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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리아 에보라
카보 베르드를 넘어 월드 사운드를 창조한 맨발의 디바
세 번의 결혼은 세자리아 에보라를 파탄에 빠트렸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다시는 집안에 남자를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줄담배와 술에 찌들어 생활했다. 당시 그녀는 거의 노래를 포기하며 살았다. 그런 터라 목소리는 날로 두터워지고, 차츰 아름다운 음색과는 거리가 멀어져갔다.
그러나 에보라는 가난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다시 노래를 불렀다. 1985년 44세의 나이. 그녀는 동향 가수의 초청으로 포르투갈로 향한다. 물론 그녀가 주인공으로 오를 공연은 아니었다. 그녀는 여러 가수의 무리에 섞여 있는 한 개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카보 베르드 출신의 음반 기획자 주세 다 실바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88년 47세의 나이. 그녀는 첫 앨범 '맨발의 디바'를 발표하며 정식 데뷔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각광을 받은 건 아니었다. 잠잠하던 인기는 4집 '미스 페르푸마도'(miss perfumado)가 선보이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음반이 프랑스에서만 20만장이 판매되면서 그녀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가수로 떠올랐다. 그 때가 1992년, 그녀는 51세의 나이로 음악계의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에보라의 음악을 카보 베르드의 '모르나'(Morna)라고 부른다. 카보 베르드는 서아프리카 대륙에서 5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이다.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아메리카 대륙과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지역이라는 이점 때문에 19세기에는 노예무역의 기착지였다. 특히 브라질의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팔려 가는 노예들의 집결지로 알려져 있다.
모르나는 바로 카보 베르드의 역사에서 탄생된 장르다. 음색은 포르투갈의 파두와 비슷하고, 선율은 브라질 특유의 부드러움과 닮아 있다. 여기에 아프리카의 퍼커션 리듬이 가미되어 모르나만의 독특한 정취가 생겨났다. 에보라는 이 카보 베르드의 음악을 처음으로 전 세계에 퍼트린, 월드 뮤직을 대표하는 스타 중의 스타다. 
추초 발데스, 오케스트라 아라공과 협연
2000년대 초반에 첫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던 에보라의 베스트 음반 '세자리아 에보라 2002'와 '앤솔로지'. 두 음반에는 비교적 이름은 알려졌지만 여전히 낯선 에보라의 음악 세계가 좀더 쉽고 친근하게 묘사되어 있다.
'앤솔로지'는 카보 베르드의 이름 없는 가수였을 뿐인 에보라를 세계적인 디바로 거듭나게 만들었던 루스아프리카(lusafrica) 레이블의 음원이다. 곧 첫 앨범 '맨발의 디바'에서부터 지난해 선보인 '먼 곳에서 본 상 비센테'까지 그동안 발표된 여덟 장의 스튜디오 녹음에서 발췌해 모아놓은 것이다. 앙골라 출신의 가수 봉가와 함께 한 첫 트랙 '소다드'를 비롯해, '앙골라' '베이로나의 피' '시제' 등과 미발표곡 '팔라 파 팔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여덟 장의 앨범에서 베스트만을 추린 것이어서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음반이다.
'세자리아 에보라 2002'는 그녀의 
첫 내한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 BMG에서 내놓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베사메 무초' '마리아 엘레나'를 비롯해 '파란 바다' '영광의 카보 베르드' 등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노래를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또 쿠바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와 함께 한 '부정', 쿠바의 손 밴드 오케스트라 아라공이 참여한 '린다, 부드럽고 젊은 여인이여' 등은 최근 그녀의 활동 경향을 대변하는 곡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에보라는 쿠바와 브라질 출신의 연주가와 다양한 협연을 하면서 음악적인 교감을 이뤄왔다. 카보 베르드의 모르나를 넘어 '월드 사운드'를 창조하려는 그녀의 의지가 깊게 드려진 곡이다. 모든 트랙에서 에보라의 슬픔을 머금은 목소리는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마음속에 보편의 울림을 전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