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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척해도 오십, 그래도 잘 지내보겠습니다
서미현 지음 / 그로우웨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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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십이 되려면 좀 남긴 했지만,
마흔을 넘은 싱글 독자로서 책을 읽다 보니 얘기치 못하게 오십을 준비하는 마음이 됐다.

그래, 사실 머지 않았다. 간신히 출근하고는 있지만 회사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모르고, 몸은 언제까지 건강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기댈 남편도 노후에 의지할 자녀도 없다. 은퇴 준비는 시작도 못했다.

“엄마는 투석을 받지 않고 생으로 죽겠다고 떼를 썼고 의사 선생님의 설득과 나의 협박으로 가까스로 동정맥루 수술을 받은 후, 일주일에 3번 투석을 받으러 다니는 투석 환자가 됐다. 나는 집안일을 전담하게 되었다. 할 사람이 없으니까.“ (29쪽)

외동이라 혼자서 팔십 노모의 병수발을 들고 삼시세끼까지 챙겨야 하는 책 저자와 달리, 다행스럽게도 나는 세 명의 남매가 있어 부모님을 챙기는 일을 적절히 나눠 맡고 있다. 다만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그래도 바쁜 일상이 더 분주해지며 고향집으로 튀어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함께할 동지들이 있어도 이런데, 그 무거운 책임을 혼자 져야 하는 부담은 어떨까 감히 가늠이 안 된다.
예전에야 부모 부양의 책임이 자연스레 맏아들에게 갔다지만, 요즘은 결혼하지 않은 싱글 딸이 자연스레 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졌다. 혼자인 저자는 역시 선택사항이 없다. 일주일만 누가 엄마를 좀 봐줬으면 좋겠다는 절절한 진심과 고됨이 종이를 뚫고 나왔다.

저자는 사십대 후반에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면서 다소 일찍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은퇴를 했지만, 곧장 돌봄 노동이라는 어쩌면 더 고된 세계로 속절없이 휩쓸려 들어왔다. 병든 노모를 돌보며 살림을 하느라 멈춰 있는 시간 동안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이름을 알리고 성공을 거두고 눈코뜰새 없이 바삐 살아간다. 친구가 잘 돼서 좋지만 샘도 나고 속도 상한다. 나도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했던지라 이 마음 너무 잘 안다. 나도 분명 남들만큼, 어쩌면 더 열심히 사는데 어쩐지 떳떳지 못하고 주눅드는 기분.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음식 준비가 손에는 붙었으나 큰일은 역시 혼자 해내지
못한다. 김치 담그기나 만두 만들기는 엄마가 투석을
받지 않는 날 합동작전을 펼치는데, 매번 같이 할 때마다 그냥 사 먹자고 꼬드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함께 만드는 시간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기도 한다.” (35쪽)

얘기치 않게 맡게 된 살림과 삼시세끼를 차리는 일, 나이들고 아픈 엄마를 챙기다가 어느새 나의 늙어감도 확인하는 일, 사람들의 악의없는 무례에 대한 생각, 그럼에도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소중한 루틴,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들, 현재를 살게 하는 지나간 여행의 기억들....

“노트북을 켜고 삭제했던 네이트온을 다시 깔았다. 네이트온에 들어가 두 작가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작업 열심히 하라고,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고, 함께하는 시간이 존재한다고. 그 방이 있어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오늘도 잘하자’를 외쳐줄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131쪽)

어느 대목에선 낄낄 웃다가 어느 대목에선 가슴이 답답해 한숨을 내쉬다가 또 어느 페이지에선 나는 어떤가 멈춰 생각하기도 했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투병, 사고, 상실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내가 혹시 경솔하고 일방적인 배려로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기도하겠다는 공허한 말 말고 내가 해준 게 있나 되짚어봤다.

혼자인 게 편한 것 같다가도 나중에 진짜 아무도 없이 혼자이면 어쩌나 막막하기도 하다. 그런 막연한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나이에, 이 책은 무심하고 시니컬한 척 따뜻한 응원을 건넨다. 오십, 뭐 괜찮다고, 같이 한번 잘 건너보자고.

저자에게 응원받은 것처럼 나도 저자를 응원하고 싶다. 괜찮다고, 주변에 조용히 응원하고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오십을 앞두고 막막한 불안감이 드는 분들, 또 준비없이 오십을 맞아버린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다. 우리 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동시에 내가 현재 서 있는 위치와 나이, 무엇보다 앞으로 올 오십의 삶을 맞이할 ’태도‘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주변에 오십을 앞둔 친구들에게 슬그머니 선물하고 싶다.

“혼자 나이 드는 걸 두려워하지만 때로는 다 같이 잘 늙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래의 삶을 엄청나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나만 나이드는 것도 아닌데 뭘~’이라는 대책 없이 쿨한 정신으로 나아갈 뿐.”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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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오디세이 - 미지의 나를 찾아서
우주살롱 지음 / 비엠케이(BM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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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우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히네요. 제 별자리랑 주변 지인들 별자리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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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말고 비행기는 처음이야 - 우주 슈퍼★스타의 공항 가는 날
윤잼잼 지음 / 한겨레아이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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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고 나니 책에 나오는 프랑스 파리든 어디든 해외 여행이 너무 가고 싶네요 흑ㅠ. 그림체도 귀엽고, 언젠가 첫 비행기를 타게 될 아이들에게 선물해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해외 여행 짐싸기부터 탑승 수속, 비행기 이용법까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유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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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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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쓴 것처럼 나도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사실일까 봐 조마조마했다. 어제 낄낄대며 농담을 주고받던 동료의 시신이 사방에 흩어져 오물에 박히고 나무 위에 걸리는, 오싹할 법한 이야기를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술술 가볍게 읽히지만, 읽고 나면 복잡한 마음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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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멈추다 - 초록빛 힐링의 섬
이현구 지음 / 모요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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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떠난 여행길 버스 안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행길에서 여행 책, 특히 다른 장소의 여행 책을 읽다 보면 두 장소를 동시에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여행의 설렘도 배가 돼서 본전을 제대로 뽑는 마음이랄까.


이 책은 단순히 여행책이라기보다는 여행과 생활이 적당히 섞인 '아일랜드 가이드'라고 하면 좋을까. 책 중간 중간 들어간 사진 속 아일랜드는 춥고 황량했지만, 저자를 따라 아일랜드의 펍부터 오두막, 바닷가, 크리스마스 마켓, 음악 축제, 공연장을 돌아보다 보면 사진 속 차가운 풍경과 달리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특히 아일랜드의 역사부터 현지인이 추천하는 식당과 펍, 마켓, 축제 등 실용적인 정보들과 한국인이 저자가 아일랜드인 뮤지션인 남편 존을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있어 책을 덮을 때쯤 다른 나라에서 온 이 부부가 가족이나 친구처럼 애틋해지고, 앞으로도 서로 의지하며 잘 살길 응원하게 된다.


한국의 역사와 닮았다는 아일랜드의 아픈 과거사

19세기 중반에 이어진 대기근으로 아일랜드인 100만 명이 목숨을 잃고, 미국과 호주 등으로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가며 아일랜드 인구는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1916년에는 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해 '대국민 봉기'가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결국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남기고 남아일랜드는 독립한다. 그래서 한국이 일본에 느끼는 감정처럼 아일랜드인도 영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또 영국과 달리 아일랜드는 유럽연합에 속해 통화도 유로를 사용한다.


문학과 음악, 흑맥주'기네스'의 원산지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등의 세계적인 작가는 물론 록밴드 U2, 크랜베리스, 로리 갤러러 등 전설적인 뮤지션, 

마지막으로 흑맥주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기네스 역시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아일랜드인은 시와 이야기, 연극과 노래를 중요시하고 음악과 술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다른 나라의 수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고, 펍과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늦게까지 놀기 좋은 밤문화가 발달해 있다. 아일랜드의 제2의 도시 코크는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역시 지역색이 뚜렷한 사투리를 사용하며, 코브, 킨세일, 블라니 등 아름다운 섬과 예쁜 마을이 많다. 또 최근 버스킹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에도 등장하며 유명해진 골웨이는 관광지로 인기 있는 도시다. 규모는 작지만 유서 깊은 아이리시 펍과 음악, 모던한 카페와 레스토랑도 밀집해 있는 도시다.


이모의 유산, 존의 인생이 담긴 아이리시 펍, 릴리 피네건

책 초반에 등장하는 저자의 남편 존이 이모에게 물려받은 펍 릴리 피네건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쩐지 가슴이 뭉클했는데, 예전에 혼자 영국 여행을 하면서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아 흘끔거리기만 하고 끝내 펍에 들어가지 못했던 게 새삼 후회가 됐다. 존에게는 어릴 적 아픈 기억이 깃든 펍이지만, 또 동시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랑이기도 한 장소.

아일랜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아무것도 없는 '노웨어'에 자리잡고 있다는 이 작은 펍을 꼭 가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한겨울에도 민소매 차림으로 밖에서 기네스 잔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다른 작은 펍들도.


외국인 사위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장모의 마음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인인 저자가 외국인 남편과 살면서 가족에게 남편을 소개하고 또 한국인 장모가 낯선 외국인 사위를 받아들이는 이야기였다.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사위와 한 집에서 지내기는 부담스럽고,그래도 딸 부부인데 밖에서 자라고 하기는 섭섭할 것 같고,그래서 한국에 들어오기 일주일 전에 연락해서 그냥 집에 와서 한번 지내 보자고 용기를 내는 장모님의 마음도 이해되고, 난생 처음 아일랜드에 오는 친정 엄마와 장모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부부의 모습도 귀엽고 애틋하다. 사위는 서로 낯설고 어려운 아내의 가족과 가까워지기 위해 정성스럽게 아일랜드 음식을 준비하고, 장모는 사위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따뜻한 한국식 밥상을 차려 준다. 그리고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싹싹 비우는 서로를 바라보며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비건인 그녀를 따라가는 아일랜드 비건 식당과 메뉴들

또 이 책이 남달랐던 점은 비건인 그녀가 선택하는 식당과 메뉴들이었다.

비건을 위한 옵션이 많지 않은 한국과 달리 카페 메뉴부터 햄버거, 스프와 아일랜드 전통 음식까지 비건 메뉴를 두루 갖춘 아일랜드 맛집 이야기가 흥미롭게 들렸다. 혼자 간 여행에서 야채가 가득 든 햄버거를 받아 사람들 틈에 껴 만족스럽게 한입 베어 무는 모습, 남편식으로 조리한 포슬포슬한 아일랜드 감자에 버터 한 스푼을 끼얹어 먹는 맛, 각종 야채를 푸짐하게 넣고 익힌 뜨끈한 야채 스튜, 크리스마스에 먹는다는 각종 건과일이 잔뜩 들어간 크리스마스용 민스 파이 등 아일랜드의 비건 문화를 엿보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의 만남과 함께 위로 받고 챙기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너무 따뜻하고 애틋하게 와 닿아서 아일랜드를 두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마음이 들어서 좋았다.


언젠가 두 사람이 하는 한국 여행기 또는 생활기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

내년에는 나도 릴리 펍을 찾아서 따뜻한 이야기의 나라, 아일랜드 여행을 가고 싶다.

나는 알고 있다. 그때 존이 한국의 가족과 나누고 싶었던 건 단지 한끼 식사가 아니라 바로 ‘아일랜드‘ 자체였다는 걸. 그날의 식사를 통해 한국의 가족들은 아일랜드라는 나라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언어와 문화, 생김새가 다른 존을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은 더 편안하고 유연해졌으리라. 음식의 힘은 생각보다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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