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잘 쓰는 법 - 짧은 문장으로 익히는 글쓰기의 기본
벌린 클링켄보그 지음, 박민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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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글'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 짧은 시간 안에 독자의 무료함을 해소해주고, 자극시켜야 하는데 '글'은 읽는 데에도 폼이 많이 들어 시작도 전에 피로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같은 '글'을 매개로 먹고 살고 싶은 사람들은 어째야 한단 말인가. 어떡하긴. 글을 재밌게 쓰면 된다. 나는 작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작가들이 글을 재밌게 쓰도록 해야한다. 재밌는 글이란 말 그대로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문장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하며 더 나아가 그 독자가 쓰고 싶게 만들도록 하는, 그 작가만의 고유한 것이다. 벌린 클링켄보그의 『짧게 잘 쓰는 법』은 작가에게 그런 글을 쓰도록 알려주는 끝내주는 작법서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 교육을 받는다. 그날의 날짜부터 있었던 일, 그래서 내가 느끼거나 깨닫는 점. 100개 정도 되는 격자무늬 안에 우리는 저것들을 채워넣어야 한다. '자유'형식이지만 자유형식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틀에 맞는 형식적인 글쓰기를 아주 어릴 적부터 배워온 것이다. 중, 고등학교 때는 어떠한가. 더욱 심해진다. 논술시험은 시험관의 입맛에 맞도록 틀에 맞추어 적어야 한다.(그 입맛도 정해져있다) 그래서 우리의 글은 다 어디선가는 접해본 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나조차 그렇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의 상식을, 몇 십년간 우리를 길들여온 틀을 부수고자 한다.


작가의 작법은 여타 작법서들처럼 매뉴얼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예비 작가들이 스스로 사고하도록 한다. 문장의 리듬을, 문장의 즐거움을 느끼고 알아채도록 종용한다. 우리에게 내재된 창의성을 자극하며 전형적인 수식어보다 '나'만의 단어,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도록 한다. 좋은 글이라고 배워온 '좋은 글'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강조한다.

사실 그의 작법이 어떤 효용이 있는지 공감되지 않았다. 차라리 흔한 작법서의 말처럼 첫 문단에는 어떤 주장을 쓰고~ 두 번째 문단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문장을 쓰고~ 마지막 문단은 의의와 한계를 밝혀라! 하는 것이 더욱 와 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 안에 숨어있는 창작욕구가 피어나오려는 것을 알아챘다. '쓰고 싶다!' 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글이 대체불가능할 정도로 좋은 글이라고 늘상 생각해왔는데, 이 책이 그런 책인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작가가 선정한 좋은 글의 일부가 발췌되어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었다. 이게 좋은 글이구나! 하는 그런 깨달음. 예를 들어 이런 부분이다.

비스듬히 말린 두건이 물에 흠뻑 젖었다. 나는 두건을 이따금 강물에 적셔 머리에 둘렀다. 물은 화씨 46도다. 그 사원에서와는 달리 청량해 살 만하다. 며칠 전 햇볕 아래에서 얻은 두통이 가셨다. 작열하는 북극의 태양은 빛나기보다는 쏘아대는 듯했다. 티셔츠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마저 기분이 좋다. (…) 고도 때문에 두통이 생겼었나 싶지만 우리가 산에서 내려온 걸 감안하면 겨우 해발 몇백 피트 높이에 있을 뿐이다.(…) 카누 한 대와 카약 두 대로 강을 내려가는 지금, 다행스럽게도 내가 카약에 탈 차례가 아니어서 순록 뿔(카누 중간 부분에 캠핑 용구와 함께 처박혀 있던)에 걸려 있던 낚싯대를 꺼내 강가의 암벽을 향해 내던진다.

-존 맥피, 『그 땅으로 들어가며』

이 글에 대해 작가는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왜 존 맥피는 '시원해'라는 평범한 말을 놔두고 '청량해'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내가 머물던 사원'이 아니라 '그 사원'이라고 했을까요?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쓰듯 '며칠 전'이라고 하고, '해수면에서'가 아니라 '해발'이라고 했을까요?

괄호 안의 '함께'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세요.

그 단어가 어떻게 우리를 안내해주는지, 어떻게 맥피의 시선을 잡아주는지 느껴지나요?

존 맥피의 글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은 '즐거움'이다. 글의 즐거움이 이렇게나 짜릿한 것이구나, 다시 깨달았다. 내가 왜 저 짧게 인용된 존 맥피의 글에 빠져들었는지 작가는 명확히 집어낸다.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작가가 줄곧 책에서 이야기했던 문장 하나하나는 정적인 구조물이 아닌, 작가에 의해 살아 있는 것이며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런 글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매혹되어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런 사람이니 이런 좋은 책을 쓰는 거겠지, 하는 생소한 경외심도 든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작가만의 언어로 적힌, 생동감 넘치는 글을 쓰는 것은 무지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끈질기게 앉아 사고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것들로부터 벗어나 내게 집중해서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작가는 이 참을성을 요구하는 작업 끝에 글을 쓰는 재미를 낚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나도 그 재미를 언젠가 낚을 수 있겠지.

사실 작법서를 믿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정말 추천하고 싶다.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허황된 이야기로 다가올 것 같아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문장을 읽고 문장 자체가 갖고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작가의 작법을 꽤나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속도도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보다 더디다.이 글도 과연 좋은 글일까? 아니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끈기있게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기. 앞으로 내 과제일 것이다.

오늘도 외친다...

우리 교유서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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