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공평한 집안 일 분담을 위한 부부의 고군분투기

 

설거지 더미들이 잔뜩 쌓인 식탁을 사이에 두고 프라이팬과 주걱으로 탁구를 하는 일러스트가 암시하듯 이 책은 신혼 부부의 집안 일 분배 쟁탈전을 다루는 에세이집이다. 소설가 야마우치 마리코씨가 현재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순간부터 결혼 후 신혼기까지 겪은 일화들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그렇다고 결혼 선배로서 예비 부부들에게 알려 줄 공평하게 집안 일을 분담하는 노하우나 조언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치열하고 리얼한 생활담이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처럼 진행될 뿐이다.

이 책이 자신의 인생이나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구입한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남에게 자상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케이스 스터디로서 결혼 생활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안도감을 얻었으면 한다.

저자는 현재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교제하던 중 2011년 도호쿠대지진을 계기로 동거를 결심한다. 12년간 독신으로 살아왔던 그녀는 동거를 시작하면서 냉혹한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바로 '집안일을 세 배로 늘리는 괴물'과 산다는 점이다. 함께 살면서 사사건건 갈등이 일어나고 마찰이 빚어진다.
책은 이런 갈등을 주제로 아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챕터가 끝날때마다 남편의 의견을 수록함으로써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같은 상황이라도 두 부부의 견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거와 전쟁

남편과 함께 살기 전 그녀는 보통 아가씨들처럼 20대 막바지가 되자 무척 연애를 하고 싶어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노력한 끝에 마짐내 바람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2년째 교제하던 중 애완묘 치치모와 함께 셋이서 동거라이프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동거를 하기 전엔 앞으로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지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데이트할 때 미약하게나마 존재했던 꽃다운 청춘의 연애 모드는 동거를 시작으로 '생활'이라는 현실에게 강제 추방당했다.

아내는 남자친구(현 남편)와 동거를 한지 사흘만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그에게 씌였던 콩깎지가 벗겨지면서 집안일로 인한 싸움을 시작 하게 된다. 가장 먼저 일어난 충동은 바로 설거지다. 설거지에서 출발한 싸움의 불씨는 청소, 요리, 빨래 등  집안 일 전체로 번져나간다.

생활비를 똑같이 낸다면 집안일도 동등하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내는 생활비를 반씩 내니 집안 일도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천하태평의 성격을 가진 남편은 집안 일을 계속 미루게 되고 덕분에 쌓인 설거지더미는 자연스레 그녀의 몫으로 되돌아가 화병을 일으킨다.

아내의 분노는 집안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은 이불, 가구배치, 가전제품, 리모컨, 에어컨 등 사사건건 생활의 전반적인 면에서 아내의 신경을 긁어놓는다.

게다가 패션이나 몸매를 가지고 뭐라고 하거나 예전처럼 데이트를 자주 하지 않아 예전같지 않은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동거로 말미암아 생활의 규모가 커지면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는 현실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남편은 이런 아내의 주장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요리에 대해 압박감을 준 적은 없을뿐더러 힘쓰는 일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싫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를 사회적인 분노와 혼동해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 섭섭하다. 그는 부당한 요구의 릴레이보단 칭찬을 원한다.


결혼

저자 나이 33세,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여자 친구에서 와이프로 명칭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녀는 또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바로 성(姓)에 대한 문제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성을 따른다. 데릴사위나 드물게 여자 쪽 성을 쓰는 게 아닌 이상 이것이 관례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휴대폰, 통장, 온갖 서류들을 다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저절로 여자들이 고생스러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일과 병행하며 '스, 드, 메' 준비로도 모자라 여러가지 잡스러운 일들을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기 버거워 보였다.

동일 인물인데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자 나에게 있어 그의 존재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무사히 결혼을 마친 후 이 두 사람에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분명 같은 사람에, 동거에서 신혼으로 연장 선상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호칭의 변화와 월급 통장 공개로 인해 부부의 마음은 동거 때와는 달라진다.


성장하는 부부

아내는 결혼 후에도 남편과 집안 일 분담을 평등하게 나누자는 모토를 이어나간다. 남편의 집안 일 능력이 아내에게 여전히 미숙해 보이지만 그녀는 결코 전담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칭찬과 아양이다. 스트레스를 풀듯이 설교로 남편을 움직이려 한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다. 다른 집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한다.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이 발전한 것처럼 보인 계기는 바로 과일깎는 요정이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후 남편은 아침 시간에 자발적으로 집안 일을 한다. 스스로 가사를 했다는 것에 아내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아직 그녀의 기준치에 많이 못 미치지만 발전된 모습에 남편이 예뻐보인다.

그의 주장 편을 보면 남편은 동거 시절에도 집안 일을 했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아내는 집안 일을 하나도 안 한다며 클레임을 걸었다. 확실히 그 때와 비교하면 결혼 후, 아내가 가사일 분배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 남편 역시 성장한 모습이 돋보인다. 귀찮음의 습성을 이겨내고 어떻게서든 집안 일로 인한 분쟁을 잘 타협해나가기로 한다.

동거하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3년. 죽도록 싸움도 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행복 최고조다.

동거할 때 집안 일로 서로 전쟁같은 나날만 보내는 모습을 읽으며 굉장히 답답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집안 일에 게으르고 서로 상대에게 미루려는 것 같이 보였다. 진작에 헤어지고도 남을 판인데 결혼까지 간 걸 보고 신기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서 조금씩 달라져 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속이 시원해졌다. 서로 대화로 잘 조율해 나가는 부부의 모습이 예뻐 보였다. 이 둘은 아직 신혼이라 아기가 없는데 지금처럼 대화로 평화롭게 꾸준히 분담하려 한다면 육아도 나름 무사히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


1.

사랑이란 여남이 서로를 속이고 속는 멋진 촌극이다. "너는 좋은 여자니까"라며 청혼해서 함께 살다가도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언젠가는 밝혀지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생활을 읽으면서 신혼의 모습은 어딜가든 비슷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집집마다 분쟁의 강도나 시댁과의 갈등 유무 사항으로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신기하게 주변에 갓 결혼을 한 신혼부부들이나 초보 부모들도 다들 집안 일로 다툼을 벌인 경험이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초반부터 서로 간의 의견차이가 계속 일어나 싸운다고 하였다. 집안 일을 분배하는 일 뿐만 아니라 치약 짜는 것이나 빨래감을 바구니에 넣는 일 등 습관 차이로도 부부싸움이 벌어진다고 하였다.
대략 이 십 몇년 동안 각자 다른 성장 환경과 라이프 스타일을 겪은 두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부딪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건 꼭 부부가 아니더라도 룸메이트끼리도 해당되는 것 같다. 여태까지 몸에 굳어진 습관을 하루아침에 상대에게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초짜 부부들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신혼 때의 가사 분담 전쟁은 불가피하다. 힘들지만 이는 반드시 신혼 부부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그런 아픈 과정을 겪으며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고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연습을 반복해야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아기를 낳으면 육아전쟁까지 추가된다. 요즘엔 독박육아를 호소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맞벌이 가정이 증가한 요즘,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아내들은 퇴근하면 저녁준비에 육아를 해서 퇴근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출근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맞벌이와 핵가족화가 일반화된 요즘, 이를 해결할 시원한 방법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이 부부처럼 그저 서로를 배려하며 대화로 끊임없이 타협하고 조정해나가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사는 방식은 더 이상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에 제약받지 않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야 모두가 더 행복하겨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아내도 나와 의견이 같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실현해 나가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2.

개인적으로 가정폭력이나 부도덕한 일에 연루되지 않은 이상 많은 커플들이 끝까지 가정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마냥 환상에 빠져 무턱대고 결혼부터 하지 않았으면 한다.

3.

비록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을 위한 방법은 나오지 않지만 외국의 신혼부부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고충을 겪고있다는 것에 젊은 부부들이 많은 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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