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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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단편 소설 속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라 불리는 것들이라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이성(理性), 일부일처제, 이성애, 부르주아, 가부장, 백인, 수동적 여성상 등과 같이 남성중심사회에서 만연한 이데올로기들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쇼핑카트」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갑자기 극도의 가난 상태에 놓인 마을이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 이야기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실직, 기아 등과 같은 가난의 상태에서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고, 그것은 광기 섞인 폭력으로 치환되어 재현된다.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와 「우물」에는 소위 초자연적현상이라 볼 수 있는 유령과 그로테스크한 환영을 목격하고 공포를 느끼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두 소설의 주인공에 동요를 일으킨 유령과 환영은 실제로 친족이 만들어낸 것이다. 별 생각 없이 읽다보면 억소리 나게하는 이야기 전개다.

가난, 폭력, 초자연적현상인 유령, 환영, 미신과 죽음 등과 같이 현실 세계에서 타자성을 띈 소재들이 마리아나 엔리케스 소설의 주 재료들이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의 장르인 공포 소설은 인간과 세계가 이성에 기반한 통일된 존재가 아님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삶과 죽음, 인간성과 비인간성,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과 같은 전혀 다른 두 세계가 하나의 인간과 세계에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과 악이라는 철저히 분리된 사고체계의 붕괴는 인간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소설은 인물들의 공포감(동요)에 전염되는 것이며, 역사적으로 억압된 것들(통일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이 독자의 지각, 의식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정리하자면, 공포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라는 자아의 유한함을 벗어던지고 무한한 '타자'를 향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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