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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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상처만 남지 않았다면 무엇이 남았나.



>글을 쓰는 직업을 작가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좀 더 나누어보면 방송작가, 라디오 작가, 에세이 작가 등 다양한 분화가 있다. 더 크게 나누어보면 대본의 글을 쓰는 작가와 대본 아닌 글을 쓰는 작가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저자 김성원은 양쪽 모두에 해당된다. 말로 풀어내야 할 수 있는 글을 적어야 하고, 글 자체로 존재하는 글도 쓸 것이다. 에세이는 일반적으로 읽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 에세이만큼은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지는 이유는 양쪽을 모두 걸쳐본 저자의 경험이 풀어졌기 때문 아닐까.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에세이, 이 에세이의 장점.



>발화는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글을 적었다는 것,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말을 건네거나 음악을 들려주는 일을 해왔음은 어떤 의미로 이해할까. 내가 보기엔 아웅다웅 살아가는 세상을 함께 사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이 엿보인다. 선한 인간애를 느껴볼 수 있다. 책에서 나오듯, "팩트체크가 아니라 공감"



>무엇이 남았을까. 상처만 남진 않음은 분명한데 무엇이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감정 응어리가 남음은 분명한데, 무엇이 남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감정 응어리는 경험이고, 마음의 자양분이어서 오늘과 내일이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뭐를 놓치고 있는지 모르는 짧은 순간에 공감의 글을 읽으면서 무엇이 남았는지 잠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기분 좋은 감상에 젖게 한다.



에세이는 그래서 꾸준히 사랑받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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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시대의 탄생 - 1980년대의 시간정치
김학선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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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학선, 『24시간 시대의 탄생』, 창비, 2020




나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믿는 편이고, 당연히 시간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의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산의 불어남도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은 동그랗게 비유할 수 있겠지만 원의 크기는 아주 달라서 관측할 수 있는 1초의 무게감도 다르다.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끌린다. 내 생각이 이해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함이 게으름이고 어제의 책상 앞 밤샘이 열정인 시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1980년대 시간정치의 변화로 보여준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근대적 시간성에 대한 비판을 긍정하는 편이다. 맑스는 자본가가 시간기획 주체임을, 푸코는 시간이 근대적 공간에서의 규율이며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말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관점이지 않은가? 80년대 시간정치를 알게되며 학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되는 즐거움이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 책의 내용도 그 비판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즐거움을 넘어서 마주한 사실은 즐겁지 않다. 정권의 정당성, 이전과의 단절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에서 어엿한 참여자임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던 신군부는 기획 주체가 되어 24시간을 허용했고 단절된 시간은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쟁취가 아닌 주어진 자율은 서로가 우려스러웠고, 글로벌스탠다드와 맞닿는 시민성을 자제와 민도의 성숙을 통해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24시간이 한국사회에 등장했고,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합세하여 어떤 세상을 되었을까. 단순히 치환할 수 없지만 80년대는 서구가 일찍이 경험한 노동문화가 비슷하게 생겨나기 시작했고, 시간의 부족감과 압박감이 당연시되어 에너지드링크가 적잖게 팔리는 요즘이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의 피해자일 것이다. 


다만 80년대 사람들은 격동의 시간정치 속에서 대상자로 머물지 않았다는 것도 살펴볼 수 있다. 국민들은 시간기획에 참여했고, 모순됨에서 민주의식을 함양하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80년대 처음 시작된 24시간 관념은 변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전하는 국민성으로 요약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의 시간관념을 갖기 이전에 올림픽 시민으로 호명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국가가 허락한 자율에서 주권을 찾게 된 역사가 있었을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격동의 80년대는 건조하게 느껴진다.


80년대 있었던 24시간에 얽힌 다양한 사건들과 당시의 언론 담론 등이 풍부한 근거가 되어 책의 내용을 알차게 만든다. 역사를 좋아하거나 자신의 시간을 좀 더 멀리서 살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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