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Expectations (Mass Market Paperback)
Dickens, Charles / Bantam Classic & Loveswept / 198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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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고도로 계층화된 인류사회는 각 계층의 인간들에게 성공적인 삶이란 더 높은 계층으로의 도약이라고 제시해 왔다. 냉정하게 말해서 착취와 피착취의 악순환 고리가 존재하는 계층구조에서 조금이라도 더 착취를 할 수 있는 상위계층의 삶은 착취에 시달리는 하위계층의 삶보다 전반적으로 더욱 많은 것을 누리는 안락한 삶일 것임에 자명하다. 하지만, 점점 더 높이를 더해갈수록 상위계층이 협소해지는 피라미드 계층 구조 속에서 모든 인간들은 보편적으로 삶의 성공을 누리기 힘들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현대 사회에서 들어서 그런 성공의 관점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성공의 관점이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사회에서의 계층이나 신분 상승 대신에 제시되는 인간의 성공적인 삶의 기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태생적으로 모순적인 사회구조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은 주변의 사람들과 사랑 충만한 관계를 맺으면서 삶의 만족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는듯 하다. 그러나 피착취와 착취의 구조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 굴레를 벗어나는 자유함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사회적인 잣대나 관계성들을 거부하며, 개인적인 나름의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 그것을 누리는 것이 삶의 성공이라고 하는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움직임은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아 그 성공의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간혹 개인적인 행복의 기준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의 움직임은 반사회적인 범죄로까지 발전하여 소시오패스라는 이제는 낯설지 않은 단어가 자주 인용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명저 총, 균, 쇠에서 지적했듯이 현대 인간 정체성에 정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근간에는 인류사를 통시성의 결여되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보다 포괄적인 통시성으로 인류사를 고찰해보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면 좀 더 대중적인 인간의 성공 모델이 제시될 수 있을까? 태생적으로 모순된 사회 구조를 옹호하는데 종종 사용되었던 종교는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모순된 사회의 구조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통로를 제시하기도 하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상이한 종교들은 또 다른 사회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최근 전 우주와 지구, 그 안의 생태계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전체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좀 더 심층적, 합리적 그리고 과학적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를 통해 최소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줄 수 있을 것 같이 보이지만, 그 견고한 명제의 냉혹한 사실성과 처절한 실제성은 난공불락의 성과 같아 여전히 우리는 사회 계층 구조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의 목적을 정하고, 우리의 행복의 조건까지 결정한다. ​  

그의 위대한 유산이기도 한 위대한 유산이라는 소설에서 디킨즈는 사회적인 상위 계층에 대한 동경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의 삶의 폐혜들을 예시하면서 인간 삶을 윤택하게하는 성공의 열쇠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주인공 핍은 투박한 누이와 소박한 매형의 사랑 안에서 나름 자신의 삶에 행복을 느끼던 소년이었다. 상위 계층인 귀족 미스 해비쉠의 집에 방문하여 만난 에스텔라에 대해 짝사랑은 핍의 인식 체계를 흔들어 그동안 자족하였던 자신이 처한 계층의 한심한 현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던 중 핍은 알 수 없는 후원자의 유산을 약속받고 신사 수업을 받게 된다. 계층의 상승을 이룰 기회를 잡은 핍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던,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던 매형의 방문을 통해,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상을 더불어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후원자가 미스 해비쉠이었다는 착각은 진짜 후원자가 나타나면서 핍에게 일차적인 충격을 던져주게 된다. 그 진짜 후원자인 메그위치는 핍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던 상위 계층의 신사와는 거리가 먼 탈주범이었던 것이었다. 한때 범죄자인 메그위치에게 경멸하는 마음을 가졌던 핍은 마음을 바꿔 매그위치를 보호하려 하지만, 결국 매그위치는 경찰에 체포되고, 핍은 신분 상승은 커녕 빚더미에 앉아 범죄자가 될 처지에 빠진다. 곤경에 처한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자신이 수치스러워했던 바로 그 매형이었다. 그로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핍은 그토록 사랑했던 에스텔라를 만나게 된다. 해비쉠의 양녀로 들어갔던 에스텔라는 주어진 상류층의 삶을 유지하기 극도로 매진했던 젊은 시절과 달리 온화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

소설 속에서 미스 해비쉠, 에스텔라, 포터와 같은 상위 계층의 사람들은 다양한 불행한 모델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반해 매형인 조와 어린시절 친구이자 향후 형수가 되는 비디와 같은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행복의 모델이 되면서 핍을 깨우치게 해준다. 분명 핍이 꿈꿔왔던 사회적인 신분 상승은 바로 성공이라는 인식을 풍자하는 어조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당시 시대의 성공에 대한 정의와 그에 대한 문제제기는 세월이 지난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러니 고전의 반열에 들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그러한 문제 제기 외에는 그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이나 그런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의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난해한 문제에 대한 접근의 시도가 있었어야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또한 그 해답을 찾기 위한 할애된 노력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작가는 나름 많은 시도들을 뿌려놓았는데, 나의 부족한 인식으로 인해 내가 그런 노력들을 소화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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