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분리파 20세기미술운동총서 23
베르너 호프만 / 열화당 / 1992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30여 페이지밖에 안되는 글과 또한 30여 페이지 정도의 칼러 도판으로 구성된 작은 책이다.하지만 도판의 그림들은 빈 분리파의 그림이지만 본문 내용과 그것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지 못한다. 또한 본문의 내용 중에 중요하게 취급되는 작품들은 여백에 작게 실려 있거나 아예 실려 있지 않아 글의 내용 파악과 독서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번역도 좋은 편은 아닌 듯싶고 30여 페이지의 작은 분량에 빈 분리파의 주장과 역사를 담으려고 하다보니 내용이 산만하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인물들에 대한 충실한 소개 없이 등장해 독서 진행을 자주 막는다. 문제가 있는 책이다.

하지만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일단 빈 분리파를 단독으로 소개한 책은 한국에서 이 책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나도 빈 분리파가 어떤 예술 유파인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혹적인 클림트의 그림이 칼라 도판으로 열 다섯장 정도 실려 있어 클림트의 미술 경향을 한 눈에 일별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 책이다. 또한 보기 힘든 다른 분리파 출신 화가들의 그림, 에곤 쉴레라든지 아돌프 뵘, 칼 몰, 콜로만 모저 오스카 코코쉬카 같은 이의 그림도 비록 소량이지만 볼 수 있어서 미술을 폭넓게 감상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산만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마 이렇게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빈 분리파는 예술이 총체적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예술이 생활과 떨어져 있다는 데에 반기를 들고 생활 속의 예술을 지향했다. 그것은 자율적인 미학의 영역을 생활 속에 옮겨놓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이동은 삶의 변화를 이끈다는 아방가르드적 기획이 아니라 생활과 친밀한, 생활 속의 하나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분리파는 완전히 고전적 시민사회 미학과 떨어져 나올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미술이 '아름다움'의 의미를 고전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예술을 공구화하면서 그 공구의 장식으로서 예술을 전화시키는 모습을 띄게 되었던 것이다. 로스같은 이는 이에 반발, 예술은 매끄러운 현실을 방식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절규와 공포와 성이라는 어두은 내면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며 분리파와 결별하게 되고 결국 표현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빈 분리파는 그러므로 표현주의의 전단계의 예술 유파로서 이야기될 수 있다.

빈 분리파에 대해서 처음으로 접하는 글이라 아, 이런 유파도 있었구나 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본 책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예술을 삶에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이념과 방법을 통해야할까. 빈분리파의 실패는 표현주의가 비판했듯이 하나의 장식으로 추락해버리는 경우였다. 물론 장식의 경향을 띄었던 그들의 회화가 마냥 장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다. 장식을 지향하게 되었지만 독특한 양식을 개척, 이전의 고전주의적 미감을 파괴하여 버린 것이다. 그러하기에 표현주의의 다리를 놓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술 기획은 비판력을 상실하고 현실에 흡수되어 버리는 기획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20세기 초, 그 격동의 시기에 이 유파의 주장은 젊은 예술가들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수박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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