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이건 이야기는 자기 안에 차오르거나 부풀어올라 더는 마음 속에 가두어 둘 수 없을 때 밖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얼만큼의 정제를 거쳤는지에 따라 부드럽거나 거칠거나 질감의 차이가 있을 뿐. 터져나온 이야기가 말하는 사람의 심연에 맞닿을수록 이야기를 듣는 나의 심연과 연결된다.
장막 뒤에서 발화자는 숨은 채, 툭 하고 던져진 이야기 <나나>.
마치 어디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화와 같다. 구전된 이야기가 듣고 다시 말하기에 막힘없이 술술 넘어가듯. 장을 넘길 수록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막힘없이 넘어가는 것은 가벼움과 같은 뜻이 아니다.
소화가 잘 되도록 만들어진 음식이 몸 구석구석 나에게 가 닿는 것처럼, 빠른 전개와 시점의 전환으로 지루할 틈 없이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책의 마지막 장을 만난다.
스스로 영혼을 밀어내버린 나는
육체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나'와 마주한다.
'나로 알고 있던 나'는 어쩌면 성격, 취향, 기질, 관계가 버무려진 사건들의 총합으로써의 나일지 모른다.
경험은 관성의 법칙으로 더욱 새차게 나를 뭉쳐진 사건들의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간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마주하는 나는 '나'가 아니었다.
단지, 경험들로 뭉쳐진 단단한 덩어리가 선행사건들과 그에 따른 후행사건 사이에서 오다가다를 반복하는 진자운동 중인 추일 뿐이다.
진자운동은 반복과 속도만 있을 뿐, 멈춤의 성찰은 필요없다.
멈추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단순하고 명쾌할 수록 반복은 속도를 더해 갈 수 있다.
관성으로 오가는 삶에 오른 이상, 머뭇거림은 처음으로 충분하다.
나는 나인가.
영혼을 떼내고 단지 경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나는 과연 나인가.
삶 속의 무수한 반복을 '성실, 열정'으로 의지를 다지는 생각을 만드는 것이 나인가.
이 반복의 굴레에서 이탈될 것이 두려워 스스로 제 영혼을 내팽개친 것이 불안의 내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굴레 속에 놓인 나에 연민을 느끼는 것이 나인가.
나의 드라마에 나를 집어넣고, 비련의 주인공처럼 세워두는 것이 나인가.
sns 속 잘 꾸며진 피드가 나를 증명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는
나를 모른다.
피드 속의 편집된 내가 나인지,
피드 밖의 렌즈에 이탈된 내가 나인지 알 수 없다.
피드 속의 나도, 피드 밖의 나도 어쩌면 영혼계에서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구전동화가 그 시대와 시절의 불안과 염려, 희망을 담아 최초의 발화자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이어져 '나만 불안한 것이 아니다', '나만 바라는 것이 아니다' 라는 위안으로써 연대감을 전해주었다. <나나>는 이야기를 꺼낸 최초의 발화자와 상관없이 가상과 현실 사이, 핸드폰 창 안과 밖의 사이에서 무수한 반복을 오가며 불안과 쾌락을 이어가는 우리들과 위안과 더불어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나인가?
무엇이 나를 나되게 하는가.
* 이 서평은 #창비출판사 #소설Y #나나블라인드대본집 #창비서평단 활동으로 선정되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