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메모 - 차이를 만드는 습관의 힘
스도 료 지음, 오시연 옮김 / 책밥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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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를 낳은 후 내 기억력은 원래의 20%쯤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ㅜㅜ 하나님이 산모에게 출산의 고통을 잊게 해주기 위해서 망각을 선물로 주셨다는데 나에겐 선물을 너무 심하게 주신 것 같다ㅜㅜ 덕분에 출산의 악몽도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이외에 많은 것들도 기억이 희미하다... 흑흑

내 눈과 귀가 받아들인 정보 중에 최소 5%만이라도 머리에 남아있다면 나는 지금 세상을 구했을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그래서 나는 메모를 열심히 한다. 메모가 그냥 일상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메모장에 메모를 하려고 폰을 들었다가 홈 화면을 보는 순간 자주 레드썬- 당한다. 메모하려던 것을 잊고 딴 것만 잔뜩 보다가 메모를 못하고 폰을 내려놓는다. ㅜㅜ 아아... 이정도 레벨의 건망증이 있는 내게는 스마트폰보다 고전적인 수첩이 더 나은 것일까.




이 책은 스도 료라는 일본 작가가 썼고, 그는 5년간 스마트폰으로 메모를 해왔다고 한다. 끄적인 메모가 무려 3,204개. 그의 메모장에는 일과 취미, 관심사와 감상 등 자기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담겨있어 무척 귀중한 기록이라 한다.

나도 스마트폰 메모를 꽤 오랫동안 해왔는데, 내 메모의 내용은 주로 계좌번호, 장 볼 목록, 오늘 꼭 해야 할 일, 우연히 들었던 좋았던 노래의 제목, 어디선가 본 인상 깊은 단어, 읽고 싶은 책 목록...

이런 잡다한(?) 메모들이 모여서 큰 그림이 그려지고, 정보와 생각을 조율해서 나와 세상을 연결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저자의 경우는 메모들이 모여 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 잘 풀린 케이스가 아닌가.


사실 메모에 관한 장점에 대해서는 이미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이 많다. 메모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자기 머리를 맹신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요즘은 누구나 다 열심히 메모를 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굳이 스마트폰 메모의 차별화된 장점만을 꼽으라면 별다른 게 있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을 읽기 전의 생각이었다.

스마트폰은 나처럼 자주 레드썬-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타임 킬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담기에는 스마트폰만 한 것이 없지 싶다.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이나 메모들의 순서를 뒤섞어 재배치하는 등의 기능, 또 클라우드에 저장해서 용량 제한 없이 사용하는 기능들이 굳이 찾아보자면 스마트폰 메모만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생각해보니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서 나도 예전보다 메모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첩에 적기에 아주 사소한 메모들부터 생각과 감정에 관한 메모들까지 예전에는 안 적던 카테고리가 늘었다. 나의 생각과 경험에 관한 빅데이터들이 쌓여가고 있다니... 여태까지는 그저 건망증을 만회할 헬퍼쯤으로만 생각했던 스마트폰 메모에 대한 내 시각이 조금 바뀌었다.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나의 스마트폰 메모 내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의 빈도에 따른 순위를 매겨서 내가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지, 나의 성향이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검색 기능으로 요즘 나의 관심 키워드도 찾아볼 수 있다.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들여다보기에 스마트폰의 기능들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빅 데이터 시대에, 디지털화된 내 뇌 속의 생각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그것을 세상에 있는 정보들과 연결해서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 필수이다. 아날로그로 감성 돋는 수첩에 적는 것은 일기 이외의 다른 장르의 끄적임은 더 이상 비효율적인 상황이다. 다시 한번 디지털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신문을 오려서 스크랩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어휴. 요즘은 신문을 사진으로 찍으면 텍스트를 인식해서 글자로 자동 입력해주는 시대라니 천지가 개벽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정보의 인풋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에 반면 아웃풋은 어떤가? 머릿속이 무지하게 복잡하다. (나만 그런가?) 인풋들 중 의미있는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굉장히 멋진 아웃풋을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내 머리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머리 밖에서(=메모장에서) 하면 어떨까? 과부화 걸린 뇌를 좀 편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 밖으로 꺼내진 스마트폰의 메모들이 인공지능과 연결된다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나? 뇌에 전류 장치를 붙이고 정보를 뽑아내어 화면으로 재생시키는 장면이 기억난다. 아직 그런 기술이 상용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모르지- 국제 스파이의 세계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는지도. 그렇게 뇌에서 직접 정보를 뽑아낼 수 있기 전까지는 나의 스마트폰의 메모들이 그 역할을 일부나마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메모 중에서 나의 생각을 읽어내고 조합해서 나도 모르는 획기적인 생각들을 뽑아낼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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