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몽환스러우면서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표지 아래 환상적인 단편들이 무려 여덟 편이나 수록되어있다. 책은 양장본으로 되어있어 과학과 마법 사이에 존재하는 단편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책을 덮고나서 작가의 번쩍이는 상상력에 소름이 돋았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지 리셋된 후의 현실인지, 유리 가가린의 꿈은 아닌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여느 인간이 그렇듯 주어진 현실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다 모종의 사건들로 인해 의심하게 된다. 진실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존재하는 참된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 그것을 믿음으로써 구성되는 허상일 뿐이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인물들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소설은 그 혼란을 해결해 주지 않고 막을 내린다. 독자는 인물들의 혼란을 고스란히 넘겨 받고 의심에 빠지게 된다.

 SF 장르에 대해 잘 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SF의 의의는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과학과 환상의 시선으로 현실을 조명해 독자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지 않게끔 하는 것. '나'라는 개인과 현실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여 '나'를 찾아가고, '나'를 둘러싼 현실을 능동적으로 그려나가게 하는 것. 이것이 SF소설의 존재 이유라면 김희선 작가의 《빛과 영원의 시계방》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덟 편의 소설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두 번째로 수록된 <오리진>이었다. 종교와 금서라는 고전적인 클리셰와 힙합과 스마트폰이라는 현대적 기술의 결합이 색달랐고 종교에 회의감을 갖고 있는 성직자라는 인물도 흥미로웠으며 무엇보다 선택의 기로에 서 갈등하는 마지막 장면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대단했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소설은 <가깝게 우리는>이었다. 불의 이미지와 자동인형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을 조명하는 이 소설은 나를 짙은 여운에 잠기게 했다. 

 그 외의 소설들도 재밌게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밀려드는 공포에 책을 놓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며 독서를 즐겼다. 읽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체험을 가능케 하는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소설들은 각자의 반전을 간직한 채 전개되는데 솔직히 어떤 이야기는 예상이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작가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실제로 장르 문학 뿐만 아니라 제도권 문학 내에서도 활약을 했다고 한다. SF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나같은 독자도 책에 매혹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과학과 마법, 현실과 환상. 이 사이에 걸쳐있는 기이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김희선 작가의 《빛과 영원의 시계방》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