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귀양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ㅣ 진짜진짜 공부돼요 15
김숙분 엮음, 유남영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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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보기 좋은 초등역사책 가문비 출판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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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연계 추천 도서 정약용이 귀양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책을 소개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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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교과 연계 추천 도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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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교과와 연계된 도서이기도 하답니다.




정약용이 귀양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책의 차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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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귀양지에 있었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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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가르침이 담긴 사랑의 편지들을 모라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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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용어로 고쳐 쓰고, 정약용의 출생, 성장과정, 실학 등의 학문적 업적, 귀양을 가게 된 배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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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일생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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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정약용에 대해서는 수원 화성을 만들 때 거중기를 사용 공사기간을 단축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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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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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편지글  중에 저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의미들을 알게 해주었네요.



1972년 윤 6월 16일 태어난 정약용은 매우 영특하여 4세에 이미 천자문을 익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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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정약용은 천연두를 앓게 되지만 큰형수와 새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나을 수 있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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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눈썹 위에 마마 자국이 남아 눈썹이 세 개로 갈라져 보여 그는 삼미라는 별명을 얻게 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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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때 정약용이 그동안 지은 글을 모아 책으로 묶자 정약용의 큰형 악현이 삼미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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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이기환을 통해 얻은 이익의 성호사설과 곽우록 등을 읽으며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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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학문이랑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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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라는 세례명까지 받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은 공서파의 주장으로 귀양을 가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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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총애를 받던 그는 열흘 만에 귀양이 풀리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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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자신의 아버지인 장헌 세자(우리에게는 사도 세자로 알려져 있죠.)의 무덤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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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새롭게 성을 쌓기로 결심하고 이 일을 정약용에게 맡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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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청나라 책인 기기도설을 비롯 여러 권의 기술책을 읽으며 성을 쌓는 방법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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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중기를 만들어 공사 날자를 앞당겨 1796년 수원 화성을 완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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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임금이 죽고,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가 대신 나랏일을 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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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는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이고 죽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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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신유사옥이라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약 100명이 처형되고 400명이 유배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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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2월 27일 정약용은 경상도 포항으로 귀양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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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정약용은 강진 사람 윤박의 도움으로 경치가 뛰어난 다산에 있는 정자로 이사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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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차 나무가 많아 다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곳인데 정약용은 이때부터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고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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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18년의 귀양 생활 내내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실학 정신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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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수많은 책을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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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 8월 정약용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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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2월 22일 고향집에서 알찬 인생을 마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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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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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조선의 제26대 임금 고종은 정약용의 책을 모아 여유당진서로 엮어 퍼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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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50영 념 동안 묻혀 있던 정약용의 학문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답니다.



정약용이 말하는 효도란 부모님께 사소한 것을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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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1년에 한 번 여행을 가는 것보다 자주 찾아뵙고,  자주 식사하고 그게 더 좋은 거죠.



온 가족이 부지런하고 근면해야 먹을 것이 생기는 법이다 라고 아들들에게 편지를 쓴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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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려면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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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능력에 맞는 일을 맡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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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꼭 과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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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일하되 내 능력에 맞는 일을 찾는 지혜도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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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을 오래 숨겨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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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정약용의 편지 사실 여기서 저는 한동안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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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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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베푸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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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이 불에 타 버릴 걱정도 없고, 도적에게 빼앗길 걱정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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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 마로 운반하느라 힘들 일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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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죽으면 꽃다운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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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이 많아도 죽으면 끝이죠. 하지만 좋은 일을 많이 행한다면 이름은 남기 마련이죠.



정약용은 사람들이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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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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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직하게 사는 게 바보가 되어버린 세상이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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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회가 자꾸 혼란스러워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우리나라에 정약용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한 소제목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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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나만 똑똑하고, 어디에 쓸 때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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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잘 안다고 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주 모르고 오로지 있는 자에게 빌붙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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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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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정약용 같은 사람이 없는 게 엄청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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