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특급열차 - 김정일과 함께한 24일간의 러시아 여행
콘스탄틴 보리소비치 풀리코프스키 지음, 성종환 옮김 / 중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2001년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열차편을 통하여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을 열차 내에서 수행한 러시아 연방공화국 극동지역 전권대리인 풀리코프스키가 작성한 회고록이다.

얼마 전에 김정은이 열차편을 통해 방중하는 내용을 담은 선전 다큐멘터리 형식의 조선중앙TV 영상물을 SBS가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북한 매체의 시선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김정일의 여행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경유지들에 정차하여 현지 시찰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체 게바라의 모토사이클 다이어리같이 광활한 대륙을 여행하는 느낌(?) 또한 살짝 준다.

소련 군 장성을 지내고, 러시아 연방에서 정치인을 하고 있던 필자는 한반도 정세(남과 북 모두)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갖추고 있는 듯 했다. 책에서 19세기 말 러시아 항해사들이 일본에서 출항하여, 조선 땅에 달하여, 자신들을 경계하는 조선인들과 한자 필담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했다는 러시아 기록을 소개했는데, 개화 이전의 조선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여 흥미로웠다.

1주일 넘는 기간동안 열차 내에서 싱싱하고 살아있는 식재료를 이용하기 위해, 북한에서 비행기로 러시아 대륙 중간중간마다 식재료를 공수해서, 열차가 정차했을 때 식재료를 공급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또한 경유지에서 현지 요리사가 요리한 불가리아 요리가 정통의 맛이 아니라고 김정일이 지적했던 대목도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사치이다. 그냥 자기가 비행기 타고 가면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할 일이 없을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점들은 김정일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었다. 김정일은 한국이 동북아 지역에 중요한 시장이라고 직접 언급했다. 그 밖에 김치를 세계화한 남조선 인민들이 자랑스럽다고 하는 등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언급도 있었는데, 김대중 정권 당시 한반도 평화 정세를 고려해보면 자연스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영상물들을 보면, 김정일이 남측 인사들한테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보았을텐데, 북에 있는 양계농장 시설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고 묻는 등 명백하게 남측이 발전된 것을 인정하는 장면이 있었다. 북한의 지도자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언젠가 인민들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이 남아있을까? 명백하게 체제 전쟁에서 자신들이 패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상상을 초월하는 인민 탄압과 폐쇄적인 정책을 지속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단순히 자신들의 향락적인 삶을 지속하기 위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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