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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신명직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근대 주체의 경성 생활, 그리고 풍자>
- 신명직,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현실문화연구, 2003) p347, \15,000
1920년쯔음, 조선에는 근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는 모던-보이, 모던-껄 들을 낳았고, 그들은 영화, 카페, 유행, 백화점 등 새로운 문화에 정처없이 흔들리었으며, 과도기적 가치혼란에 시름하였다. 조선시대와는 다르고, 현대와는 또 다른, 이 시기 경성의 생활상을 당대의 지식인인 고 안석영 씨는 ‘만문만화’ 라는, 생소한 장르를 통해 거칠지만 은은하게 풍자해 낸다. 이를 통해 그 시기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책의 저자인 신명직 씨의 해석을 통해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안석주 씨의 만문만화를 모아 엮은 것으로, 그가 만문만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단 만화를 그리게 된 배경은, 시대상황에서 말미암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문만화란, ‘흐트러진 글과 난삽한 그림’ 이란 뜻으로, 익히 알고 있는 만화와는 말풍선의 유무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는 ‘만문’이라는 형식이 말풍선 보다는, 아무래도 덜 직접적이고, 덜 풍자적인 문체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과 사상 탄압이 기승을 떨치던 당시, 탄압을 피하기 위한 좀 더 은유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이었다.
만문만화는 모던걸과 모던보이에 대한 모순과 대립으로 일관되어 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모두 부유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모던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이것은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하였다. ‘의’ ‘식’ ‘주’ 중 ‘의’ 하나를 위해 ‘식’ ‘주’ 를 포기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들은 보다 개방적이 되어 갔고, 보다 세상에 무신경 해 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가치관은 무너져 가고, 영화, 카페, 딴스, 유행, 백화점… 등에만 관심을 쏟았다. 돈, 돈, 돈이 필요했다. 모던걸들은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돈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려 했다. 첩살이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돈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룸펜과 실업자, 백수만 넘쳐났다. 결국 이는 절대적 수요의 부족을 불러왔고, 작가는 이를 ‘난쟁이가 쓴 큰 갓’ 이라는 표현으로 희화화 하였다.
이 책은 ‘만문만화 속의 근대주체’ ‘경성의 생활모습’ 이란 두가지 분야에 대해 묘사 하고 있다. 근대주체란, 모던걸, 모던보이를 더불어, 프로레타리아, 브루주아, 백수, 순사, 고리대금업자 등을 말하였고, 경성의 생활모습에는, 사람들의 패-숀과 문화, 그리고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남촌,북촌간의 격차에 대해 설명하였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거처하는 곳의 벽마다 벽지가 뜯어지고, 밑에서 구더기가 나와도 얼굴에 분 바르고 개털 목도리라도 두르고 길로 나오면 첨단 여성 대우를 받는, 가치관의 뒤바뀜을 풍자하였다.
이 책은 일견, 현대 우리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백화점, 유행, 자유연예, 영화와 대중음악, 야외놀이 등, 지금의 우리 삶과도 매우 유사하다. 이 글의 부제목인,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과 같이, 근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지만, 현대의 삶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각인된 근대성만을 잡아내어 비판함으로써, 앞으로 근대의 생활상을 돌아봄에 있어 한 겹의 색안경을 부여하는 게 아닌가 한다. 또, 작은 생활상들을 엮어 놓은 만문만화를 설명하려 하다 보니, 이를 한 권의 책 속에 묶는 과정에서 전체를 덮어줄 무언가가 부족하여, 글을 읽음에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식민통치하의 시대를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억압받는 삶에 대한 묘사는 극도로 적다는 점에서, ‘식민지 현실’을 묘사함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 하의 근대화’에 대해 묘사하고자 하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궁극적으로, 시대와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하고, 모든 생활방식이 하루아침에 뒤집혀 버린 세상,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둠속, 나라가 없어졌어도 개인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뭇 교훈적이면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