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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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저
작가정신 | 2020년 11월

 



제목처럼 다정하고 따스한 산문집을 읽었다. 백수린 작가의 첫 에세이집 '다정한 매일매일'이다. 경X신문에서 '책 굽는 오븐'편에서 연재하던 글에 몇 편을 덧붙여 책으로 출간하였다.

저자는 중학생 때 케이크를 굽기위해 처음으로 오븐을 사용였으며,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본격적으로 베이킹을 시도한다. 그만큼 빵에 큰 관심을 가졌으나 동시에 작가에 대한 꿈 역시 놓을 수 없었다. 두 진로 사이에서 어떤 길을 가야할지 갈등 하다 결국 최종 선택으로 소설가를 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빵에 대한 각별함은 식지 않았다. 베이킹을 계속 하는 것은 물론 빵에 대한 구절이 나오는 책은 어떤 것이든 애정한다.

어쩌면 이러한 빵과 글에 대한 애틋함이 '빵 굽는 오븐'과 이 책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란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의 대부분은 빵으로 전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미식이나 베이킹에 관련된 전문적인 음식 에세이는 아니고, 저자가 읽은 책 혹은 경험담을 빵과 연결지어 감상을 말하거나 인생에 대해 얘기한다.

빵 × 빵

베이킹은 잘 모르지만 빵 먹는 것을 좋아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단팥빵, 호빵, 델리만쥬같은 친숙한 국민빵부터 조금은 낯선 것까지, 여러가지 빵의 행렬에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들떴다.

한편으론 각 장마다 나온 빵을 먹으며 여유롭게 글을 함께 음미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빵 + 책

빵이 물질대사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양식이라면 책은 지식과 정신을 충만하게 만드는 마음의 양식이다. 속성은 달라도 심신의 안정을 돕는다는 면에서 빵과 책은 닮아있다.

그래서 빵과 책이 같이 있으면 제법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에세이가 다양한 문학 작품들에 대한 의견을 '빵'과 연결지어 전달하는 방식이 독특해 마음에 들었다.

오랜시간 반죽을 숙성시키고 구워야하는 캉파뉴 빵과 '가문비나무의 노래', 마카롱과 앤 카슨의 작품, 슈크림빵과 '가든파티' 등. 이런 식으로 각양각색의 빵과 그에 어울리는 작품이 매치되어 나온다.

소설과 빵의 분위기 또는 특징이 잘 어우러지는 이야기로 인해 한 장씩 읽어나갈 때마다 절로 떠오르는 빵의 식감과 향, 책이 주는 메시지가 어우러져 공감각적 심상이 자극받는 기분이었다.

아울러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들을 접해보고 싶어졌다. 소설들이 하나같이 심오함과 깊이감이 있어서, 빵이 허기를 채워주듯 정신적 포만감을 줄 것 같다.

빵 ÷ 추억

이제는 지하철역에서 보기 힘들어진 델리만쥬처럼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열차가 들어오면 아마도 나는 인파에 휩쓸리는 것에 지친 얼굴로 또 앞으로 나아가기맛 하겠지. 어깨에 닿는 감촉이나 누군가의 냄새 같은 것이 오랜 시간을 살아남아 미래의 나를 언제고 다시 이 순간으로 불러오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p. 130)

살다보면 옛 기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생기기 마련이다.

저자의 경우, 빵에 옛 추억이 스며있었다. 제빵사의 이름 석 자를 걸고 오로지 식빵만 파는 가게에서 산 우유식빵에는 신촌에서의 대학시절과 갓 구운 빵 한덩이를 사며 느낀 기쁨이 녹여져 있었다. 간밤에 구운 초코칩 머핀에는 스물 두살 때의 풋풋한 사랑이, 웨딩 케이크엔 개구쟁이 남자아이였던 사촌동생과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었다.

이런 옛 이야기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개인적으로 빵과 얽힌 소소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캔모아 토스트, 생크림

몇 개만 꼽아보자면 캔모아의 무한리필 토스트와 생크림,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팔던 이름 모를 하얀 케이크, 옛날에만 생산했던 파란박스의 오리온 초코파이다.

그 시절, 그 감성을 소환하던 이 빵들은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 됐다. 동네에서 흔했던 캔모아와 제과점은 거의 없어지고, 초코파이는 크기와 패키지 디자인이 달라졌다. 그 때의 맛은 그리움의 상징이 되어 역사의 뒷편으로 가버렸지만 추억은 온전하게 남아서 그 당시 함께했던 이들과 나눌 수 있으니 다행인 것 같다.

더불어 앞으로 먹어야할 빵만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온기 어린 추억을 더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빵 : 숙성 = 삶 : 성숙

어떤 의미에서 내겨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p. 22)

맛난 빵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성숙한 삶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빵을 먹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제빵시간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빵을 만들기위해 재료준비, 계량, 반죽, 데코레이션 등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시간이 더 든다. 게다가 노릇하고 찰진 빵을 굽기 위해선 빵 반죽을 잘 숙성시켜야 하므로 상당한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파티시에가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빵의 퀄리티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작은 빵 하나도 이럴지언데 이보다 복잡한 인생은 어떨까싶다.

빵을 완성하기까지 거쳐야 할 과업이 있듯 삶도 그러하다. 다만 인간의 삶은 빵보다 복합적으로 얽힌게 많아서 살면서 맞닦뜨리는 위기나 난관들이 숱하다.

이 때 파티시에가 열성을 쏟는 것처럼 감내하고 노력하여 이를 잘 이겨내면 고진감래하게 된다.

때로는 그러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레시피대로 조리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이유로 덜 구워져 생반죽이 씹히거나 탄 빵이 만들어지는 것 마냥 노력한만큼 결과가 안 나오거나 생각한 목표대로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하면 버려지는 빵과 달리, 인간은 실패한 과거를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당장은 힘들고 지치지만 이를 바탕으로 전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이 책은 시종일관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만 말하지 않는다. 때로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직설적인 목소리로 마음을 울린다. 이런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빵과 책이 어우러져 갓 구운 빵처럼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카페에서 따뜻하고 달달한 빵과 함께 책을 곱씹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입니다.

* 자료출처

https://m.ytn.co.kr/news_view.php?key=201906290800112951&s_mcd=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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