벨문학상에 대한 모독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되자, 거기에 부조리라는 말로 포장을 한 게, 기존의 <이방인>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소설이 부조리 소설인 이유는 주인공이 그렇게 횡설수설하며 이유도 없이 그냥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항소도 않고 죽음을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뫼르소의 살해 행위는 충분히 정상참작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평등과 정의를 위해 세웠다고 믿었던 법정에서 오히려 사형을 선고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인들은 충격에 빠졌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부조리’한가 깨닫게 된 것이고, 그래서 이 소설을 ‘부조리 소설’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4.
기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이라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저 위의 1안과 2안을 불러주고 나서 어느 것이 카뮈 <이방인>의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출발어니 도착어니 하며, 번역의 문제 운운할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그 질문을 들은 편집자는 아마도 교수님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독특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확인 결과 제가 하는 말(혹은 번역)이 틀렸다면, 그 즉시 저는 제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할 것입니다.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움 출판사 대표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며 독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혹세무민’했다고 석고대죄할 것입니다. 물론 교수님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께 심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불문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이신데, 저에 대해 어느 만큼은 알고 계시면서도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많이 불쾌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마치 제가 대한민국의 모든 교수님들과 번역가들을 한꺼번에 부정하고 있는 부도덕한 인간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건 그건 변명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안 사안마다 제 목소리를 낸 것은 변명을 한 게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해 자위적 방어를 한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교수님, 설마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의 제가 있는 것도 제게 글공부를 시켜주신 대학의 은사님 덕택이고, 지금의 출판사가 존재하는 까닭도 여러 좋은 역자님들의 도움 덕분인데 말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기존 번역서들의 실수는 바로 앞에서 확인한 듯, 생테스 레몽이라는 인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시초가 누구일까를 쫓아보니 그것이 김화영 교수님 번역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틀린 걸 틀렸다고, 다른 걸 다르다고 세상에 알려야 했고, 그 사실을 정직하게 띠지의 그 카피에 담아냈던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노이즈 마케팅이 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었다>라는 저 카피를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제게 그것은 조금도 과하지 않은 지극히 상식적인 카피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변명이 되는 것 같은데, 정말이지 저는 김화영 교수님을 비롯한 앞선 선학들이 일궈놓은 다양한 성취와 성과들을 전부 폄훼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들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값진 자산들, 그것이 사적으로는 저희 새움출판사도 살찌웠다는 사실 또한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정말이지 어찌된 일인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만큼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있어서는 결코 안 될 실수가 우리 사회에서 빗어졌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실이 어떻게 제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던 것이고, 그 순간부터 저는 진실을 알려야 할 의무까지 짊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셀레스트는 뫼르소를 위한 법정 증언에서 말합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불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운이 어떤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불운입니다(Pour moi, c’est un malheur. Un malheur, tout le monde sait ce que c’est. Ça vous laisse sans défense. Eh bien ! pour moi c’est un malheur.)”(본문 128쪽)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딱 그것인 셈입니다.
5.
이제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독자님들께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한번 연재를 해볼까 합니다. 애초의 블로그 연재가 한 개인에 대한 번역 비평이 주였다면, 이제는 형식을 넓혀, 카뮈 <이방인>의 불문 원문과 더불어 영문, 일문 번역판까지 함께 싣고, 기존의 주요 번역서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기왕 벌어진 <이방인>에 대한 토론의 장을 제대로 펼쳐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이는 특히 훌륭하신 번역가님들과 교수님들의 조언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 번역에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워주신 기라성 같은 댓글러들과 편집자들이 다함께 참여하실 수 있다면 우리 출판계와 번역계, 그리고 순수한 독자들을 위해서도 얼마나 좋은 일일까 생각해봅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게시판에 비아냥조의 댓글들에 저희 출판사 직원들이 개입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 직원들 모두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됩니다. 정말 댓글에 개입할 의도가 추호라도 있다면 아예 게시판을 닫아버리면 되지 이렇듯 열어둘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간혹 적절치 못한 댓글들로 인해 마음이 상한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설혹 의견이 다르다 해도 비아냥대는 댓글은 삼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긴 글 접겠습니다.
감사합니다.(14.04.29 아침)
ps. 진지한 토론을 위해 이후 덧붙였던 말은 삭제했습니다(5.2)
o 새움지기 2014/05/06 13:37
뭘 어덯게 물어봤다는 거죠? 본인이 방구석에서 할일없이 놀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뭘 어떻게 물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논쟁을 하던 분인 고마해라님이 SEC(1982년에 설립되어 플레이아드 편집자 등을 포함한 카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회)에 문의했다는군요. 광기라면 광기겠으나, 본인이 이기언 교수라고 역자에게 직접 내몰리고, 이어서 다른 사람이 쓴 글도 본인이라고 남들이 우기는데 이런 식의 지적 해명은 매우 건강한 광기라 생각됩니다.
결국 SEC에서 이름을 달고 공개적으로 대답한 것을 Ind님께서 번역해주셨고요.
"저는 SEC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Giovanni Gaetani입니다. 그러한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무슨 조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자라고 하여고 전문 연구회가 더 공신력 있는 건 말할나위도 없지요.
여기에 대하여 이정서씨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사과를 하든, 말을 바꾸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든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다른 사람들의 광기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독자에대한 결례입니다.
외국에선 한국 불문학계의 수준을 어느정도로 생각할까요? 이런 걸 정말 질문이나 하게 만드는 출판사라니!
이에 대한 정확한 해명 바랍니다.
글을 이미 지웠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답변은 모두를 실망시키게 할 것입니다.
라고 쓰면, 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할까요?
o 논리적사고 2014/05/06 13:38
아 글이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제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 점에 한해서 사과드립니다.
다만 새움지기님이 달아야 할 답변은 그런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안 지웠으니 더 드러나 있네요.
갈리마르 편집자보다도 더 공신력 있는 단체의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답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찌 대답하실 겁니까?
o 논리적사고 2014/05/06 13:49
아하, 이제는 질문을 제기한 사람도 믿을 수 없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자는 위에 떡하니 인용한 글에서 누구든 확인 가능하다고 전화걸어보라고 했는데, 그게 일개 아무개면은 또 안되나 봅니다?
그리고 지금 새움지기의 답은 편집자로 답변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역자 스스로가 판단해서 답해야 할 부분을 새움지기라는 이름으로 답한 걸 보니 이는 편집자가 자기 역할을 오버했던지 아니면 역자가 직접 단 거가 확실하겠네요?
그럼 다시 한번 답변 주시기 바랍니다.
골방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불문학자가 직접 문의하면 이제 인정하실 겁니까? 정말 폐기처분 하실 겁니까? 질문에 답한 사람은 어차피 전문가인데 누가 물었는지가 중요한 겁니까?
어떻게 하면 인정하실 겁니까?
o 어휴 2014/05/06 13:54
남자와의 의리를 중시하고 자신을 배신한 여자도 배려하는 사려깊은 "창고관리인"인 레몽을 왜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했을까요?
왜 소설에선 그의 직업인 "창고관리인"을 따옴표로 처리해 표기할까요?
역자의 텍스트해석능력은 뭐라 할말을 잃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o 보다못해 2014/05/06 13:54
논리적사고/ 뭘 어떻게 물었냐잖아? 바보야. 아이디만 논리적 사고 그러지말고. 쪼다야. 에이 천벌을 받을 놈들,툇!
44. 후안무치 2014/05/06 13:36
국가에 총체적 부실에 분노가 치민다고 사장은 말한다.
그러나 여기 드나든 사람은 알 것이다. 정작 세월호 사건에 전국민이 힘들어할 때 사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번역이 옳다고 주장하고만 있었다.
정치가도 아닌데 왜 저런 정치적인 멘트를 할까?
어쨌거나 사장은 참 말 바꾸기엔 도사다.
그 이유를 살펴 보자.
1. 그는 분명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라면서 그토록 자신있게 절대번역을 말했다. >> 하나의 해석이라고 말 바꾼다.
(이 증거는 아직도 덜 고쳐서 남아 있다 : http://saeumbook.tistory.com/405)
번역 연재 내내 김화영을 까다가 수가 틀렸는지, 출판 할 때는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고쳐낸다.
심지어 그는 카뮈가 자신에게 접신했으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까뮈의 글에 가까운 번역을 본인이 했다고 자부한다.
그랬던 그가 여러 사람들의 지적을 받자, 급 공손해지면서 자신은 일개 번역자이니 그저 하나의 해석으로 봐달라고 애걸한다.
2. 사장은 자기의 절대 번역에 금이 가자 뭐라고 했을까? 모든 책을 폐간하고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 지적 감사하고 참고하겠다.
자신은 카뮈가 접신해서 번역했으므로 조금의 틀림도 없다고 자부하던 자다. 때문에 자기의 번역이 틀리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까지 말했다. 그런데 그 글은 온데 간데 없이 지워졌다. 말 바꾸기엔 도가 튼 사람이다. 대신에 지적 감사하고 참고하겠단다. 지적 하는 사람들이 사장 겨우 참고하라고 하는 줄 아나? 김화영한테는 절판시키라더니 자긴 참고해도 되나보지?
3.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가 정답이다?? >> 물론 아니지 슬쩍 책 내면서 고쳤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 고치기 전의 글을 그대로 가져와 본다.
(아래 전체 새운 사장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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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은 지 퍽 오래되었다.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rie. Il y avait de longs jours qu’elle ne m’écrivait plus.
보시다시피 아주 간단한 문장이다. 자, 그렇다면 위 문장의 번역은 맞는 걸까? 틀린 걸까?
아니 불어를 모른다면, 그냥 우리말로 이 문장은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 조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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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번역은 틀렸다. 일단 우리말로도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는 그 자체로 말이 안 된다. ‘오래간만’이면 오래간만이고, ‘처음’이면 처음이다. ‘오래간만’에 속에는 이미 ‘처음’이라는 시작점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로 둘이 같이 쓰이기 위해서는 각각 지시하는 말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오래간만에 아팠지만, 처음으로 약을 먹었다’처럼. 더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말해보자.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말이 되는가? 실제로 엄마를 처음 만나는 건 뱃속에서 나와서다. 아무리 오래간만이라도 처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은 그래서 생각 없이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명백히 비문이다. 지금 옮긴이는 너무나도 간단한 문장이기에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저대로 옮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역이라는 것은 내용 속에 들어오면 더욱 명백해진다.
지금까지 <이방인>을 읽어온 독자라면 뫼르소가 이미 앞서도 마리를 수없이 생각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처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이전의 생각은 단편적이었고 지금은 오래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말의 직역은 눈앞의 문장 그대로다.
‘처음으로Pour la première fois 그 후로depuis 매우bien 오래도록longtemps,’
까뮈는 지금 뫼르소가 ‘처음으로’ 마리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생각했다고 강조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의 올바른 번역은 아래와 같다(depuis longtemps은 오랫동안, 오래도록이라는 뜻의 숙어다. 두 숙어의 순서를 바꾸어 놓아도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은 지 오랜 나날이 지났다.
커다란 오역은 결코 복잡한 문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단순한 문장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다시, 번역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심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진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도대체 나 같은 독자조차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뫼르소가 마리를 처음 생각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의아해지는데, 이 책의 번역자가, 그것도 20년 동안 세 번을 고쳤다는 역자가, 어떻게 저런 걸 의심 없이 저대로 옮기고 지금까지 태연히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o 헐 2014/05/06 12:54
사장 정말 불어 못하나 보네.
사전만 열라게 찾아서 번역하는 거 티 다남 ㅋㅋㅋㅋ
난 이방인 사서 보고 좀 이상하다 했는데, 예전 글 읽어보니 뽀록 아주 ㅋㅋㅋ
pour la premiere fois depuis bien lontemps, j'ai pense a Marie.
이 문장을 두고서 처음엔
"처음으로 매우 오래도록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라고 번역하면서 올바른 번역이라고 주장함?
매우 오래도록 생각했다는 강조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장 진짜 불문법도 모른다에 내 왼팔을 건다!
o ㅋㅋㅋ 2014/05/06 13:03
누가 한국어도 잘 모른다고 하더라. 이거 전부 남한테 시켰다에 오른팔 건다.
o 독자 2014/05/06 13:35
솔직히 영어도 못하는 거지요; 영어라도 할줄 아는 사람이면 아 이게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의 불어 equivalent로구나 직관적으로 알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영어라도 아는 보통의 독자들은 어??? 했던 거고요ㅠ
o 새움지기 2014/05/06 13:44
그에 대한 해명도 이미 해놓으셨군요.
마지막 회, 이 땅의 번역자, 편집자들에게
죽음을 앞둔 뫼르소에 빠져 지낸 6개월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이방인>의 원고량만으로 치자면 소비한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었고, 기존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마당이라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던 과정을 생각하면 결코 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 번역이 여기까지 온 것은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먼저 새움출판사 최하나 편집자의 존재. 최 편집자의 꼼꼼함과 단호함이 없었다면 아마 이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번역의 쉼표 하나까지 살펴서 문제 제기를 해준 그녀는 실상 나보다 훨씬 뛰어난 번역자였다. 하여 우리는 문장을 두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이 있었기에, 또 한 사람이 찾아들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내게는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눈앞의 편집자조차 설득하지 못할 번역이라면, ‘그 따위’로 세상을 이해시킨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게 최 편집자와 싸우고 난 날이면, 나는 도저히 연재 글을 올릴 수 없었다. 눈앞의 한 사람도 제대로 설복시키지 못하는데, 수십 년 최고의 권위자로 추앙받아 온 저분의 번역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 난 다음날 새벽, 혹은 주말의 어느 순간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는 이가 있었다. 그는 어깨를 툭 치며 말하곤 했다. "그건 이렇게 보지 그래". 그의 말을 듣고 불현듯 다시 문장을 보면, 거기, 왜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단어가 쓰여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그러한 말들이 결코 이 작품의 작가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조언들이었다는 데 있다(그렇다, 라는 것은 다음날 최 편집자의 표정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치 챘겠지만, 그렇게 나를 찾아와 주었던 이는 바로 알베르 카뮈였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이, ‘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런 걸 어쩔 것인가. 그리하여 이 번역은 마침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이 두 사람 외에도, 빼놓을 수 없는 ‘여러분’이 계시다. 연재 와중에 연재의 취지가 왜곡될 수도 있었던 논란이 몇 번 있었다. 그때 자기 일처럼 개입하여 제 길을 바로 잡아주신 분들, 그분들의 댓글은 정말이지 내게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이제 연재를 마칠 시간이다. 그러나 이 자리가 김화영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는 자리이니만큼, 이번 회 역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오역들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지적하고 마무리하겠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김화영 번역)
À ce moment, et à la limite de la nuit, des sirènes ont hurlé. Elles annonçaient des départs pour un monde qui maintenant m’était à jamais indifférent.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man.
보다시피 김화영은 여기서 limite를 ‘끝’으로, sirènes를 ‘뱃고동’으로 보고 저렇게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 하여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린 게 아니라, "한밤의 경계선에서 (감옥의) 사이렌 소리가 울"린 것이다. 여기서 김화영이 다시 이런 기본적인 단어를 오해한 것은 다음 문장, ‘한 세계로의 출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세계로 떠나가는 ‘배’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저 말은, 이제 날이 밝으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뫼르소가 자신이 죽은 다음의 이 세계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앞에서 자신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다. 이 문장의 바른 뜻은 이렇다.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졸역)
ps.
그런데 눈 밝은 독자라면, 명성과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문장을 볼 줄 아는 번역자,편집자라면, 다시 여기서 마지막 문장에도 눈이 갔을 것이다.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30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바로 그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에 대한 김화영 번역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를 지적하면서, 그 자체로 말이 안 된다. ‘오래간만’이면 오래간만이고, ‘처음’이면 처음이다. ‘오래간만’에 속에는 이미 ‘처음’이라는 시작점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로 둘이 같이 쓰이기 위해서는 각각 지시하는 말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오래간만에 아팠지만, 처음으로 약을 먹었다’처럼. 더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말해보자.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말이 되는가? 실제로 엄마를 처음 만나는 건 뱃속에서 나와서다. 아무리 오래간만이라도 처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은 그래서 생각 없이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명백히 비문이다. 지금 옮긴이는 너무나도 간단한 문장이기에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저대로 옮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역이라는 것은 내용 속에 들어오면 더욱 명백해진다.
지금까지 <이방인>을 읽어온 독자라면 뫼르소가 이미 앞서도 마리를 수없이 생각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처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커다란 오역은 결코 복잡한 문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단순한 문장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다시, 번역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심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진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도대체 나 같은 독자조차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뫼르소가 마리를 처음 생각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의아해지는데, 이 책의 번역자가, 그것도 20년 동안 세 번을 고쳤다는 역자가, 어떻게 저런 걸 의심 없이 저대로 옮기고 지금까지 태연히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문학은, 모로 가도 로마만 가면 된다는 말로 덮어질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우리가 신뢰하고 아름다워하는 것은 태초로부터 언제나 그 시간, 그 자리에 붙박여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것이 아무리 번역이라 해도, 창조자의 안내대로 소로와 대로와 바닷길을 따라 로마로 진입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과 끝이 같다고 해서 결코 같은 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고 했었다. 그러자 반론자들은 “우리말로는 말이 안 되지만 프랑스에서는 관형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우리말 번역이니, 불어 문법이 조금 어긋나더라도 의미를 맞추고 싶었고, '처음으로 오랫동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정말이지 이 문장의 정확한 의미는 그것을 쓴 작가만이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에 대해서는 카뮈로부터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결국 이것은 역자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의미를 따를지, 문법을 따를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라고 썼었다.
------ 그런데 이 마지막 문장의 바른 해석이 정말로 '카뮈로부터 답지'한 것은 출판사에서 원고가 인쇄소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 절묘했던 순간을 이 자리에 옮겨 적기에는 적절치 않을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카뮈가 내게 보내준 마지막 메시지였지만, 자칫 잘못 설명하면 아주 우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Pour la première fois는 '또다시(처음으로)인 것이고, depuis bien longtemps,와 붙어 '아주 오랜만에 다시, 엄마를 생각했다'가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우리말을 두고 나를 비롯한 저 뛰어난 역자들, 논쟁자들 역시 왜 그 긴 시간동안 엉뚱한 곳만 더듬고 있었던 것인지, 정말이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 마지막 메시지는 이 연재를 따라 읽으며 격려했던 네티즌들과 논쟁에 참여했던 재야의 고수들에게 주는 알베르 카뮈의 마지막 '감사 인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더불어 나역시 그분들께, 더불어 까뮈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Merci(감사합니다)!
번역은 정말이지 이처럼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다(나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고된 수고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최 편집자를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애쓰고 계신 번역자, 편집자분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되풀이 말하지만 이것은 한 개인의 치부를 드러내자는 작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동세대 우리 모두가 대를 이어 <벌거숭이 임금님> 속 어른들이 될 수도 있다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이제라도 그것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일반 독자들이 아니라 바로, 명성과 권위에 앞서 ‘문장’을 볼 줄 아는 여러분들일 것은 명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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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본문
그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나는 꿱꿱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그를 모욕하며, 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 칼라를 움켜쥐었다. 나는 내 가슴속에 있는 모든 것을, 환희와 분노의 울부짖음으로 그에게 쏟아부었다. 그는 너무나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확실성은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마치 빈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그가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삶을, 다가올 이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겐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진실이 나를 꼭 움켜쥔 만큼 그것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옳았고, 여전히 옳았으며, 항상 옳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지만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했고 저것은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건 하지 않았으나 또 다른 건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 모든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이 이른 새벽을,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기다려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겠다. 그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살았던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서 어두운 바람이 내게로 거슬러왔다. 그 바람은 이 여정에서, 내가 살았던 시간보다 더 사실적일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당시 내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을 그만그만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며, 그의 하느님이나 우리가 택하는 삶, 우리가 정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단 하나의 운명만이 나를,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함께 무수한 특권자를 택해야 했는데, 그리고 이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형제라고 스스로 말하는데.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모든 사람은 특권자라는 것을, 특권자밖에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 역시, 선고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고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 한들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살라마노의 개는 그의 아내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그 작은 로봇 여자는 마송과 결혼한 파리여자처럼 또는 내가 결혼해주기를 원했던 마리처럼 죄인인 것이다. 레몽이 그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셀레스트와 똑같이 나의 친구라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제 마리가 그녀의 입술을 새로운 뫼르소에게 허락한다한들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는,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이 사형수는,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 모든 외침이 나를 헐떡이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나의 손아귀에서 부속사제를 떼어내고, 간수들은 나를 위협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돌아서서 사라져 갔다.
그가 떠난 후,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나는 잠들었던 것같다. 왜냐하면 얼굴 위의 별과 함께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전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떠올라 왔다. 밤과 땅, 그리고 소금 냄새가 내 관자놀이를 식혀 주었다. 잠든 여름의 경이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게로 흘러들었다.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말년에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쫒아내고, 희망을 비워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끝
45. indifference 2014/05/06 13:58
새움지기님. 이정서 씨의 번역이 마음에 들어서 리뷰를 올리는 독자들도 물론 있고, 이정서 씨의 '해설' 덕분에 '착각'에서 벗어났다고 리뷰를 올리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여기 댓글 다는 일부 사람들도 이정서 씨의 '해설'만이 맞다고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태에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레몽을 '양아치'로 이해하는 게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해석은 아닐지라도) 엉터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o 새움지기 2014/05/06 14:19
인디님/ 분명히 레몽에 대한 오해 부분 글 올리시겠다고 말 전했습니다. 위의 개인 명에에 관한 것,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것 임의로 삭제하겠습니다. 밑에 글도 포함 인디님 것은 그냥 두겟습니다.
46. indifference 2014/05/06 14:02
새움지기님,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 레몽의 정부와 그 아랍인의 혈연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겠습니다. 만약 저의 이메일 중 표현에 이견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견을 반영해서 메일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Chère 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
Bonjour, je m’appelle ________, et suis lecteur de Camus en Corée du Sud.
Récemment, L’Étranger d’Albert Camus a été traduit à nouveau en coréen, avec une publication provocante, proclament que l’interprétation de L’Étranger jusqu’à maintenant n’aurait été qu’une succession de malentendu et que seul ce nouvel édition serait capable de transmettre les « véritables » idées de l’auteur. Cet incident a causé un scandale et un assez sévère débat sur ce sujet qui continue encore.
Ce traducteur coréen, Jeongseo Lee, affirme que la maîtresse de Raymond et l’homme que Meursault a tué ne seraient pas frère et sœur. Comme Camus appelle l’homme mort l’ « Arabe » et la maîtresse la « Mauresque », ils ne seraient pas de la même « race » donc, pas frère et sœur.
Choqué par cette interprétation (d’ailleurs raciste d’une sorte), je voulus vérifier les travaux et les recherches sur Albert Camus ou L’Étranger accessibles en Corée. Résultat, l’homme que Meursault a tué est bien le frère de la maîtresse. Camus utiliserait le terme « Mauresque » pour indiquer une femme arabe d’Algérie. Voulant tout de même éviter une faute de lecture, je vous envoie ce courrier électronique : pour vous demander si ma compréhension serait correcte.
Ce courrier électronique semble ridicule, j’en suis conscient. Cependant, pour une compréhension exacte de L’Étranger, et aussi parce que Jeongseo Lee refuse d’admettre la relation familiale entre ces deux personnages sans la vérification d’une personne ou organisation autorisée, je vous demande avec tous mes respects, la moindre réponse possible.
Sincèrement, merci.
47. 새움지기 2014/05/06 14:09
그러네요. 괜히 말려들지 말라는 주위 충고를 무시하고 또 말려들고 말았네요. 저는 내일 어떻게든 역자님과 편집부를 설득해서 이런 백해무익한 댓글들을 달지 못하게 하자고 건의할 겁니다(아니 지금부터 막겠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미미
2014-05-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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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반갑습니다. 새움 출판사에 의해 삭제된 덧글들을 다 캡쳐하셨군요. 새움 홈페이지에 indifference님께서 그동안 제시하신 의견을 감명깊게 보고 있었고 그 의견에 대한 이정서씨의 답변을 기다렸는데 새움출판사의 대응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니 그 비겁하고 졸렬함에 저도 지금 실망이 매우 큽니다. indifference님의 의견과 고마해라님의 의견이 모두 삭제되었군요. 이게 무슨일인지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고마해라님은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 이정서씨의 번역에 대해 문의까지 하시고 '이정서의 번역은 이상하다'는 답변까지 받으셨다던데.. 이정서씨는 그에 대한 답변 대신 고마해라님의 댓글을 삭제하는 방법을 택하신 거로군요. indifference님 역시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 관련 메일을 보내겠다고 하시던데, 오늘 일부 댓글을 삭제하고 더이상의 댓글을 못달게 해놓은 것으로 볼때, indifference님의 문의 결과 역시 제3의 독자들이 볼 수 없도록 하겠다는 새움출판사측의 뜻으로 해석하면 될까요?
독자님 반갑습니다. 새움 출판사에 의해 삭제된 덧글들을 다 캡쳐하셨군요.
새움 홈페이지에 indifference님께서 그동안 제시하신 의견을 감명깊게 보고 있었고 그 의견에 대한 이정서씨의 답변을 기다렸는데 새움출판사의 대응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니 그 비겁하고 졸렬함에 저도 지금 실망이 매우 큽니다.
indifference님의 의견과 고마해라님의 의견이 모두 삭제되었군요. 이게 무슨일인지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고마해라님은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 이정서씨의 번역에 대해 문의까지 하시고 '이정서의 번역은 이상하다'는 답변까지 받으셨다던데.. 이정서씨는 그에 대한 답변 대신 고마해라님의 댓글을 삭제하는 방법을 택하신 거로군요.
indifference님 역시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 관련 메일을 보내겠다고 하시던데, 오늘 일부 댓글을 삭제하고 더이상의 댓글을 못달게 해놓은 것으로 볼때, indifference님의 문의 결과 역시 제3의 독자들이 볼 수 없도록 하겠다는 새움출판사측의 뜻으로 해석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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