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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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자연스러운 열광이야말로 추방된 자들의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미할 것이다.’

이 소설은 고유한 문화와 정신성이 있던 자리가 자본과 욕망으로 대체된 모든 지구 종족의 이야기다. 식민화된 사회에서 남들 예술, 남들 돈, 남의 정신으로 버텨야 하는 모두는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조차 모른 채 폭력과 알 수 없는 무기력, 거짓과 개인주의를 체득한다.
우리에 가둬진 닭이 분에 못이겨 철창 옆 닭을 쪼는 것과 같이.

소설의 문체나 내용, 계획 등과는 상관없는 어떤 정신성이 모든 활자에 스며있었다. 길고 지루하지만 들뜬 하루같은 이야기들에서 놀라움과 경이가 느껴졌다. 작가가 바로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이며 이야기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을 잃어버린 지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살도록 방치되었다는 희미한 각성이 살아나게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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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레인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2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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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조건 공부하라는 말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여기 스스로를 발견하고 꿈을 위해 나아가는 아이들이 답을 준다. 아이들은 저마다 씨앗을 품고 있으며 치열하게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성장 스토리를 지금껏 기다려 온 것 같다. 언젠가 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만 있을 뿐 진정한 도전과 자아 실현은 찾기 힘든 것 같은 현실 안에서 한강초 수영부 아이들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된다. 삶이란 얼마나 두근거리는 것인가! 꿈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가장 가치로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아이들 첫 사랑이야기도 감정 표현이 정말 섬세해서 마구 설레면서 읽었다!
모두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사랑과 도전이라는 가치를 기어코 꺼내주는 이야기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이었다. 물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좋았지만 힘있는 서사와 안 어울렸고 또 영법에 대한 아무런 연구나 고민 없이 선수들을 대충 그린 것 같아 그림을 보면 이야기에 몰입도가 약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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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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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을 정리하는데 특화된 주부들이 이웃에 도사리고 있는 추하고 더럽고 잔인한 폭력을 어떻게 쓸어 버릴지 너무나 궁금하다!!
이 미국식 유쾌 발랄 공동체 호러물은 완벽한 페이지 터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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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파랑 - 소울메이트를 찾아서, 제3회 No.1 마시멜로 픽션 대상작 마시멜로 픽션
차율이 지음, 샤토 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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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 수 없기도 했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고 굉장한 판타지이므로 독자는 어느순간, 가족 이야기인지 조선 바다 이야기인지 주제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무언가 확실하게 다가오는데 그것은 주인공의 신체 변화 때문이다. 해미는 그렇게 조심했으나 처음으로 너무나도 낯설고 끔찍한 변화를 겪는다. 바닷물을 마시지 못해 물괴로 변신한 것. 그것은 의식이 사라진 지옥같은 고통이었다. 곁에 있던 미지는 해미의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해미를 구한다. 땀을 먹이고, 또 위험을 감수하고 현실 속에서 산소호흡기를 가져와 인공호흡으로 숨결을 불어 넣는다. 이것은 책 표지에 써있는 것 처럼 진정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바로 친구를 살리는 이야기.

너무 많은 곁가지와 지나친 묘사는 오히려 주제를 흐리게 할 수도 있는 것 같지만…(반대로 자잘한 묘사에 빠져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ㅠㅠ)
책을 덮고 이야기를 돌이켜 봐야 한다. 그럼, 몸과 마음이 급격하게 변화해서 도대체 몸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사춘기 아이들이 삶과 일상을 해치지 않고 서로를 걱정하고 구하는, 건강한 우정이란 훌륭한 주제가 이야기 안에서 서서히 쌓여가는 구조구나!
느낌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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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M. 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 / 돌베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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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비로소, 5번을 처음 들었을 때 왜 온몸에 슬픔이 퍼지고 전율과 감동으로 눈물이 났는지 알게 되었다.
레닌그라드가 스탈린에게 가족과 친구를 잃고 다시 나찌 손아귀에서 지옥이 된 후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몇명 또는 다 죽었으며 식량 조차 없었다. 거리엔 굶어 죽은 시체가 누워있고 인육을 먹거나 먹지 않기를 선택해야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 곳에서 작곡했고 연주했다. 연주자들 중엔 공연 도중 굶주림으로 죽는 이도 있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5번 초연을 듣고 모두 눈물을 쏟았다. 음악은 삶 자체였으며 고통이 연주되는 동안 그들은 고통을 토해낼 수 있었다. 음악으로 레닌그라드 사람들을 구한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늘 음악이 삶이길 바랐다. 음악 자체로존재하는 머나먼 음표들은 현실 안에서 의미가 없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가진 예술엔 무언가 다른 감동이 있다.
사람과 돈 사이에 소비재가 된 음악은 아무데서나 이어폰만으로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견딜 수 없는 무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엄청난 거리에서 오는 차가움과 공허. 그 허공의 불가사의한 무거움. 음악이 돈과 연결된 순간 그것은 그 자체로 전쟁 없이도 마음을 갉아먹는다. 미치지 않기 위해 무기력과 무심함을 또는 잔혹함을 선택했던 레닌그라드 사람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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