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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 우리가 가고 싶었던 우리나라 오지 마을 ㅣ 벨라루나 한뼘여행 시리즈 1
이원근 지음 / 벨라루나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이원근 지음
얼마전에 일때문에 찾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산지기들이 머문다는 산장을 찾은적이 있다. 서울에서 불과 한시간이면 닿는 곳이지만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동네라서 그 산장에 가만히 앉아 커피와 함께 즐기던 적막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도시의 사람들에게 ‘무소음’이란 시계 광고문구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인 것이다. 이리 저리 시달리며 살다보면 저 깊숙히 아무도 없는 어딘가에 들어가서 단절이라는 것을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는 길은 해외여행 보다도 멀게 느껴지는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몇 가지 무지와 그에 따르는 두려움일텐데. 먼 나라 골목 구석 구석, 잠자리, 먹거리까지 상세하게 소개되어있는 수 많은 여행정보들이 넘치는 반면, 아무도 모르는 적막한 동네는 정말 아무도 모르기 때문인지, 숙소나 음식에 대한 것들은 커녕 어디쯤에 있고 어떻게 가야하는지 조차 정보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살벌한 이야기의 영화 <곡성>을 보면서도 배경이 되는 동네의 아름다움이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였으니 ‘오지’에 대한 내 갈증은 생각보다도 더 컸던 모양이다.
(사실 오지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제외한 모든것이 가득한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에서의 생활은 풍족한 것이라기 보다는 극단적인 결핍의 삶이다.)
이런 내 앞에 이런 책이 나타났다.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주말에, 그리고 아무데나라니. 무척 혹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그 부제가 더더욱 멋지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우리나라 오지 마을>
이거야말로 내가 정말 원하던 완벽한 제목의 책이 아닌가.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써낸 제목같아서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실용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벨라루나의 한뼘여행 시리즈의 1편으로, 여행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가 직접 다녀온 국내 55개소를 지역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매주 주말, 1년 내내 움직여도 다 못 가볼 어마어마한 양이다. 각 지역별로 사진들, 교통편, 추천 코스, 저자의 토막 경험 등으로 간결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런 안내서가 나올때마다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는것 같아서 걱정도 함께 하게 되는데, 책을 읽다보니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일단 자가 차량이 없으면 접근조차 불가능하고,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대부분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같은 뚜벅이는 이 책을 아무리 들여다 본들 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 곳곳에 숨은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나마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지만 약간의 조건만 갖춰진다면 소개되어 있는 모든 지역을 돌아보고 싶다.
이 좁은 한국 땅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아무 것도 닿지 않는, 인적을 찾기가 힘든 동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나 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제대로 활용 할 수 있을것 같진 않지만 분명 언젠가 종종 꺼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실제로 쓰임이 있기 때문에 실용 서적이 아닌가. 분명히 아무나 갈 수 있을법한 곳들은 아니지만 여건도, 의욕도, 용기도 모두 갖췄는데 도저히 어딜 가야 할 지 모르겠다 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강원도 태백의 권춘섭집앞 역.
주위에 있는거라곤 권춘섭씨의 집 밖에 없어서 역 이름이 이렇다고 한다. 사실 역 이름보다도 저런 동네에 정류장이 있을 수 있다는것 자체가 신기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새삼 한국이 생각만큼 좁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프랑스에서 온 친구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1박2일로 부산을 다녀온다던 그 친구가 신기해서 서너시간씩이나 들여서 그 먼데를 이틀만에 다녀 오냐고 물었더니 그정도는 유럽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 란다. 그 친구는 한국에 머물렀던 2년 남짓동안 내가 평생 돌아다닌것 보다도 더 많은 곳을 경험하고는 돌아갔다. 정보를 얻기가 워낙 쉬워진 시대라서 방 구석에 만 있어도 마치 이 넓은 세상을 다 돌아본것 같은 착각을 하기 쉽지만 저마다,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은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한다. 어쨌든 변하지 않는 것은 가보지 못한 수 많은 멋진 장소가, 스크린이나 책 속이 아닌 서너시간쯤 떨어진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