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맛보다, 와인 치즈 빵
이수정 지음 / 팬앤펜(PAN n PEN)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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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치즈, 빵이 어렵게만 느껴졌었는데 친근하게 다가왔다. 

풍부한 읽을거리와 따스한 사람들의 추억으로 말이다.

특히 이 책 157쪽의 <게으름뱅이들의 천국> 헌 문장에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누구나 50세가 되면 다시 열 살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왜냐  나는 이따금 나이까먹기를 잘하기에. 산책을 할 때마다 십대가 된다. 

내 안의 푸른 손목의 소녀가 팔을 흔들며 공중에 울리는 새소리를 찾아 고개를 돌린다. 

그런 내가 쿠키나 밥통브라우니를 구울 때는 아예 꼬마 다섯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그녀의 시간여행기차를 타게 했다. 

마치 그녀와 함께 그 열차를 타고 여러나라의 포도주와 치즈와 빵을 맛보기 위해

사전답사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책을 다 읽고서 나의 포도주와 치즈 그리고 빵에 대한 기억열차에 탑승했다. 

나의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나와 함께 빵집에 가서 가족들의 빵을 고르게 했던 아빠

빵집 문을 열때마다 추억을 열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집에서 사과와 고구마를 넣은 빵을 자주 만들어 주시던 엄마


직접 포도주를 담궈놓고서 정작 드시지는 않았던 아빠

몰래 달달한 포도주를 맛보던 십대의 나도


치즈는? 결혼이후 워낙 치즈를 좋아하는 남편때문에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본 기억이 있다.

작년 가을, 페타치즈(이 책을 보고서야 왜 페타치즈가 그렇게 짠 것인지...그리고 그리스에서 온 치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를 사서 샐러드에 얹어 먹다가 너무 짜서 별로였던 기억이.

이 책속에서 우유나 물에 담궜다가 짠기를 빼서 먹을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서 즐거웠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샐러드를 식사로 할 올 봄, 여름, 가을이 되면 샐러드위에 내가 직접 만드는 코티지치즈로 들깨치즈를 만들어 올려놓고 먹을 것이다. 작년 가을처럼 말이다. 추운 겨울에는 밥과 국이 좋아서 죽이나 스프 국을 아침으로 하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빵이 먹고 싶어져 냉동실에서 식빵을 커내 에어플라이어에 2장 구워 우유와 함께 아침으로 들었다. 아들이 즐겨 피자빵을 해먹어서 냉동실에 식빵을 넣어두곤 한다. 정말 오랜만에  담백한 식빵을 맛있게 먹었다. 


최근 스마트폰에 사진을 찾아보았다. 작년초 이사를 하고서 맞은 결혼기념일에 마트에서 남편이 골라온 와인을 맛봤다. 나는 술을 안하지만 특별히 축하할 이런 날에는 향기를 맡아보고 입슬에 적시는 정도로 와인을 맛볼 때가 있다.  그 와인이 칠레와인이었다.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 대한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고 확인했다. 아주 재미나게 읽혔다. 영화 일포스티노도 다시 보고 싶어지고.


작년 봄이 한창일 때 남편이 선물받은 에어플라이어로 식빵을 처음으로 구웠다. 반죽하는 그의 두툼한 손이 인상적이다. 그의 첫번째 식빵이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나는? 확실이 쿠키보다 빵 반죽을 하는 일이 많이 힘들다는 것을 해보고 알았다. 나의 빵은 실패작이었다. 정확한 계량과 발효온도와 시간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니까 어려웠다. 


64쪽

부르고뉴는 날씨 외에 토양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화강암, 편암, 석회암 등으로 구성된 척박한 토양이지요. 좋은 포도가 생산되려면 떼루아, 즉 토양과 지형이 좋아야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런데 좋은 토양은 영양분이 풍부한 기름진 땅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쁜 환경이라고 생각되는 척박한 땅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자랍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포도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파고들면서, 땅속의 미네랄을 듬뿍 흡수하여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 냅니다. 


웬지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이 이야기가 힘이 되었다. 


65쪽

부르고뉴의 섬세한 보석 피노 누아

맛은 가볍고 우아하며 섬세합니다. 넘길 때는 실크처럼 부르럽습니다.

옆에 이렇게 메모해 두었다. '내 마음이 이 포도같고 싶다'


작년 여름에 요한나 슈피리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처음으로 읽어봤다. 에니메이션으로 보았던 하이디의 모습이 아닌,  책표지에 산양들과 그려져 있는데 너무 예뻐서 그 책이 좋았다.

하이디 이야기가 빵이 이야기에서 나와 얼마나 반가왔는지.. 읽어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기쁨도 맛보았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초코쿠키를 구워 스무집과 나눠 먹었다. 아들 딸 생일마다 굽는 밥통브라우니는 워낙 초코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케잌대신 해준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밥통브라우니도 구웠다. 


마흔 아홉의 나를 나이까먹게 만드는 놀이로 초대하는 쿠키와 브라우니덕에 

아이들과 시작한 즐거운 쿠키굽기가 해마다 즐거워진다. 추억에 추억이 보태어진다.

가정이라는 작은 천국에서 하늘위 하늘의 천국까지 나의 나이 까먹기는 계속될 것이다.

게으름뱅이 50살이 10살이 되는 일을 더 많이 발견해 보리라.


이따금 거기에 내가 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치즈와 와인을 남편과 나누면서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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