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이 돈을 모아 과일과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이재명은 누구보다담임선생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이재명처럼 돈을 내지 못한 아이들은 사은회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선생님이 몇 번이나 먹으라고 했지만 먹지 않았다. 선생님께 죄송하고돈을 낸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자존심도 상했다.

자두와 복숭아의 달콤한 향기가 교실에 가득했다. 아이들이 깨물어먹는 자두의 새콤달콤한 냄새에 그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였다. 어린 이재명은 침 넘기는 소리가 날까 조심조심 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참은 것이 다 허사가 되고 말았다.

사은회가 끝나고 난 다음, 청소시간이었다. 이재명은 선생님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과일에 손을 대고 말았다. 이재명과 그의 친구들은 결국 그 과일을 게 눈 감추듯 전부 먹어버렸다. 그 장면을 목격한 선생님은 그들을 엎드려뻗쳐 시키고 몽둥이질을 했다.

"먹으라고 할 때 딩딩하게 먹지 못하고 왜 훔쳐 먹느냐?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가르쳤단 말이냐!"
아이들을 호되게 야단친 선생님이 교실을 나서며 말했다.

"그대로 기다리고 있어."

이재명과 그의 가난한 친구들은 더 맞을 각오를 했다. 그런데 다시돌아온 선생님의 손에는 과일이 들려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다른 아이들 앞에서 먹지 못하다가 결국 허기 앞에 무릎을 꿇은 어린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신 것이었다. 

하지만 이재명은 자꾸만 눈물이 나서 선생님이 사다준 500원어치 과일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른 선생님에게 스물일곱대의 뺨을 맞으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재명이었다. 고개를 떨어뜨린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떤 날보다도 멀고 힘들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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