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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세기전환기의 멜랑콜리
강덕구 지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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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을 쓰려다 첫마디에 뭘 써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고 컴퓨터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들었던 펜을 그대로 내려놨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그렇게 며칠이 흘려보냈다. 어떤 말을 써야 하나. 오늘은 고민 대신 노래를 먼저 틀었다. 더 콰이엇의 명곡 <진흙 속에서 피는 꽃>, 사실 <Take The Q Train Remix>라고 피타입이 피처링해 준 노래가 이 책에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이 노래가 듣고 싶었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더 콰이엇이구만.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아니 책 이전에 이 글을 쓴 저자는 위험한 사람이다. 위험한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위험한 것에 뛰어드는 본능을 가진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험한 글만 골라서 쓰는 사람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하다면 목차를 펼쳐보자. 그리고 서평이 쓰인 24년 말 기준으로 뉴스에 이름이 올라오면 위험한 사람이 몇 명인지 세보자.


 목차만 펼쳐보고도 편집자가 어떻게 이 원고를 통과시켜 줬을까, 웃게 되었다. 그래, 이런 굵직한 이름들이 나와야 문화 비평이 되겠지. 다루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 맞고, 각 분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사람들이 맞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사람들 이야기는 별로 떠들고 싶지 않은데. 위험한 책 덕분에 나도 위험한 서평에 끌려온 기분이 든다.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한다. 그는 세상을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프레임 안에 담기는 것들과 담기지 않는 이야기를 모두 다루려고 애쓰는 욕심 가득한 평론가다. 그의 문화 비평은 영화로 시작해서 영화로 끝이 난다. 영화에 집착한다고 표현을 바꿔도 된다. 그 정도로 이번 책도 영화 이야기로 가득하다.


 1부는 20세기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1950년부터 70, 80, 90, 그리고 50년도로 작가들의 작품과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진득하게 풀어낸다. 책에 나오는 영화들은 일반적인 독자라면 보통 들어본 적 없는 작품들밖에 없다. 고전적인 필름 느와르 시기의 할리우드 작품들, 초기 느와르와는 다른 색채를 보이는 70년대의 느와르, 서부극과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할리우드의 역사와 비디오 시대를 살던 감독들의 이야기까지. 사실 1부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 사실 영화의 역사를 몇 가지 키워드로 같이 쫓아가는 과정이니까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길고 장황한 이야기에서 책을 쫓아갈 힘을 주는 것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Take The Q Train Remix>, 나는 책을 쫓으며 이 노래를 떠올렸다. 비가 오는 여름밤 어떤 꼬마의 이야기, 진득하게 울리는 드럼 비트와 라디오 만이 나를 지켜주는 이야기.


 책에는 그가 영화로 살아온 이야기, 음악으로 살아온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다. 이게 과연 문화 비평서에 필요한가?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비평하는 저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시선으로 문화를 바라보는지, 그는 문화를 비평할 만큼 진심을 보여주는 거리에 서있는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슬프다. 그런데 거기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친구 한 명이 이어준 관계로 시작해 친구 한 명이 사라지자 깨진 관계를 내 눈으로 봤어서 그런지, 어린 시절 힙합을 들으며 커와서 그런지, 지난했던 군생활을 보내서 그런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무던한 감정의 흐름에 나도 모르게 묘한 동질감을.


 그렇게 조금 긴 1부를 끝마치면 다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더욱 위험해진다. 2부는 21세기로 넘어와 각 분야의 인물이라 할 법한 얼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처음 다뤄지는 인물이 후장사실주의자들, 바로 정지돈 작가다. 나는 이 분의 이름을 별로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예전에 좋아하는 한국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이름을 꺼낼 정도로 좋아했던 인물이었는데 최근 어떤 사건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24년 6월의 이야기, 그의 글이 오토픽션이냐 아니냐 늘 말이 나오던 도중 일이 터졌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문단이 떠들썩해졌을 때 조금 웃긴 이야기 기는 하지만 문득 내 글쓰기 방식이 떠올랐다. '나는 늘 내 이야기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앞세우고는 했는데 혹시 누군가 내가 쓴 글을 보고 지적하면 어떻게 하지?'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이 원고를 예전부터 준비해 왔다면 저자도 중간에 꽤나 골머리를 썩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 위험한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뛰어들었을 것이고.


  정지돈은 한국 문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신예 작가들에 대해 평이 박한 독서 커뮤니티에서도 문학적 완성도를 높게 쳐주는 작가 라인업에 들기도 할 정도로 그의 도전과 시도는 다양하고, 그가 글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근래 다른 한국 작가들이 보여주는 과정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글에서 풍기는 기묘함에 독자들은 매료된다. 21세기의 문화 비평, 그래서 문단의 이야기를 다룰 때 그의 이름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가 얼굴로 다뤄질 줄이야. 사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의 세계관을 구축해 가는 과정과 글, 오토픽션과 아카이빙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다. 그렇지만... 위험한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거둘 수는 없다.


 그 후 나오는 이야기는 음악, 영상 미디어, 그 외 다수에 대한 이야기다. 힙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인디 밴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 피타입과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붐뱁과 트랩, 한국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리네어 레코즈의 등장 전과 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프로그램으로 치자면 쇼미더머니 등장 전, 그리고 직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평론가인 그가 이런 다양한 문화를 비출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결국 그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 각층에 존재하는 문화를 프레임으로 잘라서 보는 괴짜다. 글을 구상하는 장면을 컷으로 상상하고, 음악과 영상 미디어를 프레임 안과 밖의 이야기로 나눠보려고 노력한다. 극장의 시대, DVD의 시대, 그리고 OTT의 시대를 상상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평론의 영역 밖에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 그런 시선은 불필요한 시선에 가깝다. 대다수는 까탈스럽고, 유난스럽고, 때로는 마치 그들을 괴롭히려는 것처럼 악의적이라는 느낌을 줄 뿐이니까.(사실 그건 대다수가 이런 시선을 갖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해서 그렇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 담긴 비평은 유난스럽다기보다는 자연스럽다. 마치 손발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너무 당연하기도 하다. 예전에 『악인의 서사』에서 그의 글을 읽었다. 그때 느꼈던 서부극을 향한 그의 열의란. 선과 악이 혼재된 서부 개척시대에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에 대해 떠드는 목소리가 마치 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의 글을 보고 '이 사람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런 생각을 잇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구나.' 느낌을 받았다. 이런 감상평을 내렸던 작품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게 정지돈 작가의 출세작 「건축이냐 혁명이냐」였지. 자꾸 피하고 싶은 이름이 나온다.


 저자는 늘 그렇듯 글과 한 발자국 반을 유지한다. 주먹이 닿는 거리, 인파이터들이 사랑하고 평생 이 거리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해 마지않는 거리, 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거리. 그는 언제나 이 거리에서 글을 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진정성을 보이고 때로는 아찔하게, 때로는 위험하게 보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이 책이 50쇄, 100쇄, 대박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그럴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리라 생각한다. 그럴 가치가 있는 내용이니까. 그의 다음 책은 어떨까. 경기가 끝나고 링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여전히 눈으로 좇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렸던 노래는 <Take The Q Train Remix>와 게이트 플라워즈의 <미련>이다. 사실 나도 저자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인디밴드와 힙합을 사랑한다. 소울컴퍼니 시절부터 피타입, 이그니토, 에픽하이와 같은 걸출한 붐뱁 명곡을 찍어낸 래퍼들과 갤럭시 익스프레스, 로맨틱 펀치, 국카스텐과 같은 밴드를 좋아하는 리스너다. 나는 지금도 국카스텐 1집 앨범 수록곡 <Gavial>을 제일 좋아한다고 떠들고는 한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국카스텐 특유의 사이키델릭함이 잘 섞인 곡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냄새가 나는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정지돈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며 사니까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라고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저자도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담는다. 그의 입장에서 현실은 글을 쓰기 위해 존재하는 아카이빙, 기억의 파편일 뿐이고 그걸 글에서 풀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기호화된 글, 오토픽션이라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가 자세히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세밀하게 풀어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저자의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기도 했다. 위에서도 아래서도, 자꾸 동질감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번 책이 많이 팔리기를 빌겠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런 재미있는 문화 비평서를 가져오면 좋겠다. 다음에 또 그가 새로운 글을 가져올 때는 얼마나 위험한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아니면 그가 글을 가져올 때마다 위험한 일이 터지는 건가.


https://brunch.co.kr/@curry-bear/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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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 작고 여린 생의 반짝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스텔라 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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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종교를 대체했어요. 특히 서구 문명국가에선 그렇죠."


- 배드 닥터: 메스를 든 사기꾼 3화에서


최근 의학 관련 에세이를 찾아 읽고 있다. 모태 천주교 신자이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를 무서워하는 겁쟁이여서 일 수도 있고, 이제는 노령의 부모를 걱정하는 한 아들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인간은 점점 죽음이라는 단어를 삶에서 떼어내고 있다. 죽음을 우리의 시선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고 죽음을 삶이라는 선에서 최대한 뒤로 밀어내려고 한다.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내가 100살까지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익히 생각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70세만 되어도 힘이 부족하고 주체적인 행동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 상태에서 30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아야 한다고? 정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같은 세상이 빨리 와야 하지 않을까?(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2038년, 안드로이드 로봇이 보편화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인터렉티브 무비, 어드밴처 게임이다.)


 분명 기술은 발전하고 시대는 진보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죽음이 두렵다. 하얀 장판에 콜라를 흘리는 실수처럼 죽음은 인간의 손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개념, 가치, 현상, 다양한 단어로 치환될 수 있는-무언가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이 죽음을 밀어낼 수 있다. 올바른 식사, 적당한 운동, 규칙적인 생활, 그러니까 자기 관리를 하기만 해도 예기치 못한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피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특히 갓난아기들은 어떨까. 그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세상 모든 것들과 직면하게 된다. 선악, 미추, 호오, 그러니까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부터 추하고 악한 것들까지 전부. 악에게서 그들을 구해낼 수 있는 이는 소아과 의료팀뿐이다. 오늘 가져온 책은 의학이 종교를 대체한 세상에서 일순간 신의 대리인 아닌 대리인으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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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전공했다가 간호사로 전향한 형님의 말씀, "남자 간호사는 병원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병원에는 특히 힘을 써야 하는 순간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화난 내원자, 내원자의 가족을 막는 역할이다." 왜소한 체형의 그가 어떻게 그들을 막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내원자의 가족, 특히 소아과의 임산부와 가족들에게 의사가 일순간 신, 혹은 악마로 보일 것이다. 신에게 기도해도 태아가 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소아과 의사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종횡무진하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에. 반대로 만약 아기가 살지 못한다면 분주해 보이는 그들의 행동 속 부족했던 부분이 눈에 밟혀 그들의 잘못으로 죽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기에.


 저자는 오랜 소아과 경력에도 죽음 앞에 익숙함은 없다는 듯 감정을 덤덤히 풀어낸다. 두 아이의 어머니, 소아과의 헤드, 그리고 새롭게 피어난 첫 불씨가 꺼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의사. 의학 에세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려움을 저자는 가볍고 담백하게 써 내려가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독자들은 아마 소아과의 모습이 아닌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 읽었던 의학 에세이에서는 온도계의 극단 그 언저리에 있는 감정들을 풀어내고는 했다. 열정에서 냉정, 냉정에서 열정, 의욕으로 뜨겁게 타오르던 시작에서 결국 재만 남게 되면서도 환자들을 생각하는 이와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죽음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온도계의 중간보다 조금 위, 37.5도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자신의 아이들,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 그렇기에 이번 에세이는 오히려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냄새가 나서 다른 글들에 비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때 사실 배드 닥터라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13년 한국에 기도가 없는 채로 태어나 식도에 튜브를 꽂아 생활하는 혜나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현대 과학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영역에 있었고, 앞으로 남은 생도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전설적인 의사와 연결이 되었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녀는 자기의 삶을 되찾았다는 감동적인 이야기, 과연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을까?


 이로부터 3년 후 파울로 마키아리니의 수술 방식과 그의 행적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플라스틱 튜브로 기관을 대체 및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가짜이며 8명의 환자 중 7명이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수술은 동물을 통한 사전 실험 데이터가 전무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다수의 환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보면 알 것이다. 혜나도 결국 2달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수술대 위에 올라간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이는 신이 아닌 바로 앞에 있는 의사뿐이다. 저자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병원의 아기는 자신의 아이라고 이야기하며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히 여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이 다큐멘터리와 혜나의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혜나 또한 이제 3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고, 만약 파올로 마키아리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는 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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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5132327260410

https://v.daum.net/v/20160328030616603

-위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뉴스기사 첨부-


본 도서는 동양북스 서평단 활동 신청을 통해 지원받은 도서다. 이 도서를 읽고 관심이 생긴 이라면 위의 다큐멘터리도 한 번 보면 좋겠다. 최근 의사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국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치적, 개인적 견해와는 별개로, 나는 다른 것들을 떠나 본연의 자리에서 전문가로 역할을 지키는 모두를 응원할 따름이다.


 나 또한 부끄럽지만 한 때 비행단의 특정 분야 관련 최종 담당자 역할을 해왔던 입장에서 본 도서에서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화되고, 또 위의 다큐멘터리에서 전문가로의 모습은커녕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일련의 행태를 보면서 분노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의학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모든 실험이 동물을 통해, 그리고 점점 사람과 가까운 신체 구조와 유전자를 지닌 동물을 지나 사람에게 실험이 시도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위 다큐멘터리의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더욱 분노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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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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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십니까, 아우님.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3대 명작이라고 칭한 작품 중 하나인 악의를 읽은 감상이?"


"아... 이 정도는 써야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무엇이든 후기를 쓸 때 앞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써버리는 버릇이 생긴 모양이다. 하지만 이 대화는 실제로 나눈 대화고, 내가 악의를 덮은 후 느낀 감정은 이러했다. 추리소설이란 대체 얼마나 치밀해야 하는 장르인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올드스쿨의 추리소설과 악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른가. 나는 앞으로 추리소설을 어떤 눈으로 보게 될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리라.




이 책은 46판(알라딘에서는 136X195로 작성했는데 표지를 잰 것으로 보인다)에 356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소설이 구판 2017년 1월 16일 초판 33쇄 본이고 그 후 10주년 기념 개정판이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이 얼마나 한국에서 인기가 좋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내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부분은 책의 사이즈와 페이지, 읽을 때의 편안함과 내부 레이아웃이다. 출판편집스쿨을 다녀온 이후로 생긴 버릇인데, 예전에는 무거운 책을 읽을 때 '아, 불편하네.' 정도로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이 책이 만약 페이지를 줄이기 위해 판본 크기를 늘렸으면 어땠을까, 조금 더 두껍게 만들기 위해 판본 크기를 줄였으면 어땠을까.'정도까지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내가 편집자가 되어서 일하게 된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요즘에는 책 보다 그립감이 좋은 핸드폰도 많고, 무엇보다 핸드폰으로 모든 컨텐츠를 편안하게 보는 시대이다. 그런데 그 핸드폰조차 어떻게 하면 무게 중심을 다르게 배치할까, 200g 남짓의 무거운 무게를 최대한 무겁지 않게 느끼도록 만들까를 고민한다. 그렇다면 책은? 현대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들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책조차도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게, 어떤 상황에서든 읽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말하면 책의 내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말은 아니다. 단지 저울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무게와 그립감 그 어디에서 최적화된 조화를 찾기 위한 저울질이.


 사실 악의는 지금 판본이 최적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장르소설일수록 46판 사이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 상대적으로 두꺼워져도 필요 이상의 글자가 종이 한 장에 배치되어 독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면 안 되니까. 장르소설에서 숨 쉴 구간은 작가가 고의적으로 만들지 않고서야 독자 스스로가 만들면 안 되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읽었던 '그 개와 같은 말'(임현, 현대문학)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임현의 단편선은 국판의 형태를 띤다. 즉 스스로 숨 쉴 구간과 생각한 시간을 두라는 의미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쉴 부분은 없다. 오로지 챕터와 챕터 사이 그 한 페이지의 틈새에서만 겨우 머리를 내밀고 가쁜 숨을 헐떡일 수 있다.


 악의는 마치 오픈북 테스트처럼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를 깔아 놓고, 사건을 보기 좋게 테이블 위에 펼쳐 놓는다. 독자는 그 위에서 핀셋으로 한 챕터 한 챕터를 꽂으며 읽어나간다. 때로는 누군가의 입으로, 때로는 누군가의 글로. 여기서 독자는 한 가지 착각에 빠진다. 화자는 신뢰성을 가진 인물이고, 그의 말은 오로지 참이라는 것. 하지만 화자 또한 독자에게 이 상황을 다양한 방법으로, 또 자신만의 시선으로 이야기해 줄 뿐 신뢰성을 보장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신뢰에서 불신으로, 뒤에서 앞으로 넘어오면서 트릭을 하나씩 깨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과연 내가 지난 챕터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어디까지 진실일까. 지난 챕터에서 내게 이야기를 들려줬던 화자는 과연 진실된 인물일까. 나는 어디까지 이 이야기를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이야기를 걸러 들으면서 전개를 따라가야 할까.


 나는 올드스쿨에 가까운 추리소설만 읽어왔다. 애거서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알고, 오히려 읽어보지 않았다면 "너 추리소설은 제대로 읽어본 거 맞아?"라는 이야기를 들을법한 전설적인 문호들의 소설들만을 말이다. 그 외에는 지난번에 우연히 지원했던 리디에서 시행한 K 스토리 공모전 독자 심사위원당시 읽었던 추리 스릴러나 요네자와 호노부, 미야베 미유키와 같은 작가들의 청춘 추리소설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렇기에 악의는 내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의외로 살인 사건의 범인과 범행 방법, 범행 트릭은 책의 중반부쯤에 이미 전부 밝혀진다.


'이미 모든 게 다 밝혀졌는데 왜 150페이지나 남았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든 범행이 밝혀졌을 때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남은 이야기는 이제 우리가 온 흔적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다. 나는 어디까지 의심하며 글을 읽었을까. 오픈북 테스트는 답이 모두 열려있는 시험이지만 반대로 책을 펼쳐도 틀리는 시험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남은 150페이지는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하는 답 맞추기 시간이다. 과연 화자가 가지는 신뢰성은 어디까지일까, 범인은 주인공 가가 형사와 우리를 속이기 위해 어디서부터 수를 썼을까, 인간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감정은 과연 어떤 이유로 터져 나오는 것일까. 나머지는 이 책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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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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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출판편집스쿨을 다니다 한 학우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책 써서는 먹고살기도 힘들어요."


 소설가는 아니었지만 이미 3편가량의 책을 내셨던 분인데. 지금도 한 권 계획되어 있고, 한 권은 저자는 아니어도 집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데. 글을 동경했던 이들에게 선망의 눈길을 받을만한 위치에 계신 분인데. 나는 한편으로 그를 동경했고, 한편으로 내가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을 다른 평행우주의 미래를 생각했다.


 그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29살(정확히 이제는 27살이지만)의 나이에 공학을 배웠고, 군생활을 꽤 오래 하면서 사회성이 증명되었고, 꾸준히 돈을 모았을 테니. 립서비스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나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어땠을까. 이 순간 그와 나는 같으면서도 다르리라. 나는 그를 동경한다. 동경은 이해에서 가장 먼 감정이라고, 그렇기에 나는 글로 자신을 증명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은 한국 문단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혹은 한 번만 들어봤다고 말하면 실례일법한 작가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양장본에 260페이지, 113X188, 46판에서 가로로 종이를 10mm 넘게 자른 이 책을 들자마자 든 생각. '아, 이 녀석 컴펙트하다.' 정말로 컴펙트하다. 작은 판형과 적은 페이지, 그리고 소설에 비해 한 사이즈는 큰 폰트, 거기에 후술 할 작가의 이야기 배치까지. 이 책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편집자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의 독자층은 이 현대 작가들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 혹은 그들의 팬들일테니 만족도를 위해 양장본으로 만들어야지. 바쁜 일상 중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게 판본의 크기는 줄이고, 글자 크기는 키워야지.'


 사실 글자 크기를 키우고 판본의 크기를 줄인 이유는 컴펙트함도 있지만 그 외에 많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에세이집에 싣기에는 다른 이들에 비해 너무 적은 양을 보내준 작가님들의 내용물의 양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시와 소설, 그 어딘가처럼 보이게끔 쓴 작가님들을 위해, 에세이인 만큼 부담감을 줄이고 호흡을 늘리기 위해. 사실 이유를 붙이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느끼기에 편집자는 이 책에 담긴 에세이를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순서대로 실었다. 개인에서 가족, 삶에서 소설 순으로 말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개인적인 작업과 삶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여행과 젊음, 일상 속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 후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다. 소설가이자 어머니, 아버지가 된 소설가의 이야기. 그리고는 시간과 삶,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마지막은 결국 소설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래서 마진이 얼마나 남았을까, 이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는 않다. 뭣하면 광화문에 찾아가서 이 책을 볼 수도 있겠지만... 멋진 에세이였으니 꿈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나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자본의 가치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였다. 더 자란 후에는 돈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도 납득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아이가 되었고, 이제는 꿈과 돈을 저울에 올렸을 때 꿈에 조금 더 무게를 주는 머리만 큰 아이가 되었다. 변한 건 없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예전에는 예술이 지고한 가치인양 떠드는 얼간이었고, 그보다 조금 미래에는 돈이 삶의 전부인 거렁뱅이였지만, 이제는 이야기를 돈으로 환산해서 보는 눈이 생긴 멍청이가 되었으니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결국 이 책의 완성은 시작과 끝에 있다. 마치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를 쏘듯 난잡하게 이야기를 던지다가 단숨에 분위기를 압도, 그리고 차분하게 정리하는 김사과 작가님. 그리고 개인과 가족, 삶과 그 속에서 찾는 소설. 책의 주제의식을 자신의 삶으로 담아준 함정임 작가님. 이 두 분이 책을 시작하고 끝맺어주셨기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23명의 이야기 속에서도 갈피를 잡고 끝까지 모두와 바다를 갈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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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 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 온워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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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0년대에 태어났다. 밀레니엄 시대의 개막을 기억할만한 나이는 아니었고, 내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은 2002년 월드컵이었다. 당시의 나는 축구 경기를 하는 날이면 아버지가 사 온 치킨, 그리고 치킨을 사 오는 아버지를 좋아하는, 그러면서 막상 축구는 공이 굴러가는구나~ 정도로만 보고 있는 그런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90년대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은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였다. 록, 발라드, 록발라드, 힙합. 대중음악은 90년대와 2000년대라는 산맥을 넘으며 몇 차례 변했다. 내가 좋아했고, 아직도 좋아하는 가수들은 지금도 그 시대에 살고 있다.


 90년대라고 말하면 먼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아직 30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30살도 되지 않은 녀석이 '30년밖에'라고 표현하니까 조금 어감이 이상한가? 어쨌든 그 시대의 문화와 예술은 아직까지도 가끔씩 우리의 곁을 나다니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90년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정확히는 90년대는 우리 기억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4월 야간타임 독서모임의 도서로 90년대가 선택되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이미 광화문에서 한번 본 적이 있었다. 한겨레 출판학교 당시 90년대에 관련된 신간 계획서를 작성한 학우님이 있었고, 그 분의 계획안에 대해 간단하게 정보조사를 하기 위해 광화문에서 90년대와 관련된 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때 본 책이 이 책이었다. 90년대. 아마존에서 2022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는 책,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책, 하지만 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책. 어째서였을까. 확실한 것은 끝까지 본 결과 원고, 번역문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온워드에서 낸 528 페이지의 도서다. 140X210 국판에서 가로를 조금 자른 국판 변형판인 이 도서는 국판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국판 변형으로 판형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본 도서(해외에서 출판된 도서) 또한 140X210 해당 판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 판형의 장점은 내가 느끼기에는 독서, 소지의 편리성과 더불어 한 페이지 내에 글자를 많이 담아도 독자 입장에서 읽기에 괴롭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리라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면 500 페이지를 넘기는 시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처음 집었을 당시 거부감이 든다는 점 정도.


 실제로 최근 인문교양계열 도서 중 판매고를 올리는 도서를 보면 300~400 페이지 내외로 페이지가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거운 책은 일단 집기가 부담스럽고, 또 설사 집어서 샀다고 하더라도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책은 이제 핸드폰과 싸워야한다. 그렇기에 핸드폰처럼 경량화되고 페이지 수가 줄어드는 것도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보와 이야기를 담아야하는 인문교양이기에 에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들겠지만.


 나는 보통 수려한 디자인을 가진 책을 보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다. 그건 세일즈포인트가 될 수도 있지만 요즘에는 다들 수려하고 깔끔한, 정갈한 인상을 주는 책을 찍어내기 때문에 이제는 세일즈포인트보다는 그게 기본 사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왜 책 디자인에 대해 장황하게 떠드나 대충 짐작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적은 디자인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내판과 해외판의 이미지를 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국내판의 경우 90년대 레트로 감성을 컨셉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픽셀 그래픽 컨셉과 더불어 색상 또한 그 시절에 쓰이던 색상으로 결정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국내판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아닌 프리즘 코팅에 있다. 건물 너머 석양을 표현하기 위해 프리즘 코팅을 발라놓은 것이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는 마치 그 시절의 게임, 장난감을 리뷰하는 도서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안의 내용물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80년대의 끝을 시작으로 90년대 초의 음악, 미디어와 영화, TV와 같은 삶에 가까운 이야기를 다루다 마지막으로 90년대를 관통하는 미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과 그리고 911테러를 향해 달려가는 시대상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즉 이 책을 읽을만한 독자는 30대~40대, 미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 현실적으로 20대가 되기가 힘들다.


 원고를 읽어보면 해당 작가의 글솜씨와 풀어내는 능력이 느껴진다. 너바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락의 본질을 무심코 떠올리게 하고, 만들어진 락커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게 한다. TV와 미디어,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서 국내 더빙되어 들어온 X파일을 떠오르게 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타이타닉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 더욱 아쉽다. 이 재미있는 책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또 서점 어딘가 책장에 꽂힌다는 생각에... 사랑받는 책을 만들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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