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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이사와 리쿠 상.하 세트 - 전2권
호시 요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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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사와 리쿠》 리뷰|호시 요리코

 

 

 

 

# 진심에 뛰어드는 일

 

 

 

14살 중학생 소녀, 리쿠. 우리나라로 치자면 16살. 중2병의 증세가 있고도 충분한 시기의 소녀의 짧다면 짧은 이야기. 소녀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이나 부모와의 갈등을 그린 게 아닐까 책을 펼치기 전에 진부한 예상을 하기도 했다. 리쿠의 성장의 한 부분을 담은 이야기이지만 무엇보다 리쿠 스스로 자신의 진심에 다가가는 모습을 귀엽고도 섬세하게 잘 담고 있다. 글로 표현했어도 인상적이었을 거 같지만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세세한 표정과 분위기를 알기 쉽게 표현했다. 이 책을 통해 호시 요리코를 처음으로 접했다. 첫 만남이 이토록 마음에 와 닿다니. 이미 호시 요리코의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눈물을 제멋대로 흘릴 수 있지만 그와 달리 내면은 바싹 메마른 소녀 리쿠. 눈에 띄는 외모와 분위기 덕을 보고 있다는 것을 리쿠 스스로 충분히 알고 있다. 동년배였으면 동경하면서도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완벽하다 못해 숨 막히는 엄마, 그리고 엄마릉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불륜을 저지르는 아빠. 나는 리쿠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말았다. 리쿠만의 생각으로 그녀는 새를 죽이려는 행동을 저지르고 그 행동에 충격 받은 엄마 아사에는 그토록 경멸하던 간사이의 친척 집에 당분간 리쿠를 보내기로 한다. 참, 이기심이 하늘을 찌르는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지나친 완벽주의 성격이다 보니 완벽한 가사일을 위해 다른 일을 완벽히 포기한 자신에 대한 뒤늦은 보상심리였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고 마음대로 울 수 없어진 리쿠, 달리기 시작한 리쿠. 귀엽기까지 하다.

+ 일러두기에서 간사이 지역 사투리를 우리나라 경상도 사투리로 옮겼다고 했는데, 나름 재밌게 잘 옮겼지만 경남과 경북이 엄연하게 사투리가 다르고 어색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여러 명에게 검수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은 지역이라도 사람에 따라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니 이미 검수받았을 수도 있지만.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경상도 출신 사람으로서 어색한 부분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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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하면 안 되나요?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 뭉클이라니, '뭉클'이라니?


 

 

 

뭉클이라니, '뭉클'이라니?

'뭉클하면 안되나요?'라는 제목에 '뭉클'이 뭔가요?라고 반문하고 말았다. 뭉클의 정의는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내릴 수 있는 것 같다. 왜 뭉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는지 이해도 된다. 책의 마지막 후기를 대신한 부분에서 저자가 직접 뭉클이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뭉클은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밝히고 있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을 읽고 독자가 느끼는 그 자체를 뭉클로 받아들이길 바라는 것 같다. '언젠가 죽어버릴 우리에게 주어진 사소한 포장' 정도로 설명한다. 뒤이어 나오는 옮긴이의 말에서는 원제의 '큔토스루キュンとする'라는 말은 '찡하고 짠하고 뭉클하고'라는 뜻이 모두 포함되었지만, 편의상 '뭉클하다'로 뭉뚱그려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직접 책을 읽고 난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두근거리다', '쿵 내려앉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뭉클의, 뭉클에 의한, 뭉클을 위한 본격 뭉클 에세이다. 아마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냐 싶을 거다. 마스다 미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아-주 사소한 것까지) 뭉클 에피소드와 거기에 가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심지어 몽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생각도 만날 수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지만 가끔 당황스럽게 만드는 그녀의 특이한 취향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꼴불견처럼 느껴지거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남자들의 행동에서도 '뭉클해'지고마는 마스다 미리. 단지 남자를 이성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닌 엄마나 누나처럼 따뜻한 시선으로도 바라보는 그녀가 느껴지는 책이다. 

 

 

 

 

대부분 그렇듯 마스다 미리의 책은 적어도 20대 중반의 여성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 아마 내가 스무살이나 20대 초반에 이 책을 접했다면 별 감흥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나가서 일로든, 우연히든 부딪는 남자들. 그런 남자들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쌓여 가고 있는 나만의 뭉클 포인트가 있는 여성들이 이 책을 본다면 저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나만의 뭉클 리스트를 작성하고 싶을 것 같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일단 나는 무-척 그렇다! 하지만 일단 나의 가장 근접한 남자들인 남자친구, 아빠, 오빠의 뭉클 포인트를 정리해 보고 싶다가도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자니 어딘가 이상하게 변태가 된 것 같아서 머뭇거려지기도 한다.

 

 

 


# 기억에 남는 구절

 

내 마음을 알아선지 몰라선지(알 리 없겠지만), 현재 일 관계로 만나는 남성들은 카페오레나 허브티를 주문하기도 하고, '진저 소다' 같은 귀여운 음료를 고르기도 하며 적절한 취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메뉴를 펼쳐보지도 않고 "커피"라고 주문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아, 옛날에 좋아했던 타입이야!" 하고 기뻐한다. 돌고 돌아 이렇게 된 사십대다. 

-224쪽, <커피 주문하는데 뭉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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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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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의미부여 없는 에피소드의 연속

 

이봄의 마스다 미리 올해 9월 신간, 마스다 미리의 책 대부분이 그렇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낚이고 보더라도 제목 때문이라도 이 책을 손에 쥘 것 같은 느낌.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라는 제목에서 '오늘도' 내버린 화에 대한 신변잡기와 함께 그 뒤에 드는 후회, 아쉬움, 혹은 자조, 후련함 등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엿보며 나 또한 공감하거나 다른 관점을 얻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화'는 자신을 무너뜨리는 근원이고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여태 '화'를 다룬 많은 책과 토론회 등에서 듣고 들었다. 물론 거기에 동의한다. 화 자체가 잘 나지 않는 사람의 미움 없는 정신 상태가 무척 부럽다. 하지만 치열하기를 요구하는 이 세상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게 쉬울까? 왜 다들, 당장 지하철역에서 옆 사람이 가방으로 내 등을 조금만 쳐도 찡그리고 화를 내는데 왜 '나만' 내지 말라는 거지? 화가 났다는 표현을 물론이고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화까지 가라앉히라는 건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성자들이 성자이고 남들에게 조금 다른 존재로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과는 다르게 욕구와 감정 등을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인내와 침착한 때문이겠지. 결국 돌리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은, 대부분의 사람은 성자도, 부처님도 아니기에 '화'가 나는 일엔 화를 내고 적어도 얼굴 표정의 변화라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저자 역시 그런 보통의 사람이기에, 가끔 스스로도 '참 못났다'고 느껴버리는 감정도 엿보며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책 소개와 제목, 목차를 보며 기대한 책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런 책은 아니다. 특히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책 뒤표지에 책 속에서 발췌한 글귀를 읽고 묘한 반감이 생겼다. 화뿐인 화는 구원받을 수 있고 그러기에 슬픔이 없는 화는 그렇게 대단한 화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생각이 마스다 미리 스스로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었을까? "그 화에 슬픔은 있니?"라는 물음에 "슬픔이 없으면 화가 아닌가요?"라고 반문하고 싶다. 대단한 화가 아니라면 거기서 더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요? 누구에게 전하는 조언과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저자 스스로도 결론을 내지 못하는 그런 물음과 정의에, 이 책은 정말 저자가 화가 났던 일, 또는 났을 법한 일, 또는 났지만 삼키고 말아버린 에피소드만 주욱 나열한 것이었다. 애초부터 책 소개와 제목을 보며 기대했던 것과는 꽤 멀어서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른 마스다 미리의 책과 함께 나란히 가지고 싶은 이유도 분명 있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마치 내가 알던 저자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물론 나이 언급도 있었기에 저자가 예전에 쓴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글이 무려 2002년에 쓰였을 줄이야. 책 마지막 부분에 2002년 초판 당시 쓴 에필로그와 문고본을 내면 다시 쓴 2009년의 에필로그를 보고 정확신 시기를 알 수 있었다. 2002년의 마스다 미리라니, 당시엔 그녀의 존재조차 모르는 (무려) 초등학생이었다! 항상 예전 책을 읽어도 적어도 30대 후반, 보통 40대일 때 저서한 것이기에 이토록 어린(감히 어리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마스다 미리는 처음 만난 것이다. 그녀에게도 이런 서투름과 어린 감정과 발랄한 감정이 존재한 때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니 생소하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10여 년 전의 변함 없이 포근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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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 - be동사에서 주저앉은 당신에게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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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동사에서 다시 일어서다!
 
지난달 이봄에서 나온 마스다 미리의 신간 《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 요즘 다시 시작할 게 너무나도 많지만 책도 리뷰도 놓고 있어 조금 우울한 나날의 나에게 온 잠깐의 휴식처.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줄곧 영어 수업을 접했는데 주변 사람들도, 나도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같다고도 말한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용기 북돔움서이자 다시 시작하는 영어입문서라 할 수 있다. 영어 초보든 어느 정도 익힌 사람이든 "일단 한번 읽어 봐. 후회 없으니!"라고 하며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쇼핑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마흔살의 주부, 미치코 씨는 편집자 시마다 씨를 소개받아 영어 과외에 들어간다. 기초의 기초부터, 즉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미치코 씨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면 이해할 때까지 시마다 씨에게 질문하며 나아간다. 책 속에서 미치코 씨는 당당하게도 그런 학습 분위기를 주도한다. 무작정 회화가 아닌 '영어'라는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외우는 것보다는 이해를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선생님에게 "간단하죠?"라는 식의 단정 짓는 말은 자제해 주길 부탁한다. 이런 미치코 씨의 태도에 과외교사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지만 오히려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않고 외우고 있던 부분이 있음을 깨닭는다. 초등학생 때부터는 물론 대학생이 되어 토익을 준비할 때도 주입식, 외우기가 주 무기인 나의 영어 공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토익은 이해를 떠나 외우고 반복적으로 익힌 요령으로 점수가 오르는 건 사실. 고로 토익 점수와 영어 실력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부터 몸소 느끼고 있었다.

미치코 씨는 영어 회화가 아닌 영어를 차근차근 익히면서 어순이 어떻게 다른지, 영어에서는 왜 정확함을 추구하는지를 하나하나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모국어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영어만의 매력, 모국의 만의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물론 미치코 씨의 모국어는 일본어이지만, 일본어는 어느 정도 어순이나 물건을 세는 단위가 따로 있다는 점 등에서 한국어와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미치코 씨의 그런 이해가 더 와 닿았다. 처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일본인들만의 독특한 사고와 예의를 언어를 통해 알아가며 흥미로웠던 때가 생각났다. 물론 그러한 흥미로움은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지금도 계속해서 느끼고, 일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익힐 때도 마찬가지로 느낄 거라 생각한다.

 

 

 


원어 제목인 'みちこさん英語をやりなおす'과 우리나라 책의 제목의 뜻은 온전히 같다. 원어도 꼭 읽고 싶다. 아쉽게도 온라인에서는 현재 판매하는 곳이 없으니 올 8월 일본 여행에서 손에 넣는 걸로!

 

★ 미치코 씨의 과외 노트 요약

1. 주어=명사, 술어=주어의 상태를 설명하는 부분 동사, 형용사를 포함한다.
2. 어순
영어에서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가장 먼저 전하려고 한다. 그래서 끝까지 듣지 않고도 시작 부분만으로 알아들을 수 있을 때가 많다. 우리말이나 일본어와는 기본적으로 어순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우리말의 어순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특히 일상 대화에서는 어순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어순이 바뀌어도 이해가 가능한 이유는 조사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조사가 없고 대신 단어의 어순으로 문장이 만들어진다.
예) 나는, 먹는다, 초콜릿
나는, 보았다, 황금색, 자동차, 오늘

 


3. 'a'와 'the'
둘 다 명사 앞에 붙이는 것이다. 'a'는 '하나'라는 뜻,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명사에 앞에는 오지 않는다. 반대로 'a'가 붙을 수 있는 명사는 복수형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복수형은 명사 뒤에 's'가 붙는다. 'a sky'가 없으니 'skys'도 당연히 없다. 국가, 도시, 사람 이름 앞에는 a를 붙이지 않는다. 'the'는 'a'와는 다른 차원. 그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강조를 위해서도 사용한다. 'the'는 고유명사 앞에는 쓰지 않는다.
4. be 동사
be 동사는 주어위 그 두의 단어를 동등하게 잇는다. 연결할 수 없을 때는 be동사를 쓰지 않는다. be동사에는 'am, are, is'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주어의 인칭과 복수냐 단수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진다. 복수가 아닌 내가 주어일 때는 무조건 'am'을 쓰고 그 외에는 단수일 경우 'is', 복수일 경우 'are'을 쓴다. 단 'you'가 주어일 경우에는 단수, 복수에 상관없이 'are' 사용.
+ 한 짝의 양말은 socks가 아닌 sock, 하나의 도넛은 donuts가 아닌 do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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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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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도 현실도 아닌,
그렇지만 사랑에 대한 주절거림이기에

소설이라기보다 자전적인 에세이에 픽션을 가미한 느낌. 아무래도 저자가 배우 윤진서다 보니, 소설의 주체가 되는 '나'를 윤진서와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의식해도 나도 모르게 그러고 만다. 배우 윤진서 하면 아직도 <올드보이>에서의 모습이 인상 깊고 후에 그녀가 나오는 작품을 거의 접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연기와 이미지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묘한 윤진서의 (어쩌면 한정된) 이미지는 이 책에서도 그대로 풍기고 있다.
 
상처를 가지고 떠난 여행, 담담한 듯하지만 여전히 그 상처에 아파하는 '나'는 파리로, 뉴욕으로, 아테네로 세상을 떠돈다. 그 떠돔 자체가 동경인 청춘(나 포함)들에겐 어쩌면 좀 사치스러운 이별 여행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미 부러운 존재가 떠드는 아픔인 이야기 혹은 담담히 풀어내는 여정이 그리 와닿지 않는다. 뒷표지 사진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따뜻하고 아늑할 것 같은 방과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했는데 그리 따뜻하지도 공감되지도 않는 어떤 그녀만의 이야기였고, 멀게 느껴졌다. 어떤 구절이나 이야기 속 정황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이 마음 깊은 곳까지 찌르진 못했다. 하지만 이별이든, 사랑이든 '나'만의 많은 생각을 접할 수 있는 건 좋았다. 심오하든 아니든 누군가의 사랑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읽는 건 흥미롭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또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

 


시작 부분에서부터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와 비슷한 정황이 등장하고 중간중간에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에서 만난 완벽한 이성과의 환상이라도 심어주었지만 《파리 빌라》는 환상도 현실도 아닌 넋두리들을 전해주었다.
 
아마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도 이야기 곳곳에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더 여행에세이 같았던.
소설에도 사진이 함께 등장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읽는 사람의 독자적인 상상과 떠올린 이미지를 깨거나 한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면 굳이 등장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풍경보단 찍는 이의 정서를 중점으로 담아낸 사진을 보며 "난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난 이 이야기가 이런 느낌이길 바라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기억에 남는 구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호텔로 돌아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줄리 델피가 파리로 가는 길에 낯선 남자를 만나 비엔나 역에서 조심스레 그의 손을 잡고 내리는 장면에서, 난 단 한 번도 그녀가 용기 있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같은 여자로서 단지 부럽고 나도 저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만 생각해왔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누군가를 거쳐 내개 돌아온다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지나간 그에게 머물고 있었다.
-110쪽,  <Aix-en-Provence>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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