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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KG짜리 바벨을 양쪽에 달면 5KG이 된다
방현일 지음 / 좋은땅 / 2024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탄산음료처럼 톡톡 튀는 「2KG짜리 바벨을 양쪽에 달면 5KG이 된다」라는 작품은 기발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다소 엉뚱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음절의 획과 한자인 죽을 사(死)와 결합하여 숫자를 빼고 합산하는 방식의 전개는 독특하면서 특이했지만, 뜻밖의 결과를 만들었다.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나, 또 뜻밖에 우연의 조합이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탄산음료의 시원한 손맛과 갈증을 해소하는 목 넘김 같은 작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은 쉽게 여닫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가본 적 없는 곳에서 문을 열기란 쉽지 않다. 꼭 열지 않아도 된다면 대부분 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장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하 계단에 내려가서 문을 열어야 한다면 대부분 망설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야 해서 지하로 내려왔지만, 지하는 어둡고 문은 육중하면서 녹슨 철문이라면 잡는 순간도 차갑게 느껴지고 여는 소리도 섬찟할 수 있다. 「컵」은 가정 폭력과 이복동생, 치매 등 다소 접할 수 있는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어른의 힘에 아이는 강제로 따르게 마련이다. 아이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성인으로 가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아이는 그런 환경 속에서 어딘가 모르게 부서져 있다. 잊기 어렵다면 잃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고장 난 선풍기가 하나밖에 없다면, 당장 돈이 없다면 선풍기를 고쳐 보기로 한다.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분해해 보면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어디가 어떻게 고장 난 건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어디가 부러졌으면 테이프라도 감아서 사용하면 되지만, 버리기도 그렇고 쓰기도 애매하다. ‘미련’이다. 「다리」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물건을 바라보면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 물건과 관련이 있다면 보잘것없고 당장 필요가 없어도 버리지 못한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는데, 하며 버리려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함께하기로 한다. ‘사랑’이다.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닌,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우리는 흔히 그 후가 문제가 된다. 그 사람과 잘못되었을 때 특히나 완전 껄끄럽게 됐을 때, 내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것이 후회된다. 나쁜 것은 동정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하다. 위에 나쁜 것은 악(惡)이 아니라, 약(弱)이다. 「혹돔」은 성(性)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빈대는 하루에 섹스를 이백 번 정도 하는데, 그중에 동성애가 일백 번이래.”
「혹돔」은 그들의 삶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소수자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하고 있다.
「선택」은 쉬우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 O 아니면 X인데, 할 때마다 엄청난 고민을 한다. 심지어 남들이 보았을 때 별거 아닌 것 같은 것도 그걸로 몇 날 며칠을 선택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것은 ‘선택의 두려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선택했을 때, 내가 잘한 걸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실제 ‘선택’을 했을 때, 잘하고 못하고가 아닌, 엄청난 무엇을 가져올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선택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나 자신도 모르는데, 남을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조(模造)」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고 선택하라면 선택하겠는가를 곱씹고 있다. ‘모조’는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모조’가 현실이라면 다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적어도 선택에 있어서 신중했을 것이며, 끝이 달랐을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인생은 참 쉽지 않고 아프고 힘들지만,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탈피」는 세상 온갖 군상들의 적나라한 현실기(現實記)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고 환경에 어쩔 수 없는 사람도 있고 결코 해서는 안 될 ‘폭력’의 삶을 걸어 온 사람도 있다. 제1일의 인생을 끝내고 제2의 인생을 선택하려고 모였다. 기관의 ‘프로젝트’ 가상공간에서의 선택은 어찌 보면, 이제는 당연한 것 같기도 하면서 서글프기도 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좁고 그래도 살아가야 했기에, 강제 아닌 강제 속에서의 삶은 마치 ‘인격 말살’과도 같은 또 하나의 폭력 같다. 화가 나면서도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변화 속에 내가 속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결국 변화해가는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모든 ‘나’를 보면서 이왕이면 힘차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