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화가 김병종은 책의 서문에서 시인 김용택이 극찬한 것과 같이 뛰어난 화가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작가이다. 거칠게 일필로 슥슥 그어댄 것 같은 그의 그림은 언뜻 보기와 달리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글 또한 담담하고 소박한 말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섬세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그 글로서 알 수 있다고 했다. 향기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곧 향기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작가는 향기가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향기가 있다는 건 그 사람이 분명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저미어 오는 가슴을 누르고 누르다 못내 복받쳐 울어본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향기나는 사람인 작가는 라틴의 화첩을 그림보다 향기가 있는 라틴의 사람들로 풀어낸다.
 

    체 게바라, 파블로 네루다, 헤밍웨이, 프리다 칼로, 피아졸라, 아타우알파 유팡키... 시대를 뛰어넘어 아직까지 그 진한 향기를 남기는 이름들은 찬란한 색채로 풀어내는 작가 본인의 삽화들과 어우러져 읽는 이의 코끝이 아니라 눈시울을 찡하게 한다. 작가의 눈과 가슴을 통해 재해석된 라틴은 이러한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진다. 이들 모두 가슴으로 울어봤고, 가슴으로 피 흘리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현실의 절망과 지독한 슬픔을 압도하는 '삶', 그 자체 이다. 이 '삶'은 총천연색의 그림이며, 타악기의 리듬이며, 찐득한 탱고의 춤사위이다. 스페인어에서 Life란 의미로 사용되는 Vida는 영어의 감탄사 Viva와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다. 결국 삶이란 감탄할만 한 것이며, 삶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그리는 라틴은 이러한 위대한 낙천의 땅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낙천은 현실에 대한 단순한 체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낙천의 라틴은 또한 혁명의 땅이다. 총과 총알로, 펜과 글로, 붓과 그림으로 혁명을 위해 싸워나갔던 이들의 성지이다. '삶'이란 살아볼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삶'은 오직 그 삶을 살아볼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나간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다. 한장, 한장 작가의 발자국을 따라 쿠바에서부터 페루까지 이어지는 라틴 여행을 마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어제까지 살아오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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