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8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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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행복과 그 상실에 대한 고통을 절묘하게 그린, 박물관이 없었다면허전했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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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 네이처
마이클 폴란 지음, 이순우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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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꾸려나가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정립한 정원에 관한 철학서.  

정원에서 키우는 자신의 식물들과 그로 인해 생기는 잡초와 동물들을 대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기준을 정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저자의 시각이 부럽다. 거의 처음 부분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저자가 펼치는 논리는 이미 우리나라에는 실현되었던 정신이라는 생각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보면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라는 부제로 소개된 소쇄원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우리의 전통적 정원은 자연과의 조화를 놓치지 않고 있는데,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정신이 정리된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중간에 덮으려고도 했지만, 마지막 그의 결론이 궁금했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 안에서 정원 뿐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대해왔던 방법에 대해 실례와 다른 이들의 저서를 통해서 고찰하고 있다. 그는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시한다. (최근 과학에서 우연성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규명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역사에 발생하는 우연과 우발성이 자연의 모습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간다면 인간의 희망과 염원-예를 들면 아름다운 공원 조성 같은-우연의 요소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개입을 온전히 거부하는 소로 이후의 자연주의자들이나 자연을 무자비하게 개발하는 자들 모두 자연과 인간을 완전 분리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개발을 남용해서도 안되지만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면 우발적 사건으로 황폐된 자연은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가꾼 정원이야말로 좋은 대안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 밖의 존재자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전해 내려온 동양의 사고방식이다. 솔직히 말하면 서양의 학문이 더 나은 것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것을 이제서야 깨닫는 미국인들이 솔직히 대단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워졌다. 우리의 철학이나 사고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일목요연하게 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한국의 정원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이책의 미국 원판은 20여년 전에 출판된 것 같다. 1989년의 상황을 '요근래'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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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곤충기 6
앙리 파브르 지음, 김진일 옮김, 정수일 그림, 이원규 사진 / 현암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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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관찰자  

특출하건, 미미하건 사람은 어려서부터 어떤 재능의 씨앗을 갖고 있다. 여기 대여섯살 된 꼬마가 있다.  골똘한 생각에 잠겼는지 뒷짐을 지고 해를 향해 서있다. 황홀한 눈망울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난다. 잠시 두 눈을 꼬옥 감고 조그만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린다. 마치 태양을 입으로 보려는듯이. 1, 2, 3, …, 10초가 흘렀을까? 이제는 반대로 입술을 꼭 다물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제 꼬마는 작은 실험을 통해 해는 눈으로 본다는 것을 알았다. 꼬마는 깨달음에 기뻐 집으로 달음질친다. (이책 pp.59-60 참조)

이 꼬마는 <파브르 곤충기>의 저자인 장 앙리 파브르이다. 6권에서는 이렇게 파브르의 어린시절과 가족사, 학교생활, 곤충 연구의 길로 들어서도록 자극을 준 박물학자 모킨 탄돈을 만난 이야기 등이 독자의 흥미를 끈다. 곤충 전문가도, 애호가도 아닌 단순 관심 독자로서 1, 2, 5, 6권까지 4권을 읽다보면 어떤 때는 곤충 생김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습성과 생태에 대한 실험 결과들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특히 관심이 없는 곤충이거나 한번도 보지 못한 곤충일 때는 더 그렇다. 그러나 6권은 파브르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어 마치 본문보다 재밌는 부록처럼 느껴진다
 

행복한 고통을 마다않는 실험자  

6권의 후반부에는 소나무행렬모충나방을 관찰하다가 피부발진이 일어나 고생한 이야기가 있는데 파브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곤충의 독성물질을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피부에 직접 실험을 한다. 가렵고 부어오르고 진물이 나고 피부가 벗겨져도 파브르는 즐거운 고통”(p.449 참조)이라고 말한다. 행렬모충의 혈액과 똥 뿐 아니라, 누에의 마른 똥, 꽃멋쟁이나비와 구리빛 점박이꽃무지와 메뚜기의 동, 유럽민충이와 풀무치의 똥 등 여러 곤충들의 배설물로 실험을 한다. 그리고 독은 생명체의 노폐물, 즉 요() 생성물이다.”(p.462)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것이 현대과학에서 밝혀낸 사실과 일치하는지 일반 독자인 나는 모른다.(역주가 없는 것으로 보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곤충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파브르의 실험 정신과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에 나는 탐복할 수 밖에 없었다
평생을 걸쳐 열정을 갖고 하는 일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고통이다. 이 역설적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흥미로운 곤충들 

6권에서는 특이하게 부성애를 보여주는 긴다리소똥구리, 두더지나 들쥐 같은 사체를 먹이로 하는 곤봉송장벌레, 파브르가 한평생 줄타기곡예사 같다고 표현한 소나무행렬모충나방의 애벌레(송충이) 등이 흥미로왔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정말 아름다운곤충 하나를 잊을 수 없다. 책을 읽기 전에 전체를 일별하는데 내 눈에 들어온 소나무수염풍뎅이 사진이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브르는 자신의 궁핍하고 암울했던 어린시절에 한줄기 햇살이 되어준 벌레라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깃털 장식 같은 더듬이, 갈색 바탕에 멋지게 뿌려진 흰무늬”(p.80)에서 귀족 같은 풍미가 난다. 언제 실제로 한번 볼 수 있을까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조안 엘리자베스 룩 지음, 조응주 옮김, 민들레)의 제목을 따옴  
벌레는 해롭기다는 의식만 갖고 사는 도시인들(살충제 회사의 과도한 광고도 한 몫 했을 것이다)곤충을 만나면 기껏해야 발꿈치로 으깨기나 하는 것”(p.53 참조)이 고작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벌레(곤충)들이 이 지구상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고 있다. 또한 그들은 우리 보다 훨씬 깨끗하다. 송장벌레만 봐도 그렇다. 인간이 혐오스럽게 여기는 사체를 깨끗하게 치워준다.   

나는 작년 여름 시골 농가에서 몇 주 동안 지낸 적이 있다. 도시에만 살았던 지라 벌레와는 친근하지 않아 처음에는 곤혹스럽기도 했지만, 정말 많은 종류의 곤충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안에서 질서 있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고요 안의 치열함, 폭풍 속의 평안 같은 것을 느꼈다.
지렁이 사체를 깨끗이 먹어치우는 개미들, 자신의 거미줄에 걸려든 벌을 실로 돌돌 감아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거미. (이런 장면은 마치 환경스페셜의 한장면 처럼 환상적이었다. 아마 이런 맛에 파브르가 곤충 관찰에 빠져들었나 보다.) 오늘날 더 많은 아이들이 이런 신비한 장면을 직접 보면서 자라나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지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곤충들의 세계
내가 알지 못하는 곤충들의 세계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직접 관찰하기는 어렵겠지만 완역된 10권의 <파브르곤충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 싶다. 이 책은 10권을 단번에 읽을 수 있는 정도로 쉽게 읽고 접어두는 책이 아니다. 간혹 인생이 따분하다고 느껴질 때나 무의미와 허무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 책의 어느 한 부분을 펼쳐들자. 어디라도 좋다. 관심을 두지 않던 미물들, 작은 곤충들이 꼬물락거리며 잠자던 당신의 지성과 감성을 일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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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곤충기 5
앙리 파브르 지음, 김진일 옮김, 정수일 그림, 이원규 사진 / 현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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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곤충기. 어려서부터 익히 제목은 알고 있던 책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대로 읽은 적은 없었다어린이용으로 부분 번역된 책이 많이 나와있지만 어린시절 손으로 잡아본 곤충은 잠자리와 메뚜기, 개미 정도가 전부이니  나의 관심 분야 밖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유명한 고전이니 한번쯤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을 뒤적거렸지만 영 읽히지가 않았다.  

그런데 작년 봄,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개미의 생태가 알고 싶어 대형서점을 찾았다가 <파브르곤충기1>부터 <파브르곤충기5>까지 5권의 보물을 발견했다.  첫번째 권을 펴드는 순간 놀랐다.  만화 느낌의 곤충 일러스트와 섬세한 곤충 사진들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뿐더러 지루함을 달래준다.    

평범한 독자가 전문가의 번역을 평가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곤충학자 김진일의 번역은 문장이 길지 않고 적당하게 끊어져 있어 매끄럽게 읽힌다. 또한 간간이 섞인 감탄어법이 내용과 잘 어우러져 파브르가 마치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 하다.  옮긴이의 말에서 파브르의 생각과 의인화가 담긴 문학적 표현을 100% 살리기는 힘들었다기보다, 차라리 포기했음을 밝혀둔다.”고 했지만, 나는 곤충의 관찰 기록 사이사이 있는 파브르의 의인화한 표현과 철학적 사고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파브르곤충기>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파브르의 곤충 연구에 대한 열정에 탐복하면서 1권과 2권을 읽고 몇 달이 지났다. 3권과 4권은 건너뛰었다. 책을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새해 들어 <파브르곤충기5>를 펼쳐들었다.  왕소똥구리, 스페인뿔소똥구리, 금풍뎅이, 매미, 사마귀에 대한 내용이다.          

왕소똥구리는 마치 기하학자인듯 기막히게 아름다운 똥구슬을 빚어내고 그 안에 알을 낳는다. 알껍질을 벗은 애벌레는 제 집을 먹어나가고 그리고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된다. 이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파브르는 번데기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노란색 꿀 빛깔의 반투명한 번데기는이 상태로 굳어서 광물이 된다면 찬란한 보석 황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부화해서 성충이 된 왕소똥구리가 경단을 뚫고 나와 햇빛을 받고 가만히 아무 의식 없이 기쁨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떤 경이감이 느껴졌다. 노아가 홍수가 끝난 후 방주에서 나와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순간 무지개를 보면서 자신의 신을 떠올렸듯이, 여러 번의 과정을 겪고 성충이 된 왕소똥구리도 자신이 살아갈 세상 앞에서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것이 아닌가.  

물론 파브르가 곤충을 과도하게 인간과 유사하게 묘사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파브르곤충기>는 곤충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준다. 동물에게는 이성이 없다며 만물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교만과 욕심 가득한 인간에게 파브르는 경종을 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성애가 강한 스페인뿔소똥구리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곤충은 알을 낳은 경단 옆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경단을 지키며 보살핀다. 어미가 깨진 경단을 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알고 경단을 수리하는 것을 보면서 어미는 침묵의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라고 파브르는 쓰고 있다.  

지금보다는 곤충학이 발달하지 않은 150년 전이니 곤충의 감각기관에 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파브르의 곤충기를 읽고 잘못된 지식을 얻게 될까 염려는 하지 말자. 역자는 에서 소똥구리계열 대부분은 애벌레 때 발음기관이 있어 매우 작은 소리를 낸다고 설명해 준다. 곤충학자인 역자의 자상한 주석으로 전문성을 더하고 있다.
<우리곤충도감>(예림당, 2004)에도 뿔소똥구리에 대해 모성애가 강하다고 설명되어있다. 곤충도감을 찾아가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유사한 곤충과 비교해가며 이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한여름을 지내고 죽는 매미가 땅속에서 여러 해를 보낸다는 것은 우리에겐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곤충도감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매미 애벌레가 그 긴 시간을 한 곳에서 끈질기게 기다리기만 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브르가 매미 애벌레의 땅 속 생활을 관찰하고 묘사한 것을 읽는다면 그 긴 시간을 참아내는 매미 애벌레의 영리함에 반하게 될 것이다. 매미 애벌레는 성숙해감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기도 하고, 자기 방과 이어진 통로를 통해 바깥 기후를 파악하고 적절한 때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5권의 반 이상은 소똥구리계열 곤충에 대한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5권의 하이라이트는 사마귀 관찰 기록 끝부분에 있다. 사마귀는 다른 곤충을 무섭게 잡아먹는 곤충이다. 어떤 종은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런데 막 알에서 부화한 새끼 사마귀는 개미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개미들은 사마귀의 알집 밑에서 기다렸다가 새끼 사마귀가 알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먹어버린다.  

파브르는 사마귀와 개미의 관계를 생태계 순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마침 파브르의 눈에 보이는 연구실 앞의 벚나무를 예를 들어 생태계의 순환 구조를 부연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사마귀 관찰 기록을 마친다.  

사마귀는 알을 1,000개나 낳는데 조금은 자신의 영속을 위한 것이고 많이는 다른 생물들의 전체적인 회식에 힘껏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다. ... 세상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순환이다. 모두가 다시 시작하려고 모두 끝내고, 모두가 살려고 모두 죽는 것이다.”       

생명체들은 모두 다른 생명체의 희생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또한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체에게 줌으로써 세상이 유지되는 것이다.  미물인 곤충들도 이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자연의 순환 이치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데 현대의 인간은 다른 생명을 빼앗아 제 배 불리기만 급급하고 자연에 돌려주는 것이 거의 없다.  도시인을 생각해 보면 매일 다른 생명체를 먹지만, 매일 누는 똥 하나도 자연에게 돌려주지 못하고 깨끗한 물을 더럽히면서 버리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곤충생태에 관한 지식을 쌓는데도 훌륭하지만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면 인간삶의 행태를 되돌아보게 되고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근본적인 삶인지 깨닫게 된다.  이렇게 좋은 고전을 훌륭한 완역본으로 만나니 너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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