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하는 남자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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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조용히 숨어 있다가 가장 친밀한 순간에 독니를 드러낸다. 요 네스뵈는 그 독니의 모양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작가다.


노르딕 누아르의 거장이 처음으로 내놓은 단편소설집 <질투하는 남자> 는 장편에서 갈고닦은 서스펜스를 짧고 날카로운 형식으로 압축해낸 작품이다. 열두 편의 이야기는 제각각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삼지만,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파괴하는가, 아니면 파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가.


<런던〉은 그 물음의 서막을 인상적으로 연다.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낯선 사람. 여자는 바람피운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자살 에이전시'에 예약했다고 고백한다. 설정만 놓고 보면 터무니없이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네스뵈는 이 황당한 전제를 독자가 의심할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인다. 복선은 정밀하게 깔려 있고 반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읽고 나면 비로소 처음 몇 문장이 새롭게 보인다. 단편의 미덕을 이만큼 충실하게 구현한 오프닝은 드물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이 소설집의 핵심은 플롯이 아니라 동기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80퍼센트가 가해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고, 그 동기의 80퍼센트가 질투라는 소설 속 형사의 설명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제다. 가장 끔찍한 범죄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태어난다. 네스뵈는 그 사실을 반복해서, 그러나 매번 다른 방식으로 증명한다.


1부 <질투> 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면, 2부 <권력> 은 그 내면이 무너진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다. 팬데믹 이후 붕괴한 사회, 자본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평행우주를 오가는 시간 여행까지. 장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이 확장이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떤 세계를 그리든 결국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동일한 뿌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단편이라는 형식은 네스뵈에게 새로운 자유를 허락한 것 같다. 장편의 호흡으로는 내보이기 어려웠을 실험들, 가령 유머와 공포를 한 문장 안에 공존시키거나 결말을 의도적으로 열어두는 방식이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독자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듯 보이다가, 예상보다 훨씬 어두운 골목길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지는 경험. 그것이 이 단편 소설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색다르면서도 낯선, 흥미롭고 즐겁지만 마냥 기분 좋지만은 않은 경험이다.


열두 편의 밀도가 고르지 않아 일부 작품은 장편의 서장처럼 읽히다 끝나버리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질투하는 남자〉와 〈쥐섬〉, 〈흑기사〉는 그 세계 안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심을 자극한다. 이는 결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작가의 힘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질투는 보아뱀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한번 붙잡히면 빠져나올 수 없다. <질투하는 남자> 를 읽는 경험도 그렇다. 첫 페이지에서 이미 붙잡히고, 마지막 페이지에서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밤새도록 책을 읽는 경험, 허구이나 일견 진실되어 보이는 문장에 현혹되는 경험. 책을 읽는 재미와 의미를 다시금 되살려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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