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필요한 시절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규관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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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문학을 읽는가. 혹은 왜 문학이 필요한가. 문학에 기대하는 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단편적인 재미부터 삶의 위안까지 문학의 소임은 폭넓다. 개인적으로 문학이 현실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문학의 필요성을 찾는다. 위화감이란 자신의 인식 영역을 넘어선 사물이나 일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다. 자신의 인식 영역을 넘어서면 일단 난감하고 불편하다. 그러하다고 굳게 믿어온 자신의 인식을 의심하고 재편해야 할 수고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에 산재한 진실의 파편을 외면하고 살아온 이기심이 탄로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엿보인다. 이 때문에 위화감 느끼기를 꺼린다면 개인의 삶에, 더 나아가 역사에 ‘진보’란 없을 것이다. 역사는 개개인이 현실에 대한 위화감을 딛고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으며 진보해왔다. 이 과정에서 문학이 해낸 역할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동과 삶’, ‘자연과 문명’에 대해 강인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해온 황규관 시인은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절>을 통해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말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문학은 필치가 뛰어난 소수 사람들이 써 내려간 텍스트가 아니다. 인식의 오류를 감당하고, 현실에서 무시되거나 왜곡된 진실을 찾으려는 움직임 자체가 문학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는 말은 시나 소설 같은 특정 텍스트를 열심히 읽자는 협의를 넘어선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는 광의에 이른다. 가령 코로나19 와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해 경제발전을 꾀하는 현실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단히 상상해야 한다. 시인은 그것이 현대인의 책무라고 말한다. 시인은 그 본보기로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지금 서 있는 풍경의 차이에 대한 질문과 자기 고백,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돌아가는지, 인간의 정치라는 것이 자연이나 혹은 다른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태학적 시각을 보여준다. 앎이 부족해 무엇이 문제인지 미처 알지 못한 사회 곳곳의 병폐를 포착한 시인의 날카로운 관찰력이 압권이다. 책을 통해 문학은 내가 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진실은 자신의 경험치 너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부단히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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