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에 대해 잘 몰랐던 나도, 이게 복선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쿠니 가루와 마타 진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민들레와 국화를 그들의 상징으로 삼은 작가의 신중한 배치가 놀랍도록 절묘한 것이었다. 두 꽃은 닮았다. 수많은 꽃잎이 수북하게 한 개의 꽃을 이루는 형태도 닮았고,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노란색도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르다. 서리를 맞으며 가장 늦게 피어나 우아하고 고고한 절개를 드러내는 국화와, 짓밟히고 뽑혀도 돌틈새에서도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나 하얀 홀씨를 날리고 어디에든 있는 강인하고 질긴 민들레와 같이. 마치 그들의 조국- 코크루의 수호신이 카나와 라파, 쌍둥이 자매신이듯이. 카나는 불과 재와 죽음, 포효하는 활화산이며 라파는 얼음과 눈과 잠을 관장하는 하얀 여신이다. 그들의 파위(상징동물) 또한 검은 까마귀와 흰 까마귀다. 그들은 마치 거울처럼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리고 작중에서도 등장하듯 코크루를 부활시킬 영웅으로 지목받은 것은 애초에 '마타 진두'이다. 날 때부터 카나의 총애를 받았고, 중동안(한 눈에 두 개의 눈동자를 가져 독수리의 시력을 지녔다)을 가졌으며, 황제에게 저항한 벌로 가문과 친척이 모두 몰살당해 숙부와 조카 둘만 살아남았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 구조다. 반면 쌍둥이 자매신인 파라는 주변에서 신기한 일이 끊이지 않는 '쿠니 가루'에 집중한다. 그다지 영웅 가문도 아니고, 원대한 야망을 가진 것도 아니고, 복수심에 불타지도 않지만, 그는 늘 즐거운 일을 찾고 남들과는 다른 기발한 생각을 한다.
세계관적으로 섬으로 구성된 '다라'제도는 7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소설 속 창세 설화에 따르면 8 수호신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산 전쟁이라 불렸던 신들의 전쟁으로 한 명이 사라진 것인지 또는 숨은 것인지는 아직 책 한권으로는 알 수 없는 듯하다) 다라 제도는 어딘지 켈트 신화에서의 여신인 '다나'를 떠오르게 한다. 아일랜드라는 섬을 중심으로 하는 여섯 종족의 이주민이라는 설정까지. 궁금한 사람은 켈트 신화를 참고하기를. 아래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민들레 왕조 연대기의 신 리스트다.
(국가명) - (신의 이름) - (관장하는 것) - (파위)
자나 - 키지(중년 아저씨) - 바람과 비행과 조류를 관장 - 밍겐 수리
코크루 - 카나와 라파 쌍둥이 자매 여신 - 불과 재와 죽음 / 얼음과 눈과 잠 - 검은 까마귀와 흰 까마귀
리마 - 피소웨오(근육질 전사) - 사냥, 금속과 돌, 전쟁과 평화의 신 - 늑대
파사 - 루피조(야윈 청년) - 생명과 치유와 푸른 초원의 신 - 하얀 비둘기
간 - 타주(물고기 비늘옷) - 운과 도박? - 상어
하안 - 루소(어부 노인) - 계산과 속임수의 신 - 바다 거북
아무 - 투투티카 - ? - 황금 잉어 (신들 중 막내)
마치 켈트 신화처럼 인간 영웅들과 신이 함께 편을 갈라 싸우던 황혼의 시대가 있었고, 그들은 이제 필멸자들의 시대라며 직접적으로 역사에 끼어들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관여한다. 이런 설정들이 초한지의 한계를 벗어나 이 세계를 판타지의 세계로 보이게 한다. 명작 <왕좌의 게임>이나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봤던 것처럼 신선한 세계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피데레'가 된 자나 제국의 황제의 일화를 보며 어딘지 낯설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문 통일에 관한 칙령; 분서갱유, 규격 통일, 무병장수에 대한 욕망 등. 이것은 아시아 역사를 배운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존재 아닌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 진시황.
게다가 작품의 주인공 마타 진두가 잃어버렸던 가문에 다시 돌아와 선조의 보검 '나아로엔나'(의심을 종결짓는 자)를 되찾는 장면은 마치 <아서왕과 엑스칼리버> 같았다. 그리고 서양문화권보다 동양문화권에서 더 익숙할 법한 곤봉에 '고레마우'(피를 마시는 나락)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 또한, 동서양의 문화가 기묘하게 혼재되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말 그대로 실크+펑크가 무엇인지 그 진수를 보여주었다. 마치 맛있는 동서양 퓨전 음식을 보는 것 같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