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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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미경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속 <폭설>, 2001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 <비소 여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2<장밋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2006<밤이여, 나뉘어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장편소설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가 있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그래서 읽을 때 부담감을 느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장이 쉬울 뿐이고 겹겹의 모자이크를 짜 맞춰서 전체그림을 완성시키는 일이 쉽진 않았다. 어떤 면은 단순하고 다른 면은 복잡 미묘한 작품이면서 현대인이 공감할 만한 실질적인 문제를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특징이 있다.

성공한 영화감독 는 함부르크에서 시사회를 마치고 P를 만나러 오슬로로 간다. P는 과거에 같은 의대에 진학한 사이이다. P는 나에게 면역학에서 러브피아를 연구하고 있다는 말을 해준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에 P는 소설을 만들어 팔다가 담임에게 걸려 판매를 중단한 일이 있었다. P의 아내 M과 뭉크의 절규를 감상하고 나중에 M은 나에게 P가 술독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품에서 화자와 P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P는 화자가 선망하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다. 이럴 때 타고난 문장력으로 소설을 만들어 팔았던 경력이 있고 화자와 같은 의대에 진학해서 촉망을 받았다. 화자는 P와의 차이를 느끼고 결국 의학을 접고 영화계로 갈아탔다. 두 사람의 관계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에서 글렌 굴드와 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글렌 굴드와 달리 시간이 흐른 뒤에 P는 술에 빠져 몰락하는 사람이다. 화자가 평생을 동경하고 괴롭혔던 인물이 볼품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화자는 맹신하는 신을 부정당한 신자의 심정으로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과거의 밤이 그립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화자는 과거와 현재의 P를 동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관측자의 관측에 의해 확정되기에 만약 P와 만나는 일이 없었다면 화자의 머릿속에는 영원히 천재 P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시각에서 시간에 상관없이 동일 대상을 동일하게 인식한다. 화자가 이 경우에 속한다. 반대의 시각에서 시간에 따라 동일 대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말이다. 인물A1분 뒤에 인물B가 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 같지만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시간의 연속성의 함정으로 이를 설명한다. 시간이 연속되므로 관찰에 따라서 대상은 변화하지 않고 일정하다는 착각을 할 위험이 있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외관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도 변한다. 정체성이 바뀌어버린 두 대상을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런 이유로 변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점은 P의 절규이다. 현재의 P는 우울증을 가진 사람처럼 표현되었다. 자신이 개발하는 러브피아라는 약은 행복을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졌고 불행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진짜 필요했던 사람은 술에 빠져 사는 P 자신이다. 우울증은 P처럼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잘 걸리는 병이다. 우울증은 현대인을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오죽했으면 키에르케고르는 멜랑콜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겠는가. 철학서나 심리학서적분야에서 멜랑콜리를 안 다루는 책이 거의 없다. 작품 속의 뭉크의 <절규>는 현대인의 절망적인 병리적 상황을 대변한다. P가 어째서 우울증에 빠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해보면 그의 직장이 있는 미국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야근이 세고 근로자 복지제도가 잘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도 수술에 따라서 노동력이 많이 소요된다. 그리고 병원 안에서 권력 다툼이 있을 테니 우울증 유발원인은 주변에 가득하다. 바쁜 일상과 내 주변의 것들을 신경쓰다보면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된다. 나를 방치하는 것이 우울증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김영하 작가는 독서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문학 활동이 우울증의 위협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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