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족 이야기 <나는 뻐꾸기다>를 쓴 김혜연 작가의 아동소설.
다섯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 좋다. 물론 작가가 화자들의 이야기를 잘 엮었을 때에 한해서 말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소설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른 아동소설에서도 그렇듯 도서관은 치유의 공간의 역할을 하고... 햇살도서관에서 알 수 있듯 따듯함이 작품속에 담겨있다.
<나는 뻐꾸기다>처럼 마음 속 허전함을 따듯한 햇살로 살짝 채워주는 소설이다.
핵발전의 위험과 원전사고의 참혹함을 잘 다룬 책.
시대에 맞지 않게 원전르네상스를 주장하는 2011년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때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내게 잘 맞지 않는 부분은 이 책의 내용이 소설이기보다 르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묘사가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어 변화를 불러 올 수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을 빗대어 묘사한 소설도 많고, 그런 소설이 감동을 통해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중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어찌보면 짧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두 세대의 일기를 서로 맞대놓음으로써
세상이 똑깥으면서도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학교 입학을 앞 둔 설레임을 잘 표현.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두 일기가 합쳐지게 해서 작품의 통일성을 준 것도 인상적.
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 그런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
많은 재난 소설이 사건을 직접 다루는 것에 비해, 헤스는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주 후, 사건 현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원전 사고가 플롯 발전의 배경에서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사고를 넘어 우정, 사랑, 성장 등의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 결과 얼굴을 들이대며 소리치지 않고도 조용히 마음을 울리는 방식으로 반핵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소설로 <체르노빌의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문학이란 관점에서 볼때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불새처럼 일어나>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불새처럼 일어나>를 쓴 캐런 헤스는 뉴베리 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 아동 청소년 문학 작가,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쓴 히로세 다카시는 반핵 저널리스트이니 문학성을 기준으로 삼는게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는데다가 두 작품 다 소설 형식을 택하고 있으니 비교될 수 밖에 없다. 다카시는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며, 헤스는 감정을 절제한 방식으로 주제를 한 번 걸러내 전달한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걱정하며 지켜본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 더욱 공감이 간다. 빗방울을 피하고, 대기중 방사능 수치를 재며 주인공처럼 우리도 바람의 방향을 얼마나 걱정하였는지... 앞으로도 이런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난 재난 소설들이 많이 쓰여지고 번역되길 기대한다. <불새처럼 일어나>는 2011년 9월 10일자 <중앙일보>에 자세히 소개되었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9/10/5822499.html?cloc=olink|article|defa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