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
필립 한든 지음, 김철호 옮김 / 김영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미니멀하게 살기, 언젠가 이루고 싶고 이뤄야겠다고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쓸데는 없지만 귀여운 물건들은 다 수집해야 할 것 같고, 어딘가에서 주는 물건들은 다 받아야 할 것 같고, 쓰지 않아 먼지가 쌓인 물건도 왠지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내방에는 물건들이 쌓여만 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걱정이 많기 때문에 챙겨야할 것도 많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술형 답안을 쓸 때 검은펜이 안나올까봐 다섯 자루를 챙기는 사람이 나였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읽는 사람이 혹여나 이해하기 어려울까봐 구구절절 덧붙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이라는 책은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제목에 충실하게 41명의 여행자들의 소지품을 나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어놓은 책이다. 그런데 여행자들의 소지품은 미니멀을 떠나서 거의 여행이 불가능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들 정도로 단출했다. 책 역시 자유로운 여행자들의 특성에 맞게 많은 활자를 담기보다는 딱 필요한 내용만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는 사용하면 할 수록 줄어드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은 실행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존재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진정한 자유와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했던' 자유로운 여행자들이, 에리히 프롬이 말하고자 했던 삶의 방식인 것 같다. 수많은 물건들을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살아가는 내게 이들의 삶의 방식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빈 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빈 손으로 떠나야만 한다. 빈 손으로 잘 떠나기 위해서는 결국 비우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필립 한든의 『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은 내게, 비움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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