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부와 명예, 지위도 바라지 않고역사와 민중을 위해 온몸을 바친 한 ‘혁명적 인간의 초상

윤한봉, 그 이름을 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광주 시절 그는 내 문화운동의 정치위원이었고 해외 망명 시기에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식구들은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합수라고 불렀다. 거름의 토박이말인 합수는 그의 별명이기도 했다.
그는 살아서 광주는 물론 분단된 조국의 거름이 되겠노라 했으며 죽어서는 5-18 광주아우들의 틈으로 돌아가 묻혔다. 지혜롭고 강인하고 부지런했던 합수는 원칙의 사내였고 그 때문에 모두가 불편해하였다. 오늘 나는 그가 곁에 있어 나를 여전히 불편하게 해주기를 소망한다.
황석영 소설가

그립고 또 그립다. 가진 것이라곤 운동화 한 켤레와 낡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던 그의청빈과 겸손이, 드넓은 미국 땅을 그물 같은 조직으로 촘촘히 엮어냈던 실행력이, 온갖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그의 예술적 감성이. 나는 여태 한국의 민중운동가 가운데 그모두를 이토록 탁월하게 합치시킨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이를 합수(水)라고 부른다.
문규현 신부

25년 전, 윤한봉이 긴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귀국하게 되었을 때 세월은 무심하여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윤한봉, 그의 이름을 모른다면 나이가 이주 어린 사람이거나 인생을 너무 쉽게 산 사람이다." 일제강점기에 백범이 있었다면 군사독재 시절엔 윤한봉이 있었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윤한봉은 전남대학교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된 이래 민주화운동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주모자로 지목되어 수배를 받아오다 1981년 미국으로밀항하여 망명자가 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민족학교, 재미한국청년연합, 재미한겨레동포연합 등을조직하여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 재미동포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으며, 타민족 활동가들과 ‘반전 반핵을 위한 국제연대‘를 조직하여 세계평화에 힘을쏟았다.

1993년 수배가 해제되어 12년 만에 돌아온 광주에서 5·18정신 계승을 위해 헌신하다 2007년 6월 지병인 폐기종으로 타계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한공로를 인정받아 그해 국민훈장 동백장이 추서되었다.

지은이 안재성 :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몸담았고, 이로써 두 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역사 발전과 인권운동에 몸 바친 인물들에 관심이 많아 ‘황금 이삭‘, ‘경성 트로이카‘ ‘파업‘ ‘연안행‘ 등의 장편소설과『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박헌영 평전』 ‘실종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등의 평전을 썼고, ‘청계, 내 청춘‘ ‘한국노동운동사 1, 2.‘ 등의 노동운동책과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등의역사책을 지었다.

"한봉이 형은 살아 있는 예수야."
"한국의 간디, 한국의 호찌민이지요."
"동학의 창시자 최시형 같은 분이지."
이 무슨 황당한 찬사란 말인가?  - P5

민주화운동 과정이나 인생행로, 성격과 생활습관 등 여러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일관된 무소유 정신과 무한한 헌신성은 누구와도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순결하여 하얀 별과 같고따뜻하여 봄 햇살과도 같아 우리는 그를 삶의 나침반이자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일컬었으나 그는 다만 자신을 합수라 불리기를 바랐다. 

그의 별명 합수(水)란 두 줄기 물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호남 지방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한다. 

역사와 민중을 위해인생을 바쳤노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명예도 직위도돈도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퇴비가 된 이는 드물다. 

윤한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P7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의 삶을 기록하면서 가슴 저린 감동을 느껴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윤한봉은 끊임없이 내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사람이다. 

취재를 끝내고 글로 옮기는 내내 그는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삶에 감동했을 뿐 아니라, 나의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삶을 직시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대단한 의지로 역경을 극복하고큰일을 해내서만은 아니다. 

특별한 사상이나 업적이 있어서만도 아니다. 

그것은 순결하고 따뜻한 ‘인간 윤한봉‘ 이
온몸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P9

그런데 청년은 침대를 안 쓰고 꼭 맨바닥에서 잤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동료와 후배가 지금도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는데 제가 어떻게 편안하게 침대에서 잠을 자겠어요?"
- P16

"조국의 동지들이 모아준 피 같은 돈을 어떻게 함부로쓸 수가 있나요? 이 돈은 미국의 한인운동을 위해서라면몰라도 저 개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수 없어요."
시인 같은 섬세함과 순결함을 가진 이 청년은 시애틀 한인들에게 김일민으로 불렸다. 

미국 내에서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시애틀의 김동건 부부와 워싱턴D.C.의 패리스하비(Pharis Harvey) 목사 등 몇몇뿐이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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