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시의 이론과 실제
윤여탁 지음 / 태학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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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윤여탁 씨의 박사논문 및 관련 평론을 모은 이 책은 1987년 월북 작가의 해금 이후 본격적으로 카프 시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는 최초의 책 중 하나일 것이다.(그의 박사논문은 1990년에 발표된 것이다.) 김용직 교수의 <한국근대시사>에서 카프의 시들이 이미 상세히 다루어진 바 있지만 정치논리에 시가 종속되어 버렸다는 일방적인 평가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윤여탁의 이 책은 카프 시의 정치논리는 정치논리대로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문학성의 결여를 직선적으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카프의 시들의 문학성을 평가하기 위해선,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문예론을 통한 접근이 필요한데, 그것이 리얼리즘 시 이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리얼리즘 시 이론이 서구나 동구에서도 정리되어 있지 않은 터라 윤여탁은 기왕의 고전적 리얼리즘 이론을 원용해서 리얼리즘 시론을 정립하려고 한다. 리얼리즘 이론의 핵심 개념으로서 '반영'과 '전형' 개념을 들고 서정시 역시 이 개념의 적용이 가능하고, 그러기에 시의 리얼리즘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티는 반영된 세계의 전형성이라는 면과 이렇게 형상화된 문학적 세계의 진실성이라는 면이 서로 얽히는 관계에 놓이며, 이는 형상화 방법이라는 형식적 장치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다.'(33면)

그런데 리얼리즘을 정의한 엥겔스의 유명한 명제, 1)진실한 세부의 묘사, 2) 전형적 상황 3) 전형적 성격은 소설을 모델로 하여 제기된 이론이므로, 시에 직접적으로 원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 1)의 묘사의 세밀성은 서정시에선 쉽지 않다고 보지만, 2)의 경우는 한결 수월하다고 본다. 3)의 경우 시에서 등장 인물이 등장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때, 난점이 있지만, 서술시에선 인물의 전형시가 등장하고 독자는 작품에 대한 상상적 이해를 통해 인물의 형상을 재창조하고 추출할 수 있다며 전형적 성격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루카치의 이론을 들어 시는 창조적 자아에 의해 반영된 객관적 현실이며, 이를 위해 시적 자아는 사회적 세계의 총체적 경험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객관의 총체성과 더불어 시적 상상력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40-41면) '시도 객관적 총체성을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직서하거나, 비유적 상징적 형상을 통해서도 다소 감정적이지만 선명하고 생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는 작가가 현실생활을 토대로 한 전형화된 사상과 감정을 토로하게 된다.' (42면) 저자는 그리하여 IV장에서 다양한 리얼리즘 시의 형상화 방법으로서 서술(사건시와 이야기시), 상징화, 가요화나 연극화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의욕적인 이러한 생각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일단, 전형성이 확보되려면 어떠해야하는가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리얼리즘은 전형성이 세부의 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다. 즉, 어떤 사회과학적 인식이나 철학적 인식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소설 자체 내에서 전형성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부 묘사의 진실성이 없는 상태에서 전형성을 찾는다는 것은 시 바깥의 이미 기성의 세계관으로 시를 보고, 거기에 맞으면 전형적인 것이라 평가하는 식의 재단비평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전형적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시 자체에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전형성 이론이 맞게되는 치명적 한계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시에서 리얼리즘을 엥겔스의 명제에 맞추는 것에 대한 윤여탁의 우려('1990년도 하반기 현대시 연구동향', 민족문학사 연구 창간호(1991), 279면)는 이런 면에서 정당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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