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매년마다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올해 작품도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여름 / 최은영

 

작가 최은영은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5회 젊은작가상, 8회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최은영과 김금희의 소설은 공통점이 많다. 문학의 이미지처럼 딱딱하지 않고 한결 부드럽다. 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소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대중에게 인기가 많다. 책 표지나 소재만 봐도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신세대 소설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여름>에는 현시대에 필요한 감수성이 담겨있다. 소설뿐만이 아니라 자기개발서나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도 감수성을 자주 다루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여행 영상이나 사랑에 대한 글귀, 뻔한 로맨스 스토리에서 표현하는 감수성은 가공된 이미지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만 감수성으로 다루는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각적 자극이나 멋들어진 수사가 없어도 감수성을 전달할 수 있다. 어떠한 감수성을 전달할 것인가가 작가에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작품은 이경과 수이 두 여성이 20~21살 사이에 겪은 로맨스를 다룬다두 동성애자는 남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한 연애를 하다가 이경이 은지에게 마음을 뺏기고 결국 모든 관계가 깨진다스토리만 보면 여성의 동성애를 빼고 익숙한 로맨스 소설 흐름을 따라간다보통 동성애를 다루면 동성애자의 성 정체성이나 사회적 억압을 다루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보편적인 이성애처럼 동성애를 평범하게 보고 있다동성애는 포함된 속성을 사용하지 않고 동성애를 이경과 수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이경과 수이는 모든 면이 다르다이경은 문과안흥면 거주성격이 적극적대학 경제학과 진학기숙사수이는 예체능반고곡면 거주성격이 소극적직업학교에서 정비 공부잠만 자는 방아무 연관이 없는 두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공통점으로 만남을 이어가게 되었다이경은 수이 말고도 누비은지도 같은 이유로 관계를 맺는다남녀 간의 사랑은 생물학이나 사회학으로 설명이 가능할 만큼 익숙한 사랑이지만 동성애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의 사랑이 특별해 보인다하지만 사랑은 삶에 어떤 해답도 아니며 기여가 될 수 있는지 보장하기 어렵다스무 살은 인간이 사회로 나가는 나이다이경과 수이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장래를 대비하고 스물한 살에 이경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수이는 원래 꿈과 다른 직업학교에 진학한다이경은 삶의 탄탄대로를 걷고 수이는 좌절을 겪는다축구선수로 움직이는 활동을 했던 수이가 부상을 당한 후 더 이상 뛰지 못한다그녀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고장 나서 멈춰있는 자동차로 비유된다그들의 위치가 사랑으로 극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차이가 생겼다수이는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기에 이경의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불편을 겪고 아꼬의 말에 차갑게 대응한 것이다이경은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수이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이때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세상에 관심이 많아진 이경은 자동차에 지식이 많은 수이와 다르고 점점 관심이 사라진다수이 대신에 은지에게 호감이 생긴다사랑이 형성되었다 분열하는 과정이 성장통으로 작용하여 나를 성장시킨다여름은 그들이 성장하는 시간이었다청소년의 심리를 파토스로 그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혼란으로 가득 찬 정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그럼에도 작가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서 대단하다고 느꼈던 작품이었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그리고 푸가 천희란

 

젊은작가상은 등단햇수가 10년이 안 된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데 인지도가 별로 없는 작가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문단에 좋은 의도가 있다대부분 발표한 소설이 4권을 넘지 않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많다아무래도 대중성과 인지도가 판매량에 중요한 한국 출판시장 성격상 이런 상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소설 제목이 음악과 연관이 있어서 읽기 전에 부담스러웠는데 음악적 지식이 필요 없었던 작품이라 독서에 큰 문제는 없었다서간체 형식으로 효주와 선생님이 편지를 주고받는다그런데 두 사람이 편지를 쓴 시간대가 다르다효주는 사건이 한참 지나고 준영과 결혼해서 살림을 합치던 중에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선생님은 편지를 쓰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미리 맡겨놓고 죽는다현재의 효주는 과거의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고 과거의 선생님은 현재의 효주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이런 시간을 뛰어넘는 방식을 통해 현재는 과거에 감춰진 사건에 다가간다효주의 어머니가 강에 빠져 죽은 사건은 자살로 처리되었다과연 단순자살이었을까아니면 선생님이 효주의 어머니를 죽였을까선생님과 효주의 어머니는 무슨 관계인가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생님은 효주의 후견인이 된다처음에는 효주에게 갖는 죄책감으로 인한 행동으로 보였지만 나중에는 효주와 상관없이 효주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밝혀진다효주는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고 선생님은 진실을 감추는 사람이다효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자신의 성정체성의 진실효주의 후계자가 된 진실을 감추고 죽었다왜냐하면 작가로써 쓰고 싶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입이 아닌 편지글을 통해 진실이 드러난다편지글은 사실을 적을 수도 있고 지어낸 글을 적을 수도 있다편지글은 신뢰할 수 없는 텍스트이며 허구 속에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소설의 텍스트 같다소설에서 허구를 쓰든 사실을 쓰든 결국 진실을 써야 한다소설가에게 진실을 써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어떤 진실은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차라리 밝히지 않은 편이 더 나았던 결과를 초래한다마지막 편지의 내용에서 감춰진 진실이 밝혀진다효주 어머니는 레즈비언과 관계를 가졌다는 진실로 이름에 먹칠을 당했고 효주의 원한의 상대가 되었다선생님 자신은 레즈비언이라는 진실이 밝혀졌는데 만약 사건 당시에 알렸다면 자신은 사회에서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살게 되고 다른 동성애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그리고 효주는 의지할 수 있는 상대를 잃게 된다선생님이 진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들이 있었다진실을 밝힘으로 작가에게 따르는 고통과 책임의 무게가 만만하지 않다이 소설에는 성 평등과 페미니즘의 시선이 들어있다작가가 페미라이터라서 페미니즘 코드를 넣었는데 여성의 권리 신장을 요구한다는 느낌이 아니다여성이 받는 억압 대신에 동성애자가 받는 억압을 다뤄서 성 평등에 가까운 페미니즘을 구현했다하지만 페미니즘 코드가 작품에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진실에 초점을 맞췄다면 작품이 좀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그런 점에 아쉬움이 있다요즘 트렌드인 페미니즘과 더불어 대선 발언 때문에 떠오른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이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선생님이 자신의 부모님에게 레즈비언이라고 밝히는 장면에서 부모님이 곧 현대의 시선으로 레즈비언을 냉정하게 쳐다본다그리고 선생님은 출산을 공포로 생각하고 육아와 출산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선생님이 진실을 숨긴 근본적인 원인은 동성애자를 냉대하는 사회 풍조다소설가가 진실을 발설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의 외력이다외력 때문에 특정 집단이 피해를 보거나 진실이 가려진 사건이 최근에 많이 있었다새 정부에서 5.18 사건, 4대강 사업권력 비리세월호 진상규명 등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행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신세대가 아무래도 기성세대에 비해 요즘 트렌드와 현대의 문제를 쉽게 포착하기 때문에서 기성세대에서 볼 수 없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기대가 많이 된다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정미경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속 <폭설>, 2001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 <비소 여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2<장밋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2006<밤이여, 나뉘어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장편소설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가 있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그래서 읽을 때 부담감을 느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장이 쉬울 뿐이고 겹겹의 모자이크를 짜 맞춰서 전체그림을 완성시키는 일이 쉽진 않았다. 어떤 면은 단순하고 다른 면은 복잡 미묘한 작품이면서 현대인이 공감할 만한 실질적인 문제를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특징이 있다.

성공한 영화감독 는 함부르크에서 시사회를 마치고 P를 만나러 오슬로로 간다. P는 과거에 같은 의대에 진학한 사이이다. P는 나에게 면역학에서 러브피아를 연구하고 있다는 말을 해준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에 P는 소설을 만들어 팔다가 담임에게 걸려 판매를 중단한 일이 있었다. P의 아내 M과 뭉크의 절규를 감상하고 나중에 M은 나에게 P가 술독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품에서 화자와 P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P는 화자가 선망하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다. 이럴 때 타고난 문장력으로 소설을 만들어 팔았던 경력이 있고 화자와 같은 의대에 진학해서 촉망을 받았다. 화자는 P와의 차이를 느끼고 결국 의학을 접고 영화계로 갈아탔다. 두 사람의 관계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에서 글렌 굴드와 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글렌 굴드와 달리 시간이 흐른 뒤에 P는 술에 빠져 몰락하는 사람이다. 화자가 평생을 동경하고 괴롭혔던 인물이 볼품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화자는 맹신하는 신을 부정당한 신자의 심정으로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과거의 밤이 그립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화자는 과거와 현재의 P를 동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관측자의 관측에 의해 확정되기에 만약 P와 만나는 일이 없었다면 화자의 머릿속에는 영원히 천재 P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시각에서 시간에 상관없이 동일 대상을 동일하게 인식한다. 화자가 이 경우에 속한다. 반대의 시각에서 시간에 따라 동일 대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말이다. 인물A1분 뒤에 인물B가 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 같지만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시간의 연속성의 함정으로 이를 설명한다. 시간이 연속되므로 관찰에 따라서 대상은 변화하지 않고 일정하다는 착각을 할 위험이 있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외관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도 변한다. 정체성이 바뀌어버린 두 대상을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런 이유로 변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점은 P의 절규이다. 현재의 P는 우울증을 가진 사람처럼 표현되었다. 자신이 개발하는 러브피아라는 약은 행복을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졌고 불행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진짜 필요했던 사람은 술에 빠져 사는 P 자신이다. 우울증은 P처럼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잘 걸리는 병이다. 우울증은 현대인을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오죽했으면 키에르케고르는 멜랑콜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겠는가. 철학서나 심리학서적분야에서 멜랑콜리를 안 다루는 책이 거의 없다. 작품 속의 뭉크의 <절규>는 현대인의 절망적인 병리적 상황을 대변한다. P가 어째서 우울증에 빠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해보면 그의 직장이 있는 미국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야근이 세고 근로자 복지제도가 잘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도 수술에 따라서 노동력이 많이 소요된다. 그리고 병원 안에서 권력 다툼이 있을 테니 우울증 유발원인은 주변에 가득하다. 바쁜 일상과 내 주변의 것들을 신경쓰다보면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된다. 나를 방치하는 것이 우울증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김영하 작가는 독서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문학 활동이 우울증의 위협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마다 축제
강영숙 지음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영숙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8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8월의 식사>로 등단했다. 2006년 제39회 한국일보문학상, 2010년 제4회 백신애문학상, 2010년 제5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회색문헌>, <라이팅 클럽>, <리나>, <날마다 축제> 등이 있다.

<날마다 축제>의 주인공은 출산한 경험이 있는 한 여성이다. 도시에서 날마다 펼쳐지는 축제에 참가하고 여관에 돌아온 후 자신의 아이와 보낸 삶을 회상한다. 길을 걷다가 담이 없는 오두막집을 발견한다. 거기에서 아이를 기르는 가족의 모습을 목격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아이가 없다. 다리 밑에서 만난 남자와 술을 마시고 여관에서 툭툭거리다가 젖몸살이 생긴다. 다음 날 집중호우로 도시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 오두막집은 멀쩡하다. 그녀는 오두막집에 들어와서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날마다 축제>는 제목만 보면 밝고 즐거운 작품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위기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흐릿흐릿하게 구름이 잔뜩 낀 우울한 날씨 같기도 하고 물 먹은 휴지 같은 먹먹한 정서가 흐른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표현이 특징적인데 에로티시즘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고 타인을 위한 도구처럼 표현되었다. 여성의 몸이 아닌 엄마의 몸을 그렸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주인공 는 홀로 지내는 사람이다. 아이를 기르는 평화로운 가족을 보면서 고독감을, 아이를 낳고 쭈글쭈글한 배를 쓰다듬으며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상실감을 느낀다. 과거에는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은 끔찍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끔찍이 사랑한다. 유독 양육에 연관된 젖가슴을 강조하며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왕절개의 고통도 사랑으로 안을 만큼 모성애가 강력하다. 그녀의 모습은 인간보다는 도시라는 야생에서 방황하는 한 마리의 암컷 짐승 같다. 아이 낳고 잘 기르려면 암컷과 수컷, 새끼로 이루어진 무리를 형성시키는 게 안전하다. 그래서 무리를 형성한 가족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자신도 똑같이 가족을 형성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새끼를 낳고 양육하는 본능만이 남아있다. 남의 자식에게도 젖을 물리는 여성이다. 아이를 생각하다가 젖이 팽창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육체는 번식을 위해 충실히 작동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나는 낯선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친하지도 않는 둘이 나중에 같이 술을 먹는다. 그리고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것에 거부하지 않으려 한다. 상식적으로 낯선 남자를 경계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입장에서 남자는 감정적 교류의 대상이 아닌 정자 제공자에 불과하고 그와 관계를 가져서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 이렇듯 여성을 짐승처럼 표현하는 강도가 세서 나도 거부감이 느껴지는데 여성 독자에게 불편하게 읽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요즘은 자신의 삶을 더 생각하는 추세라 일부러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고 있고 관계를 가질 때는 피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시각에서 이정도로 지독히 모성애를 보이는 여성은 정신병자라고 생각할 것 같다. 지금이 과거보다 모성애가 떨어졌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출산하면 일과 경제력에 타격을 입는 현사회상과 부족한 복지제도, 정부의 효과 없는 대책 등의 많은 문제들로 인해 출산율 저하를 초래했다. 남자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모성애와 과거의 모성애의 의미차이가 분명히 있다. 과거의 남성중심사회에서 자식의 출산과 양육은 여성의 의무였다. 부성애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고 여성이 출산능력이 있고 모성애를 가지고 있으니 응당히 의무를 맡아야 한다고 당시의 사람들은 생각했었다. 모성애는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건가 아니면 대대로 관습으로 굳어져서 모성애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성애란 무엇인가.

나는 도시에 펼쳐지는 축제에 위안을 받는다. 축제는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함께 즐기는 잔치다. 나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소속감을 느낀다. 내가 아이에게 보이는 집착은 어쩌면 아이를 원했던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해줄 사람에 대한 소망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1969년에 <말 더듬는 존재>를 발표하며 작가의 길에 섰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두 차례의 자폐증과 68혁명의 열기, 실존주의 · 구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 · 폴 리쾨르와 함께한 철학 공부, 뱅센 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의 강의 활동, 그리고 20여 년 가까이 계속된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인연 등이 그의 작품 곳곳의 독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8개월 동안 죽음에 가까운 병마와 싸우면서 저술한 <떠도는 그림자들>2002년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은밀한 생>, <로마의 테라스>, <뷔르템베르크의 살롱>,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등이 있다.

3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이슬란드의 혹한><메두사에 관한 소론>은 에세이,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동화다. 3편 다 언어논문 같은 현학적인 언어 탐구를 하고 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줄거리는 이렇다. ‘디브라는 옛 마을에서 콜브린이 쥔느에게 혼약을 신청했는데 쥔느는 자신의 벨트와 똑같은 벨트를 짜오라는 조건을 걸었다. 콜브린은 결국 완성을 못 시켜서 절망에 빠진다. 마침 집을 방문한 영주는 사정을 듣고 쥔느의 것과 똑같은 벨트를 주고는 1년 뒤에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경우 데려간다는 계약을 제시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때문에 위기에 봉착한다.

글을 쓰다보면 작품처럼 사용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애먹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단어는 잊어버린 단어거나 어휘력 부족으로 아예 모르는 단어다. 언어의 기능 부전이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언어를 생활에 활용하려면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언어능력을 이용해 사용할 기의에 적절한 기표를 연상하고 단어를 모아 통사론적 구성, 형태론적 구성을 형성해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일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메두사에 관한 소론>처럼 조상처럼 굳어진 자의 모습-갑자기 번쩍 들린 고개, 잃어버린 다너를 불러들이려고 긴장된 육체, 먼 곳으로 떠난 시선, 탈처럼 변해버린 얼굴-이 되는 것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귀환을 거부하는 단어,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 단어, 입 주위에서 안개처럼 떠돌지만 정작 혀로 들어가 말이 되지 못하는 단어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정도면 거의 완성되다시피 했는데 혀가 작동하지 않고 실패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공포를 준다. 그들의 업무자체가 단어를 현실에 불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의 혹한>에서 불레즈는 얼음 덩어리로 변한 커피 아이스크림을 칼로 찍는다. 그럼에도 덩어리는 끄덕도 안했다. 얼음 덩어리는 덩어리 상태로 저장된 것들 중에서 단 하나의 정보를 선정, 추출, 소환, 복귀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능 부전의 메타포이다.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얼음 덩어리 앞에서 일시 정지된 칼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고정된 시선과 경직된 자세로 빠져나가는 단어를 향해 두 손을 내밀어 애원하는 비굴한 자가 된다. 언어의 기능 부전의 원인은 기억력이다. 아는 단어를 망각하니까 머리에 생긴 기의가 단어가 되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망각은 글 쓰는 사람들의 불치병이다. 과학이나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기억은 두뇌에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망각에서 선별되어 보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기억도 망각했어야했다. 두뇌가 자체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기 위해서는 두뇌에게 기억하려는 정보가 중요하다고 계속 어필해주어야 한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시간을 들여서 어필하는 일이 암기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단어에 대한 관심이다. 여러 책을 통해 다양한 단어를 접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글쓰기는 산란하기라고 한다. 연어가 모천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하듯이 필사적이어야 한다. 글쓰기는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는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고 익숙하지만 사실 언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활동은 고등생물만의 전유물이다. 인간의 특권이자 시련이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