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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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및 번역가 소개

 

작가: 켄 리우

 

1976년 중국 서북부 간쑤 성의 란저우 시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하버드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 후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7년간 일했다.

대학 시절부터 습작을 시작하여 수많은 단편을 썼으나 오랫동안 출판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2002년 오슨 스콧 카드가 편집한 포보스 SF 단편선카르타고의 장미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1년에 발표한 단편 종이 동물원으로 2012년에 SF 및 판타지 문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 상과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휩쓴 최초의 작가가 됐다. 2013년에는 단편 모노노아와레로 휴고 상을, 2016년에는 장편소설 민들레 왕조 전쟁기’ 3부작의 1제왕의 위엄으로 로커스 상 장편 신인상을, 2017년에는 단편집 종이 동물원으로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는 등 SF 및 판타지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창작뿐 아니라 번역에도 힘을 쏟아 2015년 중국 SF 작가로는 처음으로 휴고 상을 수상한 류츠신의 삼체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며 낮에는 기술 전문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쓰고 있다.

 

번역가: 장성주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리말로 옮긴 책에 모나 리자 오버드라이브, 별도 없는 한밤에, 다크 타워시리즈, 산산조각 난 신,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의 자유로 가는 길, 오컬트: 마술과 마법,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언더 더 돔, 워킹 데드, 아돌프에게 고한다, 표류교실등이 있다.

 

책 소개

 

종이 동물원은 총 14편의 단편 작품이 실린 책으로, 쪽수는 옮긴이의 말까지 포함해 567페이지다. 상당한 분량이지만 가독성이 있어 5~6시간이면 충분히 정독해서 읽을 수 있다.

 

작품 소개

 

14편 모두가 의미 있고 좋은 작품이지만, 그 중에서도 종이 동물원의 제목이자 대표 단편인 종이 동물원은 놀랍도록 촘촘하다.

 

*

 

작품의 첫 장면은 주인공인 가 울고 있는데서 시작한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를 달래기 위해 크리스마스 포장지로 호랑이(라오후)를 접어준다. 어머니의 마법으로-혹은 어린 의 상상으로-호랑이는 움직이고, ‘는 울음을 그친다. 이후 어머니는 에게 염소, 사슴, 물소, 상어 등 원하는 동물을 접어준다. ‘에게 종이로 만들어진 동물은 장난감이자 소중한 친구다.

10살에 미국 코네티컷 주 교외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 곳 사람들은 중국인인 어머니를 곱게 보지 않았다. 불안한 기류는 이웃뿐만 아니라 의 교우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어느 날 마크가 들고 온 스타워즈 오비완 인형은 의 종이 동물원을 무너뜨린다. 새로운 장난감과 앞에서 의 라오후는 더 이상 생명을 갖지 못한다. 그저 무력한 싸구려일 뿐이다.

이후 와 어머니 사이에는 균열이 생긴다. ‘는 어머니에게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기를 강요하고, 중국 음식 대신 미국 음식을 만들라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이 결혼 카탈로그로 이루어진 걸 알고, 스스로를 신부로 내놓아 상품처럼 팔아버린 어머니를 경멸한다. ‘는 더 이상 종이 동물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어머니도 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더 이상 종이 동물을 접지 않는다. ‘의 종이 동물들은 결국 상자에 담겨 다락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갈등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이력서, 성적 증명서, 면접 등을 떠올릴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자를 기리는 청명절에 다락에서 상자를 꺼내 자신을 떠올려주기를 바랐다.

의 종이 동물원을 다시 발견한 것은 여자친구 수전이었다. 수전은 어머니의 종이 동물을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장식 삼아 종이 동물을 집안 곳곳에 배치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4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의 눈으로 문득 라오후가 뛰어든다. 그리고 는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는 무작정 시내로 나서 중국인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 젊은 여성의 입을 통해 는 편지에 적혀 있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에게 직접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말이다.

의 어머니는 허베이성 쓰구루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조차 못하고 살았다. 그나마 외할머니로부터 종이접기 공예를 배운 후로는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 메뚜기, 용 등을 접으며 힘든 시기를 넘겼다. 그러나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며 평화는 깨지고, 어머니는 부모를 잃은 고아가 돼 홍콩으로 팔려갔다. 종살이를 하던 어머니는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미국인과 결혼하기를 결심했다. 그렇게 카탈로그에 사진을 싣고 의 아버지를 만났다.

어머니는 늘 외로웠다. 아버지는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Love’는 언제나 입술에서만 맴돌았다. 그것은 아이()’처럼 마음을 울리지 않았다. ‘가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어머니는 마음으로부터 행복을 느꼈다. ‘에게는 어머니 자신도, 어머니의 고향도, 가족도 모두 담겨있었다. 하지만 마저 어머니를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편지 내용을 모두 들은 , 편지를 읽어준 젊은 여성에게 아이()’를 쓰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라오후와 함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날은 청명절이었다.

 

*

 

불과 21쪽밖에 되지 않는 이 작품은 읽고 난 후 마치 한 권의 책을 본 듯한 여운을 남긴다. 다른 13편의 단편들도 그러하지만, 특히 종이 동물원이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품 곳곳에는 작가가 영리하게 배치한 상징이 가득하다. 우선 작가는 종이 동물원에서 중국(아시아)과 미국(서양)을 상징하는 아이템을 통해 옛 것(잃어버린 가치)과 새 것(파괴적인 가치)를 대비해서 보여준다.

예컨대 작품의 첫 장면에서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포장지에서 종이 동물원을 탄생시킨다. 서양인이 즐기는 명절을 상징하는 물건에 자신이 소중하게 품어왔던 고향을 입힌 셈이다. 어머니가 접어준 동물은 주로 자신의 고향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는 마크가 가지고 있던 스타워즈 인형과 대비되는데, 어머니의 동물이 어머니에게 있어서 가장 중국스러운 것이라면 마크의 스타워즈 인형은 미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미국적인 것이다. 이때 종이 동물은 마크의 스타워즈 인형(새 것)이 등장함으로써 옛 것으로 추락하고, 이후 잃어버린 가치로 잠들게 된다. 이런 식의 연출은 책에 실린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스타워즈가 왜 가장 미국적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해 읽어보기를 권한다.

https://namu.wiki/w/%EC%8A%A4%ED%83%80%EC%9B%8C%EC%A6%88)

또 다른 중요한 상징으로는 라오후가 있다. ‘는 어머니에게 있어 중국과 미국을 잇는 새로운 희망이다. 이는 에게 처음으로 접어준 호랑이(라오후)로 나타난다. 어머니는 호랑이해에 태어난 에게 라오후를 접어주고, 라오후에 어머니의 애정을 담아 를 지켜주는 일종의 수호신 역할을 맡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모든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데는 여성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여자친구인 수전이 어머니의 상자를 다시 찾아냈으며, 젊은 중국인 여성이 어머니의 편지를 읽어준다. 여성과 고향, 모성성, 노스탤지어는 흔한 연결고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어머니가 남긴 모성에 압도 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종이 동물원에 실린 다른 작품들에도 굵직한 주제가 담겨있다. 문명과 현대사회(천생연분, 시뮬라크럼, 레귤러), 언어의 주술성(상태 변화, 모노노와와레), 역사의 아픔(파지점술사,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 판타지와 우화적 요소로 빗대어 말하는 우리의 삶(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 송사와 원숭이 왕)과 같이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단어는 단 하나, ‘그리움이다. 작가는 우리가 모르는 새 잃어가는 많은 가치를 덤덤하게 말한다. 결코 감정에 호소하거나, 보채지 않는다. 천천히 쌓이는 눈처럼, 느릿하고 조용하게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리고는 끝내 종이 동물원의 한 구절처럼 심장을 움켜쥔다.

 

…… (중략) 오랫동안 잊으려고 애썼던 언어가 다시 내게 돌아왔고, 그 말들이 내 안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내 살갗을 뚫고, 내 뼈를 뚫고, 결국에는 내 심장을 꽉 움켜쥘 때까지.

 

종이 동물원중에서-

 

만약 종이 동물원을 읽고 가슴이 시렸다면, 우리는 작가에게 책의 머리말에 쓴 바와 같이 서로에게 닿은 셈이다.

 

…… (중략)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가 지닌 의식의 특질과 우주 양 끝의 두 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내 사유가 문명의 미로를 지나 당신의 정신에 닿는 기나긴 여정에서 번역을 거치며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도.

사유는 우주를 조금 더 친절하게, 좀 더 밝게,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런 기적을 바라며 산다.

 

머리말 중에서 -

 

이 순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신 작가 켄 리우님, 종이 동물원을 펼쳐낸 황금가지 출판사 관계자 분들, 단어를 정성껏 골라 멋지게 번역해주신 장성주 번역가님, 책을 디자인해주신 김다희님, 라오후를 시각화해주신 장용익님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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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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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 소재가 돋보였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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