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A. 하인라인 중단편 전집 세트 - 전10권 로버트 A. 하인라인 중단편 전집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고호관 외 옮김 / 아작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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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조각을 몇 개라도 사모아서 위안을 가지던 나날은 안녕.
전집이라니 이건 언제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였죠.
후회없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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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위엄 - 상 민들레 왕조 연대기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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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 리우의 민들레 왕조 연대기 1부 - 제왕의 위엄 上을 읽었다. 초한지를 재해석한 작품이라느니, 사상 첫 3관왕을 석권했던 <종이동물원> 작가의 작품이라느니, 실크로드와 스팀펑크를 합쳐 실크펑크라는 새 장르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느니, 하는 여러 찬사에 손이 저절로 갔던 것도 공공연한 속마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적인 입맛에 아주 잘 맞춘 SF판타지다. 아주 잘 만든 초한지의 2차 창작이기도 하다. 필자는 실제로 2차 창작을 즐겨 하는 사람으로써 원작이 있고 그 원작을 재창작한다는 것을 '2차 창작'의 포괄적인 정의로 본다. (단순히 리메이크보다는 더 넓은 범위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차 창작을 더욱더 크게 보면 OSMU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원작을 아는 사람이 보아도 아 이건 그거구나! 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때 그것을 아주 잘 만든 '2차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2차 창작은 쉽지만 어렵다. 원작이 있기에 추가로 설정하는 수고로움은 적지만 원작을 넘어서야 한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달까. 그런 2차 창작의 사례로는 BBC의 <셜록>, 네이버 웹툰의 <삼국지톡>, 만화 <최유기>를 포함해 어마어마한 사례가 있고, 친숙한 예로는 코믹스에서 무비로 넘어온 MARVEL의 이야기까지 아주 많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모든 콘텐츠는 결국 근본적인 인간사의 변주다. 성공한 원작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이 시대의 트렌드이기도 하고.


어쨌든, 다 읽고 나니 '제왕의 위엄'이라는 제목이 The Grace of Kings라는 영어 원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 아쉬운 부분이 있다. 원제는 '다라' 제도의 7국의 모든 '왕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위엄' 또는 '명예'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제왕의 위엄은 '국화'의 마타 진두만을 나타내는 느낌이다. 뒤로 갈수록 오타나 어색한 문장도 보여서 세상에 갓 나온 빵 같은 귀여움(1판 1쇄의 가치란!)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부분은 글 말미에 첨부하기로 하고.

일단 소설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을 추려봤다.


아직 소설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이자 맛보기다. 물론, 이걸 다 보고 나면 결제 버튼으로 향하는 손을 막을 수 없겠지만.


"독이랑 해독제가 이렇게 붙어서 자라다니 신기하군요."

"그런 식의 짝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게 본초학의 근본 원리예요.

- 중략 -

우주는 적이 될 운명인 것들을 친구로 맺어 주길 좋아하나 봐요."

켄 리우, <제왕의 위엄>, 85-86pp.


초한지에 대해 잘 몰랐던 나도, 이게 복선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쿠니 가루와 마타 진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민들레와 국화를 그들의 상징으로 삼은 작가의 신중한 배치가 놀랍도록 절묘한 것이었다. 두 꽃은 닮았다. 수많은 꽃잎이 수북하게 한 개의 꽃을 이루는 형태도 닮았고,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노란색도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르다. 서리를 맞으며 가장 늦게 피어나 우아하고 고고한 절개를 드러내는 국화와, 짓밟히고 뽑혀도 돌틈새에서도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나 하얀 홀씨를 날리고 어디에든 있는 강인하고 질긴 민들레와 같이. 마치 그들의 조국- 코크루의 수호신이 카나와 라파, 쌍둥이 자매신이듯이. 카나는 불과 재와 죽음, 포효하는 활화산이며 라파는 얼음과 눈과 잠을 관장하는 하얀 여신이다. 그들의 파위(상징동물) 또한 검은 까마귀와 흰 까마귀다. 그들은 마치 거울처럼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리고 작중에서도 등장하듯 코크루를 부활시킬 영웅으로 지목받은 것은 애초에 '마타 진두'이다. 날 때부터 카나의 총애를 받았고, 중동안(한 눈에 두 개의 눈동자를 가져 독수리의 시력을 지녔다)을 가졌으며, 황제에게 저항한 벌로 가문과 친척이 모두 몰살당해 숙부와 조카 둘만 살아남았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 구조다. 반면 쌍둥이 자매신인 파라는 주변에서 신기한 일이 끊이지 않는 '쿠니 가루'에 집중한다. 그다지 영웅 가문도 아니고, 원대한 야망을 가진 것도 아니고, 복수심에 불타지도 않지만, 그는 늘 즐거운 일을 찾고 남들과는 다른 기발한 생각을 한다.


세계관적으로 섬으로 구성된 '다라'제도는 7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소설 속 창세 설화에 따르면 8 수호신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산 전쟁이라 불렸던 신들의 전쟁으로 한 명이 사라진 것인지 또는 숨은 것인지는 아직 책 한권으로는 알 수 없는 듯하다) 다라 제도는 어딘지 켈트 신화에서의 여신인 '다나'를 떠오르게 한다. 아일랜드라는 섬을 중심으로 하는 여섯 종족의 이주민이라는 설정까지. 궁금한 사람은 켈트 신화를 참고하기를. 아래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민들레 왕조 연대기의 신 리스트다.


(국가명) - (신의 이름) - (관장하는 것) - (파위)

자나 - 키지(중년 아저씨) - 바람과 비행과 조류를 관장 - 밍겐 수리

코크루 - 카나와 라파 쌍둥이 자매 여신 - 불과 재와 죽음 / 얼음과 눈과 잠 - 검은 까마귀와 흰 까마귀

리마 - 피소웨오(근육질 전사) - 사냥, 금속과 돌, 전쟁과 평화의 신 - 늑대

파사 - 루피조(야윈 청년) - 생명과 치유와 푸른 초원의 신 - 하얀 비둘기

간 - 타주(물고기 비늘옷) - 운과 도박? - 상어

하안 - 루소(어부 노인) - 계산과 속임수의 신 - 바다 거북

아무 - 투투티카 - ? - 황금 잉어 (신들 중 막내)


마치 켈트 신화처럼 인간 영웅들과 신이 함께 편을 갈라 싸우던 황혼의 시대가 있었고, 그들은 이제 필멸자들의 시대라며 직접적으로 역사에 끼어들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관여한다. 이런 설정들이 초한지의 한계를 벗어나 이 세계를 판타지의 세계로 보이게 한다. 명작 <왕좌의 게임>이나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봤던 것처럼 신선한 세계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피데레'가 된 자나 제국의 황제의 일화를 보며 어딘지 낯설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문 통일에 관한 칙령; 분서갱유, 규격 통일, 무병장수에 대한 욕망 등. 이것은 아시아 역사를 배운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존재 아닌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 진시황.


게다가 작품의 주인공 마타 진두가 잃어버렸던 가문에 다시 돌아와 선조의 보검 '나아로엔나'(의심을 종결짓는 자)를 되찾는 장면은 마치 <아서왕과 엑스칼리버> 같았다. 그리고 서양문화권보다 동양문화권에서 더 익숙할 법한 곤봉에 '고레마우'(피를 마시는 나락)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 또한, 동서양의 문화가 기묘하게 혼재되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말 그대로 실크+펑크가 무엇인지 그 진수를 보여주었다. 마치 맛있는 동서양 퓨전 음식을 보는 것 같달까.


"여러분이 코크루 해방군입니다! 보십시오,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일어섰을 때 여러분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코크루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인간이 이 지상에 단 한 명만 남는다 할지라도, 바로 그 한 명이 자나 제국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켄 리우, <제왕의 위엄>, 187p


말 그대로 '진부한다면 진부한 연설'이자, 엄밀히 말하면 사기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쿠니 가루는 매력을 지녔다. 자신을 배신한 사람도 끌어안는 그의 인성과 배포는 놀라울 정도다. (상기의 대사는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마을 사람들에게 코크루 해방군이 대거 몰려가고 있으니 성문을 열고 맞이하라는 (헛)소문을 퍼뜨렸고, 이를 믿은 사람들이 성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며 코크루 해방군이 어디있냐고 물었을 때 대답한 말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악인에게도 있다. 한때 레온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통일제국의 황제 마피데레도, 그의 가장 충실한 친우이자 부하였던 수궁령 피라도, 심지어 세무조사관이었던 킨도 마라나조차도 다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개연성이 있다.


피라는 한 가지 맹세를 했다. 자나 황실을 멸망시켜 마잉의 원수를 갚겠다는 맹세였다. 그는 진심이 담긴, 어마어마한, 진짜 불충을 저지를 작정이었다.

켄 리우, <제왕의 위엄>, 211p


어째선지 귀비 마잉과 키코미 공주를 비롯해 아무 국의 빼어난 여성들이 다 남자들을 갈라놓는 원인이 되는 것 같지만, 일단 그것은 차치하고.


순수하게 멍청한 타입도 있었다. 큰 웃음을 주었던 사찰왕 후노 크리마의 경우다. 물고기의 배에 거짓 예언 두루마리를 넣고 종래에는 스스로 그것을 믿어버려 자신을 왕으로 추도했던 사람.


"너는 열 명이 신상 하나를 조각하는 데에 1년이 걸렸다고 했다. 허나 나는 너에게 1000명이 넘는 인부를 줄 것이다. 그 정도면 같은 일을 사흘 만에 할 수 있을 것이야."

"그 논리대로라면 여성 열 명을 시켜서 한 달 만에 아기를 낳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켄 리우, <제왕의 위엄>, 236p


매력있다. 이런 건방진 말투. 마음에 든다. 물론 후노 크리마는 저렇게 말한 피소웨오의 사제를 잔인하게 죽였다.

이렇듯 디무 시를 다스리게 된 후노 크리마는 자신의 거짓 예언이 들킬까, 자신이 왕의 재목이 아님을 의심받을까봐,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쓰르라미 울 적에>의 의심병 수준이다. 또는 몇 년 전 '다락방 리볼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흑건대'에 의해 반역자로 지목된 병사는 그날부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 중략 -

흑건대가 백성들을 사찰하는 동안 백건대는 흑건대를 사찰했다. 그런데 백건대는 누가 사찰해야 할까?

- 중략 -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왕이 찾은 답은 회색 머리띠를 두른 회건대였다.

켄 리우, <제왕의 위엄>, 283-284pp.


이외에도 다양한 왕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리마의 지주 왕 에피소드는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비행함으로 천하를 제패하던 대황제 마피데레가 붕어하고 피라가 거짓으로 황태자를 자결시킨 후, 어린아이를 황제로 만들고 하루종일 왕궁에서 놀게 하던 시기이다. 제대로 된 통치자를 잃은 제국의 곳곳에서 자연히 해방군이 독립을 외치며 왕을 옹립했고, 리마 국에서는 상징과 전통을 중시하는 관료들이 왕족의 후손을 찾아 왕좌에 앉혔다.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굴욕을 무릅쓰고 국새를 자나에 바쳤던 마지막 태자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 굴 따는 일로 연명하던 열여섯 소년이 바로 그였다. 다른 왕족들은 모두 뻣뻣이 서서 죽음으로 그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랬던 대신들은 다시 정벌을 하러 오는 자나 제국의 노 장수 나멘에 맞서 싸울 생각은 않고, 백성을 희생해 살아남을 길만을 모색한다. 심지어 여자와 아이들을 모아 돌파 부대를 조직하자느니 하는 말에, 열여섯이던 지주 왕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그들에게 호통 친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대들은 지난 몇 달간 내게 리마 왕가의 명예니, 왕과 귀족이 백성에게 진 의무니 하는 말들을 잔뜩 늘어놓았소. 그런데 지금은 리마 백성이 그대들의 하잘것없는 목숨을 위해 무의미한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떠들고 있잖소. 백성이 자기 재산과 노역을 제공하여 우리의 호사스러운 삶을 떠받치는 까닭은 오로지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가 지켜 주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그 하나뿐인 의무를 저버리고 여성과 어린이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다니. 참으로 역겹구려."

켄 리우, <제왕의 위엄>, 275p


결국 최고의 상징으로서 그는 모든 책임을 지고 (본인의 책임도 아닐진대) 나멘 앞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백성들을 구한다.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도 상징을 외치던 대신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자신의 조부가 증오에 차 내뱉었던 그 말 그대로를. 저세상에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왕의 희생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리마 국은 대신들 때문에 마지막 왕마저 잃게 된다. 그리고 안타까워하던 나멘은 피할 수 없는 바퀴처럼 굴러가는 전쟁에 지쳐하면서도, 왕의 모든 대신들을 처분하기로 결정한다.


또 다른 왕은 키코미 공주다. 훌륭한 왕의 재목이나,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왕위에 오를 수 없고,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나 그마저 허영심으로 치환되어 버리는. 그녀는 진두 가문의 최후의 두 남자를 갈라놓았고, 핀 진두를 암살하고 마티 진두의 의욕을 꺾고, 그 이유의 방향마저 자나 제국으로 돌려버리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그녀의 백성을, 그녀의 나라, 아룰루기 섬, 아름다운 도시 뮈닝을 위해서 한 모든 일이었으나, 그녀의 결말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자기암시처럼, 저주처럼 되내는 그녀의 목소리. 나는 거래를 했어. 남자들은 리마 국의 지주 왕처럼 그녀를 상징으로 만들었다.


핀이 키코미에게 그대는 '헛바람만 든 귀족 처자들'하고는 영 다르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은 진심에서 우러난 찬사였다. 그는 키코미가 자신이 속한 성별의 별종으로 여겨지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중략 -

남자들은 키코미가 그들을 우러러보는 시늉을 할 때에만 그녀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우러러보듯이.

켄 리우, <제왕의 위엄>, 443p


남자들의 시선을 이토록 예리하게 지적한 작가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그녀의 최후는.......


하지만 아무는 무사할 거야. 아무는 무사할 거야.

켄 리우, <제왕의 위엄>, 456p


그녀는 진정 한 나라의 왕이자, 백성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군주였다. 그래서 더 이 1부의 제목이 '왕들'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아쉽다. 몰락하고 저물어가는, 불타오르고 갈기갈기 찢어지면서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왕'들이 1부의 주인공인데. 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간에. 단순히 마타 진두이자 그 자체인 국화를 상징하는 '제왕의 위엄'인 것이 참 아쉽다.


마타 진두가 왕이 될 자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누가 보아도 패왕(항우)이 될 존재다.

그가 '휘두른 의심을 종결짓는 자'라는 검, 그 효과는 굉장했다!


"항복하겠습니다."

마타 진두의 차가운 눈을 올려다보는 동안, 예무의 마음속에는 정말이지 한 점의 의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켄 리우, <제왕의 위엄>, 361p


이런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주디 성을 수성하며 나멘과 싸울 적에는 여자로 비유되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놀라운 일이다. 남자들의 머릿속에 내재된 여자에 대한 인식이란! 여자로 비유하는 단순한 도발에 마타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수치심을 느끼지만, 쿠니는 오히려 더 음란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며 능청스럽게 대응한다.


마침내 전투연에 올라타 대장전을 10번 승리한 마타의 모습에, 주디 성의 병사들은 반대로 성밖의 자나 군에게 야유를 퍼붓는다. 똑같이 자나 병사를 여자로 비유하는 모습에 자나에서 이주한 주디 성의 여성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이때 쿠니는 엄청난 성인지 감수성을 자랑하는데.


"우리가 지금 여기 서서 껄렁껄렁한 머슴애들처럼 상대편을 비웃는 동안, 우리 땅에 농사를 짓고 밥을 만들어 주는 사람은 누구지? 우리에게 옷을 지어 주고 화살을 만들어 주는 사람은? 성벽 위로 공격용 돌을 올려다 주고, 부상자를 아래로 내려다 주는 사람은 또 누구야? - 중략 - 너희 가운데 자신보다 더 용감하고 강인한 어머니나 누이, 딸, 여성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니까 상대를 모욕한답시고 여성에 비유하는 짓은 이제 그만 하자."

켄 리우, <제왕의 위엄>, 383p


과연, 오줌발로 성문에 붙은 불을 끄는, 병법 아닌 병법을 사용하는 사람답다. 말솜씨가 아주 TOP다.


"추장님께서 그토록 귀하게 여기시는 자유와 생활 방식이 정말로 아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추장님께선 다라에서 온 외지인들보다 훨씬 더 쉽게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으실 거예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커다란 실험으로 삼도록 허락받아야 해요. 젊은이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추장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탄 아뒤에 남은 유일한 희망은 바로 그거예요."

켄 리우, <제왕의 위엄>, 477p


굉장하지 않은가? 그는 단순히 말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예리한 시선을 지녔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려깊음까지. 상대방이 숨기고 싶은 깊은 곳의 내면을 찌르는 재주다. 그는 마타 진두처럼 제왕의 힘은 가지지 못했을지라도, 누구보다 자신의 사람들을 아끼고 돌볼 수 있는 자일 것이다. 지아의 꿈에서 보았듯이. 그는 민들레 홀씨처럼 후손들을 퍼뜨릴 것이리라. (개인적으로는 국화보다 민들레 파다)


사실 이런 쿠니 가루뿐만 아니라 전투연을 타고 마피데레 황제에게 폭탄을 퍼부었던 하안 국의 루안 지아(명탐정 코난의 괴도 키도가 떠오르면서 그는 나의 차애가 되어버렸다) ,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하다가 결국 갈라진 라소와 다피로 형제(추후 중요한 인물들이 될 것 같다!), 외따로 섬에 떨어져 자신만의 문화와 크루벤과 친구가 되어온 탄 아뒤의 부족 사람들, 그리고 크루벤을 타고 파도를 가르는 엄청난 모습까지. 끝까지 오감을 만족시키는 장면들이 가득했다. 


결국 처음 들었을 때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실크펑크'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말을 나는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얼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길 바란다. 나 또한 다음 권을 간절히 읽고 싶은 마음뿐이다. 참, 상-하 두 권으로 나눠서 표지 두 개에 각각 쿠니 가루와 마타 진두가 나온 것은 너무 맘에 든다. 국화와 민들레. 과연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이 두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기대된다.




- 오타 및 개인적으로 어색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아래에 있다.


오타는 353p, 위에서 넷째줄에 있었다. 쿠니 가루의 친구인 코고 옐루의 이름이 '코코' 옐루로 나왔다.

어색한 부분은 483p, 두 번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이다. 개인적으로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수병들은 자신들이 탄 배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면서 하늘 높이 날아갔다" 수병들이 하늘 높이 날아간 건지 그들이 탄 배가 날아간 건지 주어와 동사가 애매하게 매칭된 느낌. 


초장부터 말했듯, 2차 창작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 부분에서 초한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재미있었다는 말로 후기를 끝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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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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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조난 트렌드의 새 장을 열었다! 무한긍정 에너지로 이 힘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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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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