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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생존기, 그래도 건축
전보림.이승환 지음 / 눌와 / 2020년 7월
평점 :
자신의 일에 대해 ‘건조한 열정’을 담아 꾹꾹 눌러 쓴 글은 매력적이다. 거기에는 ‘영광과 상처’가 함께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매한 일처럼만 보이는 어떤 일에도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격렬한 생존이 무늬처럼 새겨져있다. 모두가 상찬했지만 “성과가 다음 프로젝트로 연결되지 않는 아쉬움과 절망”은 녹록치 않은 그 현실을 보여준다. 매곡도서관과 압구정 초등학교의 다목적강당을 근사하게 설계했지만, “아무도 도서관이나 체육관을 짓겠다고 우리에게 연락해오지 않았다.”
IDR 건축의 전보림과 이승환은 건축가(또는 건축사)로 불리는 자신들의 일에 대해 ‘부부 건축가의 생존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생존기는 ‘매운’ 현실을 드러내지만 그들은 ‘그래도 건축’이란다. 정해진 날짜에 착오 없이 봉급을 받는 일이 아니라 생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이들의 일은 직업보다는 업(karma)으로 보인다. 그 업은 개인과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넘어 사회와 공공으로 확장되어 선한 영향력을 은근히 전한다. 이 책은 그 “직업적 현실에 대한 기록의 묶음”이다.
수도인 서울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거의 대부분의 공공 건축은 ‘후지다’. 주변의 이른바 ‘관공서’ 중에 인상적인 건축이 있었던가. 압도적(이기만 한) 규모, 이중 삼중으로 글라스월(glass-wall)을 두른 외형, 공개 공지에 맥락 없이 혹은 너무도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아 만들어진 ‘예술작품’, 친환경을 표방하지만 자연스럽지 않고 인공적이어서 어색한 연못이나 생태 공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 많게는 천억 원대의 예산을 들여 만들었지만 그것들은 외려 어떤 면에서 도시의 공공성을 해치기도 한다. 도시와 도시 속의 사람들을 ‘듣지 않고’, 서로 요란하게 소리만 지르는 모습이랄까. 그런 건축물에 들어서면서 나는 마음을 접는다. ‘그렇지, 이것은 공공 건축물이지’.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건물이 왜 별로인지 관심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자연스럽게 접하지 못한 좋은 공공 건축의 경험, 행정기관과 공무원들의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갑질’, 그에 따르는 빈약한 설계 지침, 눈에 보이지 않는 산출물이라 가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기획, 기계적 공정성의 외피를 두른 심사와 평가...현실의 부조리는 나열하기 벅찰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충실한 설계를 위해 마감 재료를 현장에서(그것도 빛을 받는 시간대나 날씨와 비교하며) 일일이 확인하고, 어울리는 컬러를 제안해 설계도에 넣고, 상세한 투시도를 굳이 그려서 납품하고, 공무원들과 다투고 화해하며 자신들의 일을 끝까지 해내고야 만다. IDR의 일은 장인의 그것에 가깝게 보였다.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갈 공간에 대한 애정을 일에 대한 투지와 에너지로 바꾸는 모습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눈에 그려졌다. 일이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전문가의 업이란 저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시민권’을 얻기 힘들 것이다.
끝으로 건축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이란 마감을 성실하고 악랄하게 지키는 것임을 전한다.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심지어 많은 설계사무소가 제대로 지키지 않지만, 사실 너무나 중요한 건축가의 책무가 있다. 그건 바로 시공사와 계약하기 전에 도면을 제대로 완성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