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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평점 :
얼마전 제 구미를 당기는 스릴러 소설이 나왔습니다.
바로 헬레네 플루드가 쓴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라는 소설인데, 헬레네 플루드는 이전에 테라피스트라는 작품으로 먼저 접한적이 있었고 당시 꽤나 흥미롭게 읽어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장장 몇년만에 작가의 차기작이 번역되어 한국에 출간되었고 감사하게도 러스월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렇게 읽고 서평을 남길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사설이 좀 길었네요. 그럼 바로 서평 들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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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한 무게, 묵직한 내용
헬레네 플루드의 소설은 상당히 묵직합니다. 이는 전작이었던 “테라피스트”(B•A 패리스의 동명의 소설과는 전혀 다름)에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인데, 우스개소리로는 책의 분량이 묵직하다는 것, 그리고 핵심적으로는 내용이 상당히 무겁다는 의미 입니다. 스릴러 소설은 기본적으로 어둡고 묵직한감이 공통적으로 깔리지만 헬레네 플루드의 작품에는 그 정도가 더 강합니다. 전작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인 “나에게 거짓이라는 진실을 맹세해”는 시작부터 매우 어둡고 불길한 기분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음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 개인적으로 스릴러는 다크한 내용에 끌리는 저였던지라 이는 아주 만족스러운 스타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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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가 주는 이질적인 공포
여러분은 어떤때에 공포를 느끼시나요?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 아니면 종말론을 연상케하는 갑자기 몰아치는 자연재해? 그도 아니면 선혈이 낭자하는 고어적인 것? 그런것에 공포를 느끼신다면 아쉽게도 본 작품과는 맞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헬레네 플루드는 그런 외적 공포 보다는 인간의 심층에 있는 심리적인 공포를 다루는 작가거든요. 전작에서도 그러했듯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서 독자에게 공포감을 선사합니다.
이는 작가의 직업이었던 심리학자라는 특성에 기인한 것인데, 그래서인지 헬레네 플루드는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에 대해 아주 기가막히게 표현을 해냅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냥 지나칠법한 부분의 감정도 표현을 하는데 이게 상당히 섬세하고 후에 나오는 스토리에도 영향을 줍니다. 작가는 일상적인 상황, 그중에서도 가장 안전하다 생각되는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분위기나 감정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맞는 말 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렸을때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여러분이 알고있던 그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것 같나요? 내 가족, 내 애인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분위기. 좀더 이해하기 쉽게 비슷한 심리를 느끼게 해주는 현상으로 표현하자면...
- 리미널 스페이스
이런 단어로 표현해볼 수 있겠네요.
여러분이 자주 가던 공원이나 어떤 장소에 별 생각 없이 가봤는데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주말도 아닌 평일, 그것도 사람이 가득해야할 점심시간인데도 말이지요. 이때 여러분은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요? 뭐 몇몇분은 “아싸~ 전세냈다, 개꿀~”을 외치실 수도 있겠지만... 막상 마주했을때 느끼는 기분은 의외로 공포감 입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을 느낀적 있거든요. 저는 주말이 되면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 가곤 하는데, 그곳은 사람이 붐비는 곳이고 시골이다보니 힐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라 찾아가서 책을 읽곤 합니다. 어느날은 조금 늦은시간에 방문하는 바람에 마감시간이 3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아서 그냥 커피만 한잔 마시고 나왔습니다. 헌데 30분 전까지만 해도 차가 가득했고, 사진 찍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던 카페가 그야말로 텅 빈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조금 오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익숙한 공간이지만 뭔가 경계가 허물어진듯한 느낌을 주는 것... 그게 바로 리미널 스페이스이고, 저는 저 사람 하나 없는 카페 야외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이 바로 제가 이 책, “내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를 읽을때 느꼈던 기분 입니다. 이 사람은 분명 주인공에게 익숙하고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존재인데 갑자기 그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불쾌함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집니다. 즉 이 소설은 사람에게서 리미널 스페이스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이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이라 보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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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발 저린 도둑은 두 발 뻗고 못잔다.
이건 또 뭔소리?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건 이 작품의 핵심이자 만악의 근원 같은 것 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바로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 심리적 공포가 바로 주인공이 불륜녀라는 설정으로 인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리케는 이웃집에 사는 요르겐이라는 남자와 불륜관계인데, 어느날 요르겐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리케는 요르겐의 사망 추정시간에 그의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는걸 다른 이웃에게 목격 당한 상태였고요. 그리고 이때부터 작가의 불쾌한 심리 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리케가 모든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는겁니다. 그동안 스스럼 없이 대하고 친구처럼 지내던 이들의 모든 것이 다 어긋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이죠. 과연 그들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불륜을 저질렀던 사실이 발각될까봐 제발이 저린 리케가 변한 것인지 작가는 상당히 애매모호하게 표현합니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고, 작가는 중간중간 의미심장한 힌트를 던지곤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진실과 거짓이 모두 뒤엉킨 실타레를 푸는 것과 같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찾게 되면 “?” 하는 리액션과 함께 책장을 뒤로 넘기게 될것입니다. 어쩌면 이번 작품의 제목도 그래서 이렇게 길게 만든게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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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심리를 다루는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본 작품은 작가가 심리학자이기에 실제 상담자들의 내용도 섞여있을 수 있으니 그 수준이 더 하지요. 하지만 동시에 내용이 다소 지루하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스피드한 전개와 격렬한 전개를 원하시는 독자들에겐 솔직히 읽기에 괴로운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를 다룬 작품은 동시에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장점이 존재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만 잘 만들어진 작품에 한해서지만... 다행히 내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는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만약 내가 리케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저것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또 나라면 이러지 않을까 하는 선택지를 만들어 고민하게 되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전작인 테라피스트도 그렇고 헬레네 플루드의 작품은 메이저 보다는 마이너 취향의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혹은 좀더 심오한 느낌의 스릴러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적합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테라피스트를 재미있게 읽은 저에게 이 작품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솔직히 하는 짓거리 보면 빌런이 주인공인 소설이라 그점은 좀 마이너스였지만 인간의 심리, 그리고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 상대를 대하는 감정이 180도 변할 수 있음을 아주 절절하게 표현해주는 묘사 덕분에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읽으시려는 독자분들께 언제나처럼 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읽기전에 머릿속으로 가벼운 암시를 거십시요.
“나는 범죄자다.
나는 죄를 지었고, 누군가 그걸 봤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으십시요. 심리 스릴러는 그렇게 읽어야 몰입이 됩니다.
그냥 이해하면서 읽으려고 하시면 머리털 다 빠집니다.ㅋㅋ
추신//: 그렇다고 진짜 도둑이 되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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