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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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가제본 블라인드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이 출간되기 전에 <포털>과 <역노화>를 접해볼 수 있었다.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SF는 미래를 말하고 있음에도 현재 우리의 삶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포털은 사실 나에겐 어려웠다. 사람의 슬픔과 우울이 녹아든 미지의 포털들은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고, 세상에 드러났다. 이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슬픔과 그 슬픔에 대한 궁금증을 이야기한다.  결국 주인공은 포털을 기대하고, 포털을 마주한다. 우리에게는 슬픔이 부족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이 너무 강렬했다. <포털>의 초입에 적힌 문장인데,  인플루엔셜에서 하이라이트한 문장이나 감상을 공유해달라고 업로드한 사이트(https://padlet.com/influential_book/portals)에 이 문장들이 가득했다.


사실 나는 <포털>보다는 <역노화>를 더 흥미롭게 읽었다. <포털>이 나에게 어렵게 느껴져서인지도 몰랐고, 내 성향상 쉽게 슬픔을 잊고, 타인의 포털을 궁금해하거나 흥미로워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공감이 조금 부족한 편이다. <역노화>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오르게 했다. 처음에는 "에이, 시시하겠네."라는 생각을 했는데, 죽기 전에 역노화를 신청한 아버지가 죽기 일주일을 남겨둔 상황이라는 설정이 너무나 흥미롭고 마음을 힘들게 했다. 나는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정말 슬프게 읽은 적이 있다. 내 인생에 그리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지 않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그녀를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마주하며 슬퍼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역노화>는 좀 달랐다. 내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아버지의 죽음 직전에 모든 나이대의 아버지를 직접 마주하며 그의 평생을 보게 된다. 그건 내가 평생을 가도 알 수 없을 부모의 한 부분까지 본 것일테다. 내가 기억하고 평생을 지켜봐온 40대 이후의 부모님의 모습이 아니라, 철없이 호기심에 뛰어나가고, 넘치는 에너지를 표출하고, 사회에 반항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온 가장 눈부신 시기의 부모님을 말이다.


<역노화>를 읽는 내내 나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공감했다. 내가 연인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 주인공은 나와 생각이 같았다. 관계성에 크게 의의를 두지 않는 인물이 부모에게는 뭐 그리 얼마나 대단하게 정을 주겠는가. 그래서 나는 <역노화>를 읽으면서 조금 더 몰입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책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정말 흥미롭고, 소재들도 신기해서 즐겁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감정을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은 책 같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주고 싶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슬픔은 우주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그리고 우리에게는 슬픔이 부족하지 않았다.

"용서할게. 날 용서해줄래?" 하지만 누가 무엇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의 작고 따뜻한 뺨을 내 가슴에 대고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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