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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평점 :
제목만으로도 나의 관심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같은 질문을 품어온 지 오래지만 주위에 궁금해 하는 이는 드물었고 살아가기에 바빴으므로 답을 찾기에는 멀어졌지만 이 책을 만난 순간 안도했다.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인 나, 혹은 의식이 죽음과 같이 소멸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 이전에도 47억년 동안 지구는 존재했고 앞서 죽은 이들은 많았지만 세계는 그대로 이지 않았던가. 소립자의 세계에서부터 무한한 우주까지 나의 의식과 몸은 대체 무엇을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인식하는 것은 진짜 실재일까.
물리학자로서 저자는 과학이란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고이며, 항상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능력, 더 유효한 설명을 찾기 위해서 라면 세상의 질서를 뒤집고 다시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1920년대 정리된 양자역학이 여전히 어려운 것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과학의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찰자 효과'와 '양자 얽힘' 같은 개념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과학자(인간) 자신도 측정 장비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물리적 대상이 다른 임의의 물리적 대상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작용하는지, 자연의 대상들의 서로에게 미치는 상호작용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의 속성이란 그 사물이 다른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적으로 상호작용이 없으면 속성도 없다는 것이다.
양자론은 사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이론이다. 우리가 실재하고 부르는 세계는 상호 작용하는 실체들의 광대한 네트워크일 뿐이며 대상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고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개체는 이 네트워크의 일시적인 매듭에 불과하고 개체의 속성은 이러한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만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사물은 다른 사물 속에 비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는 이 부분에서 완전 소름이 돋았다. '인드라망의 세계', 세상은 가로 세로 그물망의 매듭에 걸린 옥구슬에 비친 모습이라는 불교적 세계관과 완전히 일치하는 결론이 아닌가.
저자는 23살의 하이델베르그가 북해의 외딴 섬, 헬골란트에서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하는 순간의 물리학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철학으로 사유를 이어간다. 서양의 이원론과 관념론 그리고 유물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인도의 철학자, 나가르주나의 '공'개념으로 양자역학의 이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얻은 것 같다. 저자는 양자역학은 물질의 실재와 속성은 없고 상호작용만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대의 신경과학은 우리의 감각과 기억의 작동방식을 밝혀내는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그런 활동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과학은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기술이지만 두뇌 정신활동은 내부에서 일어나므로 1인칭으로만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발견한 양자 역학에 따라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물리적 실재를 물리계에 자신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세계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능한 모든 세계에 대한 인식과 기술은 모두 내부로부터 나온 1인칭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세상은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은 답할 수 없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카를로 로벨리는 지금이 우리의 세계상을 업데이트 해야 될 때라고 한다. 양자역학이 우리가 지금까지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의 개념적 문법 자체를 건드리고 실체성의 해체에 도달하게 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카를로 로벨리는 물리학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내겐 인생과 관계의 철학으로 들려왔다. 휘웡청 떠오른 보름달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 달과 나 사이에는 어떤 작용이 일어난다.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면 달이 존재한다고 해도 나와는 아무런 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고 달이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는 실재란 없고 대상 간의 상호 작용만이 있을 뿐이라면 나도 대상도 서로 교감하고 반응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닌 '공'이라고 영민한 물리학자는 답해준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줄리 델피는 처음 만난 에단 호크와 끝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 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생각에 신은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것 같아"
감독이 어떤 맥락과 의미로 이런 대사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소름이 돋았었다. 둘 사이에는 어떤 작용이 일어났고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우연한 하루였지만 숙명이었다. 그 영화를 보던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너와 나 사이, 관계 속에 인생의 신비가 있는 것 아닐까.
어떤 조건이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개인마다 상황에 대한 해석과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다 다르게 경험한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자유 의지가 있고 운명은 정해질 수 없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도 관계맺는 이들마다 다르게 반응하며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아이들에게 엄마, 배우자, 딸, 그리고 자매나 친구, 일터에서의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게 모두 다 나이기도 하다.
이런 철학적인 사유를 로벨리의 양자역학에 대한 명상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
애정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을 주는 기쁨을 즐긴다.
일독을 권할 책 한 권이 또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