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1.

백 세시대, 절반의 나이에 해당하는 중년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박식한 상식을 곁들여, 폐경기에 접어들면서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인생주기나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등을 보면 '중년'은 '청년'기와 차이가 있다. 대부분 '청년'은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며 생산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반면 '중년'은 '내려놓음' 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이 시기엔 신체에 노화가 오고 사회적으론 은퇴를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친구나 지인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기 시작하고 자식들은 독립을 한다. 게다가 젊을 때 노후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을 땐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년의 시기를 인생의 황혼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자 역시 오십에 가까운 나이를 맞으며 자신의 변한 모습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신체와 외모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굴곡없는 몸매, 늘어난 뱃살, 윤기없는 머리카락 등이 그러하다.
어느 날 상점 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폐경기에 뜻하지 않은 자궁근종 진단으로 자궁절제 수술을 받게 되면서 상실감에 빠진다.

벚나무가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했고 꽃망울을 맺었다. 수선화는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햇빛은 화사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런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달과 조수의 흐름에 따라 한 달마다 주기에 속박받는 내 인생의 시간은 끝났다. 그러니 봄은 이제 나와 어울리는 계절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에스트로겐 섭취를 중단하고 나이 들어가는 외견을 날 것 그대로 놔두기로 한다. 새치와 다리털을 그대로 두고 통굽 구두를 포기한다. 세상 뒷편으로 물러나 오로지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자 결심한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마다하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연 상태로 두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개인적으로 중년기는 외모가 아닌 내면의 힘이 더 돋보이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중년'에게는 다른 나잇대에서 볼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오직 세월의 힘으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화장이나 성형으로 흉내낼 수 없다.  남다른 포스를 풍기는 분들은 굳이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동요를 불러 일으킨다. 대학생 때 어느 교수님께선 수수한 차림으로 다니셔도 평소 품행이 인자하고 바르신데다 지적이셔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무척 많았었다.
그래서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저자의 선택이 현명해 보였다.


2.

호르몬의 변화로 저자는 갱년기의 고충을 겪는다. 그러나 집에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또 한 명 존재한다. 바로 사춘기 딸이다.
이전에 아는 분께 오춘기의 부모님과 사춘기 자녀가 살고 있는 집은 날마다 전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당시엔 그냥 웃고 넘겼는데, 실제 갱년기를 거치신 엄마를 보고 사춘기보다 무서운게 오춘기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 때 온 식구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저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우리 집에서 격한 감정의 불꽃이 튀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딸이든 나든 둘 중 하나가 언제든 상대의 잠잠한 화약고에 불을 지필 수 있다.

이 문장 하나로 사춘기와 갱년기의 모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갱년기의 어머니들도 이 부분에서 많이 공감을 표현할 듯 싶다.
저자는 사춘기를 맞아 격한 반응을 보이는 딸과 격렬하게 싸운다. 딸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저자는 딸에게서 자신을 분리하고 싶어 쟁투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자신도 사춘기를 겪어서 그 심정을 잘 알기에 딸의 마음을 공감하고 인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딸의 인생을 응원해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체온이 변하고 심한 감정기복을 일으키는 갱년기의 호르몬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모성애를 이길 순 없는 것 같다.


3.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는 동년배 친구들이 필요하다.

사춘기때의 고민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은 곁에 있는 또래 친구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나눈다.
중년의 고민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시기엔 병석에 눕거나 곁을 떠나는 친구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상실감과 고독이 커진다. 저자는 친구를 떠나보냈다. 이럴 때 곁에 남은 친구들이 그 누구보다도 힘이 되어주었다.

중년의 시간이 지금은 먼 훗날처럼 보이지만 나도 모르는 새 체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인가구 시대에 훗날 서로 의지할 사람은 친구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더 잘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중년기는 젊지도 그렇다고 늙은 나이도 아니다. 120세의 어르신이 나온 유병장수시대에 중년은 인생의 길에서 절반정도 온 정도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중년은 나이가 많아 모든 것은 젊은 세대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경제불황이 일어나면 중년이 해고대상 탑순위가 된다. 그래서 퇴직, 인간관계의 변화에서 오는 상실감과 공허함이 덮친다. 특히 어머니들은 갱년기가 겹쳐 사춘기보다 더 한 고통을 겪는다.

젊은 청춘들보다 제약이 있긴하지만, 중년이라도 인생은 만들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TV에 어느 70대 할아버지께서 나오셨다. 그 분은 20대 못지않은 근육질 몸매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연령을 무색하게 만드는,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 저자 역시 중년의 나이지만 꾸준히 커리어를 쌓고 있고, 자신의 지식과 필력을 활용해 이렇게 책을 출간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나이들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서술한 에세이라 많은 중년의 부모님들이 공감하며 페이지를 넘기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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