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2
채만식 지음,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동안에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너무나도 훌륭한 묘사는 익숙하지 않은 구어체의 글로부터 오는 거리감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에 동화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친일작가의 글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나만의 선입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충분히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과 부정의한 환경 속에서 파괴되어가는 주인공의 삶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한껏 비통한 마음 속에 돌려 일제 강점기의 고단했었을 선조들의 삶이 보이는 것 같아 그 안타까움이 더해간다.  


주인공도 한탄했듯이, 죄없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인생의 억울함들은 그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세상의 죄가 스며들어 인간들 사이의 흙탕물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그 탁류를 모름지기 받아들여야하는가? 아니면, 이 세상의 형이상항적인 섭리에 따르면 다 덧없는 일이라며 나름 초월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욱 타당한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질문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몰락한 인텔리 정주사의 첫째딸은 초봉은 축복이어야 하지만 저주가 되어버리는 미모를 가졌다. 그 저주는 타락해가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쾌락을 찾던 태수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태수와 정주사 부부의 불순한 결혼에 대한 동기는 가족을 위한 희생의 대의 명분으로 바뀌어 결혼에 대한 마땅한 초봉의 고민을 잠재워 초봉의 인생의 첫번째 흙탕물을 일으킨다. 태수의 불순한 이기심 곁에는 더욱 노골적이며 천박한 형보의 불손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형보는 태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초봉을 겁탈한다. 태수의 죽음과 형보의 욕망을 겪으며 당황, 분노 그리고 절망에 이르던 초봉은 가족의 지독한 빈곤 앞에 서울로 떠날 결심을 한다. 하지만, 서울 가던 중 아버지 친구인 제호를 만나게 되고, 친구의 딸임에도 자신의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보지 않는 몰양심의 제호를 세세한 고민없이 따라가서 막다른 골목에서 이번에는 포기하다시피 제호의 첩살이를 시작하게 된다. 송희라는 아이를 낳았으나 세명 중 아버지를 특정치 못하는 상황에 초봉은 당황해하지만, 손안의 자식은 초봉의 삶을 지배하는 우상이 되어간다. 결국 송희는 제호가 초봉을 버리게 되는 경로의 시작점이 되며, 절대 혐오의 대표인 형보가 초봉을 인생째 겁탈하게되는 매개체가 된다. 인생의 우상을 볼모로 잡혀버린 초봉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쇠락해가는 인생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결국 삶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자살 이후의 걱정거리들을 없애기 위해 형보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대로 되지 않고 우발적으로 형보 살해의 목적을 달성했을때, 첫사랑 승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승재의 등장으로 초봉은 자신의 삶의 처참한 회환을 느끼면서 동시에 희미한 희망도 보게 된다.  

마지막 장의 제목이 서곡이다. 저자는 무슨 생각으로 서곡이라했을까? 이제 탁류가 그치고 초봉의 인생의 강물이 맑게 되는 서곡이지! 라고 착하고 낙천적인 생각으로만 받을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어쩌면 인생의 탁류의 시작의 서곡이지! 라고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생각을 취할까? 아니면, 한차례 세찬 탁류를 경험한 헝클어진 초봉의 인생으로 인해 어그러지는 승재나 계봉의 탁류의 시작의 서곡이지! 라고 해설적이며 관조적으로 받아야할까?  

인생의 나름의 원칙을 세우면서 살아가는 승재와 계봉, 그리고 쓸려가는데로 자신의 원칙보다 현실에 타렵하는 초봉을 대비해보면서 삶속에 분명한 나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러기 위해 나의 현재의 한 순간 순간마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 역시 험한 탁류에 휩쓸린 초봉의 인생이 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