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기린의 세계 - 스물하나, 여자 아닌 사람이 되었다! 오 마이 갓. 이거 살맛 나잖아?
작가1 지음 / 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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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다 이불킥하게 되는 순간들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불쾌한 순간들이 있다. 같이 밥을 먹고 싶다며 미성년자에게 친구가 되자던 이도, 집에 가던 길에 ‘자신의 취향’인 나를 보고는 일부러 여기까지 쫓아왔다던 이도, 왜 이 동네에서 돈 쓰면서 술 마시냐고 자기가 일하는 곳에 오면 돈 쓸 일 없다던 이도, 새벽 6시부터 설문 조사를 해달라던 K대생도, 뒷자리에 앉은 내게 허리가 아닌 본인 구명조끼 가슴 부분에 손을 넣어서 잡아야 한다던 이도, 옷 속에 손을 넣어 등 허리께를 만지작거리는 게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던 이도. 누군가의 불량한 행실을 고발하려고 마음먹으면 한도 끝도 없이 에피소드가 튀어나올 테고 나는 또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끼고 있으니 더는 쓰지 않겠다. 이 불쾌함은 내게 사소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별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은 이걸 매력적인 여성의 일화쯤으로 여기더라. 한 번 만나보라거나 사실 걔가 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다는 둥, 너도 재미있던 거 아니냐 즐겁게 놀았으면 된 거지 않냐 등의 그 반응. 한 마디로, 그거다.



“웃어, 분위기 ㅈ창내지말고^^”



<살인자가 >에서 처럼 우리 모부님은 언젠가는 내가 성질을 죽여서 사고를 칠지도 모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변호사를 선임해준다고 하셨다. 그렇게 불같은 성미를 가졌음에도 물리적 위협을 피하고자 자세를 낮춰 상황을 빠져나가려 애썼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확실하게 되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분해야 했고, 2 시민의 자리가 자존감을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트리는지 되새겨야 했다.



자신의 취향과 호감을 앞세운 접근은 예상하기가 쉽지 않으며, 동시에 최대한 참고 사는 한국 여성으로서 낮은 발화점을 가진 이들과 물리적 거리가 좁혀진 상황에서대처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때의 우리를 토닥이며 위로해주는 대신 그는그래, 세상이 더럽고, 치사하지. 마늘 먹고 사람 되라 인간들아!”하고 동굴 속의 그들을 비웃을 것이다. 초밥에 와사비를 가득 넣어 알싸함의 정수를 맛보게 것이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필시 우리는 웃을 것이다. 어느 위로보다 쏘는 짜릿함을 선사할 것이다. 알싸한 기린의 세계는 아주 오랜 시간 우리를 위로하는 세상일 것이다. 당신 역시 세상에 도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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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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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자리로 내몰린 채 삶을 이어가는 존재들. 부러 그들의 존재를 지목하지 않아도 언제나 가장자리를 배정받는 것들이 있다. 언제나 가장 많은 폭력에 노출된 생명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강렬하고 직선적으로 들려주는 작가의 에너지에 압도된다. 내가 느낀 작가는 작가 소개글처럼 물 안에서 숨을 쉬는 사람,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 그 자체였다. 세상 많은 이들이 자신이 정해둔 틀 안에서만 가장자리를 연민하는 척을 내밀지만 이 작가는 다르다. 물 안에서 숨을 쉬고 물 속에서 눈을 뜰 줄 아는 사람, 리디아 유크나비치.  표지의 눈빛에 이끌려 책을 집어들었다면 어느새 눈을 마주보는 아닌 내가 표지의 눈을 가지게 된듯한 생생한 감각을 모두가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주변부의 삶을 강요받고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을 것을 종용받는 한국 사회의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의 생존자들의 삶에 공감과 연대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혹은 가장자리의 누군가라면. 날것의 그러나 생생한 어떤 삶을 그려낸 이 책과 눈을 맞추어보라. 수많은 우리의 눈맞춤.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이다.


내겐 단어가 빼곡한 페이지마다 전부 도망칠 기회였고, 나를 죽일 기회였고, 내 뇌가 꾸물거리는 회색 애벌레 이상의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 기회, 몸이 몸의 기원과 족쇄를 벗어던지고 끝없이 변화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기회였다. 책을 들고 있으면 두 손으로 온 세상이 만져졌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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