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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판 사나이 ㅣ 로버트 A. 하인라인 중단편 전집 1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고호관 외 옮김 / 아작 / 2023년 4월
평점 :
상상력이 향하는 곳
SF는 그간 수많은 방향으로 확장되어 왔다. 소위 부르는 하드 SF- 소프트 SF가 하나의 축이 될 수 있겠고, 다양성, 여성주의, 인권지향적… 아무튼 다양한 방향을 지닌 채 SF는 훌륭한 탈 것이 되어 지금의 시대까지 달려온 듯 하다.
SF는 정말이지 하나의 장르일 뿐, 그것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바는 무궁무진하다. 하나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를 한번 투영해본다면, 당연히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 만큼의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책의 첫머리 추천사의 글이 참 마음에 든다. “미래사 연작들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피라미드에 가깝다. 앞선 작품은 뒤를 잇는 작품이 탄탄하게 서도록 기반을 제공한다.” 피라미드라는 표현이 좋다. 이 1권을 읽는 것만으로 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세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발전이 필요하다. 누군가 쌓아올린 계단 위에 다시 발을 올려두고, 그 위를 올라갈 계단을 쌓는다.
당연하지만 계단을 만든 사람들도 주관이 있어 자신들의 뜻이 반영된 계단을 쌓는다. 누군가는 선의로, 누군가는 악의로 쌓아올린 계단에 다시 호의와 질시를 가진 누군가가 선다.
미래사 연작은 하나하나 황홀한 인간찬가로 이루어진 계단이다.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한 사람들이 타인과 공동체, 인류를 위해 쌓은 피라미드다.
특히 1권은, <생명선>에서 시작하여 <달을 판 사나이>까지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골몰히 생각하는 작품들이다. 가끔 그 문제가 내 상상보다 너무 커져서, 눈덩이 굴리듯 커져서 다음장을 넘길 때마다 어, 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망연자실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하인라인이 다가와서는, “어휴. 그래도 어떻게든 할 거야.” 라면서 가까스로 건진 결과물을 보여준다. 엉망진창 일이 있은 후 이 작가가 쥐어준 꼬질꼬질한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는 그래도 본전은 건졌군, 하고 생각하게 되는 기분이 참 묘하다.
<생명선>에서 절대적인 정보를 가진 박사가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는 것도, <빛이 있으라>의 두 과학자가 극적인 발견으로 사회적 위기를 타파하는 것도, <도로는 굴러가야 한다>의 군인이 질서를 되찾으면서 갖는 동정에서도, <폭발은 일어난다>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대한 연민도 하나 같이 따뜻한 마음씨에서 우러나오는 결말들이다.
나는 미래사 연작을 읽고, 이 작가는 SF계의 디즈니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이후 배신당하는데, 아무튼 4권까진 그랬다.
마지막 <달을 판 사나이>는, 아 세상에. 이 작품을 읽고 나는 새벽 4시에 달을 보러 나가기까지 했다. 고요의 바다를 우주선 창 밖으로 구경하는 내게, 잠시 광고 시간이라면서 달 위로 터지는 우주 광고를 상상하기까지 했다고. 가진 적도 없는 미국 소년의 노스텔지어가 내 안에 때려박아지는 기분이란.
“인류는 별들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고, 이 모험은 전에 없던 문제들을 만들어낼 거야.”_303p
우리는 이 모험을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이유도 없다. 골썩이는 문제들이란 원래 전에 없던 것들이다. 미래사 연작은 후에 올 시간에 우리가 문제를 직면했을 때,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기를 이야기한다. 전집을 시작하기에 최고의 1권이 될 거고, 1권을 읽었다면 2권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1권을 읽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 2권에게로 넘겨지니까. 정말이지 악랄하고 훌륭한 편집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나만 읽는다는 건 -물론 바다 건너 사람들은 이미 100년정도 먼저 읽었다는 걸 안다. 재수없긴. 나한테도 줬어야지. - 세계적으로 매우 큰 손실 같으므로 어떻게든 추천하기 위해 글을 써보고있다.
“별은 멀고 인생은 짧으며 도박장은 항상 수수료를 떼어간다. 하지만 인류는 아주 낮은 확률을 뚫고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하인라인은 인류에게 돈을 건다.“_14p
1권을 다 읽고 난 후 나도 그에게 판돈을 올리기로 했다!
별은 멀고 인생은 짧으며 도박장은 항상 수수료를 떼어간다. 하지만 인류는 아주 낮은 확률을 뚫고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하인라인은 인류에게 돈을 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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