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상자 - 1998년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은희경 외 / 문학사상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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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이 창작과 독해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에센스만 보고 작품을 이해해야 하니 장편소설보다 어렵다. 작가의 입장에서 분량이 무한대의 자유가 있는 장편은 작가가 자유롭게 써내려갈 수 있는데 비해 단편은 분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텍스트에서 에센스만 추출해서 분량을 축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빼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쉽게 변해버린다. 단편소설을 읽으면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차라리 분량을 늘려서 장편으로 만들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장편소설이 마라톤이라면 단편소설은 양궁으로 비유하고 싶다. 읽어본 단편 중에서 이번에 읽은 <아내의 상자>는 가장 완벽하게 만들어진 단편소설이다.

작가 은희경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이중주>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97년에 <타인에게 말걸기>로 동서문학상,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이상문학상, 2007년에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은 <생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등이 있다.

<아내의 상자>는 모든 면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했다. 아무래도 작품의 소재가 한 부부의 일상이다 보니 작가가 욕심을 좀 부려서 스토리를 더 늘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텐데 절제미가 있다. 부부가 새집에 이사 온 날부터 아내가 수용소가 보내질 때까지 과거회상과 일화 몇 개로 구성되었다. 일화가 개별적이라서 각각의 일화를 해석해서 결합하면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감각적인 문체도 중요한 특징이다. 뚜렷한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해서 인간상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시각적으로 다양한 공간이 등장한다. 공간이 바뀔 때마다 인간이 외부세계에서 받는 영향이 달라진다. 아내는 신도시의 도식적 환경에 심리적 피해를 입는다. 대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모텔 방이나 안락의자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청각적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인상 깊었다.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며 착란을 일으키는 장면은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설명이 어렵다. 작가 개인 경험에 비롯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토건회사에 일하는데 건물에서 물이 샐 때 회사가 겪는 혼란을 작가가 경험을 해서 인용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학창시절의 입시생활의 스트레스가 무의식적으로 환청을 일으켰다는 설명이 있다. 후각적으로 냄새는 기억을 불러내는 인간의 자취이다. 남편은 냄새로 아내를 기억한다. 아내가 사용하는 독일식 책상과 안락의자에서 알 수 없는 희미향 향기에서 아내의 부재를, 방문 안쪽에 결려있는 포푸리 꽃 장식은 이탈의 실패를 기억한다. 그밖에도 방충제 냄새, 연탄 냄새 등이 나온다. 촉각적으로 생명력을 표현한다. 남편이 아내의 몸을 만졌을 때 차가웠다고 진술한다. 즉 남편과 아내는 전혀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작가의 감각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활용하는 능력에서 문학적으로 배울 거리가 많다.

남편을 능동적인 인물, 아내를 수동적인 인물로 설정한 것은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들어있는 것 같다. 특히 남편의 진술에서 그녀는 내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 내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일로 내 사랑에 보답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현대인의 삶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관찰을 하여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들어있다.

남편과 아내는 신도시로 이사 와서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어떤 이유에선지 아내를 임신을 못한다. 아내는 자신에게 선천적 문제가 있다고 믿고 있다. 계속해서 아내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잠이 많아져서 못 깨어나는 일이 생기고 모든 것이 말라간다는 정신착란에 시달린다. 아내가 옆집 여자와 외출하는 일이 많아져서 남편은 아내의 행동에 불안감을 느낀다. 어느 날, 아내가 사라지고 옆집여자와 함께 그린 파크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아내를 찾아낸다. 남편은 결국 아내를 보호소로 보내고 무덤이 가득한 길을 가다가 늘씬한 포장도로와 마주 친다. 그리고 아내의 방은 사라진다.

남편은 소시민적 인물이다. 신도시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며 자신의 생활에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 인물로 남편의 시점에서 아내를 관찰한다. 반면에 아내는 신도시의 삶에 싫증을 느낀다. 그 영향으로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데 남편의 반응은 무심하다. 아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원인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은 아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알지 못한다.

아내는 표면적으로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자기방어적인 행동을 보이며 남편과 정반대 의견을 표명한다. 또한 어떤 알 수 없는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신도시의 삶에 다른 견해를 가졌다. 아내는 도시의 모든 것이 도식적이고 특히 길이 건물에 막혀서 인간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은 인간의 삶을 단조롭게 만든다. 아내는 그것을 벗어나려고 한다. 아내가 겪는 고통을 이야기를 통해 토로했다. 두 강아지 이야기에서 토실토실한 강아지 때문에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목이 졸리는 강아지와 고아원 이야기에서 거세당하고 맞아죽고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이 곧 아내 자신을 의미한다.

임신이 되지 않은 것도 아내의 태도와 연관이 있다. 아내가 자식을 낳게 된다면 양육은 직장 생활하는 남편이 맡을 수 없으니 주로 집안에서 활동하는 아내가 맡게 된다. 아내의 삶은 자식에게 맞춰지게 되므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심리가 임신을 막고 있다. 그러니 불임 클리닉의 치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아내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일탈인데 남편은 탐탁지 않게 바라본다. 일상에 중독된 남편에게 일상을 벗어나려는 아내의 행동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더구나 남편은 남성우월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내가 선택한 방법은 잠을 자는 것이다. 자신을 정신의 세계에 가둬두고 바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안으로 숨는 것이다. 의식과 삶을 포기했다. 아내의 상자도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 상자는 어떤 것을 가두는 물건이다. 가두는 물건을 보호하는 기능과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기능을 지녔다. 이점이 아내의 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상자의벽은 아내 내면의 벽이다. 상자들 사이에서 아내가 잠이 든 장면은 현실의 외력에 대한 현실도피이며 외부에게 알리는 메시지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육식의 거부와 마찬가지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를 병원에서 치료받게 하고 결국 보호소에 보내서 해결한다. 남편은 그렇게 닭장차 속에 닭처럼 거대한 상자 속에 아내를 가둬버렸다. 집에서 아내의 존재를 소멸시켰다.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아내를 보내고 남편은 자화자찬하며 혼자 차를 타고 늘씬한 포장도로로 향했다. 남편은 결국 자신의 세계인 신도시로 돌아가서 아내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아무 탈 없이 그 속에 물들어 살게 된다. 일상의 감옥 속에 갇혀 살게 된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상자에 갇히게 되고 다른 현대인들도 상자에 갇히게 될 것이다. 아내처럼 깨닫고 상자를 나오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실제 현실이다.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도 자신이 상자에 갇혀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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